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제는 '세상의 현실을 명확하게 바라볼수록 세상에 대처할 준비를 더 잘할 수 있다'는 거다.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7월 20일)
오늘 주제는 '세상의 현실을 명확하게 바라볼수록 세상에 대처할 준비를 더 잘할 수 있다'는 거다.
스캇 팩(Scott Peck)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읽고 있다. 그는 훈육의 도구로 다음과 같이 네 가지를 알려 주었다. 즐거운 일을 뒤로 미루는 것, 책임을 지는 것, 진리에 대한 헌신 그리고 균형 잡기이다. 오늘은 문제를 해결하는 고통을 다루는 데 필요한 훈육의 세 번째 도구인 진실에 충실하는 것을 이야기 할 차례이다. 이 훈육들은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영혼이 성장하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을 가는 데 필요하다.
오늘 우리가 말할 진실은 현실이다. 표면적으로 이 점은 누구에게나 명백하다. 거짓은 현실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현실을 명확하게 바라볼수록 세상에 대처할 준비를 더 잘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정신이 거짓과 오해와 환상으로 혼란스러워질수록 올바르게 처신하고 현명하게 결정할 가능성이 적어진다. 현실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도와 같다. 지도가 진실하고 정확하면 기본적으로 우리의 현재 위치를 잘 알게 될 것이고, 가고 싶은 곳이 정해질 때 그곳에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만약 지도가 잘못돼 있고 부정확하다면 대개 길을 잃을 것이다. 그러니까 현실 파악이 중요하다.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인식하기 위해 노력할수록 우리의 지도는 더욱 커지고 정확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노력을 멈추면, 그 지도는 작게 대충 그려지고 말아 세상에 대한 견해는 편협하고 오류 투성이가 될 것이다. 예컨대, 자신의 지도가 완전하다는 확신에서 노력을 멈추면, 우리는 더 이상 정보에 흥미를 갖지 않게 된다. 내가 아침마다 <인문 일기>를 쓰는 이유도 나의 삶의 지도, 나의 현실에 대한 지도를 잘 만들고 싶어서 이다. 죽는 순간까지 삶의 비밀을 탐구하고 싶어서 이다. 매일 세상과 진리에 대한 이해와 폭을 넓히고 이를 수정하고 다시 정의를 내리고 싶어서 이다.
지도를 만드는 데 중요한 것은 정확한 지도를 위해 계속해서 지도를 고쳐야 한다는 거다. 왜냐하면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보는 관점도 끊임없이 그리고 아주 빠르게 자신의 삶의 시기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정보들 속에서 살아간다. 이 새 정보들을 흡수하려면 지도를 계속해서 수정해야 한다. 이제까지 잘 다듬어 온 지도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거나, 지도의 대폭 수정을 암시하는 새 정보를 만나서 지도를 수정하는 작업은 고통스러운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흔히 새 정보를 무시해버린다. 더 나아가 그저 피하는 것 이상으로 새로운 정보를 거짓되고 위험하고 악마의 산물이라고 헐뜯으며, 지도를 바꾸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새로운 현실을 파괴하려 들기까지 한다. 이런 사람은 먼저 세상에 대한 자신의 낡은 견해를 수정하고 고치기보다는 그 견해를 끝까지 옹호하고 지키려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붓는 꼴이 된다.
현실에 대한 낡은 견해를 고집스럽게 집착하는 상태는 심각한 정신 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를 '전이(轉移)'라 부른다. 저자는 전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어린 시절의 환경에는 아주 적절하였지만 어른의 환경에 부적절하게 옮겨오는 것"이다. 어린 아이에게 부모는 이 세상 전부이다. 부모가 곧 세상이다. 어린아이에게는 다른 부모는 다르고, 흔히 더 낫다는 것을 알아볼 안목이 없다. 어린아이는 부모의 일 처리 방식이 바로 세상 일이 처리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한 아이가 '나는 우리 부모를 믿을 수 없어'라 체득한 '현실'에 대한 인식은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사람들을 믿을 수 없어'라는 식으로 전이된다.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 어린 시절에는 적절한 적응 방법이었던 것은, 그것이 아픔과 고통을 덜어주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그 적응법을 포기하는 것은 힘든 일이 된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계속해서 사람들을 믿지 않고, 모든 사람과 자신을 격리시킴으로써 스스로 사랑, 따스함, 친밀함, 다정함을 누릴 수 없도록 만든다.
전이의 문제는 심리치료사와 환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 고용주와 고용인, 친구, 그룹, 나아가서는 국가 사이에서도 생기는 문제이다. 국가의 지도자들에게도 오늘날의 그들을 만들어낸 어린 시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도 각각의 지도가 있다. 문제는 진실이나 현실이 고통스러울 때 사람들은 이를 피하게 마련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그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절제 력이 있을 때만이 지도를 수정할 수 있다는 거다. 이러한 절제 력을 갖기 위해 우리는 진실에 전적으로 충실해야 한다. 그게 세번 째 훈육 도구, 진실에 대한 헌신이다. 이 말은 진실이 우리의 편안함 보다는 이익을 위해 더 중요하고 절대적임을 믿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항상 개인적 불편함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여기야 하며, 진실을 찾는 과정에 시간을 투여해야 한다. 정신 건강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진실에 충실하는 진행형의 과정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를 질문 하며 자신에 대한 진실을 불편하다 할지라도 정면으로 대면해야 자신 앞에 놓은 현실적인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거다.
진실에 헌신하는 삶이란 지속적으로 철저하게 자신을 성찰하는 삶을 의미한다. 우리는 세상을 단지 세상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파악한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알기 위해서는 세상도 살피지만 동시에 세상을 살피는 자도 살펴야 한다. 우리를 인간 답게 만드는 것이 생각하는 능력, 자신을 성찰하는 능력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위험의 근원은 우리 안에 있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부단한 자기 성찰과 사색의 과정이다. 그래야 진실에 헌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자신을 성찰하지 않을까? 자기를 성찰한다는 것은 지극히 고통스러운 삶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어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를 피해 가려고 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소환된다. 그는 삶이란 "나 자신을 향해 쉼 없이 걷는 것이다"라 말했다. 그 소설을 읽고, 나는 '자신과 하나가 되어,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 이상이라는 믿음을 갖고,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어야 한다'고 생각했. 그리고 자신을 향해 걸으면서 숙고하고 배우는 일이 인간 답게 만드는 길이라 보았다. 무엇을 숙고하고 배우는가? "바람직한 일보다 내가 바라는 일을, 해야만 하는 일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 좋은 일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최진석)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는 거다. 생각, 사유, 숙고, 인식 등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힘이기 때문이다. 생각을 안 하면 한 진영에 빠져 세상을 반쪽만 보게 된다. 그리고 감각적이고, 심리적이고, 본능적인 만족을 극복하여야, 질적이고 지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다. 감각을 극복한, 즉 숙고한 만족을 지녀야 '진짜로' 사는 것이다. 숙고하지 않으면, 감각적 만족에 그치고, 더 나아가 패거리를 만들고 그 진영 빠지고 만다. 그러면 개방적이지 못하고 폐쇄적이 되고, 유연하지 못하고 경직된 삶을 살게 된다.
헤르만 헤세는 "그 누구도 모범 삼지 말고 자신에게만 진실 하라"고 말하였다. 나도, 그처럼, 고독한 삶을 위해 '자발적 왕따'로 살려 한다. 전혜린이 <<데미안>>에 대해 열심히 말했던 것은 자신의 삶을 위협하는 모든 정치적, 사회적, 가정적 억압에서 벗어나 오로지 나 자신이 되고, 나 자신에게만 진실 하라는 그 자유와 독립의 메시지였을 것이다. 헤세는 약 40년을 스위스에서 살았다. 그의 삶의 원리는 스스로 노력한다는 것이었다. 진실한 것과 고귀한 것을 찾아 스스로 읽고 생각하며 쓴다는 것이었다. 그건 모든 권력이나 권위나 전통으로부터의 고독이었다. 헤세의 반항은 전쟁이라는 집단적 광기에 대한 반항만이 아니라, 허영과 가식, 명예 추구와 사리 사욕, 상업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도 포함된다. 그는 모든 '무리 짓기'를 거부했다. 소설 속에서, 데미안은 절대적인 정직을 통한 자아의 규명과 자기 길의 발견, 그리고 자율적인 존재로서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을 주장한 새로운 개념의 '자발적 왕따'였다. 결국 헤세가 원했던 것은 어떤 정치 슬로건이 아니라, 홀로 바르게 당당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개성을 키워주고 싶었다. 그 개성은 그 개인에 의해 찾아지는 것이다. 누구도 그 개성을 대신할 수 없다. 그 길은 진실에 헌신하는 삶에서부터 시작된다.
휴가철인지 동네가 조용하다. 코로나 변종이 확산된다고 해서 그런 가? 나라 돌아가는 꼴이 그래서 그런 가?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만 들었다 놓았다 한다. '엉터리' 정부가 오늘 내 글을 읽어야 하는데, 부정적 여론이 나타나면 어떤 형태로든 이를 반영하거나, 수용하기 불가능하다면 그 이유를 겸손하게 설득해야 하는 거 아닌 가? 그런 의미에서 박노해 시인의 것을 오늘의 시로 공유한다. 큰 길을 잃었을 때는 작은 진실부터 살려가야 한다. 진실에 헌신하는 일부터 살려가야 한다. 오늘 아침 사진처럼 철을 모르는 것 같다. 언제 철들까?
길 잃은 날의 지혜/박노해
큰 것을 잃어버렸을 때는
작은 진실부터 살려가십시오
큰 강물이 말라갈 때는
작은 물길부터 살펴주십시오
꽃과 열매를 보려거든 먼저
흙과 뿌리를 보살펴 주십시오
오늘 비록 앞이 안 보인다고
그저 손 놓고 흘러가지 마십시오
현실을 긍정하고 세상을 배우면서도
세상을 닮지 마십시오 세상을 따르지 마십시오
작은 일은 작은 옮음 작은 차이
작은 진보를 소중히 여시십시오
작은 것 속에서 이미 큰 길로 나가는 빛이 있고
큰 것은 작은 것들을 비추는 방편일 뿐입니다.
현실 속에 생활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세상을 앞서 사는 희망이 되십시오
진실에 헌신하는 생활은 자진해서 다가오는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생활이다. 그 생활 속에서 자신을 성찰한다는 것은 다른 지도 제작자들의 비판과 도전을 받을 수 있게 자신의 지도를 펼쳐 보이는 것이다. 그래 자기 성찰의 길은 과감한 도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자아도취에 빠지거나 자기 기만에는 경우가 많다.
심리학에서 나르시시즘(Narcissism, 과도한 자기애 또는 자기 도취)는 마키아벨리즘, 사이코패스 성향과 함께 ‘악(惡)의 3요소’로 분류된다. 자아도취에 빠진 '과도한 자기애'는 주위 사람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반사회적인 특질이다. 지난 달 6월 21일에 나는 주위에서 흔히 만나는 자아도취 성향이 강한 사람을 확인할 7가지 방법을 잘 정리해 공유했었다.
① 끼 부림이 심하다.
② 자존감이 낮은 사람을 좋아한다.
③ 동정을 구걸 한다.
④ 다른 사람을 거짓말쟁이로 몰고 간다.
⑤ 칭찬과 비난을 동시에 한다.
⑥ 가차 없이 연락을 끊는다.
⑦ 자해‧자살 소동을 벌인다.
반대로 주변에는 자기 성찰에 대한 그 도전을 피하려는 사람도 있다. 도전을 피하려는 경향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성이다. 진정한 자기 훈육은 비본능적으로 살아가도록 자신을 교육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비본능적인 것이 제2의 본능이 될 때까지 스스로에게 비본능적인 것을 가르치는 거다. 아니면 심리 치료를 받아야 한다. 심리 치료를 시작하는 것은 매우 용감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심리 치료를 받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돈이 없어 서가 아니라 용기가 없어서 이다. 동의한다.
아니면 평상시 사람들 과의 상호작용도 용기를 내어 개방적 태도를 갖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저자는 "도전과 훈육을 통해서만 진정한 위안", 정신적 건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도전에 열린 태도를 취하려면 현실에 대한 지도를 '정말로' 공개해서 공개 심사를 받을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진실에 헌신하는 생활로 정직한 생활도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정직은 고통 없이 오지 않는다는 거다.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도전과 그에 따르는 고통을 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도전에 맞닥뜨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을 앞세우는 것은 당연히 겪어야 할 고통을 우회해 보려는 시도일 뿐이다. 문제를 해결해 주는 고통 없는 지름길은 없다는 알아야 한다.
우리는 남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거짓말을 한다. 양심과 현실적 인식을 통해서 지도를 변경하겠다고 스스로 도전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는 도전만큼 당연히 고통스럽다. 저자는 심리 치료를 "진실 게임" 또는 "정직 게임"이라 했다. 심리치료는 무엇보다도 거짓말을 대면하도록 환자를 돕는 일이라는 거다. 정신병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가 내가 들어온 거짓말과 자신에게 해온 그런 거짓말이 서로 엉키는 것이다. 거짓말은 진실을 숨기는 행위와 같다. 거짓말 이야기는 내일 좀 더 이어간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 #사진하나_시하나 #박노해 #아직도_가야_할_길 #스캇_팩 #훈육 #진실에_대한_헌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