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계속 무언가를 만나는 마주침의 연속이다.

3323.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7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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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의 오만방자(傲慢放恣, 남을 업신여기며 제멋대로 행동)함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한마디로 ‘권력 중독’ 때문이다. 여러 학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이 높은 지위에 오르면 테스토스테론의 분비가 왕성해지면서 비도덕적인 행동을 해도 사회적으로 문제가 없으리라 착각하고, 자신이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이유로 비도덕적인 행동을 합리화한다는 것이다.
고 정채봉 선생님의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에 나오는 이야기를 옮긴다. 세탁소에 갓 들어온 새 옷걸이에게 헌 옷걸이가 한마디 했다. “너는 옷걸이라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지 말길 바란다.” "왜 옷걸이라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시는지요?” “잠깐 씩 입혀지는 옷이 자기 신분인 양 교만해지는 옷걸이들을 그동안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2
대안으로 『장자』의 <인간세> 8장에 나오는 "들꿩 이야기'처럼, 즐겁게 살면 된다. 이 이야기는 내가 사는 방식에 힘을 실어준다. 나는 어제 산책길에서 그 들꿩처럼 동네 공원을 내 것처럼 즐기며 사는 사람을 봤다. "들꿩 이야기"는 이렀다.
澤雉十步一啄(택치십보일탁) 못 가의 들꿩은 열 걸음에 한입 쪼아 먹고,
百步一飮(백보일음) 백 걸음에 한 모금 마시지만,
不蘄畜乎樊中(불기축호번중) 새장 속에 갇혀서 얻어먹기를 바라지 않는다.
神雖王(신수왕) 不善也(불선야) 비록 기력은 왕성할지 몰라도 마음이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신수왕(神雖王), 不善也(불선야)"의 해석은 두 가지가 가능하다.
1) '神'을 기력으로, '王'을 왕성함(旺)으로, '善'을 즐거움으로 보아, "기력은 비록 왕성할지 모르지만 마음이 즐겁지 않다."
2) 비록 왕처럼 대접을 받겠지만 신(神)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
비록 연못 가에서 열 걸음 걷다가 모이 하나 주어 먹고, 백 걸음 걷다가 물 한 모금 얻어먹을 정도로 힘들고, 또 주위에 여러 가지 위협이 도사리고 있지만, 이런 자연 환경 속에서 마음대로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것이, 새장 속에서 잘 얻어 먹고 사는 것보다 더 "신"나는 삶이라는 것이다. 이런 삶을 즐길 중 아는 것이 양생(養生)하는 필수 요건이라고 <<장자>>는 말하고 있다.
3
산다는 것은 계속 무언가를 만나는 마주침의 연속이다. 오늘은 '어떻게 마주칠까'의 문제를 사유한다. 왜냐하면 마주침 자체가 중요하지만, 마주치면 변화가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 마주침을 고대 에피쿠로스같은 자연철학자들은 '클리나멘(clinamen)'이라 말했다. 사람들은 이것을 '기울어져 빗겨감 혹은 벗어남' 또는 어렵게 '편위(偏位, 각도 차이)'라 한다.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에피쿠로스 파에 속하는 철학자 루크레티우스가 허공 속에서 원자들의 운동을 통해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고 변화가 일어나는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것'라 설명한다.
내가 이해하는 클리나멘은 대부분의 빗줄기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같은 방향으로 떨어지는데, 그 중에 몇 개는 엉뚱한 방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볼 때가 있다. 이것을 '클리나멘'이라 볼 수 있다. 원래 의미는 '원자 이탈'이지만, 인문학적으로는 타성과 관성에 맞서 이에서 벗어나려는 일탈, '사선으로 내리는 비', '삐딱이'라 말할 수 있다. 나는 '직선을 가로지르는 사선의 힘'이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물리학적으로 말하면, 관성적인 운동과 중력에서 벗어나려는 힘으로 해석한다. 원자가 직진운동을 하면, 세상은 하나도 바뀌질 않는다. 동일한 방식으로 돌고 돌 것이다. 반대로 원자가 막 제멋대로 간다고 하면 물론 물질의 구성 자체가 안 된다. 그런데 원자 중에 직진을 하는 듯하면서 살짝 옆으로 미끄러지는 데서 온 세계의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자 성어 중에 "실지호리, 차이천리(失之毫釐, 差異千里)"라는 말이 있다. "호리의 차이가 천리의 어긋남을 빚는다는 말이다. 호와 리는 자와 저울의 눈금으로 아주 작은 단위를 뜻하는데, 즉 '호와 리를 소홀히 여겨 잃는다면, 천리의 차이로 벌어진다'라는 의미이다. 처음에는 근소한 차이 같지만 나중에는 아주 큰 차이가 나는 것이다. 클리나멘이란 '비껴 감'에 의한 작은 충돌'이 우리 삶을 역동적으로 만들어 주는 커다란 생성의 에너지가 된다는 것이다.
클리나멘에 인문학적 색채를 입히면, '가로 지르기', '사선', '어긋남', 편차', '횡단' 같은 단어이다. 그러나 나는 단순하게 '마주침'에 방점을 찍고 싶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 하며 일탈하여 새로운 마주침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모두가 '예'라고 하는 상황은, 수직으로만 낙하하는 빗줄기들의 모습이고, 그 속에서 유일하게 '아니오'라고 말하는 누군가의 존재가 바로 사선으로 내 특별한 빗방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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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도덕경>> 제77장는 '약자를 보호하라"는 거다. 왜냐하면 "남는 데서 덜어내 모자라는 데 보태는 것이 하늘의 도(天地道)"이기 때문이다. 이 장의 키워드는 "보부족(補不足)", '부족한 자에게 나눔을 하라'는 것이다. 활시위 당기는 장면을 인용해 공정하고 균등한 분배라는 경제정의에 대해 말하고 있다. 활은 반달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화살을 장전해 시위를 당기면 가운데 윗부분의 둥근 현이 아래로 당겨지고 좌우 양쪽 날개 부분의 현은 위로 조금 부풀어 오른다. 그런 것처럼 경제 정의란 여유 있는 사람의 몫을 덜어내 가난한 사람에게 채워주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면 높은 산을 깎아 낮아지고, 그 덕택으로 낮은 곳은 메워져 높아진다. 위쪽 연못에 물이 차 넘치면 그 물은 자연히 아래쪽 연못으로 흘러들어 그것을 채운다. 이렇게 남는 쪽에서 덜어내어 모자라는 쪽에 보탬으로 전체적인 균형을 이루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
그 말을 노자는 다음과 말했다. "天之道(천지도) 其猶張弓與(기유장궁여) 高者抑之(고자억지) 下者擧之(하자거지) 有餘者損之(유여자손지) 不足者補之(부족자보지): 하늘의 도는 활시위를 당기는 것과 같다. 높은 것은 억누르고, 낮은 것은 들어올린다. 남으면 덜어주고, 모자라면 보태 준다."
여기서 "장궁"은 활의 현을 활의 양단에 거는 행위를 말한다. 활을 쏘는 원리는 활시위를 당기면 원래 모습으로 복원하려는 탄성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이 당기면 탄성에너지는 더 커져서 멀리 나가게 되고, 조금 당기면 탄성에너지가 낮아져서 가깝게 나간다. 활 쏘기의 핵심을 직용과 반작용이다. 활 시위를 당기는 것이 작용이라면,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는 탄성이 반작용이다. 노자는 이 활 쏘는 원리를 이용하여 우주와 인간의 원리('도')를 설명하고 있다. 그래 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天之道(천지도) 其猶張弓與(기유장궁여)". 하늘의 도는 활시위를 당기는 것과 같다는 거다.
높은("高") 곳에 있는 목표를 맞추려면 활을 내려서 누르고("抑") 쏘아야 하고, 낮은("下") 곳에 있는 목표를 낮추려면 활 시위를 들어야("擧") 한다. 그리고 '멀리 쏘려면 더 당겨라.' '가까이 쏘려면 덜 당겨라.' 목표 거리가 여유("餘")가 있으면 힘을 줄이면("損") 되고, 목표 거리가 멀어 화살이 도달하기 부족("不足")하면, 힘을 더 늘려야("補") 한다. 이런 식으로 노자는 활 쏘기의 원리가 자신의 '반(반)' 철학과 부합된다고 보았다.
우리 인간들도 이런 활 쏘기 원리를 본받아야 한다는 거다. 부족하면 보충해주어야 하고, 남으면 덜어내야 한다. 그런데 인간 세계는 부족한 사람은 더욱 짜내어 더 힘들게 하고, 남은 사람은 더 보태 주어 더 불리게 한다. 노자는 당시 불평등한 사회를 비판하며 부자의 부를 덜어서 빈자에게 더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거다. 그래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天之道損有餘而補不足(천지도손유여이보부족) 人之道則不然(인지도즉불연) 損不足以奉有餘(손부족이봉유여): 하늘의 도는 남는 데서 덜어내어 모자라는 데에 보태지만, 사람의 도는 그렇지 않아, 모자라는 데서 덜어내어 남는 데에 바친다."
"물이 한번 쓸고 가면 둔 턱은 깎이고 움푹한 곳은 뻘로 채워진다. 이런 것이 자연 현상이다. 불평등 구조를 화해 구조로 끊임 없이 리벨런싱하는"(김용옥)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그래서 리더는 부자의 여유를 덜어 빈자의 부족함을 메꾸어야 한다. 노자는 이러한 자연의 법칙, 존재의 법칙을 가지고서 인간세의 당위를 요청한다.
5
비움의 미학/나승빈
사람이 아름답게 보이는 건
그 무엇을
채워갈 때가 아니라
비워갈 때이다.
사람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건
그 무엇이건
다 비워 놓고
채우지 않을 때이다.
사람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건
그 무엇이나
다 비워 놓고도
마음이 평화로울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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