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견소포박, 소사과욕(見素包樸, 少私寡慾)"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6. 18. 16:03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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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6월 18일)

어제 마티아스 뇔케의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 이야기를 마친다고 했는데, 할 말이 남았다. 오늘도 더 이어간다. 드러내지 않아도 빛나는 현명한 태도를 위해, '내가 틀릴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의 견해를 뒤집지 못하는 진실이라고 여기지 않고 타인의 의견을 적절치 못한 충고라고 무시하지 않는 거다.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겸손함, 이는 우리가 아는 가장 온화하고 현명한 삶의 태도이다.

겸손함은 나 자신을 의심할 수도 있는 용기이다. 겉으로 반짝이는 것은 아름답지 않다. 마치 반짝거리는 모든 것은 다 겉모습에 불과할 뿐이라는 걸 증명하듯 허접 하고 추악한 실체는 결국 드러나고 만다. 표면을 약간 긁어봤을 뿐인데 아름답지 못한 이면이 드러나는 풍경을 우리는 실제로 자주 본다. 겸손한 사람들은 표면의 아래에 교묘한 속임수, 거짓말, 힘으로 위장한 약점이 감춰진 삶을 원치 않는다. 그들이 보여주는 표면 아래에는 본질, 신뢰, 진지함이 숨어 있다.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Epicurus)는 "어떻게 좋은 삶을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몰두했고, "향유와 쾌락"을 그 중심에 놓았다. 물론 그가 말하는 향유와 쾌락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시적이고 육체적인 즐거움과는 다른 의미이다. 그는 과도한 포식, 낭비와 축제 따위를 중요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작은 것으로도 기뻐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면 소박하게 자신의 삶을 충분히 향유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그런 삶을 통해 우리가 이룰 수 있는 목표는 마음의 평화, 즉 아타락시아(Ataraxis)''라고 했다.  '아타락시아'란 바로 '마음이 동요되지 않고 평안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소극적 쾌락주의'라고도 한다. 이 말은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무제한의 쾌락이 아니라, 불안과 고통을 줄여 나가는 절제된 쾌락주의자라는 말이다. 그는 행복과 쾌락을 동일한 것으로 보았다. 쾌락만이 유일하게 가치 있는 것이며, 바람직한 삶은 고통(불쾌함)을 멀리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삶이라고 본다. 그의 쾌락주의는 방탕함에 빠진 자포자기의 삶이나 식욕, 성욕의 충족과 같은 강력한 육체적 쾌락만을 추구하는 감각적 쾌락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의 붕괴로 말미암아 정체성과 소속감을 상실하였던 당시 그리스 인들에게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그들은 계속되는 전쟁과 가난, 죽음의 위협에 시달렸고, 그 결과 삶의 안정을 오직 자신의 정신과 육체라는 개인적 요소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는 가능한 개인의 쾌락을 극대화하고, 당장 현실적으로 즐길 수 있는 삶이야 말로 미래가 불확실하고 험난한 세상을 견뎌내는 바람직한 삶의 방식이라고 주장하였다.

사실 에피쿠로스는 '욕망'이라는 병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했던 정신과 의사였다. 그에 의하면,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무서운 질병은 '두려움'과 '허영'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불행은 두려움이나 허영 그리고 절제가 없는 욕망으로부터 나온다. 만일 사람이 이 감정들을 제어할 수 있다면,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자가 될 뿐만 아니라 세상을 관조하는 행복한 삶을 즐길 수 있다."

에피쿠로스에 의하면, 인간의 욕망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이다.
- 자연스럽 필요한 욕망: 인간의 생존을 보장하는 기본적인 욕망으로 먹고, 마시고, 잠자는 것.
- 자연스럽지만 불필요한 것: 식탐이나 성적 욕망과 같은 감정들. 이런 감정들은 소유하면 할수록 더욱더 갈망하게 만들기 때문에 수련을 통해 제어해야 한다.
- 자연스럽지도 안고 필요하지도 않은 것: 명예와 권력.

에피쿠로스는 "우리가 쾌락이라는 말을 통해서 의미하는 바는 육체적인 고통과 마음의 근심이 없는 상태이다"라고 주장하였다. 그에 따르면, 고통과 근심의 원인은 비자연적이고 필수적이지 않은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하는 데에서 생긴다. 그러므로 사치를 멀리하고 검소한 식사를 하면서 건강을 유지하는 것, 명예와 권력에 대한 욕구에서 벗어나 걱정거리를 제거하는 것 그리고 그것들을 통하여 개인적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행복한 삶이다.

에피쿠로스는 철학을 아주 특별한 학교에서 가르쳤는데, 바로 자신의 집 정원이었다. 정원의 입구에는 방문자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어서 오시오, 낯선 이들이여! 친절한 주인이 빵과 물을 충분히 가지고 그대를 기다리고 있나니, 이곳에서는 욕망을 자극하지 않고 달래 준다오." '숨어서 사는 삶'이라는 그의 이상은, 사회에 참여하고 적극적으로 정치에 나아가는 것이 중요했던 당시의 통념에 반하는 것이기도 했다. 에피쿠로스는 명성과 존경을 얻고자 하는 노력은 사람을 압박하기 마련이도, 그럴수록 멋지고 훌륭한 삶은 더 멀어진다고 충고했다. 그런 욕망은 결코 자기에 충실한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겸손과 완전히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묻어가 기질'이 있다. 떨어지는 콩고물은 모두 자신이 낚아채야 하고 주변 사람들의 약점과 부주의도 자신에 이득이 되도록 이용하는 것, 이는 똑똑한 것이 아니라 탐욕적인 것이며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행동이다. 반면 소박한 사람들은 자신이 받을 수 있는 것보다 적게 바라며, 심지어 자신의 몫보다 더 적게 가진다. 타인에 대한 존중의 표시이며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태도인 것이다. 노자 <<도덕경>> 제19장에 나오는 "견소포박, 소사과욕(見素包樸, 少私寡慾)"이 소환된다. 이 말은 '순결한 흰 바탕을 드러내고, 통나무를 껴안아라! 사사로움을 적게 하고, 욕심을 적게 하라'란 뜻이다. 좀 더 자세하게 풀면, 물들이지 않은 무명천의 순박함을 드러내고, 다듬지 않은 통나무의 질박함을 품는 것, '나' 중심의 생각을 적게 하고, 욕심을 줄이라는 것이다. '질박함'이란 먹는 것은 기름지고 걸쭉하고 느끼한 것이 아니라, 덜 가공한 담백하고 소박한 음식이고, 옷은 요란한 색상이나 과장된 디자인은 피하고, 질박하고 수수한 디자인을 찾는다. 몸에 편하게 입는다. 미끈하고 반짝거리고 화려하고 화끈함은 물건이건 인간 관계이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노자가 '무사무욕(無私無欲)'을 말하지 않고, '소사과욕(少私寡欲)'의 현실적 처방을 한 것이 인상적이라 생각한다. '소'와 '과'는 끊임없는 과정이다. 일정한 눈금이 있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적게 하고 끊임없이 줄이는 역동적인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 오늘은 소박한 시 한 편을 공유하고, 글을 마치며 이 이야기는 내일도 이어간다.
오늘 사진은 지난 임실 여행에서 만난 천도교 임실본부의 교당이다. 소박함의 극치이다.

초식동물/고증식

장사 끝난 죽집에 앉아
내외가 늦은 저녁을 먹는다
옆에는 막걸리도 한 병 모셔놓고
열 평 남짓 가게 안이
한층 깊고 오순도순해졌다
막걸리 잔을 단숨에 비운 아내가
반짝, 한 소식 넣는다

― 죽 먹으러 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순한 거 같아
초식동물들 같아

내외는 늙은 염소처럼 주억거리고
한결 새로워진 말의 밥상 위로
어둠이 쫑긋 귀를 세우며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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