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은 사람들의 내면에서 뿜어 나오는 어떤 것이다.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2021년 7월 16일)
오늘 아침은 '자만(自慢)' 이야기를 한다. 자만은 우리들의 모든 불행의 뿌리이다. 그 반대는 겸손이다. 자만은 자기 자신을 장님으로 만들어 비참한 운명으로 추락시키는 마음의 습관이다. 자만하는 자는 위험에 빠지는 운명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위치를 분명하게 인식한다.
자만의 사전적 정의는 "자신이나 자신과 관련 있는 것을 스스로 자랑하며[우쭐거리며] 뽐냄"이다. 또는 "거만(倨慢)하게 스스로 자랑함"이다. 여기서 '거만'은 "잘난 체하며 남을 업신여기는 건방진 태도"이다. 다시 건방을 찾아 보았다. 건방은 한문이 없다. 뜻은 자기 분수에 맞지 않게 잘난 체하거나 다른 사람을 낮추어 보듯이 하는 행동이나 태도'이다. '시건방지다'란 말도 한다. '시큰둥하게 건방지다'란 말이다. 그리고 오만(傲慢)은 "태도나 행동이 건방지거나 거만함, 또는 그 태도나 행동'으로 정의된다. 비슷한 말로 교만(驕慢)도 있다. 이 말도 "잘난 체하며 뽐내고 겸손함이 없이 건방짐"이다. 그 차이에 대해서는 어제 <인문 일기>에서 자세히 살펴 보았다.
요즈음 우리 사회의 정치판에도 반사체(反射體, 반사하는 물체)냐 발광체(發光體, 제 몸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물체)냐 하는 말이 돈다. 한 후보는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가 아닌 반사체가 아니냐는 것이다. 천문학에서 지구를 '행성'이라 부르고, 달을 '위성'이라고 부른다. 이 두 종류를 '반사체'라 하고,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은 '항성'이라고 부른다. 이를 '발광체'라 부른다. 선거철에 후보들 중에는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 후보인지, 아니면 다른 세력이 자신을 비추니 빛이 나는 것처럼 보이는 반사체로 나뉜다. 지금까지 사례를 보면, 반사체가 최종적으로 선택되는 경우는 드물다. 발광체가 정책이나 비전 등을 제시하면서 집권 플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자신이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자칭 '영웅'이 파에톤(Phaethon)이 있다. 우리는 '파에톤의 추락'이라는 이야기로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태양신 헬리오스(=아폴론)와 인간 클리메네 사이에서 태어난 빈신반인(半神半人)이다. 그는 경계에 있는 존재이다.
제우스의 아들이자 오른 팔인 아폴론의 별명은 포이보스(Phoibos), 즉 ‘빛나는 자’라는 뜻으로 태양의 밝은 빛을 상징한다. 발광체이다. 그가 티탄 족 시대의 태양신 헬리오스(Helios)의 지위를 이어받은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태양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동쪽 하늘에서부터 서쪽 하늘까지 운행하는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그들은 이렇게 스토리텔링 했다. 동틀 무렵 아폴론은 입에서 불을 뿜는 네 마리 말이 끄는 황금빛 태양 마차를 몰고 동쪽 지방에서 출발하여 하루 종일 하늘 높이 달리다가, 저녁 무렵 도착지인 서쪽 지방으로 내려간다. 밤 동안 태양마차는 대지의 둘레를 휘감고 있는 대양(大洋) 오케아노스를 통해 출발 지점인 동쪽 지방으로 다시 이동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아폴론의 태양마차를 보며, 자신도 언젠가 한 번쯤 이 황금 마차를 몰고 싶어 했을 것이다. 신화 속에는 이 욕망 때문에 파멸한 인물이 하나 있다. 그가 위에서 말한 아폴론의 아들 파에톤이다. 우리는 ‘파에톤의 추락’이라는 스토리텔링으로 잘 알고 있다.
파에톤은 자신이 진정한 태양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싶은 마음에 아버지를 졸라 태양 마차를 몰다가 파멸하는 슬픈 운명의 인물이다. 입에서 불을 뿜는 말이 모는 태양 마차를 타고 하늘 높이 달리던 ‘초보 운전자’ 파에톤은 운전 미숙으로 궤도를 벗어나, 대지의 산천초목을 불태웠다. 깜작 놀란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가 제우스에게 급히 탄원했다. 파에톤은 결국 제우스의 벼락을 맞고 마차에서 떨어져 죽음을 맞는다.
태양 마차를 넘겨주면서, 아폴론은 파에톤에게 이렇게 경고했었다. “고도를 너무 높이지도, 너무 낮추지도 말고, 중간 길이 가장 안전하고 좋은 길이다.” 그러나 파에톤의 비극은 태양의 궤도를 벗어남으로써 발생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중용과 절제와 균형 감각이라는 그리스적 정신, 즉 아폴론적 덕목이 강조되고 있는 스토리텔링이다. 참고로 우리는 이 파에톤이 대지에 가까이 오는 바람에 아프리카가 생기고, 그 곳 주민들의 피부가 검게 된 것이고, 정신을 차리고 핸들을 너무 꺾는 바람에 유럽 쪽은 대지와 너무 멀어져 그 곳 주민들은 백인이 되었고, 정신 차리고 제 궤도를 돈 곳이 아시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시아 인들을 적당히 잘 구워 진 황색 피부를 갖게 된 것이다. 문제는 유럽의 백인 피부는 어릴 때는 매우 예쁘나, 피부가 덜 구워 져 성인이 되면 일찍 피부가 늙고, 좋지 못하다. 흑인 피부는 검어서, 보기에는 좋지 못하지만, 피부는 아주 좋다.
파에톤은 아폴론의 임무가 얼마나 정교하고 힘든 일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하루도 빠짐 없이 전차에 태양을 싣고 정해진 곳으로 운행하는 그 수고로움으로 하늘의 별들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땅과 바다의 동식물들이 생존할 수 있었다. 아폴론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한 번도 소홀히 한 적이 없었다. 그런 매일의 움직인이 곧 수련이며 인내이다. 인간도 각자 자신만의 고유한 임무가 있다. 그 임무는 일생 동안 반복하는 수련을 통해 서서히 완성되는 것이다.
어떤 일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반성, 자기 수련과 인애, 연습의 과정이 부재한 상태로 그 일을 멋지게 완수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마음이 자만이다. 이 자만이 커지면 교만과 오만을 낳는다. 자만의 가장 큰 증상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실수로 남들에게 크나큰 해를 끼친다. 자만하는 자는 자신이 위험에 빠지는 운명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위치를 분명하게 인식한다.
날씨가 더럽다. 비가 오려면 오고, 장마라고 하는데, 하늘만 맑고, 뭉게구름이 멋진 화폭을 만든다. 오늘은 동요 같은 짧은 시를 공유한다.
떨어진 단추 하나/이준관
해질 무렵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다가
떨어진 단추 하나를 보았지.
그래, 그래, 우리는
노는 일에 정신이 팔려
이렇게 단추 하나 떨어드리지.
그래, 그래, 우리는
노는 일에 정신이 팔려
서쪽 하늘에 깜빡, 해를 하나 떨어뜨리지.
자신을 제3자의 눈으로 가만히 응시할 수 없을 때, 나도 모르게 내면에 쌓이는 적폐가 바로 자만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편견이 여러 의견 중에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해답이라고 여기는 착각을 한다. 우리는 자신을 깨우치는 공부를 통해서만 자만이라는 미로에서 탈출할 수 있다. 이런 착각을 피하는 길이 자신의 제3자의 눈으로 자기 자신을 보는 것이다.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에겐 한 가지 치명적인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이것 때문에 비극적 파국을 맞이한다. 비극공연을 관람하는 모든 관객들은 아는데, 정작 주인공인 자신만 모른다. 그것이 자만이다. '위대한 개인'은, 남들이 보기에 소위 스펙이 좋은 인간이 아니라, 흠모하는 자신을 소유한 인간이며, 그런 인간을 위해 매일 매일 지금-여기서 연습하는, 아니 훈련하는 인간이다.
스펙이 좋은 인간들은 대부분 현재의 자신에 만족하고, 그런 자신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안타까운 인간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학력, 경제력, 권력 등을 남들과 공유를 통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움켜쥐고 자신과 자신의 식구를 위해서만 사용한다. 그런 사람에겐 매력이 없다. 진부하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매력이, 자신이 가진 보물을 남들과 함께 나눌 때, 배가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매력은 사람들의 내면에서 뿜어 나오는 어떤 것이다. 그래 매력이라는 말은 '아우라' 혹은 '카리스마'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건 흔히 보는 비싸고 화려한 옷을 입고 인상을 쓰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무리들 속에 있더라도 평범한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고 빛나게 하는 그 무엇이다. '도깨비'처럼 이끌리는 힘이다. 그런 매력을 가지려면, 일상의 삶에서 어떤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 일관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진리를 한 번은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진리를 지속적으로 주장한다면, 위험하다. 왜냐하면 진리나 상식은 보통 인간들에게는 거슬리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은 오감각을 통해 인식하는 외부의 자극을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범주에 귀속시킨다고 했다. 이 '공통적인 감각'을 우리는 '상식(common sense)'이라 말한다. 그런데 이 상식이 이데올로기를 만나면, 이것마저 왜곡된다. 상식을 '교리(敎理)'로 대치시키고, 그걸 상식이며 진리라고 강요한다.
교조적인 교리에 빠져 사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상식과 진리 속에서 나를 '구별된 사람'으로 성장시키고 싶다면, 자신을 일상의 습관, 특히 식습관을 장악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구별한다. (1) 마시는 음료 (2) 헤어스타일 (3) 만남을 구별한다. 첫째, 와인, 식초, 건포도가 들어간 음식과 술을 삼간다. 두번째, 머리 미용을 포기하여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다. (3) 시체가 있는 곳이나 무덤에 가지 않는다. 요즈음 말로 하면, 입으로 들어가는 것, 몸에 치장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발로 가는 것을 제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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