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6. 21. 18:21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 #복합와인문화공간뱅샾62 #세상이_달라졌다 #정희성 #평범함의_미학 #그만하면_괜찮은_삶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6월 21일)

오늘 아침 화두는 평범함의 미학이다.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중요하지 않은 것의 중요성'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대단한 무언 가가 되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 버린다. 하지만 수많은 현자들은 '사소하고 평범해도 인생은 이미 완전하며, 충분히 완벽하다'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체, 스피노자, 톨스토이, 체호프 등 현자들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중용의 ‘평범한 삶’을 가치 높게 평가했다. '평범하여 찬란한 삶'이란, 헛된 야망의 실현이나 비겁한 타협이 아니라 타인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자 하는 바람이며, 떠들썩한 성공 뒤에 숨어 있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려는 의지다. 그리하여 낮은 곳에서도 크게 배우고, 보잘것없는 것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절망에서도 희망을 보는 것이다.

어제부터 공유하기 시작한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의 저자 마리나 반 주일렌은, 이 책을 통해, 평범하여 찬란한 것, 사소하여 의미 있는 것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싶다고 했다. 성과 우선, 능력주의 등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가는 현재의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릴 만한 메시지들로 가득하다. 몇 일간 그 내용들을 공유할 것이다. 나 자신도 이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삶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 고민하고 결정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문제는 우리가 한 인간의 본질, 즉 그의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를 동일선상에 놓는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벗어나려면, 우리는 어떤 범주에도 묶이지 않는 모호성을 지닌 '그만하면 괜찮다' 개념이 필요하다. 평범함의 미학도 거기서 나온다. 이 개념은 한편에서 보면 '괜찮다'를 강조하는 듯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 보면 어떤 교만도 허용하지 않는 '그만하면'이 '괜찮다'를 뒷받침한다. 그냥 괜찮은 것이 아니라, 그만하면 괜찮은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대학 성적을 네 단계로 나눈다. 프랑스는 성적이 20점 만점으로 주어진다. 그 중 10점 이상만 받으면 통과한다. 성적은 10-11점은 '통과할 만함(Passable)', 12-13점은 '나름 괜찮음, 양호(Assez Bien)', 14-16점은 '잘했음, 우수(Bien), 17-20점은 '아주 잘했음, 매우 우수(Tres Bien)'이다.

내가 어린 시절 우리나라에서 '수-우-미-양-가(秀-優-美-良-可)로 성적을 주었다. '수'는 빼어날 수로 매우 우수하다는 거고, '우'는 '넉넉할 우로 역시 우수하다는 뜻이다.  '미'는 아름다울 미자로 좋다는 것으로 역시 잘했다는 거다. '양'은 '좋을 양'자 말 그대로 괜찮다는 뜻이다. 맨 마지막으로 '가'는 가능할 가로 충분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A-B-C-D-E로 바꾸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영어권에서는 '수-우-미-양-가'를 'Excellent-Very Good-Good-Fair-Poor'가 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가 'fair'이다. 서양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언페어(unfair)’이다. '언페어'의 반대인 '페어(fair)'란 말은 여러 뜻이 있다. 사전적인 의미로 우선 ‘공평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편견이 없는’, ‘차별하지 않는’이란 뜻이고, 또한 ‘아주 나쁘지도 않고, 아주 좋지도 않은’ 중간 정도를 뜻한다. 우리의 C 학점이 미국에서는 ‘페어’이다. 이 '페어' 학점은 공부를 잘하는 것도, 그렇다고 못하는 것도 아닌 최소한의 합격선을 뜻한다. 실제로 우리들의 인간관계를 보아도, 너무 똑똑하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바보스럽지 않은 사람이 인기이다. 페어의 세 번째 뜻은 ‘페어 플레이(fair play)’란 말을 할 때처럼, ‘규칙에 따르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페어'를 중요시하는 서양 사회는 누구나 차별 받지 않아야 하며, 규칙에 따라야 하고, 편견 없이 누구나 공평하게 대해야 하는 사회인 것이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이 ‘당신은 언페어 해!’라고 말하면, 인간관계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학연, 지연, 혈연에 묶여 불공평하게 대하고, 차별한다.  한국의 공무원 사회에서 아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되는 것도 되고, 아는 사람이 없으면 될 것도 안 된다는 조소적인 말들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공연하게 떠다니던 말이다.  

프랑스에서 시험 성적 중 'assez Bien(나름 괜찮음, 양호)' 이야기를 하다가 옆 길로 샜다. 평범하고 그만하면 괜찮은 축에 속하는 'Assez Bien'은 현실에서 대개 우수하지 않은 성적으로 평가 받는다. 사전적으로 해석하면, '대단히 괜찮다'는 뜻을 가졌음에도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긍정 신호로 보지 않고, 실패의 조짐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름 값을 전혀 못하는 평가다. 이런 식으로 '그만하면 괜찮다'는 말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영어 단어의 'fair'처럼, '평범한', '그만하면 괜찮은', '적당한', 보통'이라는 말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있지 않고, 어떤 판단을 할 때 신중을 기하게 한다고 본다. 이 단어 속에는 세속적 야망이 내는 시끄러운 소리를 듣기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삶이 내는 자그마한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거다.

'평범한', '그만하면 괜찮은', 적당한', '보통'이라는 말들은 우리를 잠시 멈춰 세우고, 무엇이든 너무 성급하게 결론 내리지 않도록 도와주며, 마침내 우리에게 포용과 연민을 이끌어 내며,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1등, 명문 학교, 칭찬과 함께 받는 최우수 학점 같은 것들에 우리의 관심이 온통 쏠리다 보면 더욱 다양하고 미묘한 결과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우리의 현재 학교 문법은 지나친 경쟁이 지배적이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우리 학교의 교실은 혼돈과 무기력에 빠져 있다. '학벌'이 새로운 신분, 계급, 특권을 만드는 거의 유일한 기준인 사회 속 교육 시스템은 상위권 대학을 향한 살인적인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이런 교실에서 아이들은 12년간 심각한 학습노동에 시달리며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로 나뉜 채 열등감과 모멸감을 내면 화한다. 그리고 교실에서부터 시작된 불행의 고리는 사회에 나와서도 이어져 대한민국을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게 한다. 교육자이자 인문학자인 김누리 중앙대학교 독문과 교수는 '우울한 나라' 대한민국의 원인에 극단적인 경쟁, 특히 경쟁 교육이 있다고 진단했다. (참고, 김누리,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

'이젠 '그만하면 괜찮다'는 말을 자주 소환하려 한다. 이 마은 나에게 또 다른 현실을 보여주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 경험 그 자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해준다. 인정 욕구도, 평가하고 비교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성도 완전히 내려놓기 어렵지만, 그 내용을 바꿀 수는 있을 것이다. "세상이 달라졌다", 오늘 공유하는 시처럼 말이다. 그래도 "그만하면 괜찮은 삶"을 살고 싶다.

세상이 달라졌다/정희성

세상이 달라졌다
저항은 영원히 우리들의 몫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가진 자들이 저항을 하고 있다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저항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밥이 되었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권력이 되었지만
우리 같은 얼간이들은 저항마저 빼앗겼다
세상이 확실히 달라졌다
이제는 벗들도 말수가 적어졌고
개들이 뼈다귀를 물고 나무 그늘로 사라진
뜨거운 여름날의 한때처럼
세상은 한결 고요해 졌다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