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교육의 이상은 유한한 인간의 삶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에 있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8. 1. 17:52

3398.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7월 27일)

1
오늘 아침의 화두는 '좋은 마음'이다. 은퇴하고 보니, 자유인의 명함처럼 좋은 건 없다. 어린이의 마음으로 사는 것과 어른으로 사는 차이쯤 일까? 유명 연예인들이나 정치인들이 순간의 실수로 세상을 하직하는 모습을 본다. 이 아름다운 인생의 풍경 길을 다시는 보지 못하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커피 냄새, 지천에서 피어 대는 거리의 꽃 향기를 다시는 맡지 못하는 거다. 오래전 46세의 나이로 투신자살한 80-90년대 전설적인 홍콩 배우 장국영의 유서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두 사람 중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 매우 괴롭다. 이에 자살한다.” 모든 사람이 부러워해도 정작 당사자가 불행하면 소용없는 일이다.

오늘 만난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좋은 말 5가지를 공유한다.
▪ "'너' 라서 다른 거고, 달라서 특별한 거야."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인간은 다른 사람처럼 되고자 하기 때문에 자신의 잠재력을 4분의 3이나 잃는다." (쇼펜하우어)
▪ '모른다'는 참 아름다운 말이다.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은 배울 기회도 많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치는 현재 가진 것의 합(合)이 아니라, 아직 갖지 않았지만 앞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의 합으로 결정된다.
▪ 누가 나를 오해한다면 당당히 맞설 줄 알아야 한다. 모두에게 사랑 받을 수는 없다. 남의 인정을 받기 위해 무리하지 않고 차분한 자세로 주어진 할 일을 다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 겁먹지 말고 도전하면 결국 해낼 수 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용기 속에는 우리의 천재 성과 기적이 모두 숨어 있다.
▪ 감사하는 만큼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다. 감사하는 마음이 최고의 지혜이다. 은혜를 되 갚는 것보다 더 귀한 의무는 없다. '때문에'를 '덕분에'로 바꾸면 하루가 아름다워진다.

2
선생이 물었다. "얼음이 녹으면 무엇이 될까? 여기저기서 답한다. '얼음 물요.' '그냥 물요'. 한 아이가 대답한다. '봄이 와요'. 이런 대답을 AI는 하지 못한다. 지금 우리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교육으로는 이런 답을 못한다. 이건 인문학을 익힌, 즉 상상하는 힘을 기른 학생에게만 가능하다.

교육의 이상은 유한한 인간의 삶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에 있다. 이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다음 두 가지이다.
▪ 무(無)라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내가 아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질문 하여야 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질문도 마찬가지이다.
▪ 존재에 대한 물음이 앞서야 한다. 실존주의 철학이 말하듯 우주에 던져진 고독자임을 자각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누구도 자신을 구속한 적이 없는 대자유인임과 동시에 스스로 결단하는 주체적 인간이 된다. 

오늘 우리 나라의 교육 문법인 교육 공학의 한계는 자유로운 본성을 무시하고, 어떤 형태로든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행동주의 심리학의 무모한 신념이다. 그러한 교육은 지식을 무한대로 제공하는 인공지능 시대에도 맞지 않는다. 많은 질문이 생긴다.
▪ 인간을 능가하고자 하는 과학의 욕망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 인공지능은 어디까지나 기계다. 행렬, 함수, 수리 모형의 수학적 계산과 추론에 의한 결과물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특성인 자비와 연민을 느낄 수 있을까? 
▪ 통합과 통찰의 능력, 정의를 향한 열정과 대가 없이 희생하는 대의를 가질 수 있을까? 
▪ 피에르 부르디외가 제시한 아비투스, 즉 몸의 경험을 통해 내면화된 인간의 습관 체계를 인공지능도 발휘할 수 있을까? 

그것은 최종적으로 '인간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귀결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공감과 연대의식으로 사회화되거나 인류를 파멸로 이끈다면 그것은 인간의 모방일 뿐이다.

3
책 한 권 더 공유한다. 김혜민의 <<좋은 질문의 힘>>이다. 저자의 주장 두 가지를 소개한다. "질문을 담은 물음표는 또 다른 질문의 물음표로 발전되기도 하고, 깨달음의 느낌표가 되기도 합니다. 일의 마침표가 될 때도, 쉼 없이 달려오던 인생길에 쉼표가 되기도 하고요. 이렇게 질문은 구름판이 되기도 하고 브레이크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질문은 정보를 묻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태도"라는 거다. 좋은 질문은 우호적인 관계 형성의 첫 발걸음이자, 상대를 이해하려는 태도의 마음가짐이다. 저자는 책 서두에서 "좋은 질문은 귀에서 자란다"고 강조한다. '경청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한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지 않으려면 말이다.

더불어 '듣고 있는 티'를 내라고 조언한다. 대화 중 고개를 끄덕이거나 감탄사, 눈맞춤 등 질문을 던지기 전 상대의 마음 벽을 허무는 자세가 우선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듣는 법 다음은 '말하기' 이다. 저자는 질문에도 T.P.O(시간, 장소, 상황)가 있다고 말한다. 아무리 궁금하고 중요한 내용이더라도 시기나 맥락을 고려하지 않으면 관계를 단절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적절한 타이밍과 장소에 맞는 질문인지, 꼭 필요한 질문인 지를 자문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태도 역시 중요한 포인트다. 질문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정작 상대방의 마음을 고려하지 않은 경우 듣는 이들을 난처하게 할 수 있어서 이 다. 저자는 말 속에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이 담겨있어야 한다고 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쿠션 어', 즉 질문에 앞서 정중한 표현으로 배려의 태도를 취하라고 조언한다. 가장 쉬운 인사부터가 시작이다.

저자가 '좋은 질문'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기 사고의 깊이와 방향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정답에만 몰두하는 대신, 무엇을 어떻게 질문할 지를 고민하다 보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새로운 맥락이 눈에 들어오고 결국 자신을 성장시키는 길이라고 한다. "질문하는 삶은 종종 느리고, 때로는 불편합니다. 정답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고,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중략)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삶이야 말로 가장 단단하고 깊은 삶"이다." (252쪽)

4
생각은 곧잘 없는 것에 붙들리는 법이다. 결핍을 해결할 생각은 창조를 낳고, 상상의 힘을 키워 줄 수 있다. 그러나 그 생각이 또한 불행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럴 때는 가진 것에 만족하는 마음의 근육이 작동되어야 한다. 잃어버리거나 망가진 것은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마음의 평온하다.

‘견골상상’(見骨想象)은 중국의 고사성어이다. 중국에서 코끼리는 기후 변화와 사냥으로 멸종된 지 오래되었는데 남아 있는 뼈를 보고 코끼리를 상상했다고 하여 생긴 말이다. 나는 생각 속 코끼리가 더 아름다웠을 거라고 믿는다. 눈앞에 없는 것이야 말로 더 그립고 애틋하기에 먼 것에 대한 그리움은 언제나 머릿속에 상(象)을 만들어 낸다. 

부재와 결핍이 상상(想像)을 촉발하는 근원이라면, 미래에 대한 상상의 결여는 현재 속에서 미래를 경험하고 있다는 착각 때문이 아닐까? 오늘날 디지털 기술은 너무 많은 것을 보여 주고, 사람들은 그것이 우리의 미래라고 너무 쉽게 믿는 것 같다. 눈앞의 것에 대한 도취는 모든 시공간성을 허물어뜨리며 현실을 메마르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기치 않은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이 미래이기에 우리는 전부 다 알 수 없다. 모호하고 낯선 모습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우리는 어떻게 떨쳐 낼 것인가? 그래 나는 미래 공상 과학 소설이나 영화를 보지 않는다. 현실에, 지금-여기에 충실하고 싶은 거다.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 속에서 새로운 삶에 대한 긍정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각자 우리보다 더 일을 잘 해내는 인공지능과 함께 살게 될 것이다. 인공일반지능(AGI)과 함께하는 미래 삶이 머지않다는 예견 속에서 대다수가 도태될 것을 걱정한다. 기술의 발전이 가져다 줄 미래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어쩌면 잘 노는 것이 미래형 인간일 거라는 생각도 든다.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는 대신에 더 잘 놀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때도 여전히 상상력은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것을, 잃어버린 것을, 먼 것을 함께 상상하고 즐기는 일을 통해 인간성을 붙들 수 있기를 바란다. 인간 삶의 괴로움 속에서도 언제나 상상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5
오늘 공유하는 시의 제목은 <하경>인데, 이 말은 ‘여름 풍경'이란 뜻이다. 시인은 자세히 말해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징검돌 같은 문장을 강물에 툭툭 얹어둔 것처럼 무심한 언술인데, 왜 이리 깊고 아득해 질까? 아이들이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하니 시간은 초저녁쯤 될 것이다. 그곳에 엷게 퍼져 있는 수박 씨 냄새라니, 섬세한 필치 아닌가! 이 시를 알기 전에는 수박 씨 냄새를 떠올린 적 없었다. 수박을 먹다가 손끝으로 살살 씨를 파낸 적 있고 오물오물 먹다 입에 걸리는 수박씨를 얼굴 위로 뱉는 장난을 친 기억을 더듬으니, 과연 수박은 과육과 껍질과 씨의 냄새가 조금씩 다르다.

이 시는 세번째 행이 하이라이트다. 불어난 강물은 여름마다 누군가를 삼킨 전력이 있을까? 시인은 아이들이 떠난 자리에 서서 ‘어떤 불길 함’을 예감한다. 세번째 행으로 시적 긴장과 이미지의 파고가 생긴다. 이어서 들리는 “어린 개의 재채기 소리"는 긴장을 누그러뜨린다. 독자를 서늘한 예감의 세계에서 청각(현재)의 세계로 이끌어 준다. 인간은 행도 불행도 점칠 수 없지만 천진한 “어린 개"의 기척은 생생하다. 이 시를 태평하게 읽기도 하고 마지막 문장에서 왠지 안도하며 읽기도 하고, 알쏭달쏭한 맛에 빠져 반복해 읽기도 한다. 참 매력적인 시다.

한낮에 거리를 걸으니 어디서 큰 동물이 화염을 내뿜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뜨거웠다. 살갗에 화기(火氣)가 느껴진 날, 야외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더위에 숨졌다는 뉴스를 들으니 끔찍하고 마음이 아프다. 평화도 열기도 아름다움도 있지만 위험도, 죽음도 서려 있는 여름이다.


하경(夏景)/전욱진

아이들 서둘러서 뜨고
어질러진 수박씨 냄새
살이 찌는 강이 무섭다
어린 개의 재채기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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