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과 짝퉁은 디테일에 있다.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7월 27일)
'시도(試圖)하다'는 "어떤 것을 이루어 보려고 계획하거나 행동하다"는 뜻이다. 다르게 말하면, "꾀하여 보다"이다. 영어로는 "Try", 프랑스어로는 "Essayer"이다.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의 다음 말은 잘 알려져 있다. "이봐~! 해보기나 했어?", "해봤어?"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카피라이터 정철이 쓴 '시도'에 대한 정의는 "도레미파솔라시도. 맨 끝에 붙은 것이 시도. 끝까지 가는 것이 시도. 박자를 놓쳐도, 음정이 흔들려도, 듣는 사람 하나 없어도 시작했으면 끝까지 가는 것이 시도"이다.
한 번 해보는 거다. 그것도 끝까지 그게 시도이다. 반대로 '유야무야(有耶無耶)'라는 말이 있다. '하는 듯 마는 듯, 흐지부지해 버리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야(耶)는 어조사 야이다. 어조사란 실질적인 뜻은 거의 없고 어기(語氣, 말하는 기세)를 나타낼 때 사용하는 글자인데, '야'는 대개 의문을 나타내는 어조사로 많이 쓰인다. 따라서 '유야무야'를 말 그대로 하면, "있는 거여, 없는 거여?"라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하는 겨, 마는 겨?"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다. 도레미파솔라시도. 무엇이든지 한 번하면 끝까지 가는 것이 시도이다.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 양궁은 여자단체전에서 ‘올림픽 9연패(連覇)’라는 위업을 달성하고 신설된 남녀 혼성과 남자단체전까지 모두 휩쓸었다. 이들의 성공은 코로나 위기로 침체되고 흔들리는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많은 이들이 그 위업의 뒤에는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하는 대한양궁협회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협회는 대표선수 선발 과정에서 오직 누가 더 많은 화살을 과녁 정 중앙 가깝게 꽂는 가만 평가기준으로 삼았다. 과거 메달을 얼마나 땄는지, 현재 국가대표인지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이런 엄정한 ‘기회의 공정'이 실력 있는 ‘젊은 피’ 수혈로 이어지며 올림픽 사상 어느 나라도 쓰지 못한 대기록을 가능케 한 것이다.
명품과 짝퉁은 디테일에 있다. 한국 양궁의 비결은 남녀 모두 선발 과정의 공정한 경쟁과 준비 과정의 철저한 디테일이라 본다. 한국에서는 ‘대표로 선발만 되면 금메달’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철저하게 실력을 검증한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4월까지 3차례의 평가전으로 남녀 각 8명을 뽑고, 선수촌에서 함께 합숙 훈련하며 다시 2차례의 평가전으로 각 3명을 최종 선발했다. 과거 기존 대표 선수는 1, 2차전을 면제해 줬지만 이번엔 그런 특혜도 없앴다. 이렇게 살아남은 선수들은 치밀한 실전 훈련을 했다. 선수들은 5월부터 충북 진천선수촌에 도쿄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하고 똑같이 만든 훈련장에서 활을 쐈다. 심지어 점수를 보여주는 전광판의 밝기까지 똑같았다. 밝기 차이가 선수들 시각에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전 경기 때도 선수들끼리 격려하며 돕는 세세한 루틴이 있다. 혼성경기에서 김제덕이 먼저 쏜 뒤 바로 안산을 향해 “지금 바람 없으니 자신 있게 쏘면 돼요”라고 정보를 줬다. 초 알리기도 그 연장선이다. 한국만의 현장 전술이다.
남녀가 함께 훈련하는 환경도 양궁 발전에 도움이 됐다. 대표팀 중 유일하게 양궁만 남녀가 함께 훈련한다. 일부 종목은 남녀 합동 훈련을 터부시하기까지 하지만 양궁은 체력부터 기록 훈련까지 똑같이 한다. 여자 선수들은 한 수준 높은 남자 대표 선수들과 거칠게 경쟁하면서 실력은 물론이고 자신감까지 업그레이드됐다. 남자 선수들은 한국 여성의 섬세함과 적극성을 배웠다. 동일보의 양종구 기자의 글을 가져온 것이다.
한국 양궁 대표단 선수들의 경기를 보다가, 오늘 공유하는 <나무와 광부>를 기억했다. 이 시를 소개한 김정수 시인의 덧붙임이 좋다. "씨앗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허공으로 가지를 뻗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인은 뛰어난 상상력으로 나무를 “빛의 광맥을 찾는” 광산으로 바꿔 놓는다. 허공은 너무 단단해 나뭇가지는 일 년에 “일 미터도” 자라지 못한다. 불쌍하게도 광부들은 어두운 나뭇가지에서 평생 살아야 한다. 그 속에서 깊이와 향방도 모른 채 뼈 빠지게 일만 한다. 참으로 고단한 삶이 아닐 수 없다. 한데 멀리 있는 너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인지 절망스럽지는 않다." 나무에 꽃이 피기 때문이다. 그 꽃이 우리 선수들에게는 금메달이다.
"꽃은 멀리 있는 너를 찾아갈 수 있도록 환히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다. 불빛을 따라가면 “나의 완성”인 너를 만날 수 있다. “해마다 단 한 번” 꽃을 피우면 네 게로 가는 길이 보이고, 잠깐 벌과 나비가 동행한다. 사랑의 갱도에 갇힌 나는 꽃 진 자리에 열매를 맺는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인지라 완성이지만 진정한 완성은 아니다. 좁고 어두운 갱도를 벗어나기 위해 마지막 남은 뼈를 꺼내 든다. 달라진 바람의 감촉을 따라 “흰 날들”의 봄이 찾아오리라."(김정수 시인)
나무와 광부(鑛夫)/이선식
나뭇가지들이 허공의 지층을 파고들어간다
허공은 얼마나 견고한 지 일 년 내내
일 미터도 전진하지 못한다
나뭇가지 좁은 갱도 속 광부(鑛夫)들은 한 번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갱도 속에 뼈를 묻었다
대낮의 칠흑 속에서 빛의 광맥을 찾는 나무다 나는
너는 멀고
가 닿아야 할 깊이를 모르니
흰 날들의 향방이 캄캄하다
꽃,
해마다 단 한 번 허락된 등불을 밝혀 길을 찾는 측량
그리고 또 한 해 나의 완성인 너를 찾아
마지막 뼈를 꺼내 허공 속 갱도를 판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지속가능한 도시와 커뮤니티" 화두를 계속 이어간다. 오늘 주제는 "'함께 사는 마을, 생동감 있는 공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가'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1인 가구 대다수가 원룸과 같은 방 한 두 칸짜리 공간에서 살아간다. 비슷한 구조와 규모의 옆방에도 같은 처지의 사람이 살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잠깐 살고 떠나는 공간이라 서로 인사를 나누며 이웃으로 교류하는 경우가 드물다. 세입자인 거주자들이 친한 관계가 되어 공유의 가치를 누리며 살 수는 없을까?
현재 우리의 도시는 각박한 공간이다. 근대 시민 사회의 태동기만 해도, 도시에 산다는 것은 임금노동자로 편입되는 관문이자 신흥 부르주아 계급으로의 신분 상승을 위한 기회의 땅에 진입하는 행위였다. 우리 사회에서도 불과 2--30년간의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급격한 도시화가 이루어졌다. 농촌의 인구는 급감하고 85,4%에 달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도시화율이 달성됐다. 단시간에 인구가 집중된 도시는 필연적으로 기반 시설과 적정 주거의 부족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주택 공급의 양적 확대에만 치중한 철거, 재개발 위주의 정책은 원주민의 낮은 재정착율, 강제철거와 같은 수많은 부작용 속에 속도전의 양상으로 진행됐고, 그 결과 도시 공간은 철저히 자본의 논리에 따라 재편되고 말았다. 이게 우리 동네의 현실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하나? 토지와 도시 공간의 상품화를 최소한의 범위에서 라도 제어하면서, 공유의 가치에 기반을 둬 주거와 생계를 위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고 시민의 참여로 운영할 때, 비로소 도시는 모두를 위한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남철관 나눔과 미래 지역활성화 국장으로부터 배운 내용이다.
다음은 4년 전 일본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와 작가 고가 후미타케가 아들러 심리학을 참고해서 대화체 형식으로 쓴 책, <미움받을 용기>를 일고 써 놓은 것이 페북 <과거의 오늘>에 올라왔다. 다시 공유한다. 이 책에서 나는 마을 공동체 안에서 필료한 타인과의 관계를 위한 몇 가지 '지혜'를 보았다. <신성마을연구소>를 만들려고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심리적 안정을 주는 글들이다.
(1) "인간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낄 때에만 용기를 얻는다." 그러한 가치는 미을 공동체 안에서 더 잘 느낀다. 여기서 공동체 감각은 타인을 친구로 여기고, 거기서 "내가 있을 곳은 여기"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가치가 있다'고 느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인생의 과제에 직면할 용기를 얻게 된다는 말이다.
(2) 인간은 "나는 공동체에 유익한 존재"라고 느끼면, 자신의 가치를 실감한다. 그것은 마을 공동체, 즉 남에게 영향을 끼침으로써,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것이다, 타인으로부터 '좋다'는 평가를 받을 필요 없이 자신의 주관에 따라 '나는 다른 사람에게 공헌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3) 쉽지 않지만, 타인을 '행위의 차원'이 아닌 '존재의 차원'에서 관심을 갖는다. 상대를 누구와 비교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보고, 그저 거기에 있어 주는 것을 기뻐하고 감사하면 된다. 실제 일상에서 이상적인 100점(자기만의 이상적인 모습)에서 감점하지 않고, 0점에서 출발하자는 제안이 퍽 마음에 든다.
(4) 다른 사람이 협력하든 안 하든 상관하지 말고, 나부터 수평관계에서 협조하며, 용기부여를 하고 관계를 시작한다. 다른 사람과 한 명이라도 좋으니 수평관계를 맺는 것이다. 나이차가 있다하더라도, 의식상에서 대등하고, 주장할 것은 당당하게 주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5) 자기에 대한 집착을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돌리고, 공동체 감각을 기르려면 필요한 것이 다음과 같이 세 가지라고 주장한다.
- 자기긍정이 아니라 자기수용: 자기수용이란 평범해질 용기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 하느냐이다. 하지 못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할 수 있을 때까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100점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과제분리와 함께 변할 수 있는 것과 변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한다. 태어나면서 주어진 것에 대해서는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주어진 것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다. 긍정과 수용의 차이에서 긍정은 이성적인 면이 강하다. 다른 말로 하면 '승인'이다. 감정적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이성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긍정은 '인정함'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수용은 감성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를 '어색하게' 긍정하기 보다 '있는 그대로,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타자와의 관계가 더 쉬워질 수 있다.
- 타자신용이 아니라 타자신뢰: 신뢰는 조건을 달지 않고 무조건 믿는 것이다. 조건 없는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아들러 심리학에서 신뢰의 관계 속에서 배신은 나의 과제가 아니라 타인의 과제이다. 난 '어떻게 할 것인 가'만 생각하면 된다. 타자 신뢰를 통해서 더 깊은 관계 속으로 들어갈 용기를 가질 때 인간 관계의 즐거움이나 기쁨은 그만큼 더 크다. 신뢰와 신용의 차이에서, 신뢰는 믿고 의지하는 것이라면, 신용은 마음 속으로 약간의 의심을 하지만 그래도 믿는 것이다. 신용이라는 말은 거래에 사용된다.
- 타자공헌: 타자공헌은 남이 내게 무엇을 해주느냐가 아니라, 내가 남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공헌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힘을 써서 이바지 하거나 재물을 바쳐 이롭게 하는 것이다. 그 때 다른 사람을 친구로 여기면, 친구가 있는 그 곳이 '내가 여기에 있어도 좋다'라는 소속감이 생긴다. 거기서 관계를 유지하려면 타자공헌을 해야 한다. 타자공헌은 친구인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존재나 행동이 공동체에 유익하다고 생각했을 때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여길 때에,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실감한다. 그런 의미에서, 타자공헌은 나를 버리고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가치를 실감하기 위한 행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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