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수괘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8월 4일)
어제 못다한 <수천 수괘>의 상괘(외괘)인 '육사'의 효사부터 읽는다. "六四(육사)는 需于血(수우혈)이니 出自穴(출자혈)이로다"가 효사이다. 이 말은 '육사는 피에서 기다리니, 구멍으로부터 나오도다'로 번역할 수 있다. TMI: 血:피 혈, 穴:구멍 혈. '육사'는 음자리에 음효로 있고 외괘 '감 ☵ 수괘'의 험함에 빠진 상태이다. 외괘 '감 수 ☵'에서 음자리에 있으니 "피(血)"라 한 것이고, 내호괘(2, 3, 4효괘)가 '태 ☱ 연못 괘'이니 구멍의 상(象)이 나온 것이다. 이는 험한 데에 빠짐을 말한다. 그러나 외호괘(3, 4, 5효괘)가 '이화 ☲불괘'로 밝게 판단할 수 있으니, 험한 구멍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
'육사'는 이미 외괘인 '감 수 ☵', 즉 물 속에 들어가 있다. 그곳은 험난한 장소이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싸우고 죽이고 피를 흘리는 그 아수라장 속에 있는 것이다. '육사'는 음위(음위) 자리에 정(正)을 얻은 반듯한 자리에 있으며, 중정(中正)의 '구오'와 음양친비(陰陽親比)의 관계에 있다. 따라서 혈투의 아수라장 속에 잇을지라도 지긋이 기다리면서(需于血, 수우혈) 상황을 순조롭게 파악하면 그 혈투의 구멍으로부터 벗어날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出自穴, 출자혈). 이 효사를 만나는 사람은 운기가 쇠약 해져서 하는 일마다 좋지 않은 결과가 있다. 유력한 선배의 도움을 얻어 간신히 어려움을 면할 수 잇는 길이 열린다.
<소상전>은 "象曰(상왈) 需于血(수우혈)은 順以聽也(순이청야)라"라 했다. 상전에 말하였다. “피에서 기다리는 것은 순하게 들어서 이다.” TMI: 聽:들을 청. '육사'가 험한 데에 빠져 있다가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음자리에 음효로 있어 순하고 외호괘 '이화 ☲ 불괘'의 밝음으로 주변의 말을 잘 들어 판단을 잘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 '구오'의 효사는 "九五(구오)는 需于酒食(수우주식)이니 貞(정)코 吉(길)하니라"이다. 미 말은 '구오는 술과 음식에서 기다리니 바르고 길하다'로 번역된다. TMI: 酒:술 주. '구오'는 양자리에 양효로 있어 외괘의 중을 지키니 중정(中正)한 상태이다. 그래서 정작 외괘 '감수 ☵ 물괘'의 험한 가운데 있음에도, 중정(中正)한 마음으로 슬기롭게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외괘가 '감수 ☵ 물괘'이니 술과 음식의 상(象)이 나온다. 군자의 심법(心法)은 어려운 가운데 있으면서도 조급하게 하지 않고, 중정한 덕으로 때를 판단하여 술과 음식으로 잔치벌이는 여유로움으로 '낙천지명(樂天知命)'하면서 기다린다. 그래서 <괘사>에 표현되어 있듯이 때가 되면 큰 내를 건너는 공을 세울 수 있다.
양강(陽剛)하면서 중(中)의 자리에 있으며, 또 양의 자리에 양효가 왔으니, 모든 것이 지존의 위상이다. 그러므로 어려움의 한 복판에 있을지라도 여유가 있다. 하괘(내괘)의 삼양효(三陽爻)는 그를 구하러 올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의 "음식" 대신 "주식(酒食)"으로 바꾼다. 술은 밥과는 다르다. 밥은 최소한의 생존 조건이지만, 술은 밥과는 달리 여유를 창출한다. 술을 만든다는 것은 밥 먹기도 허덕이는 사람들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구오'는 기다림의 '도'의 완성태이다. 인생은 기다림으로 이루어진다. 이 '구오'는 기다림의 이상적 포즈를 나타낸다. 맛있는 음식에 술까지 마시면서 여유롭게 동지들을 기다린다(需于酒食, 수우주식). "점을 치면, 모두 길한 응답을 얻는다(貞吉, 정길)"(김용옥).
구오의 <소상전>은 "象曰(상왈) 酒食貞吉(주식정길)은 以中正也(이중정야)라"이다. 이 말은 '상전에 말하였다. 술과 음식에서 기다려 바르고 길한 것은 가운데하고 바르기 때문이다.”
맨 위 마지막 효의 효사는 "六(상육)은 入于穴(입우혈)이니 有不速之客三人(유불속지객삼인)이 來(래)하리니 敬之(경지)면 終吉(종길)이리라"이다. 이 말은 '상육은 구멍에 들어가니, 청하지 않은 손님 세 사람이 올 것이니, 공경하면 마침내 길할 것이다'로 번역할 수 있다. TMI: 穴:구멍 혈, 速:부를 속(빠를 속), 客:손 객. '상육'은 음이 음자리에 있어 구멍(穴)이고, '상육'이 변하면 음이 양으로 바뀌면서 외괘가 '손 ☴ 바람괘'가 되니 구멍에 들어가는 상이다(巽入也). 그런데 청하지 않은 손님이 뜻밖에 오게 되니, '손 ☴ 바람의 괘'의 겸손함으로 공경하면 마침내 길하게 된다. 청하지 않은 손님이라는 것은 내괘의 양 세 효(☰)를 말하는데, '상육'이 동하여 외괘가 '손 ☴바람 괘;가 되면 험한 것이 사라지게 되어 그동안 때를 기다리던 '초구' '구이' '구삼'의 세 사람이 오게 되는 것이다.
'상육(上六)'은 음효인데다가 약체(약체)이다. 게다가 또 험(險)을 상징하는 '감수 ☵ 물 괘'의 극점이다. 그러니 편안하게 제자리에서 잔치를 벌이며 기다린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긴박한 상황, 그러니 피신해야 한다. "入于穴(입우혈)", '구멍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방공호 같은 데로 들어가 숨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여기서 "有不速之客三人(유불속지객삼인)", 초청하지도 않았는데 손님이 3명이 있어 들이닥친다'는 말은 내괘(하괘)의 '삼양효'가 들이닥친다는 거다. 여기서 "속(속)"는 초청한다. 부른다는 뜻이다. '삼양효'는 강건의 상징이고, 어려움이 있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진격하는 용감하고도 거친 성격의 사나이들이다. 그러니 "험"의 극한에 빠진 '상육'의 카이로스에 아니 나타날 수 없다. '삼양효'는 초청하지도 않았는데 자진해서 온 것이다. 그런데 '상육'은 음효이니 약체이니, 아래의 '삼양'과 맞서 충돌을 일으킬 그러한 인물이 아니다. 부드러움으로 '삼양'을 공경하고 잘 대접하면(敬之, 경지) 끝내 길한 결과가 온다(終吉, 종길). 어려움을 극복할 길이 열린다는 거다. 점쳐 이 효사를 만나는 사람은 만사가 잘 돌아가고 있지는 않지만 의외의 조력자가 나타나 구원의 손길을 뻗칠 수 있다. 정직한 삶의 자세로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면 처음에는 장애가 있을지라도 나중에는 길(吉)하게 된다고 본다.
상육의 <소상전>은 "象曰(상왈) 不速之客來敬之終吉(불속지객래경지종길)은 雖不當位(수부당위)나 未大失也(미대실야)라"이다. 이 말은 "상전에 말하였다. ‘불속지객래경지종길’은 비록 위는 마땅하지 않으나, 크게 잃지는 않는다'로 번역된다. TMI: 雖:비록 수, 當:마땅할 당, 未:아닐 미. '상육'은 맨 위에 있고 음자리에 음으로 거하여 유약하니 뜻밖의 손님(내괘의 세 양효)을 맞이할 수 있는 자격이 안 되기 때문에 ‘不當位’라고 하였다. 그러나 공경함으로 맞이하게 되면 '상육' 자신의 본분을 크게 잃지 않는다는 거다.
대산 김석진 선생은 자신의 책에서 <수천 수괘>의 총평을 다음과 같이 했다. 갈무리하여 공유한다. 사람이 살고 있는 모든 것이 기다리는 것이지만, 기다리는 시기와 장소는 각기 사람마다 다르다는 거다. 그러므로,
- 백성의 자리인 초효(초구)는 험한 물에서 멀리 떨어진 들에 처해 기다리는 격이니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利用恒 无咎, 이용항 무구)하고,
- 선비의 자리인 이효('구이')는 물에 가까운 모래에서 기다리니 세파 속에서 다소 위태롭고 말썽이 있긴 하지만 너그러운 마음(衍, 연)으로 대처하면 길하다 하고,
- 제후 자리인 삼효('구삼')는 험난한 진흙 속에서 기다리니 적과 대치하고 있는 상태이나 삼가고 공경(敬愼, 경신)하면 패하지 않는다 했다.
- 대신의 자리인 사효('육사')는 험한 물 속에서 갖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기다리니 욕심을 버리고 인군의 명에 따르며 백성과 친하여 그곳을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順以聽也 순이청야) 하고,
- 인군의 자리인 오효('구오')는 민생을 책임진 자리에서 기다리니 중도를 지키며 바르게 하면 길하다(貞吉, 정길) 하고,
- 도인(道人)의 자리인 상효('상육')는 만사를 잊고 깊숙이 들어앉아 기다리다가 뜻밖의 손님 세 사람이 찾아올 때 이들을 공경하면(敬之, 경지) 길하다고 하였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것은 초육부터 "需于郊(수우교)"→"需于沙(수우사)"→"需于泥(수우니)"→"需于血(수우혈)"→"需于酒食(수우주식)"으로 이어진다. 맨 마지막에 "주식(酒食)"이 나온다. 여기서 진짜 '술'은 반드시 두 과정이 이루어져야 정체성을 갖는다. 하나는 발효이고 또 다른 하나는 숙성이다. 발효는 신규 성분이 완성되는 과정이고, 숙성은 신규 성분과 기존 성분이 조화를 이루면서 깊은 맛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기다림'이다. 오늘 사진 속의 술은 내가 최근에 마신 가장 오래 숙성 시킨 위스키이다. 술도 그렇지만, 우리의 삶도 기다림이다. 안도현 시인은 말한다.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알면서도 기다"리는 거다. 한 마리의 고래를.
고래를 기다리며/안도현
고래를 기다리며
나 장생포 바다에 있었지요
누군가 고래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했지요
설혹 돌아온다고 해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요,
나는 서러워져서 방파제 끝에 앉아
바다만 바라보았지요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
알면서도 기다렸지요
고래를 기다리는 동안
해변의 젖꼭지를 빠는 파도를 보았지요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어깨를 들썩이는 그 바다가 바로
한 마리 고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 #복합와인문화공간뱅샾62 #고래를_기다리며 #안도현 #주역 #수천수괘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