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 마디는 "해보자, 해보자, 후회하지 말고"(김연경)이다.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8월 5일)
오늘의 한 마디는 "해보자, 해보자, 후회하지 말고"(김연경)이다.
최근에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는 능력주의(meritocracy) 논쟁이다. 능력주의가 말하는 '능력만큼 보상받는다'는 언뜻 보면 공정하다고 느껴진다. 그래 능력주의가 젊은 층들을 중심으로 인기가 있는 이유이다. 왜냐하면 솔직히 말해 우리 사회가 능력에 따른 보상을 하지 않으며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을 나오던, 즉 50-60대들은 운이 좋았다. 학점이 낮아도, 자격증 하나도 없어도 좋은 직장에 들어가 안착했다. 반면, 단군 이래 가장 '똑똑하다'는 20-30대들은 시대를 잘못 만난 탓에 치열한 입시와 학점 경쟁, 끝없는 자기계발 뒤에도 원하는 취업이 어렵다. 젊은이들은 능력주의 사회의 보상이 정말 능력에 따른 것인지 의심한다. 간단한 컴퓨터 프로그램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세대가 요직을 차지하는 게 부당하다는 것이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정말 능력만큼 보상받는가? 언뜻 보면, 맞는 거 같다. 우리나라는 시사총액 상위 30개 기업 임원의 25%가 소위 '스카이(SKY)대학' 출신이다. 이 점을 보면,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더 보상을 받는다는 원칙이 틀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소위 스카이(SKY)에 운 좋게 간발의 차이로 합격한 학생과 불합격한 학생의 시험 점수차이는 거의 없을 정도이다. 다만 유일한 차이는 커트라인이다. 그 커트라인 안에 들어가느냐 못하느냐는 인생의 성취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 그러니 능력이 아니라, 운이다. 명문대 입학이 고소득자가 될 확률이 훨씬 높다. 이 점을 보면, 사회에서의 보상이 결코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김현철 교수가 소개한 로버트 프랭크 교수의 책 <성공과 운(success and Luck)>(2016)에 따르면,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해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 부작용이 사회에서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고 보았다. (1) 자기 성취가 스스로 이룬 것이라 믿을수록 세금 납부에 더 적대적이다. 정부와 사회가 도와준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2) 실패한 사람을 운이 나쁘기보다는 노력하지 않은 사람으로 인식한다. 그래 이들을 돕는 일에 소극적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오늘의 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8할 이상이 공동체와 다른 사람 덕분이다. 그러니 겸손할 일이다.
어제는 아침 일찍부터 할 일이 많아 <인문일기>를 오늘 아침에 마무리를 한다. 난 하루에 한 가지 씩만 일을 하려고 하는데, 그리고 사회적 거리 4단계로 서로 조심하자고 하는데, 오히려 온라인 만남이 많으니 더 바쁘다. 그러나 기쁜 일이다. 인생의 사는 맛을 활동과 관계가 많고, 잘 이루어지며, 그것들이 의미가 있다면 잘 살고 있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우선을 관계의 폭이 넓게 하고, 그 관계에 충실하며, 끊임없이 접속을 유지하면, 원하는 활동이 확장되는 것을 어제 배웠다.
<<주역>>의 핵심은 관계론이다. '길흉화복'의 근원은 잘못된 자리에서 비롯된다고 봤다. 내가 있는 '자리', 즉 '난 누구, 여긴 어디'를 묵상하며 알아야 하는 것이다. 단순히 어떤 '직위(職位)'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우주 속에서 나의 위치까지 확장되는 용어이다. 한문으로 하면 '위(位)'이다. <<주역>>에 따르면, 제자리를 찾는 것을 득위(得位), 그렇지 못한 것을 '실위(失位)'라 했다. 득위는 만사형통이지만, 실위는 만사불행의 근원이다. 잘못된 자리는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불행하게 한다.
코로나-19의 재확산과 무더위로 힘든 때에, 우리 사회는 대선 정국이다. 그 진흙탕 싸움에서 젊은 친구들은 좋은 가치관을 정립하기는 커녕 혼란스러워 한다. 대선 후보자들에게 맹자의 다음과 같은 주장을 공유하고 싶다. 벼슬길에 나가는 사람은 자세가 중요하다. 이 문제는 벼슬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로서로 관계를 만들어 가면서, 내가 그 상대에 대한 자세도 마찬가지 문제이다.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처럼 군자도 도에 뜻을 둔 이상 어떤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벼슬길에 나서지 않는다." 대선 후보이든, 나같은 평범한 사람도 내 자리를, 내 위치를, 내 웅덩이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말로 이해 한다.
능력이 못 미치는 자리에 욕심을 내면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 에게까지 피해를 준다. 운 좋게 능력을 넘어선 자리를 얻더라도 그것은 오히려 '실위'가 된다. 고 신연복 교수는 "사람이 모름지기 자기보다 조금 모자라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 본인이 가진 능력이 100이라고 한다면 70 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담론>>)고 말했다.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자리'를 차지하는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 지위의 권능을 개인의 능력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과 자리를 착각해서는 안 된다. 히말라야에 사는 토끼가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동상(凍傷)이 아니라, 산 아래 평지에 살아 아주 작게 보이는 코끼리보다 자기가 크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맞는 자리는 부단한 성찰과 겸손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꾸준한 엉덩이의 힘으로 성실함과 진정성이 더해지면, 자신의 자리는 있는 그대로 자 자리에서 빛난다. 어제 겪은 여러가지 일이 있었는데, 페친 김승완이라는 공유한 경남일보 이상권의 글을 보고 깊은 통찰을 하게 되었다. 김승완이라는 분이 공유하는 글은 믿고 읽는다.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비슷하다. 그가 공유한 글에서 많은 지혜를 얻는다. 남 탓하지 말고, 나부터 잘 살고 싶다. 주말 농장 가는 길의 호박은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꽃 피웁니다.
아는가 모르는가/이세방
사람이 인생에 지쳐가다 보면
가끔씩 후회를 하게 마련인데,
그 후회라는 걸
하지 않겠다고 다짐들을 하지만.
아는가, 큰 욕심을 버린다면
후회는 다른 사람의 것이 될 걸.
모르는가, 깨달음은 어디서 오나
밤이 지나야 아침이 온다는 것을
<<장자>>의 제1장 "소요유"에 나오는 말이다. "송나라 사람이 머리 두건을 팔려고 원나라에 갔더니, 월나라 사람들은 모두 머리를 깎고 문신을 해서 머리 두건을 쓸 일이 없었다." 세상 사람들 다 두건 두르고 살겠 거니 싶어서 월나라에 가서 두건을 팔려고 했더니, 월나라 사람들은 이미 다른 해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 시장 조사도 안 하고 쉼 없이 뛰어들었으면 장사 망하는 건 당연하다. 이 송나라 사람처럼 자기 장사만 망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이런 사람들이 꼭 남들까지 피곤하게 만든다. 우리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과 주변을 되돌아 볼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선 자리에서 꼼 짝도 하지 않으려 하니까 '다른 수가 없다'는 답답한 소리나 하는 것이다. 오른쪽으로 돌리는 유리병을 갖고 계속 왼쪽으로만 돌리다가 '에잇, 이거 안 열리면 불량품이다' 하고는 갖다 버리는 것과 같다. 당기면 열리는 문을 계속 밀기만 하다가 갇혔다고 징징 우는 꼴이다. 장자는 이런 사람을 "유봉지심(有篷之心)"이라고 한다. 우리 말로 하면, "쑥 무더기 같은 마음"이다. 장님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도, 환한 세상도 보지 못한다. 세상에 빛이 없어 서가 아니다. 세상이 환하지가 않아 서가 아니다. 자신이 눈감고 있어서 이다. 그 눈을 뜨기를 거부하는 건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미 나온 정답 마저도 거부하고 제 고집만 피우는 모습을 나는 주변에서 가끔 본다. 제 자리 잠깐만 옮기면 되는데, 무안함 잠깐만 참으면 되는데, 그걸 감수하려 들지 않는다.골프 선수들은 피팅을 하기 전에 우선 그린 전체를 본다고 한다. 난 골프를 치지 않는다. 시간도 없고 우선이 돈이 없다. 그 다음은 반대쪽에서 홀 컵과 공의 위치를 본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자기 자리에서 라인을 보고, 서서도 보고 않아서도 본다고 한다. 내 자리는 마지막에 서는 법이라 한다. 그러니 내 자리만 고집해서는 진실을 볼 수 없다.
"배를 골짜기에 감추고, 그물을 늪에 감춰두고 든든하게 여긴다. 하지만 한밤중에 어떤 힘센 사람이 짊어지고 가면 무슨 수로 막을 수 있나? 작은 것을 큰 것에 감추면 반드시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 하지만 천하를 천하에 감춘다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장자>>, "대종사")
천하를 천하에 감춘다는 것은, 사실 감추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대로 둔다는 말이다. 천하를 천하에 숨겨두면, 새삼 가져가고 말고 할 게 없다. 가져갈 수 없다. 도둑맞을 염려가 없다. 그러니 바꾸는 건 나 자신이다. 내 위치를 바꾸고, 내 시선을 바꾸고, 내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대로 보는 거다. 사람은 보고 싶은 대로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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