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인간이란 함께한 짧은 순간들만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신비한 존재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6. 29. 10:16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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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6월 29일)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위해서는 나와 타인을 구별하여 나의 가치를 높이려는 범주화의 열망과 그런 범주화로부터 벗어나려는 의지를 지녀야 한다. 다시 말하면, 승자와 패자로만 구분되는 범주화에 맞서, '그만하면 괜찮은 평범함'을 찾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지나치게 틀에 박힌 범주화(성공 아니면 실패)에서 탈피해 또 다른 심리적, 사회적 지평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거다. 이렇게 해서 빈약한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가 읽고 있는 <<평범하여  찬란한 삶의 향한 찬사>>에서 저자 마리나 반 주일렌은 다음과 같이 네 가지를 제안하였다.
1. 다름을 드러내는 데 두려워 하지 않기
2. 타인에게 낯선 세계가 있음을 인정하기
3. 사소한 몸짓에 관심 기울이기
4. 나에게 관대한 만큼 타인에게도 관대하기

우리는 관계가 복잡 해질까 봐 겉모습만을 보고, 다른 사람들을 성급하게 판단한다. 그러나, 한계와 편견을 뛰어넘어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쉽지 않지만, 우리는 한 인간의 특성이 지닌 상대적 가치를 인정해야 하고, 적어도 언뜻 평범해 보이는 이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다를 뿐, 열등한 것은 아니다.

'낙인효과(stigma effect)'라는 말이 있다. 과거의 어떤 행위나 모습만을 보고 단정지어 생각하고 낙인을 찍어 평가하기 시작하면, 그 평가의 대상이 된 사람은 점점 행동이 위축돼 평소 가진 능력 마저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더 쉽게 말하면, 낙인효과는 상대로부터 무시나 치욕 등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당사자가 점차 그 부정적인 모습으로 변해가는 현상을 의미한다. 낙인이라는 말의 영어 stigma는 '뜨거운 인두(불에 달궈 옷의 솔기나 모서리 구김살을 펴는데 사용하는 도구)로 가축의 몸에 찍는다는 말이다. 낙인 효과는 낙인 찍힌 사람이 계속 부정적으로 보인다. 미국 사회학자 하워드, 베커에 따르면, 처음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범죄자라는 낙인을 찍으면, 결국 그 사람 스스로 범죄자라는 정체성을 갖고 다시 범죄를 저지른다고 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차이로 엮이고 풀리며 직조되는 거대한 태피스트리(tapestry)로 비유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거대한 태피스트리에 한데 엮어 있는 씨줄과 날실이라면, 우월하거나 열등하다는 말로 구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러니 타인들 과의 관계에서 그저 칭찬을 주고받거나 자신의 차이를 드러내고 그 차이 안에서 상호성을 발견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여기서 상호성이란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다름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을 '불투명성의 권리'도 있다. 이 '권리'는 에두아르 글리상이라는 사람이 주장한 것이다. 그에 의하면, 우리에게는 타인에게 투명하게 이해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자체를 거부하고,. 동시에 설명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거다. 그러면 우리는 타인에 대한 나의 불투명성을 자책하지 않고 그의 불투명성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우리는 상대방과 소통할 때 습관적으로 나오는 태도와 자세를 바꿔 볼 수 있다. 불투명성을 인정할 때, 우리는 우리가 예상한 범주 바깥에 있는 타인과 교류할 수 있다. 이제 타인을 구분하고 범주 화하는 행위에서 벗어나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타인들에게 이해되지 않을 권리가 있으니,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을 존중하며 거리를 두는 거다. 그런 영역을 고수하는 것이 함부로 이해되지 않을 권리를 지키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인간이란 함께한 짧은 순간들만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신비한 존재이다. 인간의 '불가해성'이 인간을 진정으로 신비롭게 한다. 그러니 우리는 타인의 신비를 한없이 존중해야 한다. 이 일은 현실에서 어렵지만, 문학에서는 가능하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 다른 방법으로는 실현할 수 없는 삶을 살아 볼 수 있고, 다양한 가능성, 터무니없는 결말을 상상해 볼 수 있다. 특히 소설이 그렇다.

미국 작가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어크로스 펴냄)에 따르면, 소설 읽기는 타자에 관한 관심과 자기에 관한 관심을 결합하는 적극적 행위다. 타인의 삶을 떠올리면서 그 행위의 동기와 목표를 이해하는 연습이고, 타인의 삶, 타인의 감각, 타인의 고뇌를 자기 안에 데려오는 훈련으로, 우리는 이를 통해 자기 인생이 멀 리까지 확장되는 듯한 기적적 체험을 할 수 있다. 또한 소설 읽기를 통해 우리는 다양한 환경에서 인간이 어떻게 사는지를 공감하고 이해하는 인지적 유연성을 기르고, 어휘력과 언어 능력을 끌어올려 삶을 신선하고 세련되게 바라보고 표현하는 법을 깨달을 수 있다.

소설을 통해 우리는 타자의 삶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 있는 다양한 목소리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고, 그 목소리들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같은 사람이자 다른 사람일 수 있고, 한 사람이자 여러 사람일 수 있다. 또 타인의 인식에 다가가면서 그에게 공감할 수 있고 완전히 다른 삶을 경험해볼 수 있다. 소설가들은 다양한 주인공들의 비밀 속으로 우리를 데려가려, 그중 일부는 때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수수께끼를 푸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타인을 한마디로 규정하거나 칭찬과 비난을 퍼붓고 싶은 마음을 자제하고 타인의 불투명성을 인정하면서, 타인에 대한 판단을 유하는 것은 상대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에 대한 판단 유보는 타인과의 소통을 방해하는 경쟁심이라는 장애물을 제거해 준다. 우리가 겉보기에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을 과소 평가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그들을 우리가 정해 놓은 성공과 실패의 범주로 분류해서 판단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사소한 몸짓과 사소한 결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많은 것들이 우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성공에만 집중해 그것을 쉽사리 판단하고 평가한다. 이력서로만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은 그 사람의 영혼을 짓밟는 일이다. 기존의 평가 방식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 곳곳의 불투명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타인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을 헤아려보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위한 훈련이다. 타인에게서 예상을 벗어난 모순적인 면을 발견하고 당황할 때,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을 멈추거나 유보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소한 몸짓, 헤아릴 수 없는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낯선 누군가를 마주했을 때 그를 천천히 관찰하고, 판단을 유보하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경청하고, 그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야 말로 타인을 존중하는 일의 시작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취보다 타인의 움직임과 소리, 몸짓과 망설임에 관심을 기울일 때, 우리는 인간이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  단정적이고 획일적인 판단 기준을 버리고, 우리는 행간을 제대로 읽어내고 보다 다양하고 풍성한 표현으로 타인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만하면 괜찮다'와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마음을 보다 깊이 있게 들여다 보게 된다.

소소한 것, 하찮은 것, 다른 것, 심지어 무관심한 것을 인정하는 일은 누군가 가진 경험의 역사를,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삶의 궤적을 헤아려 보려는 노력이다. 모든 것을 명확하게 볼 수 있다고 자만하는 대신 판단을 유보해 보는 거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관심을 가질 때 에야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가장 하찮아 보이는 것이 진부한 판단 방식에서 우리를 벗어날 수 있게 해주고, 대단하고 중요한 것의 폭정에서 우리를 지켜준다.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이라는 말이 소환된다. "춘풍추상"이라고도 한다. <<채근담>>에 나오는 말이다. 남을 대할 땐 봄바람처럼, 너그럽게 하고, 나를 지킬 땐 가을 서릿발처럼 엄하게 하라. 생각이 너그럽고 두터운 사람은 봄바람이 만물을 따뜻하게 하는 것과 같다. 그 반대가 '내로남불'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을 줄인 것이다. 내가 침묵하면 깊이 생각하느라 그런 것이고, 남이 침묵하면 생각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내가 화내는 것은 주관이 분명해서 이고, 남이 화내는 것은 성격이 더러워서 라고 생각한다.

늘그막이 되어 좋은 점은 느긋이 기다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다. 되면 좋고, 안 되어도 그만이다. 뚜렷한 목표가 없는 것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 과실나무가 있는 것은 꼭 익은 과실을 얻기 위함은 아니다. 잎도 좋고, 꽃도 좋고, 새파랗게 달리는 열매도 좋다. 그리고 달콤한 맛도 보게 될 것이다. 기다리지 않아도 언젠가는 온다. 그것이 제대로 익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익어가고 싶다. 나에게 관대한 만큼 타인에게도 관대하자.

익어 떨어질 때까지/정현종

기다린다, 익어 떨어질 때까지,
만사가 익어 떨어질 때까지,
(될성부른가)
노래든 사귐이든,
무슨 작은 발성(發聲)이라도
때가 올 때까지,
(게으름 아닌가)
익어
떨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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