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뢰 둔괘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7월 21일)
어제 읽은 <수뢰 둔괘>는 기본적으로 언 땅을 뚫고 올라온 새싹 같은, 불굴의 의지로 어려움을 극복해 온 강한 내면의 의지가 있다. 그는 오랜 시간 인내했고, 기다리는 데 한계를 느꾯을 수 있다. 하지만 안내자 없이 사슴을 쫓아 숲으로 들어간 그는 결국 길을 잃고, 말을 타지 못하고 피눈물을 흘리러 떠나간다("乘馬班如, 승마반여, 泣血漣如, 음혈연여"). 성공했기 때문에 오히려 비극적 운명을 맞은 사람들 대부분이 <둔괘>의 장벽을 넘지 못하는 경우이다. 불가능한 조건에서 성공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성공했다 하더라도, 불가능한 조건은 그렇게 쉽게 바꾸지 않는다. 어렵게 성공하거나, 가능성을 여는 데까지는 할 수 있지만 그가 가진 기반이 너무 취약해서 성공하는 순간이 바로 그가 가진 에너지를 다 써버린 경우가 있다.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 내 처도 그런 경우이다.
문제가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있는 영웅 심리이다. 어려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그 거다. 하지만 영웅 심리는 아직 미성숙한 상태의 의식이다. 영웅 심리의 상태에서 문제를 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많은 영웅들이 사소한 일 때문에 몰락해 가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 신화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이다. 신화 속의 영웅들을 보면, 아주 사소한 것으로 추락한다.
사실 신화 속에서 올림포스 신들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신들은 당대를 살던 사람들의 보편적인 꿈과 진실이었다. 그래서 신들에 대한 경건함은 그 시대의 사람들에 대한 경건함, 그 시대 도덕률에 대한 경건함이다. 신화에는 이 경건함을 변함없이 지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바로 이들이 신들이 좋아하는 사람들, 즉 ‘호모 테오필로스(Homo Theophilos)’이다. 문제는 그들이 우쭐하여 상승하기도 한다. 신화에 이 상승의 정점에서 갑자기 오만해지는 사람들도 등장한다. 입에서 불을 뿜는 괴물 키마이라(Chimaera)를 퇴치하고 승승장구하던 영웅 벨레로폰(Bellerophon, 또는 벨레로폰테스 Bellrophotes)은 오만에 빠져 날개 달린 말, 천마(天馬) 패가소스(Pegasos)를 타고 올림포스까지 날아가려는 만용을 부린다. 신들의 분노를 산 그는 결국 제우스가 보낸 쇠파리에 찔려 낙마하여 절름발이에다 장님이 되어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외로이 방황하다 쓸쓸한 최후를 맞는다. 그런가 하면 공예에 탁월한 재능을 지닌 아라크네(Arachne)는 공예의 여신 아테나에게 도전하는 오만을 부리다가 여신에 의해 거미로 변하는 처벌을 받는다. 길쌈하는 재능을 좀 가졌다고 오만하게 굴다가 거미로 평생 허공에 매달려 온몸으로 길쌈하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오만에 빠진 인간은 이처럼 예외 없이 신의 가혹한 처벌을 받는다. 오만은 신화시대 영웅들이 잘 걸리는 난치병이었다. 이 난치병 환자들은 바로 신들이 싫어하는 사람들, 즉 ‘호모 테오미세토스(Homo Theomicetos)’이다. 그들은 정점으로 날아오르게 한 바로 그 날개 때문에 추락한다. 그리스인들은 그것을 '신의 처벌'이라고 믿었다. 그래 우리는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고 말한다. 그 날개가 추락의 주범인 것이다. 날개를 달고 욕망의 창공을 날아올랐던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이카루스는 절제를 잃고 태양에 가까이 간 대가로 날개를 잃고 추락하여 목숨을 잃었다.
오만에 대한 처벌은 부메랑과 같은 것이다. 재산이든, 재능이든, 권력과 명예든 간에 남들보다 더 많이 가졌다고 오만에 빠져 추락하는 것은 그것 때문에 상처받은 주변 사람들의 질투와 원한이 복수의 화살로 뭉쳐 자신에게 다시 되돌아오는 것일 수도 있다. 오만의 반대는 겸손이다. 겸손은 비굴과 구별해야 한다. 겸손은 남 앞에서 자신감 없이 굽실거리는 것이 아니다. 겸손은 다른 사람이 받을 상처를 미루어 짐작하고 오만을 떨지 않는 것이다.
<수뢰 둔괘>가 말한다. 가능한 한 섣부르게 판단하지 말고, 성숙한 의식을 가진 이들의 자문을 구하고 판단을 맡기도록 한다. <둔괘>의 괘사가 그렇게 말한다. "屯(둔)은 元亨(원형)코 利貞(이정)하니 勿用有攸往(물용유유왕)이오 利建侯(이건후)하니라." 이 뜻은 '둔은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함이 이로우니, 가는 바를 두지 말고 제후를 세움이 이롭다'이다. 하늘과 땅의 덕, 즉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사덕(四德)을 그대로 부여 받아 정기(精氣)가 쌓이니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함이 이롭다. 그러나 천지 기운이 엉겨 만물이 처음 나오는 때이므로, 스스로 갈 수는 없고 잘 이끌어 줄 수 있는 제후(諸侯)를 세워야 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이런 시간을 견뎌야 오해가 풀리고, 청혼이 받아들여져 결혼에 성공한다고 했다. <둔괘>의 상괘인 육사의 효사가 말한다. "六四(육사)는 乘馬班如(승마반여)니 求婚媾(구혼구)하야 往(왕)하면 吉(길)하야 无不利(무불리)하리라." 이 말을 번역하면, '육사는 말을 탔다가 서성거리니, 혼인을 구하여 가면, 길해서 이롭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이다.
그러나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힘을 가진 영웅을 만나는 것은 기쁨인 동시에 피눈물을 흘려야 하는 슬픔이기도 하다. 영웅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둔괘>는 상육, 마지막 구절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말도 타지 않고 먼 길을 떠나가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피눈물을 흘리더라도 강인한 의지를 가진 둔괘의 주인공은 눈물을 쉽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둔괘의 주인공은 자기 안에서 올라오는 슬픔이 샘터에 뮬 고이듯 고였다 흘러내릴 것이다. 그렇게 눈물짓지만, 그 눈물은 영웅의 성숙으로 이어지는 눈물이지 피눈물은 아닐 것이다. 그게 어쩌면 삶이 아닐까? 그래 도올 김용옥 교수는 유튜브 강의에서 이 장면을 연상하고, 다음의 문장을 읊었다. "건곤일희장(乾坤一戱場), 人生一悲劇(인생일비극)" , 이 말은 '건괘와 곤괘는 모든 연국을 위해 펼쳐진 무대일 뿐이고, 우리 인생은 그 무대 위에서 연출된 하나의 비극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T.S. 엘리어트의 시, <<황무지>>가 소환된다고 했다. 봄의 자닝함과 새싹의 간난(어려움)을 묘사하는 것이 <둔괘>와 어울린다. 시인은 그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쓰고 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차라리 겨울은 우리를 따뜻하게 했었다.
망각의 눈(설)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그근(구근)으로 가냘픈 생명을 키워으니,
(…….) “
왜 "잔인한"가? 4월이 잔인한 것은 마치 겨울잠을 자듯 자기 존재를 자각하지 않으려는 인간들을 뒤흔들어 깨우는 봄 때문이라는 것이다. 엘리엇은 봄비가 잠든 식물 뿌리를 뒤흔드는 4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며, 망각의 눈(雪)으로 덮인 겨울이 차라리 따뜻하다고 했다. 얼어붙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에게 약동과 변화를 일깨우는 봄의 정신이 숭고하면서도 잔인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자연이 매일매일 자신을 변신시키지만, 인간은 주저하고 안주하고 편함에 취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낙엽들을 헤치고 삐쳐 나오는 풀잎들은 현재에 안주하는 법이 없다. 항상 자신이 변화해야 할 모습으로 변한다. 만일 내일도 이런 모습을 간직한다면, 그 풀잎들은 죽은 것이다. 자신이 되어야만 하고 될 수 있는 모습으로 매 순간 변한다. 이런 식으로 우주 안에 있는 만물은 그 개체만의 고유한 성격이 있어, 인간을 제외한 동물과 식물은, 그 고유한 특징을 시간과 계절의 흐름에 맞추어 조화롭게 변신한다. 그 속도에 아연실색(啞然失色)할 정도이다.
한 방울의 물도 떨어뜨리지 않는 항아리는 황무지를 만든다. 참 기가 막힌 문장이다. 옛말에 등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했다. 이와 비슷한 말이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도 살지 못하듯, 사람도 너무 완벽하면 피곤하다. 좀 부족한 듯 사는 인생이 인간 답게 사는 인생이다. <둔괘>에서 얻은 생각이다. 그래 오늘 아침 시는 <곡선을 기르다>를 공유한다. 너무 직선은 자연이 아니다. 구글에 ‘곡선’이라는 단어를 넣었더니, 평소 좋아했던 박기호 신부님의 이런 글이 나온다. “자연은 곡선의 세계이고, 인공은 직선의 세계이다. 산, 나무, 계곡, 강, 바위, 초가집…… 그 선은 모두 굽어 있다. 아파트, 빌딩, 책상, 핸드폰…… 도시의 모든 것은 사각이다. 생명이 있는 것은 곡선이고, 죽은 것은 직선이다. 어쨌든 도시나 산촌이나 사람만은 곡선이다. 아직은 자연이다.”
곡선을 기르다/오새미
곡선을 기르는 나무
잎사귀나 꽃은
직선이 없고 곡선만 있다
무성한 줄기로 슬픔과 배려를 기르며
숲도 달빛도 동반자라고 가르친다
직선을 선호하는 사람
꺾일 수도 떨어질 수도 있어
엄마 젖을 먹으며 자라는 아기를
곡선으로 기른다
둥지 잃은 산새와
비바람에 쓰러지는 풀잎의 울음
둥글게 드리운 산그늘이 감싼 붉은 이슬
곡선이 아니고는 품을 수가 없다
나무를 가꾸며 꽃을 피우고
사람까지 키우는 곡선
봄 산을 오르다 무더기로 피어난
제비꽃과 철쭉에 멈춰서는 발걸음
햇살의 그림자와 바람의 손길
눈앞이 곡선의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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