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마음에도 체력이 있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6. 24. 17:31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6월 24일)

사람들과의 관계 물갈이를 하는 중이다. 만나는 사람들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나에 맞추는 일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관계에서 진심이 중요하지만 더 필요한 것은 태도이다. 사람을 태하는 태도 말이다. 오랫동안 친밀했던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다 보면, 그 사람의 진심보다 나를 대했던 태도가 기억에 남는다. 태도는 진심을 읽어 내는 가장 중요한 거울이기 때문이다.

나도 새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진심보다 태도'를 장착하고 사람을 마주할 생각이다. 예를 들면, "내 마음 알지?" 속으로 외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준다. 아무 말 하지 않고 어정쩡한 눈빛으로 누군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채길 바라는 사람만큼 미련한 사람은 없다. 사람은 행동으로 진심을 보여 줘야 한다. 그 행동이 태도이다.

친구가 된다는 것은 때(타이밍)의 기술을 아는 것과 같다. 우리는 상대가 말하고 싶지 않으면 묵묵히 묻지 말아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싫은 사람 하고는 말을 섞지 않는다. 특히 사과의 타이밍이 중요하다. 그건 상대방의 감정에 대한 배려에서 시작된다. 상대가 마음을 받아 줄 타이밍을 생각하라는 말이다. 사과를 해도 전혀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다는 태도로 "옛다 받아라" 같은 성급한 사과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마음에도 체력이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에는 체력이 있다. 그걸 '바디'라고 한다. 와인을 마셔봐도 국물에 체력이 있다. 그래 "풀바디 와인이네"라고 말한다. 그럼 어떻게 마음의 체력을 쌓을까? 그건 참 사는 데 중요한 문제이다. 험난한 경쟁 사회에서 내가 가장 빨리 앞서 달리기 보다는 이 치열한 경쟁판에서 좀 더 인간 답게 살고자 하는 마음에 체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눈 깜짝 할 사이에 경쟁의 흐름에 쓸려간다. 마음의 체력을 기르려면 또 놀이와 만나는 사람의 크기를 키워야 한다. 놀이의 대상만큼 마음의 체력은 커지기 때문이다.

마음의 체력을 키운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장자는 용심(用心, 마음 씀씀이)이란 말을 했다. 장자는 형벌로 발이 잘린 왕태를 빌려 다가, 용심의 길을 다음과 같이 알려 주었다.
• 생사(生死, 삶과 죽음)에 초연하라. 나는 '생사초연'으로 기억할 생각이다. 살고 죽는 일에 마음을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 천지개벽 같은 상황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꿈쩍하지 않는 의연하고 의젓한 사람이 되라. 나는 '태연자약(泰然自若)'으로 기억할 생각이다. 아스팔트 가장자리에 여리게 피어 있는 풀꽃들은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태연자약(泰然自若) 하다. 이 꽃은 스스로에게 몰입(沒入)하여 만족하고 있다. 누구의 도움을 기다리지 않고 초연(超然)하다. 자신의 운명을 자신에게 할당된 땅의 한 구석에 뿌리를 내려, 자연이 주는 공기, 햇빛 그리고 이슬로 떳떳하게 자기 변화를 하고, 핀 것이다. 이 꽃은 그저 핀 것이다. 이 꽃은 자신이 아름다운지 모른다. 왜 피었냐고 물으면 답이 없다. 그런 실없는 질문을 받아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란 시간의 흐름에 알맞게 자신에게 몰입할 때 슬그머니 나오는 아우라이기 때문이다.
• 거짓이 없는 경지를 꿰뚫어 보고(審乎無假 심호무가), 사물의 변화에 결코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리라. 무가(無假)는 '거짓이 없는 것'으로  완벽한 경지, 궁극 실체의 경지를 뜻한다. 즉 가짜에 현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심(審)자에 방점을 찍는다. '숙고하라'는 말로 이해한다. 그러면 '불여물천(不與物遷)', 즉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 변화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즉 '명물지화(命物之化)'하고, "이수기종야(而守其宗也)"하라. '사물의 변화를 천명에 맡긴 채, 도의 근본을 지키는 것'이다. 같이 책을 읽는 우경은 도의 근본을 "불리지당지극(不離至當之極)"이라 알려 주었다. 마음 씀은 '지극히 마땅한 것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갑자기 너무 어려운 이야기를 했다. 마음을 써 보면, 한번 써 본 마음은 남는다. 안 써 본 마음이 어렵다. 서로를 향한 한결같는 마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변화가 마련인 마음을 붙잡고 서로를 토닥거리며 끌어 당길 때, 우리의 첫 마음은 흩어지지 않는다. 내가 알듯 그도 안다. 우리는 서로에게 마음을 꺼보았기 때문이다. 그냥 나무처럼 살기로 했다.

나무처럼 살기/이경숙

욕심부리지 않기
화내지 않기
혼자 가슴으로 울기
풀들에게 새들에게
칭찬해 주기
안아 주기
성난 바람에게
가만가만 속삭이고
이야기 들어주기
구름에게 기차에게
손 흔들기
하늘 자주 보기
손뼉치고 웃기
크게 감사하기
미워하지 않기
혼자 우물처럼 깊이 생각하기
눈감고 조용히 기도하기

과거를 기억할 때 우리는 과거의 일부만을 기억하고 나머지는 잊어 버린다. 그런데 분명히 기억나는 것이나 망각한 것이나 중요도로 치면 같을 수 있다. 기억하는 것이라고 중요한 것도 아니고, 잊어버렸다고 해서 안 중요한 것도 아니다. 우리가 현재 주변의 모든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결국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분류할 때, 일부를 선택해서 그럴듯하게 짜 맞추고 나머지는 배제한다. 이러한 선택과 배제는 객관적인 기준 없이 독단적으로 행해진다. 포괄적이지도 않고 객관적이지도 않다.

회복된 기억은 객관적인 과거를 되살려 낸 것이 아니다. 기억은 도구다. 기억은 우리를 미래로 인도하는 과거의 안내자이다. 우리가 과거에 나쁜 일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고 그 이유까지 떠올릴 수 있다면, 그런 나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기억의 목적이다.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다시 생각해 내는 것이 아니다. 기억은 안 좋은 사건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걸 예방하는 도구이다.

내가 만나는 상대는 세 가지가 늘 작동해야 한다.
(1) 다정: 친절하고 배려한다. 반대가 무관심과 짜증 그리고 화
(2) 근면-책임과 의무에 성실
(3) 믿음-배신하지 않는다. 반대가 낯선 존재로 과거까지 의심: 과거가 지나간 시간이라고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과거는 확정된 시간이 아니다. 현재는 혼란스럽고 불확정적이다. 상황은 끊임없이 변한다. 그에 따라 미래 역시 전혀 예상하지 않는 방향으로 흐른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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