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것들에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 야말로 진정한 삶을 가치라는 거다.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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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6월 22일)
어제는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된다는 날, 낮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지(夏至)였다. 24절기 중 열 번째 날로 망종(芒種)과 소서(小署) 사이에 있다. 이 날 지표면에 닿는 태양빛이 가장 많기 때문에 이날부터 점점 기온이 올라가, 삼복때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게 된다. 농촌에서는 단오를 전후하여 시작된 모심기가 하지 이전에 모두 끝난다. 그리고 햇감자를 캐어 쪄 먹거나 갈아서 감자전을 부쳐 먹는 시기가 바로 이 때이다. "하짓날은 감자 캐 먹는 날이고 보리 환갑이다"이라는 말이 있다. 농촌에서는 이날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고 했다. 다행스럽게 올해는 하지 다음날인 오늘 하루 종일 비가 온다. 옛날에는 하지가 지날 때까지 비가 내리지 않으면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
옆 밭에서 햇감자를 캤다. 농촌에선 이맘때가 추수 때만큼 바쁘다. 메밀 파종, 누에치기, 감자 수확, 고추밭 매기, 마늘 수확 및 건조, 보리 수확 및 타작, 모내기, 그루갈이용 늦콩 심기, 대마 수확, 병충해 방제.... 해도 해도 농사일은 끝이 없었다. 남녘에선 단오 무렵 모를 심어 이맘때 마무리한다. 장마도 시작된다. 하지 이야기다. '미끈유월'과 '어정 칠월'이라는 말이 있다. '미끈 유월'은 '농사 일로 바빠 한 달이 미끄러지듯이 쉽게 지난간다는 말이다. '어정칠월'은칠월은 한가해 어정거린다는 말이다. 회두리에 흙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그 누구나 농부다. 이제 땅의 소출이 경제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를 잊으면 헛사는 것이다. '떵떵' 거리며 산다는 말도 기실 '땅'에서 왔다. 올해도 절반이 후딱 지나가고 있다. 고물가와 경기 침체에 집단휴진까지 겹친다. 이런 사안들이 쉽게 해결될 수 있을까. 싹수가 노랗다. 계속되는 폭염으로 눈앞이 캄캄한데 세상사가 우리를 더 지치게 한다. 하지라는 절기에게 되레 겸연쩍은 요즘이다.
그렇지만, 나는 요즈음, 우리를 고달프게 하는 압박에서, 행복보다 성공을 위한 삶이 요구하는 것 들로부터 벗어난 삶에 대한 찬사를 말하고 있는 책을 재미있게 읽고 많은 위로를 얻으며, 우리가 가야야 할 삶의 길을 엿보았다. 그 책이 프랑스계 미국인인 마리나 반 주일렌의 <<평범하여 찬란한 삶의 향한 찬사(Eloge des vertus miniscules)>>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겸양의 미덕을 배웠다. 그건 겸손한 태도로 상대방에게 가급적 양보하며, 상대방을 존중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소통하는 방식이다. 키워드가 4개이다. 양보, 존중, 무아(無我) 그리고 소통이다. 볼테르는 <<깡디드>>에서 헛된 꿈을 꾸는 대신 "우리는 우리의 정원을 가꾸어야 한다"고 했다. 성공에 집착하고 세상을 정복하겠다는 야망보다는 평범을 꿈꾸라는 거다.
한 번 사는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물으며, 이 책은 여러 현인들의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극단을 경계하고 중용을 중시하라고 했다. 톨스토이는 "나는 평범함을 열망한다"고 했다. 스피노자는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변화로 이루어지며, 우리의 성격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소하고 평범한 사건들에 의해 형성되고 변화한다"고 했다. 조지 엘리엇은 "삶은 결코 완벽하지 않고, 그저 도달할 수 없는 목표를 향해 나아갈 뿐이며, 이는 곧 기쁨과 성취감의 원천이 된다"고 했다. 안톤 체호프는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찾아내는 것, 자작나무의 어린 새순이 세차게 흔들리는 것에 애정을 갖는 일은 결국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라고 했다. 조지 오웰은 "완벽한 환상보다 일상의 상대적인 불만족이 더욱 가치 있다"고 했다. 전 세계 현자들이 말하는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가 평범이라고 말했다. 삶은 완벽하지 않아 완전하고 평범함 없는 특별함은 존재할 수 없다. 오늘 아침 사진도, 우리들의 채소밭에 있는 채송화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평범하여 찬란한 삶"이란 "헛된 야망의 실현이나 비겁한 타협이 아니라 타인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자 하는 바람이며, 떠들썩한 성공 뒤에 숨어 있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려는 의지이다. 쉽게 말하면, 평범한 것들에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 야말로 진정한 삶을 가치라는 거다. 보이는 것에 집착하고, 그럴듯한 허울을 열망하며, 주연만을 꿈꾸는 이들에게 바치는 인생지침서라고 한다. 나 자신도 여기서 많은 통찰을 얻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그만하면 괜찮다'는 개념에서 출발한 '평범하고 그만하면 괜찮은 삶'이란 다음 4 가지를 말한다.
- 헛된 야망의 실현이 아니다.
- 비겁한 타협이 아니다.
- 다른 시선으로 타인을 바라보려는 노력이다.
- 떠들썩한 성공 뒤에 숨어 있는 것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려는 의지이다.
우리 주변에는 '타이거 맘(tiger mom)있다. 자녀들을 천재로 키우기 위해 호랑이처럼 자녀를 엄격하게 관리하는 타입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말로는 자기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며, 기꺼이 자기 자신을 희생한다. 반면,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mough mother) 그룹도 있다. 그들은 완벽한 엄마가 아닌 '그럭저럭 괜찮은 평범한' 엄마가 자녀와 가정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언젠가 동물의 성질에서 교육심리를 읽는 연구를 본 적이 있다. 다음과 같은 타입들이 소개되었다.
▪ 코알라맘: 아이를 하나하나 챙겨주는 부모의 심리 현상
▪ 캥거루맘: 나이 든 아이들을 집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는 왜곡된 사랑을 보이는 심리현상
▪ 울프 대디: 아빠 늑대는 자기 몸이 부서져라 가족을 돌보고 새끼들의 교육에도 참여해서 강하게 키우는 아빠이다. 캥거루 맘은 아이를 너무 약하게 키우고, 울브 대디는 지나치게 강하고 냉혹하게 키운다.
▪ 유니콘 맘: 말의 특성을 교육에 적용하는 것이다. 어미 말은 새끼 말에게 달리라고 말하는 대신, 새끼 말이 달릴 때 같이 달려준다. 어떤 일이든 강요하지 않고, 새끼가 뭔가 하려고 할 때 함께 해주는 교육을 선보인다.
'평범(平凡)'을 생각하면 나는 바로 중국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소환된다. 그의 이름은 <<중용>> 제14장에 나오는 "군자거이사명(君子居易俟命, 군자는 평범한 자리에 살면서 천명을 기다린다)"라는 말에서 거이(居易)를 따온 것이라 한다. '거이'는 '거할 거(居)'와 '평범할 이(易)'가 합쳐진 말이다. 그러니까 '평범한 곳에 거한다'는 뜻이다. 나도 내 이름 '박거이(居易)'라고 하고 싶다.
또 그의 자가 낙천(樂天)이라 한다. 이는 <<주역>>의 <계사편>에 나오는 "낙천지명고불우(樂天知命故不憂, 천명을 즐기고 알기 때문에 근심하지 않는다)"라는 말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는 낙천적이며 긍정적인 사고로 생활했기 때문에 중앙정치 무대의 격심한 당쟁에 휘말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시인은 아마도 평범한 일상을 지향하면서, 다가오는 운명이 어떤 것이든 그에 맞는 가장 최적의 인생 방법을 찾아낸 고수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시를 한 편 공유한다.
대주(對酒)/백거이
달팽이 뿔 위에서 무엇을 다투는가
부싯돌 불꽃처럼 순간의 삶이거늘
풍족한 대로 부족한 대로 즐겁게 살지니
입 벌려 웃지 않으면 그야말로 바보
나는 평범을 강조한 장지의 "이우제용(寓諸庸)"이란 말을 좋아한다. <<장자>> <제물론>에 나온다.
是故滑疑之耀(시고활의지요) 聖人之所圖也(성인지소도야) 그러기에 성인은 회의를 넘어선 빛을 지니고자 간절히 바란다.
爲是不用(위시불용) 而寓諸庸(이우제용) 그는 자기의 지혜를 내세우지 않고 모든 것을 자연의 섭리에 맡긴다.
此之謂以明(차지위이명) 이는 바로 대립과 갈등을 벗어난 밝은 지혜에 따른다는 것이다.
이 문장 나는 이렇게 읽는다. 성인은 사람들을 현혹하는 현란한 빛을 없애려 한다. 그러기에 이것이냐 저것이냐 구별하려 하지 않고 '보편적인 것(庸)'에 머문다. 이것이 바로 대립을 초월하여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밝음(明)이다.
여기서 "활의지요(滑疑之耀)"는 '희미한 빛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현란한 빛이 아니다'라는 말이고, '우제용(寓諸庸)'은 이것 저것, 옳고 그름 등을 구별하지 않고 보편적인 것에 머문다'는 말이다. 갑자기 왜 보편이며, 보편이 구체적으로 뭔가를 한 가닥 밀고 나갔더니 지극히 평범한 '평소'와 '보통'에 주목하며 이를 파자해보니, '세상에나' 의미가 드러났다. '평소(平素)'는 '본디 바탕(素)으로 돌아가 고르게(平) 한다'는 맥락, '보통(普通)'은 '통하여(通) 두루두루 영향이나 작용이 미친다(普)'는 맥락을 품고 있음에 이르니 비로소 '왜 우제용(寓諸庸)이어야 하는지 확연해 졌다.
장자는 이렇게 원초적인 하나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 '사람을 현혹하는 현란한 빛'을 없애고, 이것저것을 분별하는 시비를 넘어 모든 것을 포용하는 '보편적인 것(庸)'에 안주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이 '밝음(明)'이라고 말하면서 이를 "이우제용(而寓諸庸)"이라 했다.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지혜, 명(明)이라는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 <<장자>>에 나오는 말 중에 제일 조하는 것이 "이우제용(而寓諸庸)"이다. '모든 것을 자연의 섭리에 맡기자'는 거다. 자연(自然)의 '스스러 그러함'을 따르자는 거다. 그러기에 이것이냐 저것이냐 구별하려 하지 않고 '보편적인 것(庸)에 머문다." 여기서 '용(庸)'은 '보편적인 것' 즉 '불변의 자연'을 말한다. '우(寓)'는 '머무르다'는 말이다. '제용(諸庸)'은 '보편'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자기의 지혜를 내세우지 않고 모든 것을 자연의 섭리에 맡기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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