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다름’을 알아보는 일, ‘차이’를 받아들이고 기꺼이 좋아하는 일"이 아닐까?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7월 22일)
무더운 여름에 나는 '멈춤의 시간'을 갖기 위해 스캇 팩(Scott Peck)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읽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훈육의 도구로 다음과 같이 네 가지를 알려 주었다. 즐거운 일을 뒤로 미루는 것, 책임을 지는 것, 진리에 대한 헌신 그리고 균형 잡기이다. 여기서 훈육이라는 말을 동아시아적 사유에 따라 '수기(修己'), '수신(修身)'으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오늘은 네 번째 '균형 잡기'라는 훈육 도구를 이야기한다.
어제 나는 '균형 잡기'라는 것은 우리에게 융통성을 주는 훈육이라는 것을 이야기 했다. 성숙한 정신 건강에 필요한 것은 상충되는 것들 사이에서 융통성 있게 균형을 잡고 계속해서 이를 조절해 나갈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다. 이러한 균형 잡기라는 훈육에서 근본적으로 배워야 하는 것이 '포기'이다. 그러나 포기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인가를 포기하면 우울하다. 사랑한 어떤 것을 포기하는 데 따르는 감정, 적어도 내 일부분이고 나와 친근한 것을 포기하는 데 따르는 감정이 바로 우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으로 건강한 인간은 당연히 성장해야 하고, 영적 성장을 위해서는 옛 자아를 포기하거나 상실하는 것이 필수 과정이므로 우울증은 정상적이고 근본적으로 건강한 현상이다.
우리의 의식 수준은 '옛 자아'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이 낡은 것이 되었다는 것을 인식할 의사가 없거나 인식할 준비가 안 돼 있으므로, 성공적인 적응과 발전을 위해 중요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우울증이 알려 주고 있는 거다. 그게 우울증이다. 우리가 살면서 인생의 전환기마다 위기를 맞는 것은, 그것을 성공적으로 넘기 위해서는 예전에 소중히 여기던 생각과 이제껏 써온 방법, 사물을 보는 방식들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참으로 성장하지 못하며, 더 큰 성숙으로 이어지는 전환에 뒤따르는 다시 태어나는 기쁨을 체험자지 못한다.
저자는 우리가 성장하는 삶의 과정에서 우리가 포기해야만 했던 것들을 발달 순서대로 간략히 소개하였다. 가만히 나를 뒤돌아 보니 그렇다. 흥미로우니 공유해 본다. 나와 우리 아이들은 이런 것들을 아직도 포기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따져 볼 일이다.
- 어떤 외부의 요구에도 대응할 필요가 없는 유아기
-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환상
- 부모를 완전히 소유하고 싶은 욕망
- 유년 시절의 의존성
- 부모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들
- 청소년기의 무한한 가능성
- 책임 없는 '자유'
- 청년기의 민첩함
- 청년기의 성적 매력과 가능성
- 불멸에 대한 환상
- 자녀에 대한 권위
- 일시적으로 갖게 되는 여러 가지 권력
- 신체적 건강의 독립성
- 궁극적으로는 자신 그리고 생명 자체
우리 산다는 것은 자신을 포기하는 과정 속에서 적응하고 새로 시작하고 다시 적응하는 행위를 반복하는 거다. 맨 마지막에 자신을 포기하는 과정이란 급격한 변화가 아니라 완만히 이루어지는 정신적 과정이 대부분이다. 흥미로운 것은 포기를 실천하는 것이 성인기에 중요한 것을 배우고 그로 인해 영적으로 훌쩍 성장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이다. 포기라는 말이 싫으면, 저자가 말하는, "괄호로 묶기"가 좋다. 이 말은 근본적으로 개인적 안정과 자기주장의 요구와 그보다는 새로운 정보와 더 큰 이해에 대한 욕구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행위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자아를 한쪽에 제쳐 놓음으로써 새로운 자료를 집어넣을 여지를 만드는 것이다.
이 '괄호로 묶기'라는 훈육은 모든 것을 포기함으로써 보다 많이 얻는 일이다. 자기 훈육이란 자기 확장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포기의 고통이란 죽음의 고통이고, 옛 것의 죽음이란 새것의 탄생이다. 죽음의 고통이란 탄생의 고통이고, 탄생의 고통이란 죽음의 고통이다. 우리가 새롭고 더 좋은 생각과 개념, 이론, 이해 등을 발전시킨다는 것은 옛 생각과 개념, 이론, 이해 등이 죽어야 함을 의미한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인간은 살면 살수록 더 많은 탄생을 체험할 것이고 따라서 더 많은 죽음을 체험할 것이다. 더 많은 기쁨을 체험하면 더 많은 고통을 체험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생존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단계, 즉 삶의 정신적 괴로움에서 자유로워질 때까지 영적으로 의식 수준을 점진 시킬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은 예와 아니다, 둘 다였다.
(1) 그렇다는 이유는 고통을 완전히 받아들이면 더 이상 고통은 고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훈육은 정통함에 이르게 하고, 그리하여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어른이 아이를 다루듯이 고통에 숙달된다. 아이들에 최대의 문제이자 고통스러운 일이 어른에게는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남을 무한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며, 그 사랑이 자신에게 무한한 기쁨을 되돌려 주기 때문이다.
(2) 이 세상에 채워 넣어야 할 능력의 빈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엄격한 훈육과 사랑을 통해 특별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며, 그 능력 때문에 세상은 그들의 봉사를 절실히 요구한다. 그러면 그들은 사랑으로 그 부름에 응한다. 그렇지만 그들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자 할 때는 큰 고통을, 때로는 끔찍한 고통을 당한다. 한 사람을 판단하는 위대성의 척도는 고통을 감수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위대한 사람들은 또한 기쁨에 넘친다.
그리고 균형잡기라는 훈육과 그 근본이 되는 포기에 관해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포기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먼저 소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긴 것 없이는 아무 것도 포기할 수 없다. 이긴 적이 없으면서 이기기를 포기하면 처음 시작했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셈인데, 그것이 바로 실패자인 것이다. 정체성을 포기하기 전에 자신을 위해 먼저 그것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자아를 잃기 전에 자신의 자아를 발달시켜 놓아야 한다.
노자가 말하는 것도 강직함과 융통성 사이의 균형 잡기이다. 삶이라는 것은, 본래 변화한다. 그리고 그 변화에는 수용이란 것을 필요로 한다. 강철과 같이 강함과 물과 같이 융통성 있게 흐르는 것을, 우리의 삶은 동시에 요구한다. 지금 내 삶에서 길을 잃었다면, 현재 있는 위치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보고 방향을 설정한 다음, 인생 네비게이션에 새로운 목적지를 설정하고 새 주소를 입력해서 다시 출발하면 된다. 우리들의 삶에 직진만이 능사가 아니다. 조금 돌아가도 유연함과 융통성이 삶을 더 풍요롭게 할 수 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훈육이다. 훈육은 문제 해결의 고통을 피하는 대신, 문제 해결의 고통을 건설적으로 취급하는 기술 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 0이렇게 하면 생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 그 기술 체계는 다시 또 말하지만, 즐거운 일을 미루는 것, 책임을 지는 것, 진리와 현실에 헌신하는 것 그리고 균형을 잡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기술을 사용할 힘과 에너지와 의지는 사람이 제공한다는 점이다. 이 이야기는 내일로 넘긴다. 또한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명상, 요가, 심리 치료 그리고 피정 같은 과정은 기술적인 도움이 근본적인 기술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 책의 2부 제목이 사랑이다. 훈육이란 인간의 정신적 발달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 훈육에 관심을 갖게 하며 또한 훈육할 원동력을 주는 힘은 사랑이다. 사랑은 신비롭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사랑에 대해 참으로 만족할 만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참에 어제 아침에 오늘 공유하는 시를 만났다. 이 시를 소개한 신미나 시인의 말처럼, "사랑은 ‘다름’을 알아보는 일, ‘차이’를 받아들이고 기꺼이 좋아하는 일"이 아닐까? 오늘 시를 보면, ‘새’는 하늘을 날 수 있고, ‘나’는 땅 위를 달릴 수 있고, ‘방울’은 고운 소리를 낸다. 시인은 그 모습이 서로 달라서 좋다고 말한다. 더 중요한 것은 시인의 시선이 오직 인간에게만 머무르지 않는다. 수직으로 뻗은 세상의 기준을 회전시켜 평등하게 둔다. 서열의 높낮이를 재지 않으므로 방울도, 작은 새도, 사람도 같은 높이에 나란히 자리하게 되는 거다. 같은 높이에서 생명을 다정히 살피는 마음이 ‘차이’를 보지 않는 사랑이 아닐까? 그래 작년 이 때쯤 찍은 사진을 오늘 아침 다시 공유한다.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가네코 미스즈
내가 두 팔을 펼쳐도
하늘은 조금도 날 수 없지만
날 수 있는 작은 새는 나처럼
땅 위를 빨리 달리지 못해
내가 몸을 흔들어도
고운 소리는 낼 수 없지만
저 울리는 방울은 나처럼
많은 노래를 알지 못해
방울과 작은 새 그리고 나
모두 다르지만, 모두 좋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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