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마음을 비워야 삶이 가벼워진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7. 26. 19:26

3391.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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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를 좋은 그릇으로 만들려면, 불에 달구고 망치로 두드려 잡스러운 쇳조각을 제거해야 힌다. 우리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살아가며 쌓인 화, 집착, 고정관념 같은 마음의 찌꺼기를 하나씩 덜어낼 때 비로소 맑고 단단한 사람이 되어간다. 살다 보면 나름대로 책도 읽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며 스스로 성찰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도 마음은 여전히 복잡하고, 인간관계는 버겁고, 삶의 방향도 선명하지 않을 때가 있다. 아무리 많은 정보를 접해도, 마음속에 묵은 때가 남아 있다면 그 어떤 말도 깊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화를 하다보면, 자기 생각이 너무 뚜렷해 어떤 말도 깊이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뒤뜰에 여러 꽃이 활짝 피어 있어도, 유난히 특이한 색깔의 꽃 하나만 바라보느라 다른 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습과 비슷하다.

마음을 정리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즉 무엇을 더 쌓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굳어 있는 고집과 판단, 지나친 생각들을 덜어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마음을 비워야 삶이 가벼워진다. 매일 매일 밀려오는 정보들에는 민감하지만,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는 익숙하지 않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 시대의 가장 큰 고통일지도 모은다. 그러니 우리는 '무엇을 더 알아야 할까'보다 '무엇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를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마음이 맑아지면 삶이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 자신에게 질문한다. "내 마음속에 아직 버리지 못한 건 무엇인가?" 이 질문과 함께, 매일 공유하는 시 대신, 법정 잠언집(류시화 역음),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에 나오는 다음 문장을 다시 읽는다.


소욕지족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으니
가난한들 무슨 손해가 있으며,
죽을 때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으니
부유한들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할 수 있으면 얻은 것보다 덜 써야 한다.
절약하지 않으면 가득 차 있어도 반드시 고갈되고,
절약하면 텅 비어 있어도 언젠가는 차게 된다.
덜 갖고도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덜 갖고도 얼마든지 더 많이 존재할 수 있다.

소유와 소비 지향적인 삶의 방식에서
존재 지향적인 생활 태도로 바꾸어야 한다.

소유 지향적인 삶과 존재 지향적인 삶은
우리들 일상에 두루 깔려 있다.
거기에는 그 나름의 살아가는 기쁨이 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 이르렀을 때,
어느 쪽 삶이 우리가 기대어 살아갈 만한 삶이며,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삶인가 뚜렷이 드러난다.

똑같은 조건을 두고
한쪽에서는 사람의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근심 걱정의 원인으로 본다.

소욕지족(少欲知足)
작은 것과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누리는 행복은 크고 많은 것에서보다
작은 것과 적은 것 속에 있다.

크고 많은 것을 원하면 그 욕망을 채울 길이 없다.
작은 것과 적은 것 속에
삶의 향기인 아름다움과 고마움이 있다.

2
그리고 복잡한 이 시대에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으로 나 자신을 잘 유지하는 길은 모든 다양한 상황에 잘 적응하면서도, 나쁜 상황을 견뎌낼 수 있는 면역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가치가 저마다의 장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치를 따지는 것이다. 주변에서 만나는 파렴치한, 즉 염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모든 것의 가격만 알고, 가치는 조금도 모른다. '돈 돈' 하며, 자신의 가치를 판다. 모든 가치를 인정하고 끌어 안아야 한다. 이 세상에 불필요한 것은 없다.

지난 달에 이야기 했지만, 가치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한 이야기를 공유한다. "손을 트지 않게 하는 약은 쓰는 용도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불균수지약 소용지이야(不龜手之藥 所用之異也)"라는 말이 있다. 중국 송나라에 손 안 트는 약을 잘 만드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솜이불을 빠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 약을 손에 바르면 겨울철에도 손이 트지 않아 솜 빠는 일을 할 수 있었다. 한 나그네가 이 소문을 듣고 이 사람을 찾아와 약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면 금 백 냥을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이 사람은 가족과 친척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솜 빠는 일을 조상 대대로 해 오고 있지만 수입은 몇 푼 안 된다. 약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면 단박에 금 백 냥을 받는다. 그러니 약 만드는 법을 팔도록 하자.” 이렇게 하여 금 백 냥에 약 만드는 법을 알게 된 나그네는 그 길로 오나라 왕을 찾아갔다. 그리고 겨울철에 월나라와 싸우는 데에 이 약을 쓰도록 설득했다. 이 약을 바른 오나라 군사들은 손이 트지 않고 동상에 걸리지 않아 싸움하는 데에 지장이 없었다. 그래서 오나라는 크게 승리했다. 전쟁이 끝난 뒤 오나라 왕은 기뻐서 그 사람에게 높은 벼슬에다 많은 땅까지 주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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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를 구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다양한 방법으로 폭넓은 경험을 쌓고 지식을 탐구하며 사물의 본질을 사색하여 세상 원리를 이해하는 안목을 기르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존재적 경험과 배움의 기회를 갖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래 이번 달은 색다른 교육을 받고 있다. 월 초에는 <로컬 콘텐츠 기획자 양성과정>을 들었고, 이 번주는 <관광업 실무역량 강화 아카데미> 교육을 받고 있다. 새로운 경험이다.

그러한 삶의 구조를 만들려면, 돈은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만, 돈을 버는 데 집중되었던 자원을 적절히 재배치 하여야 한다. 우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런 일들은 금전적 가치 외에 비금전적 가치도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활동과 관계를 의도적으로 늘려야 한다. 재화의 소비측면에서, '소유적 소비'보다 '존재적 소비'에 치중해야 한다. '존재적 소비'란 훌륭한 인물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다. 가까이에 뛰어난 인물들이 많을수록 우리는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기회와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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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가치의 아노미 상태 속에서 살고 있다. 때론 고통도 가치가 있다. 고통이란 자기 삶을 풍족하게 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래 '호모 파티엔스(Homo Patience)' 이다. 즉 삶의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는 동물이다. 철학이 시작된 것은 인간이 땅에서 재배된 것을 먹고 소화불량에 시달렸던 때라는 말이 있다. 결핍은 고민을 부르고, 고민은 사유를 낳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인간은 강해진다. 견디기 힘든 고통이나 피해가 왔다고 해도 그것이 세상의 끝은 아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생긴다. 세상은 우리가 죽어야 비로소 끝난다. 겁날 것 없다. 죽으면 끝이니까. 죽기 살기로 하면 안 될 일 하나도 없다. 아무리 큰 상처를 받았다 해도 충격이 가라앉고 신경이 진정되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인간이다. 치로키 부족의 인디언 치료사 '구르는 돌'이 했다는 말을 공유한다. "어떤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삶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일이 그곳에 있는 한 우리는 그 길을 따르고 그 길을 존중하고 그 길과 대면해야 한다."

'탈피'하지 못하는 뱀은 죽는다. 우리는 남이나 외부 상황에 휘둘려 살아가는 태도로부터 '탈피'해, 자기 삶의 주도권을 쥐고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내 삶의 주도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 방법은 자기가 하는 일을 삶의 가운데에 놓고 다른 모든 일은 그것을 위한 방향으로 다시 세팅해야만 한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삶을 살아라. 그것이 야말로 궁극적인 력셔리이다." 전설적인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했던 말이다.

5
크리스틴 로젠은 <<경험의 멸종>>이라는 책에서 이런 질문을 한다. "기술이 경험을 대체하는 시대, 인간은 계속 인간일 수 있을까?" 질문하면서,  그는 "멸종 위기에 놓인 인간 다운 삶을 구출하라"고 말한다.  대면 소통부터 길잡이의 감각까지, 경험의 순간을 되찾기 위한 광범위한 지적 성찰이 시작된다.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쉽고,  마찰 없고, 실체 없게 만들겠다고 위협하는 지금, 이 책의 메시지는 더욱 절실하다.

우리의 일상은 인공지능을 비롯한 디지털 기술의 터전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챗GPT에게 문서 요약을 맡기고, 비대면 미팅 플랫폼을 통해 소통하고, 쇼셜 미디어에 실시간으로 일상을 업로드 한다. 현실과 디지털의 경계는 이미 무너졌으며, 이제는 기술로 매개된 경험이 인간의 직접 경험을 대체해 나가고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된다 고 여겼던 핵심적인 직접 경험들, 예컨대 대면 소통이나 손으로 쓰고 그리는 일, 무언가를 기다리는 순간과 공공성을 감각하는 일 들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디지털 기술을 잃기 보다는니 후각을 포기하겠다는 10대, 3초도 기다리지 못하는 동영상 시청자, 투표권대신 쇼셜미디어를 선택하는 사람들처럼, 대중문화, 과학, 정치, 법률을 망라해가며 경험이 소멸해가는 21세기적 현상을 설명해낸다.

우리는 연결된 상태로 태어난다. 홀로 있음은 성숙한 인간이라야 가능하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가 세계 어디에 가든, 아니면 삶의 어디에 있든 우리는 서버에게 알려지고 그 영역 속에 들어가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우리들의 움직임과 행동과 생각의 흔적을 남겨두지 않고 우리들의 삶을 영위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삶의 기록은 썩지 않는 삶의 배설물을 뒤에 남기게 되는 거다. 그렇지만, 우리는 인생의 어느 부분 동안 사라지고 추적되지 않을 권리를 고집하여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가공되지 않은 자아의 실체를 인식할 수 있다.  타인이 지켜보든 말든 우리는 존재한다는 것을 긍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으로 나가야 한다.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의 저자 리처드 루브(Richard Louv)는 "자연결핍장애"에 대해 설명하였다. 자연으로부터의 소외 때문에 치러야 하는 비용 말이다. 그것에는 "감각 활용의 감소, 주의력 장애, 신체적, 감정적 질병의 높은 비율"이 들어 있다. 자연에 나가면, 만물이 성장하는 것을 보고, 넓은 하늘과 창공을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해변에서 모닥불을 피우거나 시골길을 도보여행하면서 평소의 속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율감을 느낄 수 있다. 원래 인간은 자연과 분리될 수 없는 삶을 살았고, 자연의 일부였다. 그러다가 이젠 자연을 소유하고 통제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들의 집이 되어주던 광활한 잡목 숲 지대를 거부하고, 그 이후로 우리는 도시에서 살고 있다. 도시는 우리의 감각적 경험을 빈곤하게 만들고, 빈곤해진 정체성으로 진정한 인간 지성에 필요한 겸손함의 감각이 결여된 정체성으로 이어졌다. 많은 여구들을 보면, 야생의 숲에 사는 사람들이 도시 속에 사는 사람들보다 주의력의 범위가 더 크고 만족감도 더 높다는 거다. 그 외 자연 속에서 지내면, 다음과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 풀이 무성한 목초지와 교통량이 많은 시내 도로를 각각 걷게 한 후 뇌 영상을 찍으면, 시내에서 걸은 사람들은 '반추'의 빈도가 훨씬 더 잦았다고 한다. 이는 우울증의 초기 증상으로, 생각에 잠기고 자기 비판에 빠지기 쉽다는 거다. 반추와 관련된 뇌 영역이 시내 산책에서는 불이 켜지는 반면, 자연 산책에서는 차분해졌다는 거다.
▪ 일본에서 '삼림 욕'이라 알려진 숨으로 잠시 다녀오는 것은 코르티솔 수치를 낮추고, 면역 체계를 증진시킨다는 보고가 나왔다.
▪ 부자이든 빈민이든 학생들은 초록색 공간을 접할 때 공부를 더 잘한다는 보고도 있다.
▪ 단순한 초록색 경치를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해소해주고 곤경에 처했을 때 회복력을 증대 시킨다는 보고도 있다.
▪ 자연 속에서 지내는 시간은 후각, 시각, 청각을 아주 구체적으로 증진시킨다는 자료도 있다.
이 모든 이득의 누적된 효과는 분주한 도시의 영혼들에게는 일종의 진통제 체험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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