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되는 대로 살 것인가, 생각대로 살 것인가.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7. 26. 13:36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7월 26일)

코로나-19가 잡히기는 커녕 더 확산되며 결국 거리두기 4단계로 더욱 삶 만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보다 더 짜증나는 것이 대통령병에 걸린 후보들이, 후보검증이라는 이름 아래, 내뱉는 폭로(暴露)들이다. 그리고 '아무 말'이다. 그거가 희박하고 완전 거짓 같은 폭로들이 우리들의 마음을 삭막하게 그리고 비열하고 비참하게 만든다. 배철현 교수는 폭로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타인에 의해 근거가 없는 시기-질투로, 일반적인 매도(賣渡)이다. (…) 다른 폭로는 후보자 자신이 스스로를 가만히 돌아보고, 자신이 알게 모르게 저지른 과오와 잘못을 스스로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폭로를 시인(是認)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런 실수를 스스로 먼저 시인하는 사람이 '위대한 개인'이다. 진정한 리더이다. 그런 사람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결심을 하면 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온라인 플랫폼이 우리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기존에는 건설업, 제조업 등 명확한 정의가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건설에도 사물인터넷(IoT), 블록체인 등 4차산업 기술을 활용한다. 제조업 역시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코로나19 이후 업권간 경계가 완화되는 빅블러(경계 융화 현상) 기대가 도래할 것으로 전망 중이다. 실제 전 산업에 걸쳐 디지털 전환 및 플랫폼화가 이뤄지고 있다. 이젠 다툼보다는 협업이 필요할 때다.

오랜만에 백영옥 소설가의 칼럼 한 대목을 공유한다. 잔잔하다. 나는 조금만 걸으면 이런 들꽃들이 지천인 마을에 산다. 그리고 내 주말농장에도 들꽃들이 가득하다. 나는 이런 마을에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스마트골목 리빙랩 활동을 시작했다.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단어는 ‘암묵지’(暗默知)다. 암묵지는 “학습과 경험을 통해 개인에게 체화되어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지식”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지혜라 부르는 많은 것은 이런 암묵지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꽃이 부추와 청경채에서 피어난다고 말해준 건 태백에서 자란 내 선배인데, 먹는 것인 줄만 알았지 나물에서 꽃이 핀다는 사실이 내겐 생소하기만 했다. 흥미롭게도 선배가 꿈꾸는 건 ‘나물 정원’이었다. 단지 아름답게 피어있기만 한 게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섭취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정원 말이다. 뿌리고 수확하는 게 인생이다. 그중 어떤 건 큰 나무가 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꽃으로 피어난다. 하지만 싹을 제때 피우지 못해 허약하거나 응달 곁에 간신히 피어 있는 것들도 있다. 우리의 삶이 정원이라면 어떻게 가꿀 것인가. 응달 곁이라 속상해만 할 것인가, 햇빛 쪽으로 걸어 나오는 수고로움 때문에 오히려 건강을 얻었다 말할 것인가. 되는 대로 살 것인가, 생각대로 살 것인가."

말하는 건축가/최상대

음악가는 소리로 화가는 그림으로
무용가는 몸으로 시인은 글로서 말을 한다.
시인은 말로서 절을 짓고
사진작가는 뷰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본다.
건축가는 말한다. 건축에 대하여
도시에 대하여 공간에 대하여 조형에 대하여
예술과 문화를 사회와 국가를 말한다.
건축주를 향하여 시공자와 공무원을 향하여
법규 민원 경제 윤리를 향해 가래를 끓인다.
건축가의 말은 허공으로 흩어지고
건축가의 말은 가물가물 되돌아오지 않고
항암에 지친 건축가의 쉰 목소리는 점점 쇠락해져서
수십 년 먼지 쌓인 건축 모형으로
스케치 스케치 스케치의 그림자로만 남았다.
겨울 광화문 일민미술관 하얀 플랜카드
‘감응-풍토 풍경과의 대화’
죽음의 철학으로 봉한 말을 조감도에 가두고
2011년 햇볕 차가운 삼월 어느 날
건축가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커뮤니티의 생명력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는 말이 있다. 며칠 전에 공유했던 셸 실버스타인의 동화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에서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 여정을 떠난 동그라미는 꼭 맞는 조각을 찾아 빠르게 구를 수 있는 것보다, 조금은 느린 듯 구르며 주변을 돌아보고 사는 것이 행복임을 깨닫는다. 커뮤니티를 찾는 과정 역시 이러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무언가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자신에게 꼭 맞는 공동체와 커뮤니티를 바란다. 하지만 실상 커뮤니티는 편안함 보다는 이질감을 느끼게 하고, 자꾸만 멈춰 서게 하고, 천천히 흘러가면서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존재에 가까운 것 같다. 빠르고 효율적인 삶을 추구하는 현실 속에서 이러한 공동체나 커뮤니티가 해체돼 간 것은 어쩌면 매우 당연하다. 빠르게 굴러가는 가운데 서로 다른 존재들과 더불어 한다는 것은 더욱 요원한 일이 되었다. 양동수 사회혁신기업 더함 대표의 글에서 얻은 생각들이다.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각자 노력이 필요하다. 귀찮은 것들은 하지 않아도 되고, 공유를 통한 경제적 이득만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그 커뮤니티는 깨진다. 인간 관계에서도 어떤 것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 관계를 신뢰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커뮤니티를 커뮤니티 답게 만들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가 필요하다.
(1) 커뮤니티는 특정 지역(혹은 공간)을 함께 공유하여야 한다.
(2) 구성원들이 상호작용을 하며 서로에 대한 유대감과 소속감을 공유하여야 한다.
(3) 위 요소들이 일시적이거나 잠정적이지 않고 지속가능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커뮤니티는 공생을 도모하는 사회적 안전망이 되어야 한다. 즉 단순히 많은 사람이 모여 있거나 연결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서로의 일상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만 한다. 그런 차원에서 커뮤니티에 진짜 필요한 것이 모인 사람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는 구조, 예를 들어 기획 및 생산, 운영에 이르는 전 과정에 참여하고 함께 책임질 수 있는 구조여야 한다.

이가 빠진 동그라미처럼, 우리 모두는 원래 깨어진 존재이다. 완전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충만해지는 것은 나의 부족한 부분, 나의 필요를 채워주는 존재를 만났을 때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처럼 이가 빠진 이들과 더불어 살아갈 떼이며, 그런 순간들이 모여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것이다. 물론 바쁘고 사는 게 힘들지만, 커뮤니티가 잘 돌아가려면, 우리에게 먼저 필요한 것이 한 두 사람이라 하더라도, 서로를 인정해 주고 물질적, 심리적 위험들 로부터 나를 지켜주고 지지해 줄 수 있는 커뮤니티여야 한다.

OECD는 사회적 관계망 지수를 측정한다. 이를 위해 묻는 것이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친지나 가족, 이웃, 친구 등이 있는지'이다. 이 지수가 한국은 매년 최하위이다. 힘들 때 위로 받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관계와 관계망이 커뮤니티이다. 커뮤니티는 우리 존재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러나 우리가 직접 주체가 되어 커뮤니티를 만들고, 확장해 나가야 한다. 익숙함을 버렸을 때 비로소 다시 즐거운 여정이 시작되었다는 동화의 결말이 하나의 답이다. 익숙한 모습으로 계속 데굴데굴 굴러 가다 가는, 꽃도 나비도 모두 놓치고 만다. 우리 모두, 오늘 시처럼, "말하는 건축가"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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