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반쪽이’ 이야기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7월 25일)
지난 23일 부터, 스캇 펙트가 <<아직도 가야할 길>>과 함께, 사랑이 아닌 것을 살펴 보면서, 사랑의 본질을 밝히는 작업을 따라가고 있다. 어제는 사랑에 대한 모든 오해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사랑에 빠지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며 또는 적어도 사랑의 표시 중 하나라는 신념'이라는 것을 살펴 보았다. 오늘은 "낭만적인 사랑이라는 신화" 이야기를 하려 한다.
사랑에 빠져 결혼에까지 이르는 까닭은 아마도 그 경험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환상 때문이라는 거다. 이런 환상은 "낭만적 사랑이라는 신화"가 키우는 거라 한다. 위대한 신화는 위대하고 보편적인 진리를 상징하고 구현한다. 신화도 신화 나름이다. 그러나 "낭만적인 사랑이라는 신화"는 끔찍한 거짓말이다. 그러나 사랑에 빠지는 행위에 그럴 듯한 타당성을 부여하고 독려하여 결국 결혼에 빠지게 함으로써 인류의 존속을 유지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필요한 거짓말이기도 하다.
이러한 신화는 우리가 어릴 적 즐겨 듣던 동화에 근거한다. 동화 속에서 왕자와 공주는 결혼하여 행복하게 산다는 동화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이 신화가 말해주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젊은이들에게는 '정해진 짝'이 있다는 거다. 신화는 한 남자에게는 단지 한 여자, 한 여자에게는 단지 한 남자가 정해져 있고 이것은 운명으로 이미 결정돼 있음을 암시한다.
플라톤의 <<향연>>에 "잃어버린 ‘반쪽이’ 이야기"가 이런 거다. 오늘날 우리가 ‘학술대회’라고 부르는 심포지엄(symposium)은 그리스 어 ‘심포시온(symposion)’에서 나온 말이란다. 이 말은 우리말로 해석하면 ‘향연’이다. 즉 ‘함께 먹고 마신다.’는 의미이다. 그리스인들의 향연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푸짐한 식사와 와인을 곁들이면서 주제를 정해 철학적 토론을 즐겼다고 한다.
플라톤의 <향연>이 토론을 대화 형식으로 정리한 책이다. 그 때의 주제는 사랑이었다. 그래서 그 책의 부제가 ‘사랑에 관하여’이다. "잃어버린 ‘반쪽이’이야기"는 심포지엄에서 네 번째 발언권을 가진 아리스토파네스의 이야기이다. 그에 의하면, 원래 인간은 두 사람 씩 등이 붙어있었다고 한다. 남성은 남성 둘이, 여성은 여성 둘이, 자웅동체인 남녀성은 남자와 여자가 등을 맞대고 붙어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태초에는 인간의 성이 남성과 여성 그리고 제3의 성인 자웅동성이 있었다고 한다. 제3의 성, 즉 양성인이 지금은 없다. 다만 안드로기노스(Androgynos), 즉 ‘어지자지’라는 남성과 여성을 한 몸에 두루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순수한 우리말이 남아 있을 뿐이다.
어쨌든 원래 인간은 둥글었다. 등도 둥글고, 옆구리도 둥글었다. 팔도 넷, 다리도 넷, 귀도 넷, 수치스러운 부분인 ‘거시기’도 둘이었다. 다만 머리는 하나였지만 얼굴은 둘이었다. 두 얼굴은 서로 반대 방향을 보고 있었다. 걸을 때는 이들 역시 우리처럼 똑바로 서서 걸었다. 하지만 빨리 뛰고 싶을 때는 곡예사가 공중제비를 넘듯이, 여덟 개의 손발로 땅을 짚어가면서 아주 빠른 속도로 공처럼 굴러갈 수 있었다. 왜 둥글었냐 하면, 인간은 조상들의 모습을 이어받아 원형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남성은 태양, 여성은 지구, 남녀성은 달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란다. 고대 그리스 인들은 태양과 지구와 달이 둥글둥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그들은 대단한 힘과 능력을 갖고 있었다. 네 개의 손발을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머리는 하나지만 현재보다 용량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점점 오만 해지더니 급기야 신들의 자리를 넘보고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느 날 제우스가 회의 소집했다. 오만해진 인간들을 벼락으로 전멸 시키자니 앞으로 받아먹을 제물이 아깝고, 그대로 두자니 신들에게 박박 기어오르는 게 눈꼴사나워 못 보겠다는 것이다. 회의 중에 제우스의 머리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는 인간들이 지금보다 약해져서 더 이상 오만 해하지 않도록, 인간들 각각을 둘로 나누겠다. 그러면 인간들은 더 약해질 것이고 또한 동시에 섬기는 인간 숫자가 늘어나니 우리 신들에게는 더 유익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에 인간들이 또 건방지게 굴고 소요를 일으키려 할 때에는 나는 그들을 다시 둘로 나누어서 외 발로 뛰어다닐 수밖에 없도록 하겠다.”
제우스는 이렇게 말하며 삶은 달걀의 껍데기를 벗기고는 머리카락을 가지고 두 토막으로 자르듯이 번개로 인간을 둘로 나누었다. 의술의 신 아폴론을 시켜 얼굴과 목의 반쪽을 잘려나간 쪽으로 돌려놓게 한 다음 잘린 부분도 치료하도록 했다. 아폴론은 목과 얼굴을 돌려놓고 잘라진 피부를 모아 염낭을 묶듯이 배 중앙에 묶어 배꼽을 만들었다. 배꼽이 이렇게 나온 거란다. 그리고 더 재미난 것은 아폴론이 목과 얼굴을 돌려놓은 것은 상처를 기억하고 다시는 오만을 떨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란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반쪽들이 다른 반쪽들을 목마르게 그리워하고 다시 한 몸이 되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반쪽이 된 우리는 각각 옛날의 온전했던 한 인간의 부절(符節)이다.” 이때부터 인간은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또 다른 반쪽을 끊임없이 찾게 되었다. 자웅동성인인 양성인은 잃어버린 이성을, 여성은 잃어버린 또 다른 여성을, 남성은 잃어버린 또 다른 남성을 찾는다. 이렇게 인간은 지금과 같은 반쪽 모습을 갖게 됐고, 나머지 반쪽을 찾아가는 과정이 사랑이라고 한다.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사랑을 ‘잃어버린 반쪽에 대한 이끌림’이라고 정의했다. 사랑은 깨진 도자기를 다시 맞춰보듯 하나로 원상을 회복하려는 갈망이다. 입술이 그 갈망의 전달 통로라고 본다. 연인끼리 입술을 맞대고 포개는 육체적 행위, 즉 키스는 서로의 숨결을 느끼면서 자신의 분신인지를 살피는 일종의 퍼포먼스이다. 입술은 언어의 마지막 경유지이다. 머릿속에 담겨있는 밀어를 쏟아내는 배출구이다. 그래서 사랑은 입술을 통해 완성된다고 한다. 아리스토파네스가 희극작가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진지하지 않지만, 우리에게 동성애가 천형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사실에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기도 한다.
다시 "낭만적인 사랑이라는 신화"이야기로 돌아 온다. 우리는, 잃어버린 '반쪽이'를 만나면 하늘이 정해준 사람을 만났으며, 우리의 만남은 완벽하기 때문에 영원히 언제까지나 서로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줄 수 있을 것이고 그래서 완벽한 합일과 조화로 영원히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만족하지 못하거니와 서로 원하는 것을 채워주지 못하고 마찰이 생겨나고 사랑이라는 마력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그제야 운명의 별을 잘못 해석해서 하나뿐인 완벽한 짝을 만나지 못했으며, 끔찍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한탄하게 된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은 참되고 '진실'된 사랑도 아니었으며, 언제나 불행하게 살든지 이혼하든가 외에는 이런 상황을 수습할 만한 아무 대책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다만 자신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상대방이 서로의 개성을 지닌 별개의 개체임을 인정하며 이런 기반 위에서 성숙한 결혼 생황이 가능하고, 참사랑도 자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상대방의 마음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그 앞에 온전히 무릎 꿇는 것이다./어둠으로 나를 지워 그를 빛나게 하는 것이다./그 끝에서 희열 한 모금/눈물 한 방울 건지는 것이다."(이호준) 사랑이 뭔 지를 잘 말해주는 시가 있다. 그걸 오늘 아침 공유한다.
사랑/박형진
풀여치 한 마리 길을 가는데
내 옷에 앉아 함께 간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언제 왔는지
갑자기 그 파란 날개 숨결을 느끼면서
나는
모든 살아 있음의 제 자리를 생각했다
풀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
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 때
그도 온전한 한 마리 풀여치
하늘은 맑고
들은 햇살로 물결치는 속 바람 속
나는 나를 잊고 한없이 걸었다
풀은 점점 작아져서
새가 되고 흐르는 물이 되고
다시 저 뛰노는 아이들이 되어서
비로소 나는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오늘 알았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 #사진하나_시하나 #박형진 #스캇_팩 #낭만적인_사랑_이라는_신화 #잃어버린_반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