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뢰(䕪雷) 수(隨) 괘 (1)

3387.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7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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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일전 주말 부여의 만수산자연휴양림 여행에서 도마 만들기 체험이 있었다. 거기서 알게 된 <도마>라는 시가 인상적이었다. 사진은 와인복합문화공간 <뱅샾62>에서 쓰이는 치즈용 도마이다. 우선 여영미 시인의 시를 공유한다.
도마/여영미
방패보단 도마가 되기로 했어
모두가 피하는 칼
늠름히 받아내며
울퉁불퉁한 모든 삶의 재료
내 안에서 알맞게 반듯해 지고
다져지는데
까짓 칼자국이야
한두 개일 때 흉터,
삶이 되고 보면
꽃보다 향기로운 무늬가 된다.
도마는 누워서 그야말로 칼의 휘둘림을 고스란히 받아낸다. 도마가 자신을 상처내는 칼을 늠름히 받아들이고 허용했기 때문에, 최고의 요리가 탄생하는 거다. 받아들인다고 하니. 바다가 소환된다. 바다는 받아들이는 존재다. 해와 별과 달의 빛을 받아들인다. 바람이 불면 바람을, 비가 내리면 비를 받아들인다. 바다는 고기와 해조와 조개 등 바다가 집인 모든 생명체의 청도 다 받아주는 어머니 같은 존재다. 가슴을 활짝 열어 수많은 시냇물과 강, 생활 하수와 공장 폐수를 다 받는다. 이 세상의 밝음도 어둠도 다 받는 존재, 그래서 그의 이름이 ‘받아에서 나온 '바다'’라고 한다나. 어찌 보면 말장난 같지만 바다의 속성을 생각해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시의 마지막 부분, "까짓 칼자국이야/한두 개일 때 흉터,/삶이 되고 보면/꽃보다 향기로운 무늬가 된다."는 구절이 좋다. 한두 개 난 칼자국은 흉터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칼자국은 무늬가 될 수 있다. 네이이라 와히드(얼굴 없는 시인으로 '인스타그램'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시인)의 <흉터>라는 시가 기억된다. "흉터가 되라./어떤 것을 살아 낸 것을/부끄러워하지 말라." 도마는 자신의 몸에 흉터를 내면서 다른 사람을 먹여 살리는 음식을 만든다. 자신의 운명을 잘 따른다.

2
오늘부터는 제17괘인 <택뢰(䕪雷) 수(隨)> 괘를 읽기 시작한다. 외괘가 <태택(兌澤, ☱)> 못괘이고, 내괘가 <진뢰(震雷 ☳> 우레 괘로 이루어진 괘의 명칭을 ‘수(隨)’라고 한다. ‘수(隨)’는 따르는 것이다. 연못 속에서 우레가 움직인다. 그래서 움직이는 우레에 따라서 연못의 물이 출렁거리면서 기쁘게 따른다. 위에는 말하고 울고 웃고 즐거운 <태괘>이고, 아래는 움직인 <우레괘>인데 기뻐하며 움직이고 움직이며 기뻐하는 것은 바로 서로가 서로를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한 마음으로 '구오' 왕을 중심으로 따른다. 연못 속에 진동이 일어나면 물결이 일면서 사방에 퍼지듯이, 모두가 지도자의 뜻에 따른다. 내괘가 <진 ☳>, 우뢰이니 온 종일 일을 하다가, 외괘가 <태 ☱> 연못이니 저녁에 잔치를 벌이며 위로하는 상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따라야 할 때가 있다. 순리대로 바르게 따라야 한다. 순리를 따르기 위해서는 순리에 대한 앎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혜의 영역인 이 앎이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삶이 수많은 시행착오로 점철되고, 시행착오 자체가 인생의 본질로 오해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순리 대로 사는 삶을 실현하는데 요구되는 것은 자기의 시력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이다. 앞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판단되면 뒤에서 따라야 한다. 더 유능한 사람, 더 지혜로운 사람을 따르며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실력은 자라고 마음은 깊어진다. 무능하고 무시한 사람이 타인들 위에서 군림하려는 욕망을 품을 때 개인과 공동체 모두의 불행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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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괘전>>은 <뇌지예 >괘 다음에 <택뢰 수> 괘를 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豫必有隨(예필유수)라 故(고)로 受之以隨(수지이수)하고"라 했다. '즐거움에는 반드시 따름이 있다. 그러므로 수괘로 받는다'는 거다. 모두가 즐겁게 화합을 이루면 한 마음으로 따르게 된다. 그래서 즐겁다는 <예괘(豫卦)> 다음에 따른다는 <수괘(隨卦)>를 두었다. 예컨대, 즐거움을 주는 유튜브 채널에는 구독자들이 모이는 법이다. 그러니까 즐거우면(<뇌지예> 괘), 반드시 사람들의 따름이 있기에 <택뢰 수> 괘로 받았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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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사>는 "隨(수)는 元亨(원형)하니 利貞(이정)이라 无咎(무구)리라" 이다. 번역하면, '수(隨)는 크게 형통하니 바름이 이롭다. 허물이 없을 것이다'가 된다. TMI: 隨:따를 수. 매우 형통하니 바르게 하면 이로울 것이다. 허물이 없을 것이다. 위에서 <태택, ☱>으로 기뻐하고, 아래에서는 <진뢰, ☳>로 움직이니 크게 형통하다. 그렇지만 움직이며 기뻐하는 상이기에 항상 바르게 함이 이롭다. 모두가 기뻐하면서 따르니 허물이 없다. 땅 속에서 드러나 하늘에서 움직여야 하는 우레가 연못 속에 갇혀 있으니 연못을 따를 수밖에 없다. 여기서 '따른다'는 "수(隨)"의 상이 나오는 거다. 우레의 움직임에 연못이 기쁘게 반응하고 있는 모습이다.
후천팔괘 방위로 보면 내괘가 동방 <진 ☳>이니 봄에 양(陽)의 생기로 만물이 화생하여 원형(元亨)의 덕을 이루고, 외괘가 서방 <태 ☱>이니 가을에 음(陰)의 기운으로 이정(利貞)의 덕을 이룬다. 그리고 <진괘>는 용이니 용이 연못 속에 잠겨 있는 상이다. 제1괘 <중천 건> 괘의 "잠룡(潛龍)"과 같은 상황이다. 자기가 원하는 무대에 단숨에 오르기는 어렵다. 누구에게나 밑에서 뛰어다니고 구르며 열심히 실력을 키워야 할 때가 있기 마련이다. 연못의 법칙에 잘 순응하며 훗날 비룡(飛龍)이 되어 하늘로 날아오를 날을 기다려야 한다.
'따른다'는 것은 곧 사람을 따르고 때에 순응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아울러 <태괘>는 '소녀(少女)', <진괘>는 '장남'의 상이다. 용이 연못이라는 세상의 규칙을 따르고, 장남이 소녀를 따르듯, 향후 크게 잘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사람이 현실의 상황을 담담히 인정하고 묵묵히 자기의 때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택뢰수>의 괘사 "元亨利貞(원형이정) 无咎(무구)"가 들어 있는 괘는 다른 의미로 쓰인 제1괘 <중천건> 괘와 제2괘인 <중지 곤> 괘를 제외하고, 제3괘 <수롸 둔> 괘, 제17괘인 <택뢰 수> 괘, 제19괘인 <지택 림> 괘, 제25괘인 <천뢰 무망> 괘, 제49괘인 <택하 혁> 괘가 있다. 모두 '순리대로 바르게 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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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전 하>> 제2장은 인간이 다음과 같이 <<주역>> 13 개 괘에서 각종 도구들을 본 따 생활과 사회체제에 적용한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1) 제30괘 <중화 리(重火 離)> 괘: 수렵사회
2) 제42괘 <풍뢰 익(風雷 益)>: 농경사회
3) 제21괘 <화뢰 서합(噬嗑)>: 교역사회
4) 제1괘와 제2괘 <중천 건(重天 乾)>과 <重地 坤(중지 곤)>: 의상사회
5) 제59괘 <풍수 환(風水 渙)>: 승선사회
6) 제17괘 <택뢰 수(澤雷 隨)>: 승마사회
7) 제16괘 <뇌지 예(雷地 豫)>: 방범사회
8) 제62괘 <뇌산 소과(雷山 小過)>: 도정사회
9) 제38괘 <화택 규(火澤 睽)>: 무기사회
10) 제34 괘 <뇌천 대장(雷天 大壯): 가옥사회
11) 제28괘 <택풍 데과(澤風 大過)>: 매장사회
12) 제43괘 <택천 쾨(澤天 夬)>: 문서사회
이런 식이다. <<계사전 하>> 제2장에 "重門擊柝, 以待暴客, 蓋取諸豫(중문격탁 이대폭객 개취제예) "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문을 겹으로 세우고 목탁(또는 딱따기)을 쳐서 사나운 도적을 막으니 아마도 <예괘>에서 취했을 것이다'라는 말이다. "폭객"이라는 말은 강도를 손님처럼 생각한 것이다. 옛 어른 들은 '오지 말아야 할 것이 있을 때, '손님'이 왔다고 생각했다. 다시 왔다가 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服牛乘馬 引重致遠 以利天下, 蓋取諸隨(북우승마. 인중지원, 이리천하, 개취제수)"라 했다. 이는 '소를 길들이고 말을 타서 무거운 물건을 운반하여 먼 곳에 이르게 함으로써 천하를 편리하게 하니 아마도 <택뢰 수괘>에서 취했을 것이다'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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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전>>의 단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彖曰(단왈) 隨(수)는 剛來而下柔(강래이하유)하고 動而說(동이열)이 隨(수)니 大亨(대형)코 貞(정)하야 无咎(무구)하야 而天下(이천하) 隨時(수시)하나니 隨之時義(수지시의) 大矣哉(대의재)라" 이다. 번역하면, '단전에 말하였다. 수(隨)는 강(剛)이 와서 유(柔)에 아래하고, 움직이고 기뻐함이 수(隨)니,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해서 허물이 없어서 천하가 때를 따르니, 수(隨)의 때와 뜻이 크도다'가 된다. TMI: 說:기쁠 열. 다시 말하면, '강(剛)이 와서 유(柔)의 아래에 위치하니 움직임이 생기고 그것에 기뻐하는 것이 "수(隨)"로 크게 형통하다. 바르게 하면 허물이 없어서 천하가 때를 따르니, "수(隨)"의 때에 순응함이 크도다'라는 거다.
<수괘(隨卦)>는 음효(陰爻)가 셋, 양효(陽爻)가 셋으로 삼음삼양(三陰三陽)괘이다. 삼음삼양 괘의 체(體)는 <지천 태(地天 泰)> 괘와 <천지 비(天地 否)> 괘에 있다. <수괘>는 천지기운이 막혀 있는 <천지 비> 괘의 상구 양(강)과 초육 음이 자리를 바꾸어 <택뢰 수> 괘가 된 것이다. 즉 <천지 비> 괘의 상구 양(강)이 내괘로 와서 '육이'와 '육삼'의 음유(陰柔) 아래에 있게 되니, 괘체가 내괘 <진 ☳> 우레로 움직이면서 외괘 <태 ☱>로 기뻐하는 상이 된다. 그래서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해서 허물이 없고, 천하가 그 때를 따르게 되니, 따르는 때와 뜻이 크다. "강래이하유(剛來而下柔)"가 이 이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표현이다. "동이열(動而說)"은 내괘 <진괘>가 움직이니(動), 외괘 <태괘>가 기뻐한다(說)는 뜻이다.

<천지 비> 괘와 같이 천지기운이 통하지 못하여 위아래가 막혀 있는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맨 위에 처하고 있는 상구가 맨 아래로 내려가 아래 백성을 고무(鼓舞)시키고 진작(振作)시키는 것이다. 마치 기업의 회장이 일반 사원보다 아래에 처하여 사원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면, 사원들이 기뻐하면서 사장을 따라 회사를 위해 일을 잘 수행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대상전>부터는 내일로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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