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은 조율(調律)이다.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6월 20일)
깨어 있지 않고 욕심에 따라 살다 보면, 아니 까딱 잘못하면 나를 잃어버릴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그것 때문에 그만큼의 양만큼 우리는 고통을 받는다. 사랑이 클수록 실망도 크고 희망이 클수록 절망도 크다.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함께할 수 없는 지금 이 순간이 고통스럽다. 무언가를 성취하려고 노력할수록 성공하지 못할까 봐 느끼는 두려움도 커진다. 내가 원하는 것들 때문에 나는 나 스스로를 착취하고 궁지에 몰아넣는다. 이런 나로부터 나를 '수오(守吾)'하는 길은 원하는 양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를 잃지 않을 수 있다.
그걸 나는 조율(調律)이라고 하고 싶다. 너무 꽉 조였으면 좀 풀고, 너무 느슨하면 조이면서 사는 거다. 그래 사는 건 조율이다. 조율의 사전 적 의미는 '악기의 음을 표준음에 맞추어 고르는 것'이지만, '문제를 어떤 대상에 알맞거나 마땅하도록 조절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한다.' 여기서 방점을 찍고 싶은 것을 '율(律)'이라는 단어이다. '율'하면 계율이 생각난다. 계율이라면 '금지'를 먼저 생각하는데 공동 생활의 하모니를 위한 리듬이 바로 '율'이다. 그 속엔 따뜻함이 배어 있고, 따뜻함은 공감과 공명(共鳴)을 부른다.
'율'을 다른 단어로 하면, 법(法)이다. 법(法) 자를 파지하면, 물(水)의 자연스런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면서, 만물을 이롭게 한다. 물은, 상선약수(上善若水, 지극하 착한 것은 물과 같다)라는 말처럼,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자신을 드러내지도 타인과 다투지도 않는다. 또한 물은 겸허(謙虛)가 몸에 배어 있어 언제나 낮은 곳으로 스스로 저절로 아무 소리도내지 않고 흘러 들어간다. 그러니까 법인 율은 물과 같은 몸가짐이며 활동이다.
사는 것은 조율(調律)이다. 나는 어제 '율려(律呂)'라는 말을 알게 되었다. 이 말은, 국악에서, 음악이나 음성의 가락을 이르는 말'이라 한다. 생의 율려라는 표현도 가능하다. 생명의 리듬이다. 사는 것은 리듬이다. 그 리듬을 조절하는 것이 조율 아닐까? 평소와 다른 사람들과 만남, 낯 설은 장소, 낯 설은 생각들로 보낸 주말이었다. 그래 리듬을 잃었다. 이제 물과 같은 몸가짐이며 활동으로 다시 조율하는 거다.
실제로 우주는 우아한 코스모스(cosmos, 질서)가 아니라, 좌충우돌, 천방지축의 카오스(chaos, 혼돈, 무질서)이다. 왜냐하면 우주는 끊임 없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변화에는 방향도, 목적도 없다. 변화 자체만이 유일한 목적이라면 목적이다. 태양계의 중심 별인 태양은 지금도 계속 폭발 중이라고 한다. 태양의 수명은 100억 년으로 현재 50 억 살쯤 된다. 50억 년쯤 뒤에는 완전히 폭발해 은하계로 산산이 흩어질 것이다. 당연히 태양계에 속한 지구 역시 그럴 것이다. 거기다 23,5도 기울어져 갸우뚱한 상태로 자전과 공전을 하느라 바쁘다. 계절은 끊임없이 돌아오지만 단 하루도 동일한 날씨를 반복한 적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불확실하고 변화무쌍한 흐름에 차서(次序)와 리듬을 부여한 것이 역법이다. 차서와 리듬, 새롭게 다가오는 단어이다. 그 역법은 1년, 4계절, 360일, 황도, 24절기, 72 절후 등등이다. 이런 척도가 없다면 어떻게 매일, 매년, 일생이라는 주기가 탄생하겠는가? 시간과 공간의 원리이다.
차서와 리듬이라는 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차서의 다른 말이 목차인데, 좀 엄밀하게 말하면, 차례(次例)와 질서(秩序)가 합쳐진 말이다. 순서 있게 벌여 나가는 관계 또는 그 구분에 따라 각각에서 돌아오는 기회를 말한다. 시간과 공간이 합쳐진 개념이다. 리듬이라는 개념은 오래 전부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말이다. 삶을 신나고, 활기차고, 풍성하게 살려는 양생술에 필요한 것이 리듬이라 생각한다. 언젠가 이런 시를 쓴 적이 있다.
새롭게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이다. 리듬을 회복하고 싶다. 그래 아침 사진도, 어제 찍은, 리듬을 잃지 않는 강릉 바다를 공유한다. 산다는 건, 천문(天文)과 지리(地理) 그리고 인문(人文)의 삼중주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삼중주의 리듬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세 질문도 궁극적으로 이 배치 안에 있다. 그러던 것이 지금에 와서는 인간이 천지, 하늘과 땅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하늘의 별을 보지 않고, 땅을 보는 안목도 잃었다. 땅이 투자대상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 인간이 천지보다 더 높은 존재로 올라섰다. 그러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공격을 당하며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는 중이다. 이제 앎은 자연지의 광대한 지평에서 벗어나 오직 인간을 중심으로 삼는 문명지로 축소되었다. 천지인을 아우르던 그 통찰력은 한낱 신화가 되어 버렸다. 그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노자 <<도덕경>> 제25장의 마지막 구절이다.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 나는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읽는다. 인간은 발을 땅에 디디고 살면서, 다른 인간들과 잘 어울려 살 뿐만 아니라, 지구의 동거존재인 다른 동물들과 식물들과 잘 어울려 산다. 땅에 있는 동물과 식물들은, 하늘이 가져오는 물, 공기, 햇빛을 흠뻑 받으면서, 주어진 짧은 수명을 살면서, 하늘에 한 점 부끄럼 없이 산다. 저 하늘에 있는 해, 달 그리고 모든 행성들은 지난 수 억년 동안 그랬듯이, 앞으로도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자신의 리듬으로 하염없이 갈 것이다. 그 길을 이탈하면 우주가 혼돈에 빠지기 때문이다. 우주가 운영하는 법칙인 도는 자연스럽다. 물과 같이 고요하게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 저 낮은 곳으로 조용하게 흘러간다. 불안해 하지 말고, 오늘도 주어진 하루를 나도 그 리듬 속에서 살 것이다.
리듬을 타세요/박수소리
글쓰기든,
사는 것이든,
리듬이 중요하지.
리듬이 먼저 있고,
난 그 리듬에 실려 간다.
어두운 계단을
내려 갈 때도
리듬만 타면 잘 내려간다.
딴 생각 않고,
리듬만 타면 잘 내려간다.
엘리베이터에 한 발만 내디디면 그냥,
올라가는 것과 같다.
글쓰기에선 산문이 리듬 타면 그게,
시다.
사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삶이 리듬 타면,
그건 춤이다.
그래서 춤꾼은 이런 말을 한다.
춤을 출 때 생각하는 것은
댄서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다.
춤을 출 땐,
춤을 느껴야 한다.
리듬으로.
사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같이 사는 사람과 리듬이 안 맞으면,
친한 사람과 같이 걸어도 리듬이 안 맞으면,
힘들다.
모든 공부는 파도타기처럼
리듬을 배우는 것이다.
이젠 글을 두 가지 버전으로 쓴다. 길게 사유한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면 된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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