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집착에서의 자유, 즉 괴로움의 원인은 전부 내가 가진 표상에 있는 것'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7. 23. 08:21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7월 23일)

오늘도 아침부터 다시 비가 내린다. 나희덕 시인의 시가 생각나서, 지난 주말에 나의 채소밭에서 찍은 사진과 시를 우선 공유한다.

비 오는 날에/나희덕

내 우산살이 너를 찌른다면, 미안하다.
비닐 우산이여
나의 우산은 팽팽하고
단단한 강철의 부리를 지니고 있어
비 오는 날에도 걱정이 없었거니
이제는 걱정이 된다.
빗속을 함께 걸어가면서 행여
댓살 몇 개가 엉성하게 받치고 선
네 약한 푸른 살을 찢게 될까 두렵구나
나의 단단함이 가시가 되고
나의 팽팽함이 너를 주눅들게 한다면
차라리 이 우산을 접어 두겠다.
몸이 젖으면 어떠랴
만물이 눅눅한 슬픔에 녹고 있는데
빗발이 드세기로
우리의 살끼리 부대낌만 하랴
비를 나누어 맞는 기쁨,
젖은 어깨에 손을 얹어
따뜻한 체온이 되어줄 수도 있는
이 비 오는 날에
내 손에 들린 우산이 무겁기만 하다

시인은 자신의 우산이 튼튼하다고 약한 비닐 우산을 찌른다면, 차라리 그냥 우산 없이 비를 맞겠다고 한다. 인간으로서 제대로 사는 일, 잘 사는 방법은 스스로 불편을 자초(自招)하는 일과 같다. 그래서 다양한 수행의 모든 과정은 사실 '불편'한 것들로 짜여 있다. 편하고 자극적인 기능에 갇히지 않고, '불편'의 상태를 자초하면서 성숙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오늘도 내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더 불편한 하루를 살고 싶다. "구부리면 온전해지고, 굽으면 곧아질 수 있고, 덜면 꽉 찬다. 헐리면 새로워지고, 적으면 얻게 되고, 많으면 미혹을 당하게 된다." (『도덕경』 제22장)  그리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지만, 자신이 앞서게 된다. 자신을 소홀히 하지만, 오히려 보존된다."(『도덕경』제7장)  노자는 앞서고 보존되기 위해서, 내세우지 않고, 소홀히 할 뿐이라고 했다. 나를 구부리고, 덜어내고 비우면서, 나를 내세우지 않는 하루를 살고 싶다.

또한 이 시 속에서, 나는 다음의 세 단어를 떠올렸다. 자유, 우정 그리고 평화(Freedom, Freindship, Peace). 자유(freedom)는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가치이다. 내가 자신의 힘으로 행복을 마음껏 추구할 수 있는 권리야 말로 인간이 지닌 최고의 가치이다. 그러나 자유가 나만 자유롭게 만들고 타인을 억압한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다. 그래서 내가 자유를 만끽하는 만큼, 나의 친구도, 심지어는 내가 모르는 이름 모를 친구를 위해서도 애써야 한다. 그것이 우정(freindship)이다. 친구의 범위를 동료 인간으로 확장하여, 낯선 자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다. 그래야 우리가 바라는 행복이 온다. 그 행복이 바로 평화(peace)이고, 평온함이다. 평온함은 네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는 마음의 상태이다. 타인이 불편하면, 나도 불편하다. 그것이 평화이다.  

이젠 어제 공유했던 에픽테토스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남다른 고통과 고생을 통해 하루를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훈련을 말했다. 그의 철학은 추상적이 개념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일상을 개선하기 위한 실천 가능한 조언들이다. 예를 들면, "너희들은 간절히 원하는 것을 반드시 얻을 것이니, 너희들이 피하고 싶은 상황에 절대 빠지 말아라!" 쉽고도 어려운 조언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 '인문 운동'이 필요한 것이다. 인문 정신이란 자신에 주어진, 자신에게 알맞은 인생의 과업을 심사숙고하여 찾아내는 여정이다. 만일 그가 인생의 과업을 발견했다면, 자신답지 않은 것, 즉 자신이 피하고 싶은 상황을 미리 감지하고 피할 것이다. 간절히 원하는 것을 알아야, 우리가 피하고 싶은 상황을 피할 수 있다. 이젠 그의 조언을 이해했다. 교육도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도록 유도하는 과정이다. 인간은 이 과정을 통해, 누구를 시기하거나 부러워하지 않는 자아상을 구축하고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지금' 즐길 수 있다.

에픽테토스는 우리가 일상의 훈련을 통해, 일상을 지배하기 위한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분야를 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매일 아침 자기 안에서 이 세가지 원칙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매일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발견하고, 그것을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집중하여 그것을 즐기는 것이다. 너무 힘들게 살 필요 없다.
▪ 욕망(慾望): 욕망은 나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고 잠재된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로 정의된다. 에틱테토스는  욕망을 '오렉시스'로 표현했다. 이 말은 '뻗을 수 있는 곳까지 팔을 최대한으로 뻗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그러니까 에픽테토스가 말하는 욕망은 팔을 움츠리지 말고 최대한으로 펴는 연습을 하라는 조언인 것이다. 세상에는 내가 팔로 획득할 수 있는 것과 획득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걸 구별하는 것이다. 내 팔로 획득할 수 없는 것을 욕망하는 것은 탐욕이라고 본다. 그러니 내가 잘 할 수 있는 한 가지에 몰입하여 최고의 성과를 내려는 마음이 바로 '오렉시스', 에픽테토스가 말하는 욕망이다. 이 오렉시스를 매일 훈련하라는 것이다.
▪ 선택(選擇): 선택은 나의 최선을 집약 시킬 대상을 선별하는 능력이다. 나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훌륭하게 마칠 수 있게 하는 내 일은 심사숙고를 통해, 내가 사적으로 한 선택의 결과이다. 또한 선택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것을 과감하게 거절할 수 있는 단호함도 포함한다.
▪ 승복(承服): 승복은 자신이 선택한 대상에 완전히 몰입하여 완수하려는 결심이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행복 철학은 독특하다. 노예 출신이었던 그는 자유의 개념에서 행복을 도출한다. 노예는 주인이 명령하는 대로 행동해야 하므로 신체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엄격한 제약을 받는다. 신체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에도 속박이 존재한다. 비록 신체적으로는 자유로울지라도 그의 마음이 무엇에 속박되어 있다면 그를 자유인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자기가 이룰 수 없는 욕망과 정념 등에 예속되어 있는 사람도 그것의 노예라는 게 에픽테토스의 주장이다. 이런 속박에서 벗어나 주인으로서 자유를 누릴 때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에픽테토스는 세상의 존재들을 나에게 달려 있는 것과 달려 있지 않은 것으로 구분한다. 전자는 생각, 판단, 욕망, 분노, 혐오처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영역에 속한 것이다. 후자는 신체, 죽음, 재산, 운, 인기, 평판, 사회적 지위처럼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것을 가리킨다. 고통이나 괴로움이 생기는 원인도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으로 여기면서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혜에 관한 작은 책', <<엥케이리디온>>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세상에는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충동, 욕망 그리고 혐오는 자신이 하기에 달렸으므로 통제할 수 있지만, 건강이나 재산, 명성, 권력은 자신에게 달린 일이 아니므로 통제할 수 없다."

계속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를 힘들게 하는 원인은 어떤 것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생각이다.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라 죽음이 두렵다는 생각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나를 화나게 하는 원인은 무례하거나 공격적인 사람들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나를 화나게 하고 있다는 나의 생각이다.” 내 것인 것만 내 것이고, 내 것 아닌 것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누구도 나의 행복을 방해하지 못한다. 나에게 달려 있는 것만 추구해야 한다. 심지어 운도 내 것이 아니므로 거기에 매달려선 안 된다. 병이나 죽음, 운처럼 나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을 추구하면 불행한 감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

범인(凡人)인 우리들이 스토아 철학자처럼 살 순 없겠지만 지혜는 빌릴 수 있을 것이다. 부부나 자녀 간의 관계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 남편이나 아내, 자녀는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을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니 자연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뜻대로 하려 들지 말고, 나에게 달려 있는 생각이나 분노 등이 내 바깥에서 날뛰지 않게 단단히 고삐를 죄어야 한다. 그것이 대자유인의 삶이며, 행복의 비결이다.

그의 철학을  요약하면, 집착에서의 자유, 즉 괴로움의 원인은 전부 내가 가진 표상에 있는 것'이다. 그는 절름발이였다. 사람들이 그를 동정하면, "질병은 육신에 장애를 줄지 언정 내 의지에는 장애가 되지 못한다. 절뚝거림은 다리에 장애가 될지언정 내 의지까지 절뚝거리게 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라'고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권한에만 노력하되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은 모두 신에게 맡기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라고 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아 불행한 것이 아니라,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고 나 자신을 불행하게 생각하는 '나의 마음', 태도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 대부분의 괴로움의 원인이 '나의 마음'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에픽테토스는 이것을 '표상'이라고 불렀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어떤 '일'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표상, 즉 내가 가진 이미지이다. 이미지는 이미지일 뿐이다. 이미지가 실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비난도 모욕도 가난도 어쩌면 죽음 마저도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그 단어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공포의 양이 그것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삶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으로 살려면, 내 마음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모든 괴로움은 다른 것이 아닌 나에게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흔들리지 않는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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