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좋은 마음에 물을 주어라.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8. 2. 17:49

3399.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7월 28일)

1
마음도 자란다. 미운 마음을 너무 오래 품지는 말아라. 좋은 마음에 물을 주어라. 예를 들면, 내 생각과 다르고, 내 눈에 무식하거나 어처구니 없어 보이는 사람이라도 다음과 같이 속으로 말하고 내 마음의 태도를 바꾸기로 했다. "그도 사람이다." "그도 똑같은 인간이다." 상대를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순간 그들을 향한 모든 이성적 판단은 해체되고, 차별, 혐오, 폭력의 스위치가 거리낌 없이 꺼진다. "경쟁자이지만 그들도 똑같은 인간이야"라는 태도와 "저것들은 인간도 아니야"라는 태도는 혐오의 깊이를 다르게 한다.

불교 경전에는 마음에 대한 가르침이 많다. 초기 불교의 경전인 <<법구경>>에만 해도 여러 곳에서 마음 다스리기에 대해 설하고 있다. 일례로 “기쁘게 마음을 집중하여 알아차려라. 자기 마음을 지키고 보호하라. 늪에 빠진 코끼리가 스스로 빠져나오듯 번뇌의 늪에서 스스로 빠져 나오라"고 설한다. 마음은 빠르고 가볍게 움직이고, 어느 곳이든 좋아하는 곳에 머물며, 이런 까닭에 가장 위대한 정복자는 자기 자신을 정복한 사람이라고도 가르친다. 

마음 이야기가 나오니, "풍연심(風憐心)"이라는 말이 기억난다. '바람은 마음을 부러워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虁憐蚿, 蚿憐蛇, 蛇憐風, 風憐目, 目憐心, 心憐虁, 기연현(지네), 현연사(뱀), 사연풍, 풍연목, 목연심, 심연기)"에서 나온 거다. 전설 상의 동물 중에 발이 하나 밖에 없는 기(虁)는 발이 100개나 있는 지네를 부러워한다. 그 지네는 발이 없는 뱀을 부러워한다. 뱀은 거추장스러운 발이 없어도 잘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뱀은 자신이 움직이지 않고도 멀리 갈 수 있는 바람을 부러워하였고, 바람은 가만히 있어도 어디든 가는 눈을 부러워했다. 그런데 눈은 보지 않고도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는 마음을 부러워했다. 그런 마음은 다시 전설상의 동물인 기를 부러워했다.

오늘 공유하는 시는 힘이 아무리 센 장사라 하더라도 자기 마음 하나를 들지도 놓지도 못한다고 말한다. 마음을 제어하기가 어렵다는 뜻이겠다. 한 생각에 생사(生死)가 있고, 한 생각에 끝없는 시간이 들어 있으니 이 마음을 잘 사용할 일이다. 시조 시인이었던 무산(霧山) 스님의 속명이 조오현이다. 스님은 한국 시조의 새로운 진경을 펼쳐 보이셨다. 시 ‘숲’에서는 “산은 골을 만들어 물을 흐르게 하고/ 나무는 겉껍질 속에 벌레들을 기르며”라고 써서 아름다운 화엄의 세계는 다른 생명 존재를 위한 희생과 자비심에 의해 이뤄진다고 노래했다. 이 시를 문태준 시인이 위의 덧붙임과 함께 소개했다.

마음 하나/조오현(1932~2018)

그 옛날 천하장사가
천하를 다 들었다 놓아도
한 티끌 겨자씨보다
어쩌면 더 작을
그 마음 하나는 끝내
들지도 놓지도 못했다더라.

2
인간은 자신이 해야 할 임무를 잘 모른다. 그래 임무를 깨워줄 학교를 만든다. 내 아침 글쓰기도 일종의 학교이다. 인생이란 학교의 특징은 '무작위(無作爲)' 이다. 내가 예상한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 마음까지 무작위일 필요는 없다. 자신이 정한 ‘더 나은 자신’을 위한 목표를 위해 매일 훈련하며 정진하는 사람에게, 일상의 난제들은 오히려 그들을 더 고결하고 숭고하게 만드는 스승들이 된다.

“누가 지혜로운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다.”

일상의 난제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배울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무료로 가르쳐 준다. 그들의 가르침은, 나의 생각을 넓혀주고 부드럽게 만든다. 나의 말과 행동을 정교하게 다듬어 사람과 사물에 친절하게 응대하게 유도한다. 인생이란 학교(學校)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조금씩 더 이해하게 만들어준다. 이해(理解)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시선, 심지어 원수의 시선으로 그 난제에 대한 나의 반응을 관찰하는 냉정(冷靜)이다. 나는 난제들을 해결(解決)할 수 없지만 해소(解消)할 수 있다. 낮은 곳에 있는 물이 높은 곳으로 흘러갈 수 없고, 선악을 구별하는 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이, 지혜를 가르칠 수 없고,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다. 인생의 다양한 경험, 특히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인생의 난제들이 나를 고양시킬 것이다.

3
처음 편의점 배달 서비스 광고를 봤을 때 걸으면 몇 분, 배달하면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이 서비스가 잘 될까 싶어 의아했다. 하지만 배달 수요가 계속 늘어난다는 뉴스를 보니 인간은 내 예상보다 훨씬 더 게으른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땀 흘리며 운동하는 사진은 매일 인증해도 오피스텔 1층 편의점에 가는 건 또 귀찮다는 것이다. 한겨울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한여름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삼계탕을 먹고, 보일러 온도는 최고로 올려놓고 덥다고 창문을 여는 이 현대적 쾌적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생각해 보면 짜장면, 냉면 위에 채 썬 오이는 질색하면서 통 오이는 건강에 좋다며 잘 먹는 나도 이상하다. ‘짬짜면’이 등장했을 때 짜장 이냐 짬뽕이 냐의 오랜 고민이 드디어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의외로 저조한 판매를 기록한 이 신박한 메뉴가 중국집에서 하나 둘 사라진 지 오래다. 요구르트 한번 원 없이 마시는 게 소원인 어린 시절도 있었는데, 4.5배 더 커진 270ml 요구르트 제품이 나온 지금도 나는 여전히 다섯 개들이 요구르트에 차례로 빨대를 꽂아 마신다. 어쩐지 요구르트는 이렇게 마셔야 맛있을 것 같은 앞뒤 전혀 안 맞는 기분 탓이다.

연애할 때 좋아했던 장점이 결혼 생활에는 단점이 되는 아이러니는 어떤 가? 활동적이고 외향적이라 매력적으로 느꼈던 남자 친구의 장점이 남편이 되자 밖으로만 나돌아 오히려 외롭다는 호소로 이어진다. 야근과 구조조정도 함께 견딘 돈독했던 동료 사이가 단돈 10만원 축의금 때문에 멀어지는 게 인간사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게 이것 뿐일까? 잘나 보여도 어딘가 고장 나 있는 게 인간이다.

버나드 쇼같은 위대한 문학가조차 묘비명에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고 쓰지 않았나. 자동차 내비게이션도 가끔 길을 잃고 헤맨다. 늘 초행길인 인생에서 우리에게 완벽한 지도는 없다. 오히려 잘못 들어선 길이 좋은 지도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니 내 선택이 최선이 아니었다고 자책 말자. 갈팡질팡 사이 적당과 적정도 최선 못지않다. 백영옥 소설가의 글을 갈무리 한 것이다. 이 더운 여름에 위로가 된다.

4
책은 우리 마음 속의 얼어붙은 바다를 꺾는 도끼여야 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인문 일지>에 새로 알게 된 책을 소개하려 한다. 제목은 <<사람의 생각 법>>이다. 지은이는 잘 알려진 정철 카피라이터이다. 이 책의 부제가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시대의 물음표 사용 법'이다. 사실은 최근 주변 분들을 만나면, 궁금한 게 생기면 바로 AI, 챗GPT에게 묻는다. 그리고 AI에게 문제해결을 맡겨 버린다. 이렇게 챗GPT에 묻고 또 묻다 보면, '우리, 생각하는 법을 까먹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든다. AI에게 묻는 것이 효울적이긴 한데, 이렇게 살다 보면 쓸데없지만 재미있는 질문, '내 머리'로 생각해 보는 시간을 잊어버릴지 모른다. 

어쨌든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질문과 예상 못 한, 기발한 답으로 다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을 잊으면 안 된다. 예를 들면, '같다의 동의어는?' 라고 물으면 AI는 '문맥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비슷하다, 똑같다, 동일하다 등으로 대답한다. 그러나 정철 작가는 이렇게 답한다. "같다는 건 없다는 것. 내 표정이 없으면 내 존재도 없다."  또 다른 질문, '김밥은 왜 김밥일 까?에 대한 물음에 AI는 '김밥은 '김'과 '밥'이 합쳐진 말로, 이름 자체에 재료와 만드는 방법이 담겨 있습니다. 반면, 정철 작가의 답은 '포옹에서 찾아야 한다. 김은 자신이 옆구리 터지는 일이 있어도 밥을 껴안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였다. 또 다른 질문 "나를 바꾸고 싶다면?'에 대한 물음에 AI는 "어떤 부분을 바꾸고 싶은지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정철 작가의 답은 "나를 바꾸려 하지 말 것. 내 입에 나오는 말을 바꿀 것. 말의 절반을 질문으로 바꿀 것'이었다.

AI는 정답을 말하고, 인간은 생각을 말한다. 생각을 외주하는 시대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스스로 묻고 쓰는 법을 잊으면 안 된다. AI(인공지능)은 할 수 없는 일,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질문과 사유이다. AI가 내놓는 정답 받아 먹는 일에 익숙해지면 질문을 건너뛰게 된다. 사유는 생략하게 된다. 질문과 사유가 안겨주는 통찰의 순간과도 영영 멀어지게 된다는 게 문제이다.

5
노자도 일찍이 그는 세상에 정답은 없다는 '무정(無正)'을 말하기 때문이다. 제58장 이야기이다.

其無正(기무정) : 절대적으로 올바른 것이란 없다. 그러니 정답은 없는 거다.
正復爲奇(정복위기) 善復爲妖(선복위요): 올바름이 변하여 그른 것이 되고, 선한 것이 변하여 요망한 것이 된다. 지금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답이  되고, 지금 좋다고 하는 생각하는 것이 나쁜 것이 된다.
人之迷(인지미) 其日固久(기일고구): 사람의 미혹됨이 참으로 오래되었다. 다르게 말하면, 사람들은 이 원리를 모르고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길을 잃고 헤맨 시간이 오래되었다.
是以聖人方而不割(시이성인방이불할) 廉而不劌(염이불귀) 直而不肆(직이불사) 光而不燿(광이불요): 그러므로 성인은 모가 나도 자르지 않고, 날카로워도 벼리지 않고(예리하나 찌르지 않고), 곧지만 너무 뻗어 나가지는 않고(정직하나 뽐내지 않고), 빛나지만 눈부시게 하지는 않는다(빛이 나나 눈부시지 않다).

노자를 읽으면서, 내 일상에 적용하고 싶은 말이 "무정(無正)"이다. 정답은 없다. 그러니 다른 이의 삶에 함부로 끼어들거나, 간섭하지 않을 생각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 함부로 지적하거나 훈계하지 않을 생각이다. 사랑한다면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간섭하지 않을 때 오히려 세상은 저절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노자는 정답이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 모든 사람이 각자 자신의 정답을 갖고 사는 세상을 원했다.

혼돈의 세상이 질서의 세상으로 변하자 세상은 정답을 만들기 시작했다. 정답은 다양한 모습으로 인간의 삶에 하나의 질서를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지금 세상이 혼란하다. 그래도 세상은 돌아간다. 질서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려고 하다 보니 일상이 버겁다. 돌아가는 대로 살자. 정답이라는 질서는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들을 구속한다. 종교, 이념, 윤리, 도덕 같은 것으로 개인에게 정답을 요구하기도 하고, 애국, 충성, 효도, 예절 같은 것으로 옷을 갈아입기도 했다. 그리고 민족, 인종, 출신, 지역 같은 모습으로 변신 했었고, 훈계, 지시, 주의 같은 형식으로 인간의 개인적 삶에 부단히 끼어들어 간섭하였다. 노자는 이런 질서의 세계가 얼마나 개인의 삶을 짓밟고 무너트릴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노자가 제기하는 문제는 질서라는 가면을 쓰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적 권력이었다. 권력은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도구로만 기능해야 한다. 공기와 물처럼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부쟁(不爭)의 덕을 발휘할 때 비로소 권력은 영원히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노자 <<도덕경>> 81장의 첫 단어는 도(道)이고 마지막 단어는 부쟁(不爭)이다. <<도덕경>>을 딱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도위부쟁(道爲不爭)", 도란 싸우지 않는 것이다. 노자에게 '도'란 평화다. '무위'하기에 다투지 않고, 자연을 닮아 너그럽기에 다투지 않고, 비우기에 다투지 않고, 소유를 주장하지 않기에 다투지 않고, 몸을 앞세우지 않기에 다투지 않고, 자랑하지 않기에 다투지 않고, 화목하기에 다투지 않고, 검소하기에 다투지 않고, 편가르지 않기에 다투지 않고, 강해지려 하지 않기에 다투지 않고,  만족할 줄 알기에 다투지 않고, 어린아이를 닮기에 다투지 않고, 겸손하기에 다투지 않고, 일을 꾸미지 않기에 다투지 않는다. 권력의 강화와 영토의 확장을 위하여 더 큰 질서를 요구하던 시대에게 노자는 개인의 자유와 평범한 일상의 회복이라는 '인문학적' 이슈를 던졌던 것이다. 모든 인간은 세상의 주인으로 살아야 할 당위성이 있으며, 어떤 권력도 인간의 삶에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 제80장에서 자신의 이상적 세계를 제시하고 있다.

내가 지금 먹고 있는 음식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고, 내가 입고 있는 옷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옷이고, 내가 사는 이곳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곳이고, 내가 즐기는 오늘의 일상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소국과민(小國寡民, 나라를 적게 하고 주민의 수를 적게 한다)의 세상을 제시했다. 왕은 권력은 가지고 있으나 통치하지 않고, 방어력은 갖고 있으나 전쟁은 일어나지 않고, 문명의 도구는 있으나 그 도구에 인간이 종속 당하지 않는 그런 평화의 세상을 노자는 꿈꾸었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