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인문학은 우리들에게 '건너가기'를 부추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7. 17. 09:12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7월 16일)

오늘 아침 공유하는 사진처럼, 옥수수는 암술과 수술이 서로 다른 꽃 봉오리에 있어, 우리는 옥수수의 암꽃과 수꽃을 잘 구별할 수 있다. 옥수수는 소위 '자웅이가(雌雄異家)'이다. 한 나무에서 두 개의 집안이 '딴 집' 살림을 한다. 수 이삭은 줄기의 끝에 달려 있다. 우리가 여름철에 삶아 먹는 암 이삭은 줄기의 중간 마디에 껍질에 쌓여 두세개가 달려 있다. 암술대의 수염은 껍질 밖으로 나가 꽃가루를 받는다. 우리는 그걸 옥수수 수염이라고 해서 따로 말려 옥수수 수염차를 만들어 마신다.

옥수수는 봄에 옥수수 씨앗을 심거나 모종을 사다 심는다. 여름철이 되면 내 키보다 더 큰다. "옥수수의 꼭대기에 있는 수술을 외부에 보이기 위한 왕관이고, 껍질로 켜켜이 싼 암술은 자신의 가슴이 간직한 보불이다."(배철현) 옥수수를 잘 들여 다 보자. 만약 옥수수가 맨 꼭대기 수술 위에서 열매를 맺기 원한다면, 옥수수는 다 자라나지 못하고 그 힘에 못 이겨 땅으로 쓰러질 것이다. 옥수수의 심장에서 만들어지는 '보물'은 아직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껍질 밖으로 소위 수염만 엉성하게 분산한다. 조선 양반의 수염처럼. 흥미롭다.

그리고 옥수수를 잘 관찰하면, 옥수수의 입들은 자신의 버팀목이 되는 줄기에서 시작하여 시계침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타고 올라간다. 이런 잎의 방향을 우리는 '잎 차례' 또는 한문으로 '엽서(葉序)'라 한다. 식물은 저마다 '엽서'가 있다. 자신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수백만 년 동안 진화하여 유전적으로 결정된 삶의 방식이다. 잎이 상승하려면 밖으로 퍼져 나가는 원심력과 안으로 당기면서 상승하려는 구심력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햇빛과 비가 하늘에서 내려 식물의 잎에 떨어진다. 위에 있는 잎들은 아래에서 차고 올라오는 잎들도 충분히 햇빛과 비를 맞을 수 있도록 배려한다. '엽서'를 잘 보면, 새로운 잎이 이전 잎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돌아서는 신비를 보인다. 나무들도 마찬가지이다. 햇빛을 맞는 위의 나뭇잎이 아랫 잎들을 배려한다. 이런 엽서의 문법은 점진(漸進)이다. 우리가 점진(漸進)하려면, 즉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려면, 세 가지 원칙이 만들어 낸 역동적인 힘이 필요하다.

하나는 집중(集中)이다. 점진의 기반은 바로 지금이다. 지금이 기반이 되어 나감과 들어감을 강렬하고 단호하게 단속한다. 집중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깊은 성찰이며, 그 상황으로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움츠림이다. 집중은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집중이나 몰입에 안주하고 아무런 행위를 보여주지 않는 생물은 이미 죽은 것이다. 집중을 수련하는 사람은 실생활에서 자신의 언행을 통해 그 실력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나만의 조용한 시간을 만들어, 글을 써가며 내가 이해한 내용을 다시 잘 써 보는 것이다. 그냥 읽기만 했을 때와, 글로 다시 잘 써볼 때와 어떤 글을 읽을 때 그 이해도가 크게 다르다. 그러면서 내 생각도 나온다.

1990년대 후반 최초의 전자상거래 와인 사이트의 하나인 와인 라이브러리(Wine Libray)를 설립하면서 성공한 후, 모든 기업가가 팔로우 해야 할 인물로 평가 받고 있는 성공적인 투자자인 게리 베이너척(Gary Vaynerchuck)는 앞으로 다가올 8년에 신경쓰기보다는 바로 코앞의 8일에 더 집중하는 삶을 살라고 조언한다. 실제 주변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몇 년 뒤의 일은 태산같이 걱정하면서 당장의 시간을 그냥 흘려 보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미래를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도 일분 일초 시간을 쥐어짜내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당연히 미래도 잘 풀릴 것이다." 내일을 걱정하며, 지금 이 순간의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말이다. 나는 그래 내 만트라로 나는 "내일은 없다. 오늘이 좋습니다"로 정했다. 막연하게 내일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최선을 다해 보내는 일에 집중하겠다는 말이다.

점진의 원칙 두 번째는 의지(意志)이다. 의지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자생적인 능력이다. 옥수수로 예를 든다. 옥수수는, 수백만 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열매 옥수수를 시간이 되면 맺을 것이다. 생명의 약동과 의지는, 동식물을 온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에너지이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의지,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간절히 원했던 일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옥수수 잎의 의지는 중심으로부터 뻗어 나가려는 원심력이다. 그 힘이 없다면, 잎들은 중력에 못 이겨 쳐져 죽고 말 것이다. 우리 인간도 타성과 관습에 묶이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과 같다.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F. Baumeister)는 자신의 책 <<의지력의 재발견>>에서, 의지력은 근육처럼 훈련함으로써 강화할 수 있지만, 자주 쓰면 사라진다. 그래서 의지력을 아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습관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의지력 없음을 성격적 결함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의지력은 쓰면 쓸수록 피로를 느끼는 근육과 같다. 배고픔을 참는 데 많은 의지력을 쓰면 밤에 폭식하게 되는 건 그런 이유이다. 판단은 엄청난 포도당이 소모되는 힘든 정신적 작업이다. 판단하고 선택하는 행위가 지속되면 개인의 철학과 상관 없이 에너지가 고갈된다. 따라서 의지력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소모된다. 한정된 자원인 것이다. 많은 결정을 내리다가 피곤해진 두뇌는 결국 에너지를 덜 사용하는 익숙한 결정을 내리는데, 그 결정은 최악일 때가 많다.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매일 면도하고, 주변을 정리하는 것은 의지적 습관을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

점진의 세 번째 원칙은 상승(上昇)이다. 낮은 데서 위로 올라가는 상승은 지구의 원칙인 중력에 대한 거역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중력을 거슬러 자신을 찾으려는 시도이다. 죽은 식물을 바로 중력에 복종하고 고개를 내린다. 고개를 숙이지 않고, 상승에 대한 시도로  맺을 열매가 옥수수이다. 알알이 익은 옥수수는 생명에 대한 하나의 노래이다. 이젠 옥수를 먹을 때마다 그 노래를 들어 보리라. 식물이든 인간이든 그러니까 각자의 하루는 점진하기 위해 수련하는 시간일 뿐이다. 나의 하루도 마찬가지이다.

객관적인 진리 속에서 정답을 찾는 자연과학적 사유와는 달리, 인문학적 사유는 주관성이 개입되어 정답이 없다. 대신 각자의 견해를 다 존중해 준다. 그러나 그 견해가 풍요로운지, 나름대로 정교한 논리와 증거를 가지고 있는지 따진다. 풍요롭고, 다양하며 정교한 논리가 있어야 내 삶을 주체적으로 독립적으로 주인공으로 살 수 있다. 그래 인문학적 사유가 중요하다. 그게 기본이다.

그런 인문학을 딱 잡아 말하면, 인문학은 우리들에게 '건너가기'를 부추긴다. 늘 행복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자주 변해야 한다. 내 방식으로 말하면, '건너가기'를 위해 늘 도전해야 한다. 지적인 상승과 확장은 아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모르는 곳으로 넘어가고 건너가려고 발버둥 치는 일에서 이루어진다.

동네에서 공동구매 하는 옥수수를 한 자루 샀다. 막 수확한 옥수수가 30개나 들어 있었다. 딸이 잘 삶아 세 개나 연속해서 먹었다. 생명은 다른 생명으로 산다. 내가 지금껏 살아오느라 얼마나 많은 생명이 죽어야 했던가. 우리는 그걸 먹이사슬이라 부른다. 인간계 안에도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이 있다. 특히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의 몫을 뺏는 게 불가피하다. 어쩌면 자연계보다 더 냉혹하다. 현대의 원죄는 '먹은 죄'가 아닐 수 없다. 누구도 예외가 없다. 다른 생명을 취해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모든 개체 생명의 슬픈 운명이다. 그러나 먹이사슬은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질서다. 오늘 사진은 주말 농장 가는 길에 흐린 하늘 속에서도 자신의 점진을 계속하고 있는 옥수수를 찍은 거다.

옥수수처럼 자랐으면 좋겠다/박노해

봄비를 맞으며 옥수수를 심었다
알을 품은 비둘기랑 꿩들이 반쯤은 파먹고
그래도 옥수수 여린 싹은 보란 듯이 돋았다

6월의 태양과 비를 먹은 옥수수가
돌아서면 자라더니 7월이 되자 어머나,
내 키보다 훌쩍 커지며 알이 굵어진다.

때를 만난 옥수수처럼 무서운 건 없어라

옥수수처럼 자랐으면 좋겠다
네 맑은 눈빛도 좋은 생각도
애타고 땀 흘리고 몸부림쳐온 일들도

옥수수처럼 자랐으면 좋겠다
시련과 응축의 날들을 걸어온
작고 높고 깊고 단단한 꿈들도

때를 만난 사람보다 강력한 것은 없으니

옥수수처럼 자랐으면 좋겠다
네 눈물도 희망도 간절한 사랑도
옥수수처럼 자랐으면 좋겠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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