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한 삶에 대한 나의 원칙은 '얻고자 한다면 먼저 버려라'이다.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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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6월 20일)
가급적 조용하고 소박하게 살기로 마음 먹고 있다. 지난 주에는 프랑스계 미국인인 마리나 반 주일렌의 <<평범하여 찬란한 삶의 향한 찬사(Eloge des vertus miniscules)>>를 다 읽었다. 인류는 평범한 중간의 사람들 덕분에 살아남았다는 거다. 지은이는 "너무 높게도, 너무 낫게도 날자 말라"며, 넘치거나 부족함이 없는 중용의 '평범한 삶'을 가치 높게 평가했다. '평범하고 그만하면 괜찮은 삶'을 찬양했다. 그건 판단을 유보하고 삶이 흘러가는 길을 관찰하며 결과 보다는 과정에 관심을 두는 힘을 기르자는 거다. 그것도 내 안의 '음'의 기질을 키우는 거다. '땅'의 마음의 힘을 기르는 거다. <곤괘>의 용육(用六)에서 말하는 "이영정(利永貞)"이다. 즉 오랫동안 땅의 마음을 지켜야 이롭다. 그러니까 '평법하고 그만하면 괜찮은 삶'은 헛된 야망의 실현이나 비겁한 타협이 아니라, 타인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며, 떠들썩한 성공 뒤에 숨어 있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려는 의지를 '땅의 마음'으로 지키는 것이다.
지난 주부터 '땅'의 마음의 힘을 키우자고 천안 강의에서 강조했다. 왜냐하면, 노자도 "인법지(人法地)"라 했다. 노자 <<도덕경>> 제25장의 다음 구절에서 나온 거다. "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 이를 도식화 하면, "인-지-천-도-자연"이다. 여기서 우리는 흔히 법을 '본받다'로 해석한다. 그래 "인간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로 해석한다. 노자는, 공자처럼, 어떤 정해진 법칙들, 즉 인의예지신과 같은 가치를 유형의 가치로 결정하고, 그것을 수용하지 않는다. 무위(無爲)를 덕으로 여기는 노자가 생각하는 '법'의 의미는 다르다고 본다.
법(法) 자를 파지하면, 물(水)이 자연스런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면서, 만물을 이롭게 한다. 물은, 상선약수(上善若水, 지극하 착한 것은 물과 같다)라는 말처럼,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자신을 드러내지도 타인과 다투지도 않는다. 또한 물은 겸허(謙虛)가 몸에 배어 있어 언제나 낮은 곳으로 스스로 저절로 아무 소리도내지 않고 흘러 들어간다. 그러니까 법은 물과 같은 몸가짐이며 활동이다.
그런 측면에서 위의 문장을 다시 번역하면, 인간은 발을 땅에 디디고 살면서, 다른 인간들과 잘 어울려 살 뿐만 아니라, 지구의 동거존재인 다른 동물들과 식물들과 잘 어울려 산다. 땅에 있는 동물과 식물들은, 하늘이 가져오는 물, 공기, 햇빛을 흠뻑 받으면서, 주어진 짧은 수명을 살면서, 하늘에 한 점 부끄럼 없이 산다. 저 하늘에 있는 해, 달 그리고 모든 행성들은 지난 수 억년 동안 그랬듯이, 앞으로도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하염없이 갈 것이다. 그 길을 이탈하면 우주가 혼돈에 빠지기 때문이다. 우주가 운영하는 법칙인 도는 자연스럽다. 여기서 자연스럽다는 것은 스스로 그러하다는 거다. 그러니 너무 애쓰지 말고, 스스로 그러하게, 물과 같이, 일상을 고요하게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 저 낮은 곳으로 조용하게 흘러가는 거다.
<<주역>>에서는 <건괘>에 나타나는 하늘의 마음을 지닌 군자가, 용(龍)을 품고, 세상에 대한, 선한 삶에 대한 집착으로 물러설 줄 모르는 반면, <곤괘>에 나타나는 땅의 마음을 지닌 군자는, 말(馬)을 품고 훨씬 더 신중하게 세상을 바꾸되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할 일만 하고 물러서는 거다. 그가 물러설 수 있는 것은 권력이 아니라, 오랜 시간 이어질 가치와 정신을 만드는 데 집중하려는 거다. 이게 땅의 모습이다. 그리고 "평평하기만 하고 비탈지지 않은 땅은 없으며 가기만 하고 돌아오지 않는 것은 없다"고 했다. <<주역>> <태괘>에 나오는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다. "무평불파 무왕불복(無平不坡, 無往不復)." 위기 없는 인생은 없다. 운명의 속절 없음과 인생의 무상함을 말해준다. 계속 전진만 할 수 있는 인생도 없다. 그러니 잘 나갈 때 교만하지 말고 어려울 때 크게 위축되지 말아야 한다. 교만, 그건 인간의 속성이다. 어떤 신부님이 말했다. "교만은 인간이 죽은 후 세 시간 뒤에나 죽는다." 어제의 영웅이 오늘은 그 반대가 된다. 그래 특히 리더는 성찰의 능력과 시간을 갖추어야 한다. "고난 속에서도 정도를 지키면 화를 면할 수 있다." 난 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은 늘 함께 온다. 오늘도 성찰한다. 오늘 공유하는 시처럼 살고 싶다.
배경이 되는 기쁨/안도현
살아가면서 가장 아름다운 일은
누구의 배경이 되어주는 것이다.
별을 빛나게 하는
까만 하늘처럼
꽃을 돋보이게 하는
무딘 땅처럼
함께 하기에 더욱 아름다운
연어 떼처럼
오늘부터는 마리나 반 주일렌의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라는 책을 공유한다. 그녀가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평범하고 그만하면 괜찮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거다. 그런 삶의 아름다움은 판단을 유보하고 삶이 흘러가는 것을 관찰하며, 결과보다는 과정에 관심을 두며 사는 것이라 한다.
"평범하고 그만하면 괜찮은 삶"을 위해서는 세상을 넓게 바라보는 것을 배워야 한다. 과학은 인간들을 위해 놀라운 일을 해 왔지만 그건 현상의 한 면일 뿐이다. 과학은 쪼갠다. 지능은 대상을 분해한다. 반면에 마음은 대상을 한데 합친다. 마음으로 공감하면 큰 그림이 보이고 가깝게 느껴진다. 마음으로 관심을 쏟으면 즉시 대상과 연결된다. 만물은 연결되어 있다. 무언가를 쪼갤수록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잠시 삶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일을 멈추고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마음의 평화는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해 하고 집중할 때 오기 때문이다. 그것을 위해 우선 판단중지를 한다. "인간이 복합적인 존재라는 것은, 동일한 정황에서 누구나가 다 동일한 해석, 결정,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각자가의 얼굴과 목소리가 다르듯, 우리 각자는 다른 해석과 결정을 내린다. 그렇기에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는 등의 표현으로 한 고유한 존재가 내린 결정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그'가 아니기 때문이다. (...) 알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자의적 판단/심판을 중지하는 것[은] 인간 됨의 실천이다."(강남순)
누구나 좋은 삶을 살고 싶어 한다. 나날이 충만하고 순간순간 충실한 삶, 하루하루 들어가는 나이가 몰락의 과정이 아니라 완성으로 나아가는 여정인 삶이 야말로 우리가 이룩하고 싶은 위대한 성취일 테다. <<모든 삶은 충분해야 한다(안타레스 펴냄)>>에서 아브람 알퍼트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위대한 삶이 아니라 충분한 삶을 추구할 때, 우리 삶은 좋아진다고 말한다. 여기서 '위대한 삶'이란 더 많은 부와 명성을 누리려고 남들과 발버둥 치는 삶을 말하고, '충분한 삶'이란 자신의 불완전성을 인식하면서 적당한 여유와 윤택에 만족하는 삶을 뜻한다. 위대함을 바라고 완벽함을 좇기보다 적절함을 받아들일 때 우리 삶은 비로소 행복에 이른다는 거다.
요즈음 나의 화두가 "평범하고 그만하면 괜찮은 삶"이다. '충분한 삶'이 아닐까? 충분한 삶은 개인의 물질적 안온함이나 정신적 만족에서 그치지 않는다. 로이 바우마이스터가 말하는 소속감, 즉 "지속적이고 긍정적이며 중요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려는 보편적 욕구"의 충족도 필요하다. 완벽함을 추구하고 타인을 압도하는 힘을 기르기보다 서로 존중하고 상호 의존할 수 있는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그들과 넉넉히 시간을 함께 보낼 때 삶은 충분해진다.
나아가 '충분한 삶'은 좋은 세계에서만 가능하다. 불공정과 부정의로 뒤틀린 사회, 불평등을 양산하는 승자 독식 경제, 환경 파괴로 팬데믹과 기후 재앙이 수시로 일어나는 세상에선 누구도 좋은 삶을 누리지 못한다. 공정하고 정의롭고 평등하고 평화롭고 생태적인 사회를 이룰 때 삶은 충분할 수 있다. 무한 풍요가 아니라 적절함 속에서 만족할 줄 아는 것이 아닐까? 이 '충분한 삶'에 대한 아이디어는 편집문화실험실 장은수 대표의 글에서 얻은 것이다.
충분한 삶에 대한 나의 원칙은 '얻고자 한다면 먼저 버려라'이다. 수많은 결단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철수하는 결단이다. 버리면 정말로 필요한 것에만 집중 할 수 있다. 그러나 '노'라고 말하려면, 자신감과 비전 그리고 집념이 필요하다. 내가 늘 지침으로 가지고 있는 문장이다. "빈방에 빛이 들면(虛室生白, 허실생백), 좋은 징조가 깃든다(吉祥止止, 길상지지), 마음이 그칠 곳에 그치지 못하면(不止, 부지) 앉아서 달리는(坐馳, 좌치) 꼴이 된다."(<<장자>>, <인간세>) 빈방에 빛이 드는 것처럼, 마음을 비웠을 때 새롭게 채울 여지가 생긴다. 중요한 건 멈춤이다. 물리적인 멈춤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멈춤도 필요하다. 멈추지 않고 달리면, 앉아서 달리는 꼴이 된다. 앉아서 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그냥 마음만 바쁘지 백날 가도 제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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