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다


3382.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7월 11일)
1
어제는 딸과 백화점 높은 층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함께 했다. 쨍쨍 햇볕이 내리 쬐는 오후였다. 오늘 사진은 그때 찍은 것이다. 높은 데서 보니 나무의 그림자가 눈에 띄게 들어왔다. 그러면서 2021년 서울 광화문의 교보문고 그림판이 떠올랐다. "올 여름의 할 일은/모르는 사람의/그늘을 읽는 일". 타인의 마음을 읽고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일은 인간만이 갖고 있는 '즐거운 숙명'이다. 주위 사람의 상처와 아픔을 함께 느끼고 함께 슬퍼하는 일이 사소해 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시련을 이겨내는 큰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이 시의 전문을 공유한다. 좀 어려운 시이다. 천천히 두 세번 읽어야 이해가 된다.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다'는 건 어떤 일일까? 그늘은 어둡고 서늘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돌이 울기 좋은 곳/ 고통을 축복하기에 좋은 곳'이다. 오늘 시의 3연에서 5연까지 내용으로 상상력을 보태 읽어보면, 시인은 모르는 사람이었던 한 용접공의 인생에 대한 슬픈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너무 일찍 날아간 새"처럼 세상을 등진 용접공의 이야기를 듣고서, 시인은 그늘 같았던 그의 삶에 대해 오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분노를 두꺼운 옷처럼 껴입고", 그가 남긴 "불꽃을 식은 돌의 심장에 옮겨 지피는" 여름을 다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찬찬히 바라본다'는 것, '귀 기울여 듣는다는 것', '마음을 내어 오래 생각한다는 것들이 아닐까? 귀를 찢을 듯한 울음 뒤에 매미가 남겨놓은 허물들처럼, "네가 다 빠져나간 다음에야 비로소 생겨나는 마음과 같은" 걸 내내 꿈꾸는 일일 것 시인은 말하고 있다.
여름의 할 일/김경인
올여름은 내내 꿈꾸는 일
잎 넓은 나무엔 벗어 놓은 허물들
매미 하나 매미 둘 매미 셋
남겨진 생각처럼 매달린
가볍고 투명하고 한껏 어두운 것
네가 다 빠져나간 다음에야 비로소 생겨나는 마음과 같은
올여름의 할 일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
느린 속도로 열리는 울음 한 송이
둥글고 오목한 돌의 표정을 한 천사가
뒹굴다 발에 채고
이제 빛을 거두어
땅 아래로 하나 둘 걸어 들어가니
그늘은 돌이 울기 좋은 곳
고통을 축복하기에 좋은 곳
올여름은 분노를 두꺼운 옷처럼 껴입을 것
한 용접공이 일생을 바친 세 개의 불꽃
하나는 지상의 어둠을 모아 가동되는 제철소
담금질한 강철을 탕탕 잇대 만든 길에,
다음은 무거운 장식풍의 모자를 쓴 낱말들
무너지려는 몸통을 꼿꼿이 세운 날카로운 온기의 뼈대에,
또 하나는 허공이라는 투명한 벽을 깨며
죽음을 향해 날아오르는 낡은 구두 한 켤레 속에,
그가 준 불꽃을 식은 돌의 심장에 옮겨 지피는
여름, 꿈이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그러니까 올여름은 꿈꾸기 퍽이나 좋은 계절
너무 일찍 날아간 새의
텅 빈 새장을 들여다보듯
우리는 여기에 남아
무릎에 묻은 피를 털며
안녕, 안녕,
은쟁반에 놓인 무심한 버터 한 조각처럼
삶이여, 너는 녹아 부드럽게 사라져라
넓은 이파리들이 환해 진 잠귀를 도로 연다
올여름엔 다시 깨지 않으리
2
다음은 <그림자>란 이름으로 적어 두었던 글이다.
그림자/박수소리
타인들이 쏘는 광선 속에서도 그림자를 헤아리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사람들은 흔히 같은 생각, 같은 속성을 가진 이들과 어울리려 하지만 예술은 우리에게 다른 방법을 일깨운다.
나는 그림자의 역할을 안다.
그래 그림자를 찍는 사진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 그림자가 물리적 존재를 중첩하면서 비물리적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나는 그림자 없는 물질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그림자 없는 성공을 싫어한다.
나는 더 깊고 진한 그림자를 좋아한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낙인 찍기를 넘을 수 있는 하나의 바로미터이다.
낙인은 당파성이 다른 사람들끼리 만의 배제가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자행될 때 더 아프고 치명적이다.
같은 진영이라면서 서로 욕하고 불리하다 싶으면, 침소봉대하여 공격하는 사람들은 서로 방해하는 모습만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배제한다.
서로 가까이 있어 조금 부딪힐지라도, 빛과 그림자의 어우러짐으로 서로 중첩되어 새로운 지형을 만들 때, 나는 거기서 어울림과 연대의 미학을 깨닫는다.
빛만 쫓아 해바라기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타인들 속에 그림자로 묻혀 있는 사람들을 기억하는 사람들, 타인들의 광선 속에서 그림자로 반짝이는 사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들이라면, 일상의 삶에서 나는 그들과 함께 할 생각이다.
3
아겔베르트 폰 샤미소의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소환한다. 주인공 슐레밀은 우연히 어떤 파티에 참석해 신비한 인물(나중에 악마로 판명)을 만나, 그림자를 팔라는 이상한 제안을 받는다. 그 대가로 주인공은 무엇이든 마음대로 꺼낼 수 있는 '행운의 자루'를 받는다. 그림자라는,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던 것을 파는 대신, 엄청난 부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곧 그림자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림자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자 사람들이 그를 경원시한 것이다. 그때 그 문제의 악마가 다시 나타나 새로운 제안을 한다. 그림자를 다시 돌려줄 테니 죽은 뒤의 영혼을 자기에게 팔라는 것이다. 갈등 끝에 주인공은 이 제안을 거절한다.
여기서 그림자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그림자가 무엇인지는 그림자가 없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림자가 없는 주인공을 사람들은 배척한다. 모름지기 인간은 그림자가 있어야 하는 법이라고 말한다. 엄청난 재산을 약속한 결혼도 신부측 부모에 의해 거부당한다. 그림자가 없는 남자에게 딸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 장소, 환대>>라는 책에서 김현경이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독특하게 해석하고 있다. 그녀에 의하면, 그림자는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무엇'이라고 해석한다. 소설가 김영하는 이를 '성원권(成員權, 모임이나 단체를 구성하는 인원)'이라 말했다. 우리가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사람으로 받아들여주어야 한다.
소설가 김영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역사적 사례를 들어 주었다. 조선시대 백정은 분명히 인간이었지만 양반과 상인들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실제로 구한말 진주에서 그들의 자식들이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오자 양반과 상인들이 집단으로 항의하며 퇴장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들은 생물학적으로는 완벽하게 양반이 상인과 같지만, 그들은 사회의 정당한 일원으로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장소도 주어지지 않았다. 이 말을 듣고, 나는 김현경이 말한 장소를 이해하게 되었다. 20세기 초반 미국 남부의 흑인들은 백인들의 공간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었던 사례도 들어준다. 당시 흑인들 그랬다 가는 자칫 나무에 목이 메달 릴 수 있었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타인의 환대가 필요하고 적절한 장소도 주어져야 한다. 조선시대 백정과 20세기 초 나치 치하의 유대인과 1960년 대 이전 미국 남부의 흑인들은 환대는 커녕, 공적 장소에서 배척되거나 추방당했다. 오직 표지('다윗의 별'이나 유니폼)로 개별성이 지워진 이들만 허용되었다. 그들에게는 '그림자'가 없었던 것이다. 그림자가 없다면 아무리 고매한 사상과 윤리적 자아를 갖추어도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프랑스에서 사람들이 싫어하는 직업이 세 가지이다. 경찰, 군인 그리고 성직자이다. 다들 유니폼(제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나는 군복무 시절에 "거리에 사람은 없고 군인들만 득실거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제복을 입은 사람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식이다. 오늘 사진 처럼, 한 발짝 물러나서, 아니면 좀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다 그림자가 있다.
4
좀 다른 이야기이다. 플라톤의 <<<국가>>에 실린 ‘동굴의 비유’는 이 고백(告白)과 회심(悔心)에 관한 이야기다. 인간은 원래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 깊은 곳에서 동굴 안에 위치한 벽에 투영된 그림자만 보도록 손과 발이 쇠사슬로 묶여 있는 수인(囚人)과 같다. 그들 중 한 혁신가가 ‘결연히’ 자신을 얽매고 있는 편안하면서도 속박하는 사슬을 끊는다. 그리고 자신들이 본 것들 허상이라는 것을 고백한다. 그리고 동굴 밖에 있는 태양을 향해 거룩한 여정을 시작한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동굴의 비유'를 통해 하찮은 순간이 영원한 순간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은 동굴 안에서 묶인 채로 진실이 아닌 허상을 실재하는 것으로 믿고 산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이 '진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에 의문을 품고 자신을 속박했던 족쇄를 부순다. '한순간에(suddenly, 불현듯이-불을 켜서 불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갑자기 어떠한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모양, 느닷없이)' 낯선 현실을 만나고 고통스러워 한다. 이것은 과거와 단절해 새로운 시작을 여는 '갑자기/한순간에', '결정적 순간'에 일어난다. 이 순간이 우리의 타성과 게으름을 일깨우며 한 곳에 의미 없이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래야 그림자의 허상이 아닌 빛이 일깨우는 진실과 마주할 수 있다.
5
아주 흥미로운 책을 한 권 알게 되었다. 제목은 <<채운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다 아야노가 글과 그림을 그렸다. 몇 년 전부터 마음을 비우고 하루의 일상 속에서 기쁨과 의미를 찾으며, 잊어버린 존재의 꿈을 회복하고 있었는데, 그 철학적 기반을 개인적으로 받은 책이다. 이런 내용이다.
여기, 앙증맞은 잔이 있다. 훌륭한 ‘찻잔’이 되기 위해 성실히 훈련해 온, 짧은 인생이나마 완전히 헌납해 온 찻잔이었다. 제법 능숙하게 따뜻한 홍차와 각설탕을 담아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던 어느 오후, 잔은 불의의 사고를 겪고 만다. 커다란 검은 새가 잔을 물어 다 낯선 풀숲에 내동댕이친 것이다. 차라리 깨졌다면 나았을까? 산산조각 난 꿈이 더 아프다. “잔은 자신이 더는 자신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서글픈 마음으로 하염없이 시간만 흘려보냈어요.” 방향을 상실하고 한없이 침잠하던 날들이었다. 존재를 채웠던 꿈이 엎어졌던 것이다.

빗물이 들어찬 잔에 작은 물고기가 놀러 왔지만, 잔은 이 방문을 모욕이라 여겼다. “나는 찻잔인데!”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꽃잎 한 장이 우연히 잔에 내려앉고, 꽃향기가 잔을 은은히 감싸자, 우중충한 마음에 다시 생기가 돌았다. 이때부터 낯선 존재의 방문은 잔이 자신의 존재를 확장하는 기회가 된다. “어느 날 잔은 토끼를 하룻밤 재워 주었습니다. (…) (나비들이) 수다 떨도록 자리를 내어 주기도 했고요.” 잔은 아늑한 침대도 되고, 소담한 벤치도 되었다. 마침내, 잔은 자신도 생각지 못했던 존재가 된다. 달을 품은 잔. 밤하늘에 뜬 환한 보름달이, 잔에 드리운 것이다. 이 황홀한 모습을 보러 고양이와 토끼, 다람쥐가 모여든다. “모두가 달을 들여다보러 찾아왔어요. 마침내 잔은 수줍은 듯이 웃었습니다.”
나의 존재를 채워왔던 꿈이 엎어지는 일을 우리는 보통 '시련'이라 한다. 어릴 때 진로(발레, 축구, 공부…)를 정하고 한 우물을 파는 게 성공의 법칙으로 여겨지는 우리 사회에서는 더 그렇다. 특정 시점까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거나, 경쟁에서 밀리면, 부모의 뜻에 따라 아이의 진로가 바뀌거나, 스스로 포기하는 일들이 적지 않게 많다. 부상이나 경제적 상황 때문에 더는 특정 진로를 고집할 수 없게 되는 일도 많다. 한 존재로서는 한평생을 바친 꿈이 산산이 부서지는 사건이기에, 이때는 어떤 위로도 응원도 먹히지 않을 때가 많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와인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찾아 발버둥치며 견뎌왔지만, 이제서야 길은 다양하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오늘 만난 '찻잔'처럼 말이다. 존재를 확장하면, 또 다른 기쁨들이 산재해 있다. 오늘 책 제목처럼, 그런 거들로 '채우면' 된다.
이 책을 소개한 <한겨레 신문>의 최윤아 기자는 이 책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기도 한다. "이 책은 부모에게도, 아이에게도 그럴 때를 대비한 예방주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부모는 존재가 엎어지는 경험을 한 아이가 새로운 무언가를 스스로 품을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줘야 함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책에도 잔이 처음 꽃잎을 느끼기까지의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음이 은유적으로 표현돼 있다. 아이는 특정한 무언 가가 되어야만 내가 되는 것이 아님을 천천히 알아갈 것이다. 내가 꿈을 품는 것이지, 꿈이 나를 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이건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통 우리 노인들의 위안이 되고, 포기하지 않고 또 다시 존재를 확장할 활동과 관계를 되찾을 용기와 콘텐츠를 준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