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은 공부를 통해 가능하지만, 나 자신을 아는 것은 내가 지닌 한계를 벗어나야 하기에 어렵다.

3403.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8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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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8월이다. 밖은 몹시 덥다. 올해도 집을 떠나지 않고 책을 읽으며 동네에서 놀고 있다. 매년 8월이 오면 거의 자동적으로 소환되는 오세영 시인의 <8월의 시>를 꺼내 읽는다. 왜냐하면, 시인의 말처럼, "8월은/오르는 길을 멈추고/한번쯤 돌아가는 길을/생각하게 만드는 달이"기 때문이다.
8월의 시/오세영
8월은
오르는 길을 멈추고
한번쯤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 달이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
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 오는 것
풀섶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
8월은 정상에 오르기전
한번쯤 녹음에 지쳐
단풍이 드는
가을산을 생각하는 달이다.
2
지난 7월 30일에 못한 이야기를 좀 더 이어간다.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속담이 잘 말해준다. 사람을 아는 것은 오직 지혜로운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그 힘이 되는 것이 바로 공부다. 특히 사람에 관한 학문인 인문 고전은 사람을 아는 통찰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노자는 그보다 더 높은 차원을 이야기하는데, 바로 나 자신을 아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은 공부를 통해 가능하지만, 나 자신을 아는 것은 내가 지닌 한계를 벗어나야 하기에 어렵다. 욕심, 자존심, 자만심, 교만, 자기 연민, 비교 의식 등 스스로도 제어하기 어려운 장애물이 가로막는다.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끊임없이 변하는 내 마음이다.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대하는 상대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마음을 통제하기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노자 <<도덕경>> 에서 상대적으로 짧은 제33장의 이야기이다.
제일 처 문장이 "知人者智(지인자지) 自知者明(자지자명):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고, 자신을 아는 사람은 밝다"라는 거다. 노자는 '지(智)'와 '명(明)'을 구분한다. '지'는 대립적 시각으로 사물과 사람을 구분하는 지적 능력을 일컫고, '명'은 통합적 시각으로 만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일컫는다. '도'를 지각하는 것은 후자를 통해서다. 왜냐하면 도란 나뉘어져 있지 않고 하나로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남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을 나와 구분된 객체로서 인식한다는 것이며, '나를 안다는 것'은 독립된 인격체로서 나라는 존재의 본질을 꿰뚫어 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을 아는 것은 지에 해당되고 나를 아는 것은 '명'에 해당된다. 도올 김용옥은 이 '명'을 불교에서 말하는 '오(悟)', '깨달음'으로 풀이를 한다.
여기서 지(智)는 '지략(智略)'이나 '지모(智謀)' 같은 말에서 보듯이 훌륭한 지혜가 아니고, '꾀'같은 것으로 읽는다. 다른 사람을 아는 것은 일상 생활에서 성공하는 데 필요한 일일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인간'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려는 학문을 통해 인간의 본성이나, 문화적 그리고 역사적 맥락 등을 아는 일도 좋은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이나 인간 전체의 외적, 객관적 사실만 아는 앎은 피상적인 '지(智)'에 불과하므로 불충분하다는 거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을 아는 것이다. 스스로를 아는 것을 '명(明)'이라 했다. 이 말은 사물의 깊은 이치를 깨닫는 깨우침으로서 '관(觀)'보다 한 단계 더 깊은 체험적 인식 능력이다.
<<도덕경>> 제3장에 나오는 '그 마음은 텅 비우게 하고, 그 배를 채워주며, 그 의지는 유약하게 해주고, 그 뼈대를 강하게 한다(虛基心, 實基腹, 弱基志, 强機骨, 허기심, 실기복, 약기지, 강기골)"는 문장을 가지고, '지인(知人)'과 '자지(自知)'를 설명할 수도 있다. 비우고 약화시켜야 할 마음과 의지는 이미 설정되어 있는 가치 체계라는 그물망을 통과하여 외부로 향하고 있는 것들이다. 반면에 아직 인위적 가치의 지배로부터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의 상징으로서의 배와 뼈대는 채우고 강화시켜야 한다고 노자는 말하고 있다는 거다. 마음과 의지가 '지인'의 범위 안에서 잡히는 내용이라면, 배와 뼈대는 '자지'의 범위 안에 있는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3
두 번 째 문장은 "勝人者有力(승인자유력) 自勝者强(자승자강):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세고, 자신을 이기는 사람은 강하다"는 거다. 나와 분리된 객체로서 타인을 이기는 것은 '유력'이고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은 '강'이라 한다. 타인을 통제하는 힘인 권력은 '유력'의 범주에 해당되고, 마음의 갈등을 스스로 다스리고 조절하는 힘은 '강'에 해당된다.
'힘'이란 말의 영어는 두 가지가 있다. '포스(force)'와 '파워(power)'. 프랑스어로는 'la force'와 'le pouvoir'라고 한다. '포스'가 '명함의 힘'이고, '파워'가 '발가벗은 힘'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어의 le pouvoir는 명사형으로 '힘, 능력, 역량'을 뜻하지만, 동사 쓰일 때 pouvoir는 영어의 can처럼 조동사로 쓰인다. '~을 할 수 있다'란 뜻이다. 그러니까 그 명사형, le pouvoir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음'이 된다. 이게 '발가벗은 힘'이 아닐까? 저자는 박창수의 『임파워링하라』 에서 포스와 파워를 이렇게 구분한다고 소개하였다. 포스는 외부의 힘과 환경에 의해 생겨나는 것으로 물리적인 힘이라면, 파워는 자기 자신이 영향을 주는 힘이며, 인간이 본래 갖고 있는 내면의 힘이다. 우리 각자가 자기다운 모습으로 성장해 나가는 데는 포스가 아니라, 파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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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 째 문장은 "知足者富(지족자부) 强行者有志(강행자유지): 족함을 아는 사람은 부유하고, 강한 사람, 행함을 관철하는 자의 행동에는 지조가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지족(知足)은 나를 아는 것이고, 강행(强行)은 나를 이기는 것이다. 그래서 지족하면 부유하다고 했고, 강행에는 지조가 있다고 했다. 여기서 '강' 자는 억지로 하다는 의미도 있다. "强行者有志(강행자유지)"를 '강한 실천력을 가진 사람이라야 뜻을 이룬다'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어떤 사람이 무엇을 억지로 실천하고 무리해서 추진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 속에 특정한 방향으로 향한 의지와 목적이 설정 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맞추거나 거기에 도달하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거다. 그러나 자신을 알기 위한 수행방법 중 명상(冥想)만큼 좋은 것이 없다. 고요한 상태에서 내면에 집중하는 훈련을 거듭하면 몸속에 쌓인 스트레스나 잡념들을 깨끗하게 비울 수 있다. 명상을 통해서 마음의 본질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으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 명(明)을 얻어 강(强)해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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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장은 "不失其所者久(불실기소자구) 死而不亡者壽(사이불망자수): 이런 사람은 제자리를 잃지 않으니 오래가고, 죽어서도 잊혀 지지 않으니 장수한다"는 거다
여기서 "기소(其所)"는 '근원적인 도의 자리'로 읽으면 된다. "死而不亡者壽(사이불망자수)"는 쉽게 '주어진 삶을 온전하게 마친다'로 읽으면 된다. 그러니까 자신을 알고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라야 제 자리를 잃지 않고 오래 간다. 외물의 공격이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죽은 후에도 잊혀 지지 않으니 진정으로 장수하는 사람이다.
최진석 교수는 '자신이 자리할 곳을 잃지 않는 자가 오래 간다'고 풀이한다. 최근 특검 정국에서 많이 느끼는 일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를 상실하거나 부여 받은 권리를 오래 유지하지 못하는 까닭은 대개 자신이 처한 위치를 망각하거나 넘어서는 행위를 하기 때문이고, 자신이 그런 말이나 행동을 할 위치가 아닌데, 특정한 명분에 기대서나 아니면 앞뒤를 분간하지 못한 연유로 함부로 하다가 대개는 단명으로 끝난다는 거다. 실제로 제32장에서 노자는 '한계를 아는 것이 위태롭지 않은 까닭(知止, 所以不殆, 지지, 소이불태)"라 했다.
이 장의 구도는 얼른 보면 구체적인 효과를 바로 보여주는 것 같은 "지인(知人) - 승인(勝人) - 강행(强行)"의 방식보다는 조금 유약해 보이거나 소극적인 것 같지만 "자지(自知)" - 자승(自勝) - 지족(知足)"의 방식이 "죽어서도 잊혀지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위대한 효과를 담보해 준다는 거다. 일상을 살아가는 좋은 통찰을 주는 내용이다. 노자 철학의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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