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문제는 이 6,25 전쟁이 끝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6. 25. 17:23

3315.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6월 24일)

1
오늘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아침에 북한 공산군이 남북군사 분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 남침함으로써 일어난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있었다. 1953년 7월 27일까지 3년 1개월(1129일)간 있었던 동족 간의 전쟁이었다. 이를 우리는 6,25전쟁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 6,25 전쟁이 끝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아직도 이름 그대로 '정정 협정'이 체결된 상태이니까 73년간 끝나지 않은 휴전 상태가 계 속되고 있는 진행형이다. 우리 헌법 제 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이고, 헌법69조는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 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 한다. 이번 대통령은 잘 할 것으로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이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승패와 관계 없이 우리 모두 공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눈에 우리 사회는 극단적 자유시장경제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되었고,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매일 매일 무한 경쟁을 치러야 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연대이니 협력이니 찾아 볼 수 없고, 승자독식의 싸늘한 논리만 존재한다. 이건 정글이다. 우리 사회는 양육 강식의 정글 자본주의 사회이고, 시장이 인간을 잡아먹는 야수 자본주의 사회이다. 그 대안으로 나는 막연하게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꼽았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 해소,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 그리고 문화와 예술 향유를 통한 경쟁이 아닌 여유로운 '저녁이 있는' 삶을 우리의 시대정신으로 여겼다. 그리고 나는 최근에 여기에다 승자 독식 사회에서, 모든 것을 다 가지려고 하는 엘리트 들과의 전쟁을 덧붙인다. 이건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프랑스도 가장 핫(hot)한 이유이다. 엘리트들이 구축한 기득권 세력들이 이젠 적폐이다. 

펜싱에서 쓰이는 용어로 "Touche(뚜쉐)"가 있다. 한국 말로 하면 과거분사로 수동적인 의미를 띤, '다았다, 맞았다, 찔렀다'쯤 된다. 펜싱은 찌른 사람이 아니라 찔린 사람이 '뚜쉐'라며 손을 들어 점수를 주는 시합이었다. 우리 사회는 '멋있게 지는 법'을 잃어버렸다. 우리 사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면 그 승리를 독점하고(승자독식사회), 게다가  그 승리를 지나치게 우상 화하는 경향이 짙다. 

2
아기를 두고 서로 자신의 자식이라 주장하던 두 여인 앞에서, 왕은 신하에게 “아이를 둘로 나누어 주라”고 명령한다. 그 말에 한 여인은 울부짖으며 말한다. “살아 있는 이 아이를 차라리 저 여인에게 주십시오. 아이를 죽이지 마십시오.” 다른 여인은 왕의 명령에 따르겠다고 말한다. 솔로몬은 아이를 살리려 한 여인이 진짜 어머니임을 간파하고, 아이를 그 여인에게 넘긴다.

이 판결 이야기는 솔로몬의 지혜를 소개하기 위해 자주 인용된다. 솔로몬이 왕이 된 직후 하나님은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솔로몬은 자신이 어린아이 같고 백성을 다스릴 능력이 없음을 고백하며 ‘지혜로운 마음’을 달라고 간청했다. 이 말의 히브리어 표현인 ‘레브 쇼메아’의 문자적 의미는 ‘듣는 심장’ 혹은 ‘듣는 마음’ 이다. 듣는 마음이란 단순히 타인의 말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사람의 내면을 식별하고 고통의 신호를 감지하는 능력, 숨겨진 진실을 알아차리는 통찰력을 뜻한다. 솔로몬의 재판 이야기는 ‘듣는 심장'이 무엇인 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이 말하고 행동함으로써 세계와 관계를 맺는다고 말한다. 말하기와 듣기의 공적 공간이 열릴 때, 진정한 정치가 시작된다. 정치란 권력을 행사하는 기술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서로의 말을 이해하고 응답하는 능력이다. 한국 사회는 지난 수년간 깊은 분열과 갈등을 겪었다. 정파 간의 다툼, 혐오와 배제의 언어, 사회적 신뢰의 해체는 정치의 기반을 흔들어 놓았다. 이런 때일수록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말 잘하는 능력이 아니라, 듣는 능력이다. 하지만 말은 넘치고 ‘듣는 마음'은 결핍된 시대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수많은 이들이 말할 권리를 박탈당한 채 살아가고 있다. 참사 피해자, 성폭력 생존자, 이주노동자,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 산업재해 유가족, 그리고 위안부나 강제징용 피해자처럼 역사의 고통을 온몸으로 감당해 온 이들. 이들은 때로는 차별당하고, 때로는 외면당한 채, 자신을 지켜줄 언어를 갖지 못하고 침묵 속에 살아간다. 이들의 침묵을 마음으로 듣는 정치가 아니라면, 어떤 정치도 정의로울 수 없다.

정치인은 국민으로부터 위임 받은 권한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행사해야 한다. 그 권한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듣는 마음을 잃는 순간 권력은 독선에 빠지게 마련이다. 솔로몬조차 말년에 이 마음을 잃었다. 부와 권력, 외교적 성공이 그의 감각을 무디게 했고, 생명 중심의 통치는 업적 중심의 통치로 변질됐다. 백성은 섬김의 대상이 아니라 동원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그의 죽음 이후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분열됐다. 듣는 정치를 잃어버린 대가는 너무도 컸다.

말하기의 정치에서 듣기의 정치로, 권위의 정치에서 관계의 정치로, 기계적 평등의 정치에서 생명 중심의 정치로 나아가야 할 때다. 말할 권리를 잃은 이들의 감춰진 신음에 귀를 기울이고 이들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정치의 계절이 열리기를 바란다. 듣는 마음이 야말로 정치의 시작이며, 분열된 사회를 꿰매는 질긴 실이다.

4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하여 가까운 것이 아니고, 자주 못 만난다 하여 먼 사이도 아니다. 말을 많이 한다 하여 다정한 것이 아니고, 말이 없다 하여 무심한 것도 아니다. 겉보다 속이 중요하다. 장점을 보고 반했으면 단점을 보고 돌아서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사는데 최고의 재산은 좋은 관계다. 사람이 사는 거 별 것 없다. 거의가 같다. 속속들이 알고 보면 모두 도토리 키 재기다. 가까이 다가가 봐라 삶의 무게 없는 사람 있나, 살펴봐라 고민 없는 사람 있나, 물어봐라 사연 없는 사람 있나, 건드려 봐라 눈물 나지 않는 사람 있나, 찾아봐라 힘들지 않은 사람 있나, 꾹 짜봐라 슬프지 않은 사람 있나, 털어봐라 아프지 않은 사람 있나.
▪ 행복해지기를 바라지 말고 행복한 길을 찾아야 한다. 
▪ 좋은 하루가 되길 바라지 말고 좋은 하루를 만들어가야 한다. 
▪ 좋은 사람을 찾지 말고 항시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좋은 조건을 찾지 말고 좋은 조건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 좋은 친구를 찾지 말고 좋은 친구가 되어주려고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당신은 나이만큼 늙는 게 아니라 당신 생각만큼 늙는 걸 스스로 깨닫고 체험하게 된다. 그래서 노년은 생각보다 멋진 아름다운 삶이다.

4
어느 지인의 말처럼 30년은 멋 모르고 살고, 30년은 가족을 위해 살고, 이제 남은 시간들은 자신을 위해 살라는 말이 있다. 삶의 여정 중에서 지금이 가장 좋은 나이다. 많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연륜이 쌓이고 비우는 법도 배우고 너그러움과 배려도 알 수 있는 나이, 이제 담담한 마음으로 삶의 여백을 채울 수 있는 나이다. 눈이 침침하여 잘 안 보이고 귀가 멀어져 소리가 들리지 않고 말과 걸음걸이가 어눌해져 가지만 추하게 늙지 않아야 한다. 늙어가는 사실을 인정하고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며 욕심을 못 버리고 더 큰 욕심에 자신을 확대하고 주변 사람까지 힘들게 하는 그런 짓거리 부디 강물에 띄어 버리고, 늘 호기심 있게 눈을 반짝이면서 사랑이 넘치는 자애로운 늙은이 답게 살아가야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늘 관대하고 도울 수 있는 일을 찾아 즐겁게 살면서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여유 있게 늘 주변을 돌아보며 어떤 도움을 어떤 방식으로 줄까? 고민하는 노년이 되어야 한다. 어른 대접 안 한다고 불평하지 않고 대접받을 만한 근사하고 멋이 넘치는 그런 노년으로서 '할 일이 많아 잠잘 시간도 없다'라고 불평할 정도가 돼, 오라는 데가 많아 사람들과 정 나누다 보니 가족과는 가끔 행방불명에 야단법석을 떨도록 그렇게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하여 젊은이들이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라고 부러워하도록 멋지게 늙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미소 지으며 한 걸음 더 하늘나라로 반짝 다 가야 한다.

늙는 것을 더 소중하게 여겨 늙는 것이 두렵지 않고 늙는 걸 감사하고 고맙다 여겨야 한다. 감사함을 알고 소중함을 알고 빈 마음으로 바라볼 때 천국이 바로 지금 사는 이 세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왕복 표가 없는 인생 한 번 가면 다시는 못 올 인생이기에 늦게 나마 자신의 삶을 멋지게 채색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육체는 늙어가도 마음은 늙지 않게, 그리고 젊은이 못지않게 더 깔끔하게 가꾸고 더 다듬어야 한다. 이걸 아는 사람은 멋있는 늙은이고, 멋있는 늙은이는 언제 까지나 마음은 늙지 않을 게다. 채홍정 시인의 글을 갈무리 한 것이다. 나도, 시인처럼, 멋지게 늙고 싶은 마음이다.

5

채홍정 시인의 글을 읽다가 나무 늘보라는 동물이 소환되었다. 위 사진이 나무 늘보이다. 한국어는 나무와 느림보를 뜻하는 늘보의 합성어인 나무늘보, 북한에서는 게으름뱅이라고 하는, 그야말로 이름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동물이다. 너무 느린 움직임 탓에 무능한 동물이라는 인식이 있으나 실은 나름대로 환경에 적응을 한 케이스다. 움직임이 느린 원인은 근육 량이 적기 때문인데, 대신 그만큼 에너지 소모량도 적다. 신진 대사가 극단적으로 느려서 적은 양의 먹이만 있어도 살아갈 수 있고, 배설도 1주일에 단 한 번만 할 정도라고 한다. 또한 소화도 50일 동안 한다고 한다. 여기에 체중도 매우 가벼워서(약 2~8kg정도), 나무에 매달린 채로 식사를 해결하는 것이 가능하다. 너무 안 움직이는 탓에 눈에 잘 띄지 않아 역으로 의태가 되어 생각보다 천적도 많지는 않은 편이다. 나무늘보의 털에는 녹조류가 많이 서식하기 때문에 몸 전체가 녹색을 띠는데, 그래서 나뭇잎 색깔과 구별이 잘 되지 않아서 천적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다. 여기에 보태서 잠이 많다. 하루 20시간 이상 잔다고 한다. 식사 중에 졸기도 한다. 땅바닥에 내려오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그나마 1주일에 한 번씩 내려오는 건 배설을 하기 위해서다.

주식은 나뭇잎인데 문제는 이 나뭇잎이 영양가가 없거나 있어도 너무 적고 뱃속에 들어가서 무려 1달이 넘게 있어도 소화가 거의 안 될 정도라는 것. 얻을 수 있는 에너지가 너무 적어 차라리 신진대사를 극도로 낮추는 쪽으로 진화했다. 이 때문에 현재의 나무늘보들은 하루에 나뭇잎 3개 정도만 먹어도 충분할 정도다. 하지만 영양가가 풍부하고, 소화도 잘되는 먹이가 잔뜩 공급되는 동물원에서는 야생에 비해 활발하게 움직이는 편. 다만 어디까지나 야생에 비해서지 여전히 느리다.

다음은 오늘 공유하는 시를 소개한 문태준 시인의 덧붙임이다. "열대 우림 지역에 산다는 나무늘보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나무에 매달려서 열매와 나뭇잎을 따 먹는 것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은 몇 차례 있다. 동작이 몹시 느릿느릿했고, 털이 길었고, 특히 갈고리 발톱이 눈에 띄었다. 시인은 나무늘보가 너무나도 더디게 움직이는 이유는 그 등에 산(山)처럼 큰 짐을 지고 있기 때문일 거라고 말한다. 마치 풀을 베서 지게에 한가득 풀 짐을 지고 집으로 돌아오시던 유월의 아버지처럼 무언가 무거운 것을 등에 짊어졌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크고 무거운, 세상의 모든 고뇌임이 분명하다고 바라본다. 온갖 고뇌를 지고서 더 위쪽으로 올라가서 나무 꼭대기에, 구름 위에 올려놓고 풀어지지 않게 단단히 묶어 놓음으로써 그 고뇌가 세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노래한다. 마치 고통에 빠진 세상을 구원하려는 거룩한 성자처럼. 이러한 마음의 사용은 함명춘 시인이 한 산문에서 “담고 놓고 채우기 위한 시가 아니라 꺼내고 버리고 비우기 위한 시를 쓰겠다"고 밝힌 대목과도 연관되어 있다고 하겠다."


나무늘보/함명춘(1966~)

얼마나 무겁고 큰 것을 짊어지고 가기에
저토록 느리게 기어오르는 걸까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으니
가늠조차 할 수 없으니
그건 고뇌일 거다
그래, 지상의 고뇌란 고뇌는 모두 끌어 모아
등 위에 짊어지고
나무 꼭대기에 올려놓으려 하는 거다
다시는 지상의 그 누구에게도
돌아가지 못하도록
아예 큰 구름 위에
붙들어 매어 두기 위해 기어오르는 거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