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처음부터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2021년 7월 18일)
인문운동가 본 2022년 대통령 선거
길은 처음부터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 먼저 걸어가고, 그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길이 생기는 것이다. 새벽이슬이 맺혀 있는 풀밭을 앞서 걸어가 길을 여는 이슬 떨이들, 그들이 있어 세상은 희망이 있다. 길을 가되 중앙으로 가지 말고, 가장자리로 갈 것이다. 즉 변방에서 계속 길을 만들 것이다. 중앙은 퇴행하게 마련이며, 변경에 있던 세력이 다시 중심부를 장악해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고 토인비는 말했다. 신영복 교수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서, 변방인, 주변인을 강조했다. 나도 주변인이라 그런지 그 말이 좋다.
변방이 새로운 중심이 되는 것은 그곳이 변화, 창조, 생명의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중심부에 있는 사람은 자기 것을 지키기에 급급하다면, 변방에 있는 이들은 끊임없이 중심으로 가려고 변화를 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변방에 있다면 오히려 기회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신뢰를 바탕으로 기회를 잡아야 한다. 실제로 보면, 주변과 변방이 더 개혁적이다. 그리고 그들이 중심부로 들어간다. 중심부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기득권을 유지하고 지키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예컨대 변방의 소국이었던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했다. 그 이유는 신뢰(信賴)을 바탕으로 한 ''개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신뢰의 문제를 나는 '엉덩이의 힘', 다른 말로 하면 꾸준함이라고 본다.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다른 이들로 부터 신뢰를 얻는다. 그 신뢰를 통해 근본이 세워 지기 때문이다.
중국의 전국 시대는 철기의 발명을 계기로 새롭게 형성된 생산 방식의 변화가 야기한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어떻게 효율적으로 적응하느냐가 관건인 시대였다. 이 시기에 모든 나라들은 '개혁'에 몰두한다. 당시 그들은 이것을 '변법(變法)'이라고 불렀다. 진나라를 포함하여 거의 모든 나라들이 기존에 했던 일들을 이리저리 바꿔보고, 또 열심히 해보고, 관리나 백성들을 다그쳐도 보고, 제도를 수선해보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도해보고 하는 것들로 그 시대에 반응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진나라의 상앙은 개혁의 핵심을 '신뢰'의 회복에서 찾는다. 그는 '신뢰'가 없이는 어떤 개혁도 이뤄질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이런 행사를 한다. 성문 밖 남문에 나무를 박아 놓고, 그것을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는 적지 않은 상금을 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백성들은 나라에서 하는 말이라면 이미 시큰둥해져서 어떤 말도 믿지를 않아 그것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러자 상앙이 상금을 다섯 배로 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한가한 사람이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그 나무를 옮겼고, 상앙은 정말로 거금을 상으로 주었다. 이렇게 되자 백성들은 상앙이 다른 재상들과는 다르게 본인이 말한 것은 그대로 지킨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그때부터 상앙의 변법은 백성들의 지지를 받고 매우 효율적으로 시행되어, 변방의 작은 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대업을 이룰 수 있는 개혁의 길로 착실하게 나아갈 수 있었다. 이 이야기를 '종목입신(從木立信)'이라 한다. 나무를 옮겨 신뢰를 세운 것이다.
신뢰는 동양에서 흔히 인의예지(仁義禮智)와 거론되는 다섯가지 덕(德)이다. 이 '오덕(五德)'은 활을 쏘고, 창고를 살피고, 전투를 하고, 결제를 하는 등과 같은 구체적이고 기능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그런 기능들을 지배하는 상위의 힘이다.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보이는 것들의 기둥이다. 인문학은 구체적이고 기능적인 측면에서는 밥을 주지 않지만, 그것들을 지배하는 상위의 힘이다. 기능에 갇히면, '신뢰'를 좋은 말이라고 여기기는 하면서도, 실제로는 아직은 아닌 것 혹은 귀찮은 것 또는 현실적인 효율을 직접 생산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시선이 높으면, 눈이 높으면 효용이 없어 보이는 것의 효용을 안다. 이것을 장자는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고 한다. 탁월한 시선을 가진 사람은 쓸모 없음의 쓸모를 본다. 도(道), 아니 '육바라밀' 같은 탁월한 시선을 추구하면, 세계 흐름에 통달한다. 그 때, 정확한 판단과 정책을 펼 수 있다. 도나 신뢰나 독립이나 하는 것들은 보이지 않은 것들이다. 그래서 눈 낮은 사람들은 그것을 쉽게 무용(無用)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기능적인 거의 모든 것들은 다 이런 것들에 의존한다. 결국 대용(大用)을 이루게 한다.
그래 신뢰 회복이 시급하다. 우리 사회 전반에 신뢰가 무너졌다. 사회의 리더들이 자기가 한 말을 잘 지키지 않는다. 말을 지키지 않는 것은 원칙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은 바로 '기능'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원칙보다 기능이 더 커 보이는 한 개혁은 흔들린다. 기능에 의존한 채, 개혁을 이룬 예는 없다. 예컨대 기능적 정치, 즉 정치 공학을 운전하는 일은 가능해도 정치 자체의 복원은 힘들다. 정치공학으로는 이 사람을 저 사람으로 바꾸고, 저 사람을 이 사람으로 바꾸는 일은 가능하다. 또 이 진영이 저 진영을 대체하거나 저 진영으로 이 진영을 대체하는 일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것이 새 세상처럼 보이지만, 새 세상이 아니다. 정치처럼 보이지만, 아직 '진짜' 정치는 아니다. 헌 세상의 다른 얼굴일 뿐이다.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은 신뢰를 가지고 보이고 만져지는 기능을 압도할 수 있는 성숙이 필요하다. 동양의 옛 선현들은 높은 단계의 삶을 지향할 때, 다 도(道)를 추구했다. 도는 보이고 만져지는 것들을 잠시 포기하며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은 세계로 쉼 없이 상승하고 또 상승하다가 어느 극점에서 마주칠 수 있다. 그래서 도는 이름도 없고(無名), 형태도 없다(無形).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보이기도 하고 만져 지기도 하는 만사만물 가운데 도의 지배를 빗나가는 것은 없다.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단계의 최극점에 있는 도에 접촉하면, 세계의 맥락과 호흡에 통달할 수밖에 없다. <장자> 외편 "추수"의 한 부분을 읽어 본다. "세계의 맥락과 흐름에 통달하면, 이리저리 저울질을 제대로 해서 정확한 판단과 시의 적절한 정책을 펼 수 있다. 그러면 누구도 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야말로 정치의 계절이다. 많은 이들이 내년 3월에 있을 대통령 후보로 나와 여러 가지 말들을 하며, SNS를 도배하고 있다. 그 중에 최근 들어 눈에 들어 오는 한 후보가 있다. 순전히 인문운동가의 눈으로 본 것이다. 문제는 그가 너무 정치의 가장자리에 있어 안쓰럽다.
가장자리/박청환
중앙은 항상 고요했다
무거웠고 깊었다
가장자리는 항상 번잡했다
가벼웠고 얕았다
중앙은 항상 먼저 채워지고 먼저 녹았다
나머지가 가장자리의 몫
큰 물고기들은 중앙으로 몰려들었고
크고자 하는 고기들도 중앙으로 향했다
중앙이 때때로 첨벙 튀어 올라 파문을 만드는 것은
가장자리의 플랑크톤을 약탈하려는 교묘한 술책
중앙을 키운 것도 먹여 살리는 것도
가장자리다
중앙은 망각의 장소다
치어들은 커서 중앙으로 향했고
중앙에 도착해서는
가장자리를 잊었다
그러고도 뻔뻔한 중앙은 때때로 가장자리를 찾아와
입안 가득 먹이를 훔쳐 돌아갔다
그러나 가장자리는
중앙을 미워하는 법이 없다
언제나 먼저 마르고 먼저 얼지만
가장 늦게 녹고 가장 늦게 채워지지만
비 온 다음날처럼 연못이 벙벙해지면
중앙으로 떠난 치어를 생각하며
철벙철벙 뒤척일 뿐이다
갈대를 부여잡고
그리움을 숨기려
스멀스멀 안개를 피울 뿐이다
연못의
가장자리는
家長자리다
그가 2년 넘게 준비한 책, <대한민국 금기 깨기>이 내일 출간된다고 했다. 우리 사회는 진영으로 나뉘어,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뉘어 싸우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것처럼, "증오와 갈등의 언어가 난무하지만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실종"되었다. 정치 지도자들은 장미빛 이야기, 뭘 더 준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정작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래 그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으로 이 책을 썼다 한다.
(1) 우리 사회의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2) 문제를 풀이 해법, 그 대안은 무엇인가?
(3) 어떻게 하면 실천에 옮길 수 있는가?
이 세 질문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아주 중요한 절차이다. 문제 파악 → 해결책 모색 → 실천. 이 책이 구체적으로 제시한 대안들이 무엇인지 보고 싶다. 그 대안들이 건설적으로 미래를 대비하는 토론으로 우리 사회의 새로운 담론들을 만들어냈으면 한다. 왜냐하면, 그 담론들로 아래로부터의 반란이 필요한 시기라 보기 때문이다. 몇몇의 후보들을 보면, 국가를 경영하고자 하는 사람은 대통령이나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 얻는 반사적 이익이 아니라 국가 미래에 대한 뚜렷한 철학과 비전, 이를 실천할 실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최근에 한 후보의 인터뷰를 보고, 아 이게 우리 시대의 담론들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 후보의 다음 말들에 곧바로 동의했다. 우리 사회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는 전쟁터이다." "청년들에겐 현금이 아닌 기회가 필요하다." "정권 교체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 세력 교체이다."
다음은 그가 주장하는 한국 사회 문제와 대안의 방향이다. 그를 지지하거나, 지지 안 하는 것을 떠나, 담론으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내용들이라 나는 생각한다.
(1) 우리는 정치 개혁이 필요하다. 단임제 대통령제 승자독식 구조에서 정권을 잡으면 성과를 내야 하고 조급 해진다. 정치 제도, 선거제도나 정당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2) 우리 사회는 양극화, 저성장, 청년실업 등의 문제가 있다. 확대재정정책이 필요하다.
(3) 우리 사회는 3 과잉으로, 그 뿌리는 승자독식 구조이다. 기여나 노력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보상을 받는 사람들이 나온다. 거꾸로 말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거다. 예를 들면, 우월적 지위의 경제 주체, 불공정 거래, 갑을 관계 등이 그렇다. 교육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사회이다. 국민과 시장 참여자들은 사회 보상 체계를 신뢰하지 않는다.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는 게임의 룰이 상대적 기준이다. 취직이나 입학에서도 내가 상대보다 1점만 더 얻으면 된다. 이런 식으로 해서 우리 사회는 무한 경쟁 사회이다. 그래 사회가 전쟁터가 되었다. 정치권이 전형적인 승자독식 구조이다.
• 국가 과잉: 국가주의, 관이 개입하는 경제개발 성공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함에서 권한이 집중되고 재정을 더 써야 하고 시장에 무리하게 간섭을 하게 된다.
• 격차 과잉: 소득 불균형, 교육 격차, 자산 격차 등 각종 양극화 문제이다.
• 불신 과잉: 위의 과잉들로 빚어진 불공정과 갈등을 말한다.
(4) 사회문제를 해결할 때 꼭 필요한 일이 사회적 대 타협이다. 교육도 그렇다. 교육계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입시제도 바꾼다고 교육개혁이 되나? 교육은 사회의 거울인데 사회가 바꾸지 않으면 교육이 바꾸지 않는다. 그리도 정치적 대 타협도 필요하다. 정치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기득권을 내려놓고 대결의 정치를 타협의 정치로 만들어야 한다. 노사에 앞서 국가 지도자들이 먼저 권한을 조금씩 내려놓고 다양한 이익 집단의 동참을 호소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해서 국가적 대 타협이 필요하다. 너무 이상적인가? 정치 세력의 교체이자 의사결정 세력의 교체가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국민발의제 등으로 아래로부터의 반란이 필요하다.
(5) 우리 사회의 금기를 깨야 한다. 심리적 장벽, 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나 생각조차 못한 ‘금기’ 중에 승자 독식 구조나 양당 구조가 있다. 투쟁의 정치, 양당구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경험들이 많다.
(6) 국가의 미래를 위해 철 지난 이념논쟁, 진영싸움을 뛰어넘어야 한다. 생각이 달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양보하며 상생하는 모습들이 필요하다. 우리 국민들에게는 사회 지도층이 커버하지 못하는 엄청난 공감과 에너지가 있다. 보수와 진보라는 구시대 유물로 재단할 수 없는 영역이다.
(7) 정부의 역할은 이중적이다. 아무리 작은 정부도 양극화와 같은 사회구조적 문제를 외면할 수 없고 아무리 큰 정부라도 글로벌 경제체제에서 시장에 마음대로 개입할 수 없다. 시장에서 혁신과 창의가 나오려면 정부의 역할을 줄여야 하고, 양극화가 세습되는 고리를 깨려면 정부의 역할을 늘려야 한다. 능력주의? 일리가 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능력주의의 외피를 쓴 세습주의가 만연하다. 세습경제라는 금기 역시 깨야 한다. 이게 시장과 정부의 새로운 관계다. 더구나 코로나 위기까지 왔다. 희생과 상생의 에너지를 모아야 한다.
(8)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시장 친화적인 토지공개념 도입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부동산 해법이 될 수 있다. 토지 공개념은 토지의 소유 및 처분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적절히 제한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이 문제는 부동산 불로소득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결국 토지에서 나오는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시장 친화적인 토지 공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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