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반대하는 것은 노자의 확고한 신념이다.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사진: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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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6월 25일)
오늘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아침에 북한 공산군이 남북군사 분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 남침함으로써 일어난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있었다. 1953년 7월 27일까지 3년 1개월(1129일)간 있었던 동족 간의 전쟁이었다. 이를 우리는 6,25전쟁이라고 한다. 카톡에서 누군가 올린 당시의 사진 20여장을 아침에 보았다. 그 참상이 상상도 안 된다. 문제는 이 6,25 전쟁이 끝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아직도 이름 그대로 '정정 협정'이 체결된 상태이니까 73년간 끝나지 않은 휴전 상태가 계 속되고 있는 진행형이다.
우리 헌법 제 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이고, 헌법69조는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 했는데, 잘 하길 바라고, 기원한다. 걱정이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승패와 관계 없이 우리는 모두 공멸한다.
부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눈에 우리 사회는 극단적 자유시장경제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되었고,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매일 매일 무한 경쟁을 치러야 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연대이니 협력이니 찾아 볼 수 없고, 승자독식의 싸늘한 논리만 존재한다. 이건 정글이다. 우리 사회는 양육 강식의 정글 자본주의 사회이고, 시장이 인간을 잡아먹는 야수 자본주의 사회이다. 그 대안으로 나는 막연하게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꼽았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 해소,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 그리고 문화와 예술 향유를 통한 경쟁이 아닌 여유로운 '저녁이 있는' 삶을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으로 여겼다. 그리고 나는 최근에 여기에다 승자 독식 사회에서, 모든 것을 다 가지려고 하는 엘리트 들과의 전쟁을 덧붙인다. 이건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프랑스도 가장 핫(hot)한 이유이다. 엘리트들이 구축한 기득권 세력들이 이젠 적폐이다.
펜싱에서 쓰이는 용어로 "Touche(뚜쉐)"가 있다. 한국 말로 하면 과거분사로 수동적인 의미를 띤, '다았다, 맞았다, 찔렀다'쯤 된다. 펜싱은 찌른 사람이 아니라 찔린 사람이 '뚜쉐'라며 손을 들어 점수를 주는 시합이었다. 우리 사회는 '멋있게 지는 법'을 잃어버렸다. 우리 사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면 그 승리를 독점하고(승자독식사회), 게다가 그 승리를 지나치게 우상 화하는 경향이 짙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는 내가 잘 아는 시인의 것이다.
뒤에 서는 아이/이태진
줄을 서면 늘 뒤에 서는 아이가 있었다
앞에 서는 것이
습관이 되지 않아서인지
뒤에만 서는 아이는 조용히 서 있기만 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뒤에 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고 난 후에도
늘 뒤에 있는 것이 편안해 보였다
주위의 시선과 관심에서 멀어져가는 것을
왜 그리도 익숙해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뒤에 선다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침묵으로 대변하고 있다
전쟁을 반대하는 것은 노자의 확고한 신념이다. 그러나 아무런 대책 없이 무작정 당하지는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가능하면 싸우지 않고 이기고, 승리를 축하하기 보다는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전쟁에 임해야 한다고 했다.
병법이란 군사를 쓰는 일이므로 전쟁이 발발했다는 뜻이다. 춘추전국시대는 전쟁이 일상화된 때였으므로, 병법은 먹고 자는 일만큼이나 흔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전쟁에서의 승리는 월등한 무력을 앞세워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노자는 그러한 승리를 진정한 승리라고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과정에서 무자비한 살육행위가 동반되고, 백성들의 삶의 터전인 논밭이 피폐해지기 때문이다. 군사를 일으키지 않는 비전(非戰)이 최선이지만 불가피하게 전쟁을 해야 할 경우에도 생명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하며 민생의 파괴가 최소화되어야 한다. 그래서 전쟁에서 주인 노릇하지 말고 손님 노릇하라고 했으며, 한 걸음 전진하는 대신 한 걸음 후퇴하라고 말한다. 팔을 쓰지 않고, 대적하지 않고, 병사를 부리지 않으면 살인과 민생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으므로 그런 방법으로 적을 물리치고, 쳐부수고, 사로잡으라는 것이다. 그 반대로 하면 큰 화를 당하게 되고, 생명과 재물의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거다. 현 정권이 배워야 할 노자의 반전(反戰) 철학이다.
그러나 노자는 전쟁 수행 능력이 없는 반전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반전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전쟁 수행 능력의 선두를 달리는 사람이어야 한다. 노자가 말하는 반전은 "겸퇴무쟁(謙退無爭)"의 사상이다. 어떻게 하면 강력한 군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군대를 사용하지 않을 수 있을 까에 대한 고민이 깊은 사람이다.
한 걸음 물러나고, 대적하지 않고, 병사를 부리지 않고서 전쟁에 임하는 이유는 평화를 사랑하고 살인과 민생파탄을 슬퍼하기 때문이다. 그런 평화주의는 '도'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강한 무기다. 간디가 비폭력 평화주의로 영국 제국주의와 싸워 이겼듯이 무력과 폭력을 슬퍼하는 사람이 궁극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한다. 그래서 슬퍼하는 자가 이긴다고 했다. 성경에서도 말한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마태복음 5장 4절).
슬픔 앞에 인간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눈물을 흘리는 일 밖에 없는 것일까?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위로를 받고 의지하고 싶을 만큼 힘들다는 말이다. 문제는 슬퍼하는 사람이 왜 행복할까 이다. 하느님이 위로를 해주시기 때문이다. 슬픔과 절망을 겪지 않은 사람의 삶은 싱겁다. 그래서 누리는 행복도 싱겁다. 우리가 명심할 것은 슬픔의 끝에는 반드시 위로가 있다는 것이다. 그 위로는 슬픔의 크기와 비례한다.
노자 <<도덕경>> 제 31장의 일부분을 읽어 본다. "兵者不祥之器(병자불상지기) 非君子之器(비군자지기) 不得已而用之(부득이이용지) 恬淡爲上(염담위상) 勝而不美(승이불미) 而美之者(이미지자) 是樂殺人(시락살인) 夫樂殺人者(부락살인자) 則不可得而志於天下矣(즉불가득이지어천하의)."
해석하면, '무기는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므로 군자가 쓸 것이 못 된다. 부득이하게 써야 할 경우 담담함을 그 으뜸으로 여기고, 승리하더라도 이를 미화 하지 않는다. 이를 미화 한다는 것은 살인을 즐기는 것이다. 살인을 즐기는 사람은 천하에서 큰 뜻을 펼 수 없다."
무기라는 것은 상서로운 것이 아니니, 군자가 지닐 것은 아니다. 부득이하게 되었을 때 사용한다. 무기를 사용할 때는 편안하고 담담함(恬淡, 염담)을 위로 삼는다. 담담함은 욕심이 없음이다. 편안하고 담담하게 있으면 무기를 사용할 일이 없다. 사용하더라도 잔인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만일 무기를 사용해 승리, 아니 이겼을 때에는 이기고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기는 것을 좋아하는 이 살인을 즐기는 자이다. 무릇 살인을 즐기는 사람은 의지로 천하를 얻을 수 없다. 사람 죽이기를 즐겨하는 사람은 자신의 뜻을 세상에 펴지 못하다는 거다. 살인을 즐기는 자는 곧 천하의 민심을 얻을 수 없다는 것으로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다 비슷한 말이다.
노자는 물, 허, 유약, 무위, 관용, "반자도지동", 문명의 축소, "절성기지", "절학무우"와도 같은 아주 평화롭고 여유로운 소박한 가치를 전했다. 그러나 노자가 <제80>장의 '소국과민론(小國寡民論)' 때문에 터무니없는 비판에 휘 몰렸다. 즉 현실 감각을 결여한 이상주의자라는 거다. 그러나 노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당대 세계질서의 평화는 대국의 올바른 세계 질서 감각과 국내 정치 운영방식에 좌우된다는 거로 보았다. 지극히 현실주의자였다. 예컨대, 제 60장에서 "치대국약팽소선(治大國若烹小鮮, 큰 나라를 다스릴 때는 작은 생선을 굽듯이 한다)"이라 했다. 이에 대해, 왕필은 "생선을 함부로 뒤집지 않듯이 나라를 함부로 뒤흔들지 않는 것이다. 조급하면 해가 많고, 고요하면 온전하여 지고 참되게 된다. 그러므로 그 나라가 대국일수록 그 군주는 더욱 고요하여 무위를 실천해야 한다. 그런 후에야 대중의 마음을 널리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라 말했다.
그리고 제 61장에서 ""대국자하류(大國者下流, 큰 나라는 스스로를 낮춤으로써 작은 나라를 얻는다)라 했다. '강한 자가 먼저 낮춰라'는 거다. 또한 제66장에서는 "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강해소이능위백곡왕자) 以其善下之(이기선하지) 故能爲百谷王(고능위백곡왕): 강과 바다가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스스로를 잘 낮추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계곡의 왕이 되는 것이다)"이라 했다.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자신을 낮추고 고집을 버렸을 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거다. 강(江)과 바다(海)가 깊고 넒은 물이 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낮추고 아래로(下) 흘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골짜기(百谷)의 물이 그 곳으로 모여드는 것이다.
그리고 노자는 끊임없이 대국의 자성(雌性, 여성성, 겸허, 낮춤, 포용, 雄性-웅성, 남성성-에 대비됨)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제 28장에서 말한 "知其雄(지기웅) 守其雌(수기자) 爲天下谿(위천하계): 남성 다움을 알면서 여성 다움을 유지하면 천하의 계곡이 된다"과 같은 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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