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우리 삶의 본질은 변화, 즉 성장과 쇠퇴의 모음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8. 5. 09:30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8월 4일)

자아를 확장하는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게으름의 타성과 두려움으로 인한 저항과 싸워 나가야 한다. 즉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오늘부터는 사랑의 노력이 아니라, 용기를 화두로 삼는다.

그 용기를 위해서 필요한 것을 스캇 펙(Scott Peck)은 4 가지를 말하고 있다. 사랑의 모험에 늘 동반되는 상실을 받아들일 용기, 독립할 용기, 책임감을 가지고 헌신할 용기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고하는 용기이다.

자아가 확장하는 것은 우리의 자아가 새롭고 익숙하지 않는 영토로 들어가는 건너 가기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자아가 새롭고 다른 자아가 되는 거다. 그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는 거다. 문제는 문화의 경험, 즉 익숙하지 않은 행위, 낯선 환경에 처하는 것, 지금과 다르게 일하는 것들은 사실 두려운 일이라는 점이다. 그래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는 두려움의 부재가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두려움에 저항하고 싶은 마음과 싸워 미지의 미래 세계로 나아가는, 이런 건너가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며 모험이 따른다.

오늘은 사랑이라는 모험 중에 '상실'에 대한 모험을 살펴본다. 우리 삶의 본질은 변화, 즉 성장과 쇠퇴의 모음이다. 내가 좋아하는 표현은 우리의 삶은 생장수장(生長收藏)의 원리 안에 있다는 거다. 이를 예쁘게 표현하면, "쥐리락, 펴리락"이다. 봄에 만물이 새싹을 잘 틔우고, 건강하게 생겨나려면, 그 전년 가을부터 열매를 잘 거두어 깊이 수장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장(收藏)이 잘 되어야 생장(生長)이 좋고, 생장이 좋으면 수장이 좋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모든 일은 먼저 쥐고 펴야 한다. 비슷한 말로 성주괴멸(成住壞滅)이 있다. 삼라만상은 '생겨나서(成), 머물러 존재하다가(住), 명이 다하면 허물어져(壞), 없어져 버린다(滅)'는 뜻이다. "이세상 만물은 성주괴멸하는데, 모든 것이 다 그 운명에 의해서 그렇다. 만들어진 모든 그릇이 언젠가는 깨어질 운명을 타고 나듯이 인간도 태어나 살다가 죽는 것이 그러하다." (탄허스님)

같은 말로 <<주역>>에서는 "원형이정(元亨利貞)"이라 한다.  <<주역>>의 '건괘'에서 나오는 것으로,  '원(元)'은 '으뜸 원'으로, 시작함을 나타내고, 형(亨)은 '형통할 형'으로 번창함을 나타나며, 이(利)는 '이로울 이'로 유익함을 나타내고, 정(貞)은 '곧을 정'으로 바르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한다. 퇴계 이황의 <<천명도설>>을 보면, 나무(木)는 동쪽에 있고, 거기 원(元)이라 적혀 있고, 불(火)은 남쪽에 형(亨), 서쪽에 이(利), 북쪽에 정(貞)이라고 적혀 있다. 나무는 생명이 시작하는 봄의 원기(元)을 상징하고, 여름은 뜨겁게(火) 곡식과 열매가 성장(亨)한다. 가을은 서늘(金)해지면서 수확(利)하는 계절이고, 겨울은 검은(짙은) 물(水)의 긴 잠으로 꿋꿋하게 버티는 계절이다.

"원형이정(元亨利貞)"은 하늘이 갖추고 있는 네가지 덕 또는 사물의 근본 원리를 말한다. "원은 착함(=仁, 사랑)이 자라는 것이고, 형은 아름다움이 모인 것이고, 이는 의로움이 조화를 이룬 것이고, 정은 사물의 근간이다. 군자는 사랑(仁)을 체득하여 사람을 자라게 할 수 있고, 아름다움을 모아 예절(禮)에 합치시킬 수 있고, 사물을 이롭게 하여 의로움(正義)과 조화를 이루게 할 수 있고, 곧음을 굳건히 하여 사물의 근간이 되게 할 수 있다." 선비를 꿈꾸는 나는, 이 네가지 덕(德)을 행하며, '원형이정"의 순환을 마음농사의 도구로 삼고 있다.

자아 확장을 위한 사랑을 시작하려면 우리는 우선 삶과 성장을 선택하는 거다. 그런데, 그 선택은 변화와 죽음의 가능성을 함께 선택한 것이다. 상실에 대한 모험이 없다면 죽은 것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예컨대 죽음이란 언제나 곁에 있다는 것을 느끼고 산다면, 두렵기는 하지만 지혜로운 교훈의 원천이 되어 준다. 살고 사랑할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시간을 최선으로 이용하고 최대한 충만한 삶을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죽음이라는, 항상 변화하는 삶의 본질을 피하면, 어쩔 수 없이 삶도 피해버리게 된다. 사랑이라는 모험을 위해서는 상실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삶은 그 자체가 모험을 의미한다. 그리고 삶을 사랑할수록 모험도 더 많아진다. 그러면서 우리는 성장한다. 성장이란 어린아이가 어른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는 것이다. 그것은 한 걸음 살짝 내딛는 것이 아니라 두렵게도 단숨에 도약하는 것이다. 사유의 시선을 높이는 거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평생 동안 실제로 해보지 못할 수도 있는 도약을 말하는 거다. 많은 '어른들'은 겉으로는 어른처럼 보여도 심리적으로는 죽을 때까지 아이로 남아 있다. 이들은 부모에게서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고 부모가 행사하는 권력에서 전혀 헤어나오지 못한다.

성장의 과정은 대체로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여러 번의 작은 도약들로 이루어지며 아주 점진적으로 일어난다. 많은 사람들은 거대한 도약을 절대로 택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은 실제로 전혀 성장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외양과는 달리 심리적으로는 아직도 부모의 아이로 남아 물려받은 가치에 따라 살고, 주로 부모의 승낙과 반대에 따라 움직이고(부모가 오래전에 돌아가신 경우에도),  감히 운명을 자기 손안에 쥐어 보지 못한다. 자신의 삶을 주인으로 살지 못한다.

거대한 도약, 독립과 자기 결심으로 뛰어드는 일은 어떤 연령에 서든지 엄청나게 고통스럽고 대단한 용기를 요구한다. 그렇지만 사랑에 수반된 자기 확장은 새로운 차원으로 자신을 확대한다. 그러면 사랑과 성장은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1) 모든 주요 변화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행동에서 시작한다. 그 이유 때문에 자신의 욕구에 맞지 않는 곳을 원치 않는 거다.
(2) 사랑은 자신을 위해 그렇게 크고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키는 동기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변화를 위해 모험을 감행할 용기의 초석이 된다.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이 더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에 도전한다. 왜냐하면 사랑을 받았던 힘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안정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믿는 거다.
(2) 온전한 자아와 심리적 독립과 고유한 개성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도약할 때만이 사람은 자유로이 정신적 성숙을 향해 더 숭고한 길을 따라 전진하여 가장 높은 차원에서 사랑을 보여줄 수 있다. 가장 지고한 사랑은 전적으로 자유로운 선택이며, 이는 순응하는 행위가 아니다.

자기 삶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다. 그런 사람은 자유롭다. 또한 거꾸로 자유로워야 우리는 우리 삶의 주인이 된다. 우리가 심사숙고한 후 자유로움 속에서 내린 결정은, 그것이 성공이든 실패이든 상관없다. 우리가 선택한 것이고, 성공과 실패는 때로는 우리의 의지와 실력과는 상관없이, 운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은, 우리가 내린 결정이 최선인가 묻는 것이다. 여기서 최선이란,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그 당면한 문제를 심사숙고해 그 핵심을 간파하고, 지금 당장 괜찮을 뿐만 아니라, 내일에도 괜찮은 결정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에 대해, 실패하든 성공하든 내가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리고 괜찮다는 것은, 그 해결 과정이 다른 사람에게도 정정당당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의미가 있고 아름다워야 한다.

우주의 심판자인 시간은 우주 안에 존재하는 그 어느 것도 어제의 모습, 아니 조금 전의 모습대로 그대로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이 시간의 심판자는 모든 것을 매 순간 변화시켜 결국에는 시간이 지나면, 무로 사라지거나, 유로 다른 성질로 변화한다. 시간은 있음을 없음으로 조용히 변신시키는 거부할 수 없는 힘이다. 따라서 순간을 포착하는 자가 자신의 인생을 도약시킬 수 있다.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오늘은 서울로 김윤신 작가전 <for a moment this moment(지금 이순간)>을 보러 서울에 간다.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조각과 석판화를 전공한 김윤신(88세)은 워낙 나무를 좋아해 1970년대에는 한국의 적송(赤松) 등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상명대 교수로 재직하던 1983년 그는 아르헨티나로 이민한 조카를 만나러 갔다가 ‘푸르고 광활한 자연 풍광과 아름드리 나무들’에 매료돼, 1984년 삶의 터전을 현지로 옮겼다. “나무를 자르다 보면, 그 안에 뼈가 있고, 혈관이 있고, 생명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는 그가 “싱싱하게 살아 있는 나무의 생명력을 끄집어내는 작업”의 결실이 ‘합이합일(合二合一) 분이분일(分二分一)’ 연작 등이다." "나무 조각에 물감을 묻혀 선 하나하나를 찍어내듯이 그리는 그림도 병행하는 그는 “내 회화는 영원한 삶의 나눔이 주제다. 그 본질은 사랑이다. 내면에는 원초적 생명력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그것을 향해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영혼의 소리가 다양한 색상의 파장으로 선과 면을 이뤄 사랑과 나눔을 표현했다”고 한다."(문화일보, 김종호 논설고문) 수녀님 누나가 알려준 전시회이다.

순간/문정희

찰랑이는 햇살처럼
사랑은
늘 곁에 있었지만
나는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지 못했다

쳐다보면 숨이 막히는
어쩌지 못하는 순간처럼
그렇게 눈부시게 보내 버리고
그리고
오래오래 그리워했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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