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사랑은 하나가 되는 순간 끝이 난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7. 27. 14:06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7월 26일)

우리는 어제 '사랑에 빠지는' 경험은 참사랑이 아니라 일종의 환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반대로, 사랑에 빠지는 것은 참사랑에 도달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경험일 수도 있다. 참사랑의 경험은 인간 한계의 확장을 가져오므로 그 경험은 자아 경계와 연관되어 있다. 인간의 한계가 자아 경계이다. 사랑을 통해 한계를 확장할 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성장을 돕기 소망하면서 그 대상을 향해 다가가기 때문에 그런 일이 가능해진다. 그런 측면에서 우선 사랑하는 대상에서 사랑을 느껴야 한다는 거다. 그래 우선 사랑에 빠져야 하는 측면도 인정해야 한다. 자아 경계를 넘어서서 우리 밖에 있는 대상에 끌려야 하고 자신을 투자하고 완전히 헌신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끌림과 투자와 헌신하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애착'이라 한다.

자신 밖에 있는 대상에 애착할 때 우리는 심리적으로 그 대상의 상징을 자신과 일치시킨다. 그러면서 점진적이고도 발전적인 자아의 확장,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의 통합, 이에 따른 자아 경계가  붕괴되고 '사랑에 빠질' 때와 같은 종류의 황홀감을 체험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온 세상과의 '신비한 합일'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히 차이는 있다. '사랑에 빠지는' 것으로 대변되는 절정 체험과 매슬로우가 말하는 고원체험(plateau experience) 간에 존재하는 차이점이다.

매슬로우는 3가지 자기초월적 경험으로 절정경험, 절망경험, 고원경험을 제시하였다. 절정경험은 짧지만 강력하고 충격적인 경험으로써 평범한 삶 속에 인생을 통찰하도록 도전을 한다. 절망 경험은 죽음과의 직면, 응급의료 및 심리적 외상과 같은 강렬한 경험으로써 평범한 정체성에서 벗어나 자기 초월적 인식을 시작하게 된다. 고원경험은 침착하고 고용하며 통쾌한 기쁨과 행복감을 포함한다. 고원은 갑자기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원히 소유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비우려면 그것을 갖고 있거나 성취해야만 하며, 여전히 우리 능력과 생활력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자아 경계는 부드러워 지기 전에 먼저 굳어져야만 한다. 그리고 자아가 초월하기 전에 자아가 확립되어야 한다. 열반 그 자체가 아니라, 지속적인 깨달음, 진정한 정신적인 성장 등은 오로지 참사랑을 부단히 실천함으로써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제이다. 오늘 하고 싶은 말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참사랑을 향한 동기를 제공한다고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어쨌든 참사랑은 쉽지 않다.

사랑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다. 사랑에 대한 생각을 할 때면, 늘 나는 다음 문장을 떠올린다. '사랑은 하나가 되는 순간 끝이 난다.' ‘하나’되는 사랑은 사랑의 종말이다. 사랑하는 두 사람 모두 혹은 두 사람 중 한 명이 자신의 자유를 포기해야만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전제를 함축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한 많은 글을 쓴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그래서 사랑은 결코 ‘하나'가 아니라, ‘둘'의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조르쥐 바타이유에 의하면, 인간은 어떤 것이 금지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욕망한다고 했다. 특히 에로스적 사랑을 하면 이성에 대한 판타지를 갖게 된다. 그러나 이성적 관계 속에서 성적인 영역이 작아져야 한다. 관계에 속하는 다른 영역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상대가 하나의 ‘이성'이기 전에, 하나의 ‘인간'으로 다가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상대방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사랑이다. 그리고 동시에 나 자신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남녀 관계에서 성적인 것은 상대방의 많은 요소들 가운데 하나이다. 성적인 부분이 크게 보이는 것은 사회적으로 금지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금지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욕망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단 성이 매력적인 것은 상대방이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너무 예쁘게 만져 주기 때문이다. 섹스를 통해서 나를 상대방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말하는 것처럼, 몸을 만지는 것도, 예컨대 애무도 관계를 맺는 것이다.  사랑하는 관계는 애무와 비교될 수 있다. 애무와 폭력의 경계는 매우 미미하고 얄팍하다. 상대 몸의 자연적인 곡선을 따르지 못하고 자신의 욕망을 좇으면 폭력이 된다. 상대가 바라지 않는 것을 강요하면, 사랑은 폭력이 될 수 있다. 사랑하는 사이라 할지라도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상대의 의견을 말 그대로 믿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늘 다시 협상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도 늘 협상을 하여야 한다.

물론 성적욕망 때문에 사랑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성은 이 음악을 좋아하고, 이 영화를 좋아하는 정도의 수준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사람을 갖는 다는 것은 [소유나 장악의 의미의] 성적인 소유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모든 면에서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이다. 성기는 나의 일부분일 뿐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가능하다. 사랑은 모든 면에서 둘이 되는 것이다. (알랭 바디우, 레비나스) 사랑은 진짜 둘로 서는 순간이다. 제3의 요소가 개입되면 사랑을 못한다. 진짜 둘이 설 때, 사랑의 꽃이 핀다. 사랑은 일방적으로 헌신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널 주인공으로 만들면, 너도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의 관계에서 이타심은 이기심이다. 사랑하면서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헌신하는 것은 그 헌신이 나에게 되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물론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다만 사랑이 영원하다고 말하는 것은 꽃이 피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간적인 지속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질적인 비약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영원한 사랑이란 정확히 말해 너무나 강렬해서 영원히 온 몸에 각인된 사랑을 했다는 것이다. 시각적인 지속만을 하는 것은 단지 조화(造花)같은 것일 뿐이다. 사랑이 꽃 폈다는 것이 중요하지, 지는 때는 중요하지 않다. 질 것 같아서 꽃을 피우지 않는 것은 헤어질 것 같아서 사랑하지 않는 것과 같다. 아무리 아름다운 영화도 언젠가는 끝난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언젠가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소멸하게 마련이다.

사랑의 영원함은 꽃이 피었는지 피지 않았는지를 표현하는 말이다. 꽃을 피운 적이 없는 경우란 주인공이 된 경험이나 둘이 된 경험이 없다는 말이다. 정으로 지낸다는 것은 습관적으로 지낸다는 것이다. 나의 사랑이 식을 때, 상대방의 사랑도 식는다. 내가 사랑의 손을 꽉 잡지 않고 느슨하게 쥐면, 상대방도 꽉 잡지 않는다.

사랑에 관한 글을 많이 쓴 사회학자 자그문트 바우만은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두 주체가 객체가 되는 시간이다. 사랑하는 나는 주체이고, 동시에 사랑의 대상인 객체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 대상은 객체이자 또한 그 사랑의 주체인 것이다. 사랑하는 대상(객체)이 의지를 갖는 주체이므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상대도 그 사랑의 주체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남편이나 아내는, 아니 타인은 사실 실체가 모호하다. 다 내 판단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들의 합(合)이다. 내가 만든 개념일 수 있다. 그 개념 안에는 내 기억과 경험, 타인에게 들은 평가 등이 들어 있다는 말이다. 내가 만든 그 허상을 지우면, 마주할 때마다 새로운 매력으로 태어날 사람이다. 그래 우리는 힘들지만, 현실에서 묵은 감정을 지우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사랑은 우리가 한 번 가졌다고 해서 모든 것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 다시 창조해야 하고, 매번 다시 살려내야 하고, 죽을 때까지 만들어가야 한다. 세상에 마침표를 이룬 사랑은 없다. 어제 <인문 일기>부터 사랑을 이야기하다 보니 김수영 시인의 <죄와 벌>이 머리를 떠나지 안 했다.

아침 사진은 하얀 무궁화 꽃이다. "꽃은 사람들의 찬탄을 받기 위해서 피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자기의 아름다움을 위해서 피는 것도 아닙니다. 빛과 향기를 발하는 것은 나비를 부르기 위해서 입니다. 오로지 열매를 위한 것입니다. 시들어서 더 이상 꽃이 아니라 하지만 그 자리에 남아서 자라는 열매를 조금이라도 더 보호하려는 모정입니다. 꽃으로 서의 소명을 완수하고 있는 무궁화는 아름답습니다." 고 신영복 교수의<<담론>>에서 읽은 거다. 꽃과 사람은 다르다. 자연의 동식물은 자연적 진화를 했지만, 인간은 문화적 진화를 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늘 공유하는 시를 읽다 보면, 그렇다. 인간은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살인을 한다." 우리 인간의 사랑은 자신이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되는 길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잔인 해져야 자기 사랑을 한다. 조연으로만 있으면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노예는 주인에게 잔인하지 못한 반면, 주인은 때리기도 하고, 상도 준다. 잔인 해지려면 자신의 품위 지키기를 내려놓아야 한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야성을 끌어내야 한다. 그만큼 사랑은 쉽지 않는 거다. 진짜 사랑하면 살인을 한다.

죄와 벌/김수영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 놈이 울었고
비 오는 거리에는
40명가량의 취객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잘 아는 것처럼, 이 시는 김수영 시인이 실제로 겪었던 일을 다룬 시이다. 김수영이 길거리에서 어린 아들이 보는 앞에서 아내를 자기 우산대로 때려 눕혔다. 여편네를 후려 팬 것이다. 그러고도 남이 보는 것만 걱정하고 다음에 생각하는 것은 자기 우산을 놔두고 온 것을 아쉬워한다. 그런 와중에도 아내를 때린 것에 대한 아련한 후회와 자신에 대한 조소가 담겨있다.

김수영의 아내 이름은 김현경이다. 그녀는 이대 영문과를 다녔고, 정지용에게 시를 배웠으며 프랑스 문학에 심취했다고 할 정도로 인문학적 소양이 있었다. 김수영과 김현경의 처음 만남도 스승과 제자에 가까웠다. 그런다 연인이 되었고, 한국전쟁 전 1950년 30세 김수영과 결혼했을 때, 김현경의 나이는 25세였다. 결혼하고 터진 전쟁에 김수영은 인민군에게 의용군으로 강제 차출된다. 하지만 의용군을 탈출했던 시인이 이번에는 한국군과 유엔군에게 서울 집 근처에서 체포되어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수감된다. 그러자 시인의 생사가 묘연해진 상황에서, 김현경은 시인의 선배인 이종구와 부산에서 살림을 차렸다. 시인은 1952년 12월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풀려 나왔는데, 김현경이 사라진 것이다. 후에 김현경과 이종구가 사는 곳을 찾아갔을 때, 김현경은 김수영과 같이 가는 것을 거부했다.

그러다가 1954년 김현경은 이종구를 떠나 다시 김수영에 되돌아 온다. 김수영은 김현경을 사랑하면서도 분노했고, 복잡한 마음으로 살았다. 이런 상황에서 1960년대 초에 <죄와 벌>을 쓴 것이다. 당시 상황에 대한 부인의 설명을 들어 본다. "광화문 근처에서 과외 공부를 하는 큰아들 준을 기다리는 동안 당시 조선일보사 모퉁이에 잇던 영하관에서 피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길(La strada)>을 보았다. 수영과 나는 좋은 영화가 개봉되면 항상 같이 극장을 찾았다. 그날은 다섯 된 둘째 아들 우도 함께 갔다. 영화를 잘 보고 나오는데 수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갑자기 나를 사정없이 때렸다.. 대로변에서, 그것도 어린 아들 앞에서 부인을 때리는 시인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시에다 우산을 두고 온 일이 아깝다고 말하는 시인의 감정에는 무엇이 섞여 있을까? 그 일이 있고 한참 후에, 그날 수영의 심리를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었다. 일단 장남의 과외 교사가 신통치 않아 수영의 마음이 불편했던 것, 아니 그보다는 배우 줄리에타 마시나와 엔서니 퀸이 남루한 모습을 한 채 방랑하는 야바위꾼으로 나왔던 그 영화, 상영 내내 펼쳐지던 황량하리 만큼 넓은 영화의 공간, 영화 속 주인공들의 기형적인 사랑과 욕망 그리고 수영과 나,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수영은 나를 때리고 <좌와 벌>을 썼는지 모른다. 수영은 그날 일에 대해 변명 한 마디 하지 않았다. 1958년 가을이었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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