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모든 노인이 무조건 존중 받아야 할 까닭은 없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6. 29. 18:03

3320.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6월 29일)

1
오늘 아침 산책에서 만난 인동초(忍冬草)의 말년이다. ‘일찍’ 꽃을 피웠다는 이유만으로 매화가 세상 꽃 중에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꽃은 아니다. 각자 인생의 꽃이 피는 계절은 다르다. 소년등과(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는 인생의 불행이 된다. 너무 일찍 출세하면 나태해지고 오만해지기 쉽다. 나태하므로 더 이상의 발전이 없고, 오만하므로 적이 많아진다. 예컨대, ‘인동초’ 김대중 대통령은 나이 76세인 2000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인동초를 만나면 생각나는 대통령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마지막에 어떤 꿈을 이룰 수 있느냐이다. ‘일찍’ 출세하는 것이 아니라, ‘크게’ 성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사람의 한살이가 끝 무렵을 가리키는 말로, 우리는 노년(老年), 만년(晩年), 말년(末年) 등 여러 가지를 가지고 있다. 다음 셋은 미묘하게 첫 느낌이 다르다. 
▪ 노년이 단순히 늙어서 병들고 쇠약함을 떠올리게 한다면, 
▪ 만년은 한껏 무르익어 성숙함을 떠올리게 하고, 
▪ 말년은 다가오는 죽음 앞에 홀로 버티는 비장함을 떠올리게 한다.

같음에서 다름을 생각할 때, 스타일이 생겨나는 거다. 세월이 쌓여 죽음에 이르는 건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인생 마지막 시기를 남들과 다르게 인식하려고 애쓰는 사람들 만이 남은 시간을 던져 독창적 양식을 이룩할 수 있다. 생물학적으로, 노년은 인류에게만 주어진 삶의 드문 양식이다. 다른 생명체들은 나이 들어 병약해지면 무리에서 버려져 다른 포식자에게 잡아 먹히기 때문이다. 무리를 이루어 고도의 사회체계를 이룩한 인간만이 나이 든 개체도 적절한 역할을 찾아 마지막까지 생을 누릴 수 있도록 했다. 노인의 존재는 진화의 산물이요, 문명의 축복인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노인이 무조건 존중 받아야 할 까닭은 없다. 주어진 여건에 맞추어 어떤 삶을 살 것인 가를 고민할 때, 다시 말해 자기 생을 돌이켜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나이 듦에 적합한 삶의 양식을 갖출 때, 간신히 늙은이가 아니라 어른으로서 사회적 존경을 얻을 수 있다.

노인의 인생 스타일 문제를 깊이 탐구한 철학자가 에드워드 사이드이다. 그의 책인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에서, 그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장 주네 등 예술가의 삶을 예로 들어 말년성이라는 스타일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흔히 우리는 젊을 때 아무리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나이가 들면 뾰족함이 누그러지면서 성숙과 원만, 조화와 타협을 중시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이드가 말하는 말년성은 반대이다. "예술의 역사에서 말년의 작품은 파국이다." 좋은 예술가일수록 기존 사회질서에 적당히 조응하기를 거부하고, 거리 두기, 내적 망명, 반시대적 감각을 고집하면서 당대의 주류와 비타협, 난국, 풀리지 않는 모순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 노인성(oldness)이 신체의 노쇠와 약화를 연상시킨다면, 
▪ 만년성(maturity)은 저무는 노을의 무르익은 아름다움을 연상시키고, 
▪ 말년성(lateness)은 생애 마지막 자락에 이를 때까지 끝끝내 새순을 내미는 생성력을 연상시킨다. 
낡은 전통에 대한 저항, 관습으로부터의 망명, 젊은 자신으로부터의 탈출이 우리 안에서 말년성의 꽃을 피우게 한다. 나이 드는 건 피할 수 없지만, 어떤 노인이 될 것인가는 각자 자신에게 달렸다. 편집문화실험실 장은 대표의 글을 갈무리한 것이다. 최근 나는 나의 말년성을 위해 부지런히 책을 읽고 스며 사유해윻 가소 있다.

2
은퇴하고 보니, 자유인의 명함처럼 좋은 건 없다. 어린이의 마음으로 사는 것과 어른으로 사는 차이쯤 일까? 유명 연예인들이나 정치인들이 순간의 실수로 세상을 하직하는 모습을 본다. 이 아름다운 인생의 풍경 길을 다시는 보지 못하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커피 냄새, 지천에서 피어 대는 꽃 향기를 다시는 맡지 못하는 거다. 오래전 46세의 나이로 투신자살한 80-90년대 전설적인 홍콩 배우 장국영의 유서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두 사람 중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 매우 괴롭다. 이에 자살한다.” 모든 사람이 부러워해도 정작 당사자가 불행하면 소용없는 일이다.

오늘 만난 자신을 위로할 수 있는 좋은 말 5가지를 공유한다.
▪ "'너' 라서 다른 거고, 달라서 특별한 거야."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인간은 다른 사람처럼 되고자 하기 때문에 자신의 잠재력을 4분의 3이나 잃는다." (쇼펜하우어)
▪ 모른다는 건 참 아름다운 말이다.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은 배울 기회도 많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치는 현재 가진 것의 합(合)이 아니라, 아직 갖지 않았지만 앞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의 합으로 결정된다.
▪ 누가 나를 오해한다면 당당히 맞설 줄 알아야 한다. 모두에게 사랑 받을 수는 없다. 남의 인정을 받기 위해 무리하지 않고 차분한 자세로 주어진 할 일을 다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 겁먹지 말고 도전하면 결국 해낼 수 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용기 속에는 우리의 천재 성과 기적이 모두 숨어 있다.
▪ 감사하는 만큼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다. 감사하는 마음이 최고의 지혜이다. 은혜를 되 갚는 것보다 더 귀한 의무는 없다. '때문에'를 '덕분에'로 바꾸면 하루가 아름다워진다.

3
젊은 날 우리는 종종 조급 해진다. 빨리 인정받고 남들보다 반짝이고 싶어서 그런다. ‘나는 왜 저들처럼 특별하지 않을까’ ‘언제쯤 내게도 화려한 순간이 올까’ 하는 초조함에 밤잠을 설친다. 그러나 이 거장들의 삶의 궤적은 우리에게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삶이라는 긴 무대에서 중요한 건 어쩌면 폭죽처럼 터지는 화려함이 아니라, 은은하지만 오래도록 꺼지지 않는 등불 같은 꾸준한 노력과 체력이라는 지혜 말이다. 젊은 날의 불안과 방황을 지나온 노년이 건네는 삶의 경륜은 그래서 더 깊은 울림이 있다. 청춘이 이들의 삶에서 배워야 할 건 그 과정의 가치다. 꽃의 화려함은 눈부시게 짧고, 봄의 꽃만큼 늦가을의 단풍도 깊고 아름답다.

누구나 좋은 삶을 살고 싶어 한다. 나날이 충만하고 순간순간 충실한 삶, 하루하루 들어가는 나이가 몰락의 과정이 아니라 완성으로 나아가는 여정인 삶이야 말로 우리가 이룩하고 싶은 위대한 성취일 테다. 로마노 과르디니의 <<삶과 나이>>에 따르면, 모든 하루하루는 단 한 번 밖에 오지 않기에 다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함을 얻는다. 존중 받지 못할 순간도, 의미 없이 지나가는 순간도 없다. 순간의 존엄함을 아는 사람은 지금 여기의 삶을 온전히 누리려는 강렬한 긴장을 느낀다. 이런 긴장 없는 삶은 단조롭고 지루하게 다가온다. 때론 상실감과 후회 속에서 공허와 절망의 나락에 떨어질 위험도 있다.

4
사는 일은 평탄하지 않다. 늘 문제들이 주변에 깔려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거다. 인간은, 이런 수련을 통해, 육체는 소멸해가지만, 정신과 영혼만은 새롭게 단련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이 될 수 있는' 그것을 알아차리는 깨달음을 통해, '그것이 되어야만 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과거의 잔재인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이루어진 자신을 이 순간에 실천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人間)은 종종 '땀'보다 '돈'을  먼저 가지려 하고, '설렘'보다 '희열'을 먼저 맛보려 하며, '베이스캠프' 보다 '정상'을 먼저 정복하고 싶어한다는 거다. 노력보다 결과를 먼저 기대하기 때문에 무모해지고, 탐욕스러워지고, 조바심 내고, 빨리 좌절하기도 한다. 자연은 '봄' 다음 바로 '겨울'을 맞게 하지 않았고, 뿌리에서 바로 꽃을 피우지 않게 하였기에, 오늘 땅 위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했고, 가을엔 어김없이 열매를 거두게 했다. 만물은 물 흐르듯 태어나고, 자라나서 또 사라진다. 이 세상에는 변치 않는 게 없고, 아름다움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없고, 지금 가진 것을 영원히 누릴 수도 없다. 자연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에는 순서가 있고, 기다림은 헛됨이 아닌 과정 이었다고." 그 기다림이 그리움으로 이어지고, 그 그리움이 설렘이 된다. 그리움은 어떤 생각이나 이미지를 마음 속에 긁는 것이기도 하다. 그 그리움이 현실이 될 때가 '설렘'이 된다. 설렘이 많아야 그만큼 더 행복하다. 행복은 작은 것에 있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한다. 자신의 분수를 알고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행복하다. 행복은 평범한 일상 속에 순간이라는 이름으로 숨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매일 그걸 찾아내려고 노력하여야 한다.

5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길을 걷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의 평생은 자신과 타인의 수많은 선택이 만들어 결과이다. 그래 우리는 인생길을 '인생행로(人生行路)'라고 말한다. 이 말은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살아가는 동안 겪는 모든 일, 즉 인생 전체를 길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그 가운데, 아무도 걸은 적이 없는 길을 계속 '건너 가자'는 것이 내 철학이다. 모든 일은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도 이유가 있어서 만난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모든 만남에는 의미가 있으며, 누구도 우리의 삶에 우연히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만난 누구든 크고 작은 자국을 남겨 나는 어느덧 다른 사람이 되어 있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는 맛은 관계이고, 거기서 일어나는 활동의 폭이 확장될 때 일어난다. 게다가 관계와 활동 속에서 일어나는 수렴하고 발산하는 순환 가운데 내가 다르게 변하는 것이다. 이걸 우리는 '성장'이라 한다. 소유 욕망에 사로잡혀 집착하기보다 존재로 건너가기를 하며, 자유를 확장해 나갈 때 발산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관계와 활동이 작동된다. 그리고 우리는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와 똑같은 말만 하는 사람은 필요 없다. 그래서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이, 오늘 공유하는 시처럼, "거친 길을 걸어"가는 거다. <<모든 삶은 충분해야 한다>>(안타레스 펴냄)에서 아브람 알퍼트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위대한 삶이 아니라 충분한 삶을 추구할 때, 우리 삶은 좋아진다고 말한다. 여기서 위대한 삶이란 더 많은 부와 명성을 누리려고 남들과 발버둥 치는 삶을 말하고, 충분한 삶이란 자신의 불완전성을 인식하면서 적당한 여유와 윤택에 만족하는 삶을 뜻한다. 위대함을 바라고 완벽함을 좇기보다 적절함을 받아들일 때 우리 삶은 비로소 행복에 이른다.

충분함이란 평온함과 어려움의 결합이다. 적절한 의식주와 양질의 의료를 확보해 삶의 불안과 부담을 덜어내는 마음이 충분함의 필수조건이라면, 욕망이란 모두 실현될 수 없음을 깨닫고 삶의 결핍과 실패를 받아들이면서 자신만의 좋음, 자신만의 의미, 자신만의 온전성을 스스로 찾아내려 애쓰는 일이 충분조건이다. 알퍼트는 충분함의 핵심이 "실패에도 감사할 줄 아는 단단한 마음을 얻고, 피할 수 없는 번뇌를 다루는 기술을 익히며, 자기 삶을 의미와 가치와 한계의 연결 고리로 인식하는 법을 배워 나가는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제 필요한 것이 "술은 반취(半醉), 꽃은 반개(半開), 복(福)은 반복(半福)"이라 했다. 술을 마시되 만취(滿醉)하면 '꼴' 사납고, 꽃도 만개(滿開) 상태보다 반쯤 피었을 때가 '더' 아름답다. 사람 사는 이치(理致)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충분한 만족(滿足)이란 있기도 어렵거나 와 혹 그렇다면 인생이 위태로워 진다. 결핍은 부실함이 아니라 채워질 수 있는 가능성이다. 결핍은 견디기 어려우나, 오히려 풍요가 우리를 타락시킨다는 게 나의 철학이다. 어려운 상황은 사람을 분발하게 하지만 안락한 환경에 처하면 쉽게 죽음에 이른다. 맹자는 이를 "生于憂患 死于安樂(생우우환 사우안락)"이라 했다. 이를 말 그대로 하면, '우환이 나를 살리게 할 것이고, 안락이 나를 죽음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뜻이다. 결핍으로 불편 해져야 삶이 자란다는 거다. 오늘 아침 인동초 꽃 사진에서 시작된 사유이다.


거친 길을 걸어라/박노해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거친 음식을 먹어라
야생의 대지에서 거칠게 자라난
야채와 곡식을 거친 상태로 먹고
햇살과 바람의 거친 땅을 걸어라
병을 달고 죽고 싶으면
부드러운 음식을 먹어라
흰 쌀과 흰 밀가루와 살찐 고기를
부드럽게 가공한 상태로 먹고
편리한 도시공간을 바퀴로 달려라
인생에서 중요한 게 건강뿐일까
네 영혼도 사랑도 마음의 평화도
거친 진실과 정의를 씹어 먹어라
거친 저항과 시련의 길을 함께 걸으라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