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가슴 조이며 살지 말자.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8. 7. 12:53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8월 6일)

오늘 아침은 '가슴 조이며 살지 말자'가 화두이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 '조바심'이다. '바심'은 '타작'을 뜻한다. 즉 곡식의 이삭을 떨어서 낱알을 거두는 일이다. '조바심'은 말 그대로 조를 타작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조는 질겨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즉 타작하기가 쉽지 않다. 생각대로 잘 되지 않으니 마음이 급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바라는 대로 일이 안 되면 어떨까'하며 조마조마하게 마을 졸인다는 의미가 생겼다.  조바심을 없애려면 시시하게 살면 된다. 그런데, 시시하게 살면 행복하다.

시시가 무엇인가? 한가로운 것이다. 비록 몸은 부지런해도 잠재의식이 한가롭다면 시시할 수 있다.  이때 잠재의식이 한가로우려면 행동은 단순하고 소박해야 한다. 기대하고 바라는 게 적어야 한다. 부지런하지 않으면서 한가로운 것이 행복의 원천이다. 몸이든, 의식이든, 행동이든 모두가 한가해야 행복해진다. 그러니까 시시하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한가로우면 행복해진다. 우리가 지금 힘든 것은 다들 바쁘고 여유가 없는 탓이다. 시시하고 싱겁고 재미없는 것을 좋아해야 한다. 시시하고 특별한 것이라곤 하나 없는 일상(日常)이 감사의 기본이다. 일상의 지루함을 탈출하기 위해 일탈(逸脫)을 꿈꾸지만, 일상이 깨지는 상황을 상상해 보면, 그건 불행이다. 시시하다고 가치 없는 것은 아니다. 반복적이다 보니 파격적이지 못할 뿐이다. 일상은 시시하다 그리고 식상하다.  그러나 시시하고 식상한 것은 보통 우리 곁에 있다. 왜냐하면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 최경규 심리상담사의 글을 읽었다. "가슴 조이며 살지 말자. 바람보다 더 빠른 세상 움켜잡으려 할수록 손가락 사이로 세월은 빨리 도망간다. 진심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보자.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오늘.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에게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 보자. 단순하게 살수록 가질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이 행복으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는 지금 대량 소비와 속도, 경쟁의 악순환 속에서 출세, 성공 그리고 돈의 가치가 정신을 빼앗아 간 것도 모르고 바쁘다는 것을 무슨 깃발처럼 흔들며 살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자연은 파괴되고 생명 본래의 단순한 삶, 절제와 고요함의 가치는 산만함 속으로 파묻혀 갔다. 그러니 이젠 멈추어야 한다.

단순하게 사는 것이란 생각은 깊이 하되, 쓸데없는 생각들 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미리 걱정하며 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고,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지려 복잡함 속에 자신을 내버려 두지 않는 거다. 내 힘으로 조절할 수 없는 것은 그대로 흘러가게 두는 지혜가 필요하다. 무엇이든 잘하고 싶고,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싶다면 내일에 무게중심을 두지 말고 오늘을 제대로 살면 된다. 오늘을 잘 사는 비결이 있다면 바로 '진심으로' 살아가는 거다.

현대인 대부분은 대도시에서 산다. 그뿐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수억 명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나보다 훨씬 잘난 사람이 너무 많아 보인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로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세상에는 더 대단한 사람이 수두룩하다는 것을 우리는 매일 본다. 따라서 내가 하는 일은 재미도, 의미도 없이 따분하기만 하고, 살림살이는 팍팍하고, 취향은 후지고, 몸매는 내세울 게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내면에는 우리를 잘 아는 비평가가 살고 있다. 물론 객관적인 자기 비판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가혹한 자기 비판으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어차피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법이다. 죽으면 다 소용 없다'면서, 자신을 지키는 것을 우리는 '긍정적 망상(positive illusion)'이라 한다. 세상이 너무 끔찍하고 무서운 곳이어서 망상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거다. 한마디로 거짓말 보호막을 활용하는 거다.

그것보다 더 바람직한 대안이 있다. 내면의 비평가가 늘 자신의 노력과 삶의 가치를 깎아내린다면 그 목소리에 귀를 닫아야 한다. 그건 지혜로운 충고가 아니라 쓸모 없는 지껄임이기 때문이다. '너보다 잘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아'라는 내면의 목소리는 허무주의의 상투적인 구호에 불과하다. '그러면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이 뭐가 있냐?' 하고 화를 내야 한다. 매사에 부정적인 내면의 목소리는 더 나은 삶을 위한 따뜻한 배려가 아니라, 합리성으로 위장한 비열한 속임수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모든 게 부질없는 짓이야"라 반응하면 지는 거다.

우리가 삶을 성공과 실패라는 두 잣대로만 보기에는 훨씬 복잡하다. 성공과 실패는 단 한 번의 게임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게임이 있다. 좋은 게임은 내 소질과 능력에 맞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생산적인 방향으로 이끌며,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조금씩 성장시키는 게임이다. 각자 자기가 하고 있는 일, 예를 들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작업 중인 작품, 직업 등이 게임이다. 게다가 어떤 게임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다른 게임에 도전하면 된다.  또한 게임을 바꿔도 효과가 없으면 아예 새로운 게임을 선택할 수도 있다.

우리는 모든 게임에서 승리할 수는 없다. 모든 게임에서 승리한다는 말은 새로운 분야, 까다로운 분야에는 도전하지 않았다는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승리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성장하지는 않았다는 의미일 수 있다. 궁극적으로 성장이 가장 의미 있는 성공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것을 얻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인생의 게임들은 사람마다 달라서 다른 사람과의 비교는 무의미하다. 사실 얻는게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게 있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완벽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다.

지난 월요일부터 동네 학교 운동장에서 맨발로 걷기를 한다. 몸이 균형을 이루며, 자연의 리듬을 회복했다. 그래 오늘 아침 시처럼, 세상 일에 "됐심더"를 외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동네 말로는 '댔슈'이다. 이전 부정이다.

됐심더/곽효환

가난하고 쓸쓸하게 살았지만 소박하고 섬세하고 애련한 시를 쓰는 한 시인이 선배 시인의 소개로 고고했으나 불의의 총탄에 세상을 뜬 영부인의 전기를 썼다 불행하게 아내를 잃은 불행한 군인이었던 대통령이 두 시인을 안가로 초대했는데 술을 잘 못하는 풍채 좋은 선배 시인은 그저 눈만 껌벅였고 왜소했으나 강단 있는 두 사내가 투박한 사투리를 주고받으며 양주 두 병을 다 비웠다 어느 정도 술이 오르자 시인의 살림살이를 미리 귀띔해 들은 대통령이 불쑥 물었다

"임자, 뭐 도울 일 없나?"

잠시 침묵이 흐르고 시인이 답했다

"됐심더"

강과 바다가 만나 붉게 타오르는 강어귀 언덕에서 가난 섞인 울음을 삼키던 여학교 사환이었던 소년은 꿈꾸던 시인이 되어서도 그렇게 일생을 적막하게 살았고 만년을 쓸쓸히 병마에 시달리다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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