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들을 아름답게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은 신성한 명령과 같다.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7월 1일)
벌써 7월이다. 지난 반년을 되돌아 보고, 남은 반년을 어떻게 살까 고민해본다. '미끈유월(농사 일로 바빠 한 달이 미끄러지듯이 쉽게 지난간다는 말)'이 가고, '어정칠월(칠월은 한가해 어정거린다는 말)'이 온다. 회두리에 흙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그 누구나 농부다. 이제 땅의 소출이 경제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를 잊으면 헛사는 것이다. '떵떵' 거리며 산다는 말도 기실 '땅'에서 왔다. 그런데 수십 만 평의 땅보다 한 뼘 남짓의 그 마음 농사가 더 중요하다.
마음 공부를 위해, 지금 <인문 일지>에서 말하고 있는 책은 프랑스계 미국인인 마리나 반 주일렌의 <<평범하여 찬란한 삶의 향한 찬사>>이다. 지은이는 "너무 높게도, 너무 낫게도 날자 말라"며, 넘치거나 부족함이 없는 중용의 '평범한 삶'을 가치 높게 평가했다. '평범하고 그만하면 괜찮은 삶'을 찬양했다. 그건 판단을 유보하고 삶이 흘러가는 길을 관찰하며 결과 보다는 과정에 관심을 두는 힘을 기르자는 거다. '평범하고 그만하면 괜찮은 삶'은 헛된 야망의 실현이나 비겁한 타협이 아니라, 타인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며, 떠들썩한 성공 뒤에 숨어 있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려는 의지를 '땅의 마음'으로 지키는 것이다.
오늘 화두는 '특별함을 받쳐주는 평범함'이다. 니체는 중용이란 사회의 하위 계층, 즉 자신이 어는 선에서 만족하는지를 탐구하기보다 적당한 선에서 만족을 느끼는 이들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소프로시네(Sophrosyne)', 즉 중용을 완벽하고 신에 가까운 미덕으로 여기는 절제된 삶을 폄하하는 것이었다. '소프로시네'는 자기 절제와 중용을 뜻하는 말로 충분히 극단적이지 않기 때문에 판도라 상자에서 빠져나와 인간을 버리고 올림포스 산으로 돌아가버렸다. 니체는 이른바 '훌륭한 중용'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경험 그 자체를 즐기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용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소수의 특권층', 즉 생명력과 열정이 넘치는 선택 받은 행복한 사람들과 달리 도전을 꺼리고 현상 유지에 만족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며 도전하는 소수의 특권층이 발전할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평범한 사람들은 일상을 초월하기보다 그저 소수 특권층을 따라 하고 모방하고 복제한다고 여겨졌다. 평범한 사람으로 취급 받는 것과 평범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마리나 반 주일렌은 "유보의 관용'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프랑스식 관용과 판단의 유보가 합쳐진 것으로 관대함과 배려가 결합된 개념이다. 그것은 어떤 정보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기질, 성향, 태도이다. 더 깊이 들여다 보고 인내하는 거다. 판단을 유보하자는 거다. 평범한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면 높은 것과 낮은 것,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개 이런 태도에 반대했던 니체는 결국 비난과 부정적인 태도를 멈추고 눈앞에 있으나 숨겨져 있을지 모를 '좋음'이 찾아들 수 있는 공간을 열어두자고 제안했다. 니체의 <<이 사람을 보라>>을 공유한다.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들을 아름답게 보는 법을 배우고 싶다. 나는 그런 일들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중략) 나는 비난하고 싶지 않다. 비난하는 사람을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눈길을 돌리는 것'이 나의 유일한 부정의 표시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략) 언제나 모든 일에 긍정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들을 아름답게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은 신성한 명령과 같다. 이런 삶의 태도를 선택하는 건 온전히 각자의 몫이다. 여기서 그 유명한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라는 말이 나온다. 이때 우리는 평범함과 '그만하면 괜찮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니체는 자신의 운명과 “위험하게 싸워라”라고 말다. 이렇게 싸울 때, 우리 자신을 보다 강하고 깊은 존재로 고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가혹한 운명을 오히려 아름다운 것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거다. 이것을 니체는 '아모르 파티(운명애의 투쟁)’라고 말한 것이 아닐까? 이 투쟁이란 사람들이 서로 투쟁함으로써 서로를 고양시키고 상대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품게 되는 관계이다. 싸우다 정든다는 말로 이해한다. 이 때 투쟁은 서로 투쟁하는 가운데 서로 상대를 고양시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니체가 바라는 것은 안락과 긴 연명이 아니라 자신이 고양되고 강화되었다는 느낌으로 사는 것이다. 가혹한 운명과의 대결을 겪은 사람은 강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고양되어 있는 사람이다. 니체는 사람들에게 ‘그대의 운명이 평탄하기를 바라지 말고 가혹할 것을 바라라’라고 외치며, 그런 운명과 투쟁하면서 장렬하게 죽을지 언정 패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니체의 핵심 사상은 험난한 운명에도 굴하지 않고 그것을 긍정하는 것을 넘어서 사랑했던 그리스 로마의 강건한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 강건한 정신은 고통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의 대결을 통해 자신을 강화하고 고양시키는 것이다. 이 정신은 건강한 생명력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삶의 가혹함과 두려움을 찾아 나서고, 우리의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자신의 힘으로 시험해 볼 수 있는 호적수로서 만나기를 원하는 도적적인 정신을 가리킨다. 이 반대가 ‘비열하고 천박한 기회주의의 정신’이다. 니체는 이를 '말세인들의 정신'이라고 한다. 이 말은 안락하게만 인생을 살려는 정신을 말한다. 이런 정신을 가진 사람은 정신력과 생명력의 고양을 위해 적어도 자신과 대등하거나 강한 자들과 투쟁하는 험난한 운명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윤과 안락을 확보하기 위해서 온갖 비열한 방법으로 약한 자들을 뜯어 먹는 안이한 운명을 선택하는 자들이다.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수(초인)"이란 고난을 견디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난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고난에게 얼마든지 다시 찾아 올 것을 촉구하는 사람이다.
요즈음 자신의 힘을 절제하지 못해, 원심력에 의지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그런 사람은 중독을 유발하여 결국 자신을 파멸시키는 쾌락, 자극, 새로운 것을 항상 하이에나처럼 찾아다닌다. 쉽게 웃음과 울음을 자아내는 촌극을 감동이라 평가하고, 세네카의 구심력 찬양문구인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건배사로 착각하고 니체의 고통을 삶의 일부로 수용하라는 혜안인 ‘아모르 파티(amor fati)'를 노래방 춤 쯤으로 여긴다. 원심력에 경도되어 있는 사람은 힘이 없고 불안하고 산만하다." 배철현의 <매일묵상>에서 읽은 것이다.
반면, 원심력을 구심력으로 제어하기 위해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힘이 있다. 그런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원심력의 과시를 희생하여야 한다. 나는 이 구심력과 원심력의 조화를 위해, 아침 마다 <인문 일지>를 매일 쓰고 있다. 자꾸 밖으로만 출렁이는 생각과 본능에 영향을 받는 사람은 무기력하지만, 그것들을 제어하고 조절하여, 그 힘을 비축하는 사람은 강력하고 매력적이 되기 때문이다. 그 길이 요즈음 고민하는 '평범하여 찬란한' 삶이 아닐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경이로움을 보며, 일상의 만족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오늘은 한 해의 반환점이 시작되는 날이다. 그런 가운데 우린 하루에 몇 번씩 갈림길에 놓인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고, 그 순간 나는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을 믿어야 한다. 시간은 흐르는 강물처럼 하나이다. 미래는 오늘 내 선택의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이다. 그래 7월이 왔어도, 난 어제처럼 살리라.
7월/목필균
한 해의 허리가 접힌 채
돌아선 반환점에
무리 지어 핀 개망초
한 해의 궤도를 순환하는
레일에 깔린 절반의 날들
시간의 음소까지 조각난 눈물
장대비로 내린다
계절의 반도 접힌다
폭염 속으로 무성하게
피어난 잎새도 기울면
중년의 머리카락처럼
단풍 들겠지
무성한 잎새로도
견딜 수 없는 햇살
굵게 접힌 마음 한 자락
폭우 속으로 쓸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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