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늙는 게 아니라 선명해지는 것이다.

3319.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6월 28일)
1
봄의 꽃들이 다 지고, 뜨거운 여름에 당당히 피는 꽃이 능소화(凌霄花)이다. 말 그대로 하면, '하늘을 업신여기며 피는 꽃'이다. 오늘 사진은 지난 주말 세종 호수가를 산책하다가 찍은 것이다. 꽃 피우는 것을 힘들어 하는 꽃들은 없다고 본다. 핀 꽃이 덥다고 모습을 바꾸는 꽃들도 없다. 장마에 귀를 활짝 펴고 웃는 능소화를 보라. 일반적으로 꽃이 피고 질 때는 꽃이 시들어서 지저분하게 보인다. 그러나 능소화는 꽃이 질 때 예쁜 모습 그대로 뚝 떨어진다. 꽃이 시든 채 나무에 매달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서 옛날 양반집에 주로 이 능소화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능소화는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비가 오는 때를 기다려 수십 개의 주황색 나팔을 불어 댄다. 다른 꽃은 바람 불고 비가 내리면 꽃잎을 닫지만 능소화는 그렇지 않다. 한번 펼쳐낸 꽃을 다시 오므리는 법이 없으니 자존심 하나만은 최고이다.
난 능소화를 보면 슬픈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궁궐에 소화라는 궁녀가 있었다. 그녀는 임금에게 눈에 띄어 하루 아침에 빈(嬪, 후궁)의 자리에 오른다. 그러자 다른 궁녀들의 시샘과 음모로 이어져, 두 번 다시 임금을 볼 수 없게 된다. 그녀는 기다림에 지쳐 병이 들어 죽은 후, 궁 담장에 묻어 달라는 유언대로 묻혔다. 그 자리에서 자란 덩굴이 능소화라 한다. 기다리다 지쳐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담을 뛰어 넘는다. 능소화의 '능(凌)'자는 ‘능가하다, 깔보다'라는 뜻이고, '소(宵)'자는 ‘하늘 소'자이다. 그러니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덩굴의 기운 때문에 능소화라고 한다. 슬프다. 동시에 이 꽃은 과거 시험에 장원 급제하여 말을 타고 금의환양(錦衣換陽)할 때 머리에 쓰던 화관으로 장식했다고 해서 '어사화(御使花)'라고도 부른다. 조심할 것은 꽃에 반해 꽃을 따다 가지고 놀면, 꽃의 충이 들어가 실명(失明)을 할 수도 있단다. 능소라는 제목으로 쓴 시를 알고 있다.
능소화/안소연
여름에 활짝 피는 꽃처럼
뜨거운 내 마음도
당신을 향해 피어 있어요
여름이 지나고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그대로 툭 떨어지는
꽃이 되기는 싫어요
하지만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면
가장 활짝 피었던 모습
그대로 떨어질 테니
그때의 모습으로 기억해주세요
차가운 바람이 불기 전에
툭 하고 떨어지기 전에
다시 나에게 돌아와 주세요
2.
어제는 서울에 가서 하루 종일 지내다 왔다. 그래 어제 <인문 일지>를 오늘 아침에 공유한다. 흘러가는 세월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한 가지이다. 바로 나 자신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내가 가진 색깔을 잃지 않고 타인과 조화를 이루며 더욱 아름다운 빛깔로 선명해지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늙는 게 아니라 선명해지는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은 나 자신이어야 한다. 나이가 드는 것은 '그저 세월의 흐름일 뿐'이지 나의 쓸모가 없어지는 게 아니다. 나이들 수록 지켜야 할 다음 5 가지 실천 항목을 공유한다.
▪ 남을 바꾸지 말고 나를 바꿔야 한다. 딸과의 관계에서도 내가 바꾸면 딸도 바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을 고칠 생각만 할 뿐 자신을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한 번 바뀌는 것이 남이 열 번 바뀌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다.
▪ 분노할수록 수준이 드러나는 법이다. 화를 내지 말자. 더 나아가 다투지 말자. 분노한 지점이 바로 나의 지적 수준이고, 반박하고 싶은 지점에 나의 결핍이 있다. "이건 상대에게 분노할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돌보아야 겠구나, 이 부분에 나의 결핍이 있었구나"라고 생각한다.
▪ 누군가 에게 이유 모를 질투를 받는다면 성공했다는 증거이다. 사람들은 누군가 의 성공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첫 번 째는 부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성공, 두 번 째는 사실은 대단한 게 아니라 무시해도 될 정도의 성공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당신을 질투한다면 오히려 기뻐해라. 질투의 시선은 아무나 받을 수 없다. 넘볼 수 없는 결과를 만든 이에게만 주어지는 칭찬이다.
▪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둔다. 사람들은 내가 아는 것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세상의 이치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나에게 맞는 것이 상대방에게는 틀릴 수 있고, 상대방에 맞는 것이 나에게는 틀릴 수도 있다. 이를 모르는 사람은 기어코 무지함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 혼자 살 수 있어야 행복하다. 고독은 나를 더 깊어지게 한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여야 한다.
3
사람들을 만났을 때 해야 할 '말 조심'의 유형들이 있다. 입으로 짓는 죄는 칼로 짓는 죄보다 큰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을 만날 때 가끔은 벙어리가 되는 것도 좋다. '어떤 말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해선 안 되는 말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다음의 다섯 가지 말은 가급적 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 묻지도 않은 사생활에 대해 말하지 말라. 자신의 이야기를 함부로 나누지 말라는 거다. 그 말은 말하는 자의 자유를 묶는다. 누군가에게 내 사생활은 흥미거리일 뿐이고, 언젠가는 약점이 될 수 있다.
▪ 남의 단점을 험담하지 말라. 타인의 허물을 말하는 순간, 나의 마음도 탁 해진다. 그 사람은 떠나도, 내가 한 말은 남는다는 것을 명심하라.
▪ 나의 약점을 드러내지 말라.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상처를 여기저기 자랑하며 퍼뜨리지만, 지혜로운 자는 고요히 그것을 치유한다.
▪ '나는 이런 사람이다'며 자랑하지 말라. 자신을 자랑하는 이는 아직 자신을 모르는 자이다. 나는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 자랑은 곧 결핍에서 비롯된 소음이다.
▪ 모르는 걸 안다고 하지 마라. 무지를 감추려고 떠들어댈수록 더 큰 어리석음이 드러난다. 내가 모른다'는 걸 아는 것, 그것이 진짜 지혜의 시작이다.
4
지혜로운 사람은 자랑을 조심한다. 말은 그 사람의 중심을 드러내는 법인데, 무엇을 자랑하는지는 곧 그가 무엇에 기대어 사는 지를 보여준다. 기대고 살지 않아야 자유롭다. 무언 가에 의존하는 자는 독립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생에는 오히려 말하지 않아야 더 깊어지는 것들이 있다. 무엇을 자랑할수록, 그 사람의 공허한 중심이 드러난다. 말로 내세우는 것은, 실제로는 자신이 의심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진짜 소중한 것은 조용히 간직해야 한다. 깊은 사람일수록 말이 적다.
▪ 돈 자랑 하지 않는다. 돈이 많다는 말은 결국 가난의 냄새를 풍긴다. 돈 이야기를 자주 꺼내는 사람은 과거에 가난을 깊이 경험했을 가능성이 높다. 돈을 자랑한다는 건 돈에 정체성을 맡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돈은 조용히 쓸 때 힘이 세다. 떠벌릴수록 경계의 눈초리를 부른다. 사람은 돈이 다가 아니다.
▪ 인맥 자랑하지 않는다. 인맥 자랑은 스스로를 비워버리는 일이다. 유명 인이나 성공한 사람들과의 친분을 말하는 순간, 나의 존재감은 그 사람들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다. 자주 인맥을 자랑하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내세울 만한 실적이 없다는 뜻일 수 있다.
▪ 자식 자랑하지 않는다. 자식 자랑은 타인의 상처를 건드릴 수 있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누군 가에게는 아픔이 된다. 자식이 없거나, 관계가 좋지 않거나, 비교 속에서 힘들어하는 사람에게는 독이 된다. 자식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서로를 배우는 존재다.
▪ 외모 자랑하지 않는다. 외모 자랑은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외모는 누구에게 나 유효 기간이 있다.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면 할수록 그 사람의 내면은 비어 보인다. 진짜 아름다움은 말하지 않아도 풍기는 것이다. 말로 꺼낸 순간부터 가벼워진다.
5
이런 실천 사항들의 철학 근거는 소유적 삶에서 존재적 삶으로 전환하는 거다. 존재는 '있다'이고, 소유는 '가짐'이다. 석가모니는 존재, 즉 있다는 있다가 없다가, 생겼다 없어졌다(생멸)하는 공(空)으로 보았다. 그러니까 '공'은 아무 것도 없다가 아니다. '끊임없이' 바뀌고 변화한다는 말이다. '끊임없이' 세상은 끊임없이 이어져 있는 '인드라망'이라는 것이다. 인드라망은 불교의 연기법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는 말로써 불교에서 보는 세상에 대한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인드라(Indra)'는 본래 인도의 수많은 신 가운데 하나로 한역하여 제석천(帝釋天)이라고 한다. 신력(神力)이 특히 뛰어나 부처님 전생 때부터 그 수행의 장에 출현하여 수행을 외호(外護)하는 신으로 표현되고 있다. 바로 이 제석천의 궁전에는 무구한 구슬로 만들어진 그물(= 인드라망)이 있다. 그물은 한없이 넓고 그물의 이음새마다 구슬이 있는데, 그 구슬은 서로를 비추고 비추어 주는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또 그 구슬들은 서로를 비출 뿐만 아니라 그물로서 서로 연결되어져 있으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세상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마치 스스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서로가 연결되어져 있으며 서로 비추고 비추는 밀접한 관계속에 있다. 또 이것은 인간관계 뿐만 아니라 세상과 인간과의 관계로도 해석할 수 있다.
존재는 이어져 있지만, 소유는 끊어져 있다. 소유는 이어져 있지 않고 끊어져 있다. 따로따로 있어, 각각 이어서 각자 가지고 산다. 그래 존재는 '있다'이고, 소유는 '가짐'인 것이다. 그냥 있는 대로 두면 되지, 가지려 하는가? 소유 의식은 내일에 대한 근심 걱정에서 생긴다. 그러다 보니, 존재-'있다'로 존재하고 싶다.
그리고 '있고 싶다', '되다'를 되고 싶다, '하다'를 '하고 싶다', '이루다'를 '이루고 싶다'로 보기 때문이다. '싶다'가 근심 걱정, 괴로움의 뿌리이다. '싶다'의 마음을 비우고, 되는 대로, 그 상황을 받아들이면, 괴로움이 사라진다. 존재 방식의 삶과 소유 방식의 삶을 '무위의 삶'인가 아니면 '유위의 삶'인가로 나누어 볼 수도 있다. '억지로', '일부러'가 아닌 물의 흐름처럼 자연스럽게 하루를 맞고, 그 하루를 상황에 맞추어 충만하게 보내는 것이다. 그 충만함 속에는 기쁨과 평안이 있어야 한다. 그건 옳은 일을 하고, 바른 길을 걸어갈 때 생기는 느낌과 기분이다. 어제 그렇게 보냈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