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무심한 동작 하나에도 정신이 깃든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6. 30. 21:30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오늘 아침도 일찍 일어나 <성학십도>를 집어 들었다. 우리는 우주라는 커다란 지도 위에, '우주적 책임'을 맡고 던져진 존재이다. 이 어머 어마한 지도 위를 걸어가려면 "가이드 맵"이 필요하다. 그런 가이드로 뛰어난 것 중 하나가 "자기 구원의 가이드 맵"이라는 부제가 달린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한형조 교수의 친절한 독해)이다. 오늘이 읽은 내용을 공유하기 시작한 3일째이다. 어제 우리 인간이 우주라는 "바둑판"에 어떻게 놓여 있는지를 살펴 보았다면(<서명> 상도(上圖), 오늘은 그 바둑판에 어떻게 바둑을 두어야 하는가 공부한다(<서경> 하도(下圖).

사람은 생명이다. 그래 사람은 생(生)인 동시에 명(命)이다. 주어진 조건에서 살아감이 생이라면, 그 의미를 묻고 그 의미에 따라 책임을 갖고 살아감이 명(命)이다. 그리고 생명은 다른 생명과 교감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인간의 복잡한 세상에 휩쓸리다 보면, 이 유대의 끈이 그만 아득하다. 이 때 사랑(仁)이 그 경화(딱딱하게 굳음)를 깬다. 내가 지금 읽고 읽는 제2도 <서명>은 사회적 약자를 도롭는 것이 가족의 책임을 완성하는 길이면서, 크게는 우주적 덕성에 합치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고대 그리스 정신의 아레떼를 발휘하는 것이다. 하나씩 살펴본다.

(1) 于時保之, 子之翼也, 樂且不憂, 純乎孝子也(우시보지, 자지익야. 낙차불우, 순호효자야): 늘(于時) 이 덕성(之)을 지켜가는(保) 것이 아들(子) 된(之) 도리요(날개, 翼也). 이 길을 즐기고(樂), 또(且) 근심(不憂)하지 않는 것(不)이 진정한(純乎) 효자이다.(孝子也).

① 于時保之, 子之翼也: 장자는 '보시(保始)"라는 말을 사용한다. <도덕경> 제1장에서 무, 명천지지시(無, 名天地之始)-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이 하늘과 땅의 시원 - 할 때의 시(始)처럼 도(道)를 뜻하는 말로, 보시는 도를 지키는 사람이다. 우시는 '언제나'로도 번역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언제나 우주적 책임을 보호하고 지키겠다는 말이다. 여기서 우주적 책임을 다른 말로 천명(天命), 태극(太極), 이(理)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서 '익야'는 '공경을 다하는 아들'이란 뜻이다. 자신의 도리를 잘 하는 아들이다. 그래서 '우시보지, 자지익야'를 '우주적 의미와 그 책임을 충실히 지켜라. 그것이 우주의 아들 된 자가 지녀야 마땅할 공경스런 태도이다'란 말이다.
② 樂且不憂, 純乎孝子也: 우주적 소명을 다한 기쁨으로 그리고 근심 없이 수행하라. 그러면 그것이 우주의 아들로 태어난 인간이 바쳐야 할 효도라는 것이다. 이런 효도는 다른 사람을 감화(感化) 시킨다. 기쁨과 슬픔뿐만 아니라, 선행과 악행도 어떤 틀에 갇히지 않고 바이러스처럼 혹은 파도처럼 타인에게 그리고 사회 전체를 행해 전염되고 감염된다고 본다.  이는 우주를 유기적 조건과 반응의 복합 체계, 즉 '감응(感應)'의 과정으로 읽는 사고의 필연적 결과이기도 하다. 그래서 유학(儒學)은 성현의 교화를 강조하고, 군주의 모범을 독촉하며, 선비의 절개를 기린다. 이것들이 건전한 사회를 위한 기반이다. 여기에 합리적 계산과 조정이 기술은 부차적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이제 유학의 기본 정신을 알아차리겠다.

조금씩 공유한다. 오늘은 일년의 반인 6월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이면 '미끈유월(농사 일로 바빠 한 달이 미끄러지듯이 쉽게 지나간다)'이 가고 '어정칠월(칠월은 한가해 어정거린다)'이 시작된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내년의 대통령 선거에 대선후보들이 난립하고 있다. 진정성(authenticity)  있는 정치인이 나왔으면 한다. 진정성이란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와 남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사기꾼은 신뢰를 연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신뢰를 연기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진정한 신뢰는 아니다. 진정성을 지니려면, 소크라테스가 말했던 거처럼, 자신의 존재 이유인 목적의 실로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해서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구성하고 이 정체성을 기반으로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숙고하고 성찰하며 반성하는 사람이다.

진정성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에 대한 돌봄 부족으로 어려운 고비를 만났을 때 일관성이 있는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근력이 없다.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좋은 시절 주장했던 철학과 목적은 사라지고 탐욕스런 생존을 위한 본성을 드러낸다. 몇몇 후보는 진정성이 의심된다. 참모들이 즉흥적으로 만든 것을 대신 읽는 것 같다. 야당 유력 후보에게서 진심과 진정성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건들, 도리도리. 가장 마음에 들던 담벼락: "한 가족에게 한 짓이 당신의 정치명함의 시작이라는 것을 나는 기억할 것이다."(안선영)

언젠가 "정민의 世說新語"에서 다음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무심한 동작 하나에도 정신이 깃든다." 그리고 정민 교수는 최원오 신부가 번역한 성 암브로시우스의 <성직자의 의무> 몇 대목을 소개하였다. "동작과 몸짓과 걸음걸이에서도 염치를 차려야 합니다. 정신 상태는 몸의 자세에서 식별됩니다. 몸동작은 영혼의 소리입니다." "훌륭한 걸음걸이도 있으니, 거기에는 권위 있는 모습과 듬직한 무게가 있고 고요한 발자취가 있습니다. 악착같고 탐욕스러운 모습이 없어야 하고, 움직임이 순수하고 단순해야 합니다."

오늘 아침 사진은 주말 농장에서 만난 오이 꽃이다. 수줍게 숨어 피었지만, 자기 색깔은 분명하다. 감자도 한 보따리 캤다. 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길-밭에 가서 다시 일어서기/ 김준태

어디로
가야 길이 보일까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이

어디에서 출렁이고 있을까

더러는 사람 속에서 길을 잃고
더러는 사람 속에서 길을 찾다가

사람들이 저마다 달고 다니는 몸이
이윽고 길임을 알고 깜짝깜짝 놀라게 되는 기쁨이여

오 그렇구나 그렇구나
도시 변두리 밭고랑 그 끝에서
눈물 맺혀 반짝이는 눈동자여

흙과 서로의 몸 속에서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바로 길이었다

'구차(苟且)'란 말을 배웠다. 구차하게 살지 말자. 이는 떳떳하지 못하고 답답하고 좀스러운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버젓하지 않거나 번듯하지 않은 것이다. 원래는 구저(苟菹)라는 말에서 나온 거라 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저(菹, 채소 절임 저)의 자에서 풀 초가 빠지고 차(且, 버금 차)로 바뀐 것이라 한다.

'구저'란 신발 바닥에 까는 지푸라기를 말하는 것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게 되는 의인을 살리기 위해 천리 길을 가는 그의 산발이 닮아서 발에 피가 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너무나 애처로워 볏짚을 모아 그의 신발에 깔아주었다. 이 일을 보고 사람들은 모멸을 감수하고 적은 동정을 받는다 뜻으로 "구저 구저" 하다가, 세월이 흘러 '구차'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당장 굶어 죽어도 구차하게 살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 구차함이 당당하게 대중들 앞에서 나서기 시작했다. 특히 요즈음의 정치인들을 보면 구차하다.  한 세상 당당하게 살아가 야지 구차하게 살지 말아야 한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이 하루 하루를 살아야 한다.

"재물 앞에 놓였을 때 올바른 방법이 아니면 구차하게 얻지 말고, 어려움이 닥쳤을 때 구차하게 모면하려고 하지 마라. 다투게 되어도 이기려 하지 말고, 재물을 나누어도 많이 얻으려 하지 말라" 고대의 일상 생활에 적용되었던 규범들을 실은 <예기>에 나오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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