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나는 힘든 날이 올 때, 두 발을 단단히 땅에 딛고 하늘을 향해 머리를 든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6. 16. 18:42

3306.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6월 15일)

1
지난 토요일에는 천당 위에 분당이라는 곳을 다녀왔다. 몰입했던 세미나를 마치고 거리에 나오니, 비가 그치고 하늘이 뭉개 구름과 놀려고 파랗게 만들어 놓았다. 오늘 사진이다. 빌딩 숲의 나무를 보고, 언젠가 적어 두었던 글이 기억 났다. 오늘 아침 공유한다. 나는 마음이 헛헛한 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불안함에 기댈 곳이 필요할 때 나무를 바라본다. 누구를 찾으려 하지 않고, 땅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채 하늘을 향해 곧게 고개를 든 나무는 묵묵히 자기만의 시간을 살아간다. 수많은 계절을 지나며 그저 평온하기만 했을까? 새들이 찾아와 가지를 쪼아 대고, 거센 바람과 비에 휘청 거리기도 했으며, 뜨거운 태양 아래 목 마름을 견뎌야 했고, 차가운 겨울 바람 속에서 자신의 생명을 지켜내느라 애썼겠지. 그리고  가지의 잘림 등 그 모든 시간을 묵묵히 견디며, 푸르고 단단한 그 모습으로 조용히 서 있는 나무가 숭고하게 느껴진다. 나무처럼 살고 싶다.


나무처럼 살기/이경숙
 
욕심부리지 않기
화내지 않기
혼자 가슴으로 울기
풀들에게 새들에게
칭찬해 주기
안아 주기
성난 바람에게
가만가만 속삭이고
이야기 들어주기
구름에게 기차에게
손 흔들기
하늘 자주 보기
손뼉치고 웃기
크게 감사하기
미워하지 않기
혼자 우물처럼 깊이
생각하기
눈감고 조용히 기도하기

'내 영혼의 나무' 한 그루 정해 조용히 눈을 감고 껴안으며 나무가 하는 말을 듣는다. "힘들면 또 와. 언제나 이 자리에 서 있을 게. 비바람이 불고 폭풍이 몰아 닥쳐도 이 자리에서 너를 기다릴 게. 힘들면 또 와."  


2
그리고 나는 힘든 날이 올 때, 두 발을 단단히 땅에 딛고 하늘을 향해 머리를 든다. <<주역>>의 <건괘> 하늘은 굳셈(建)이다. '건'은 굳세어 쉼이 없는 것이다.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인문 일지>를 쓰는 힘이다.

<<주역>>의 제1괘인 <중천 건(中天 乾)> 괘에서 취하고 싶은 것은 '구삼'의 다음 효사이다. "君子終日乾乾, 夕惕若, 勵無咎(군자종일건건, 석척약, 려무구)"다. '군자가 종일 굳세고 굳세게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해도, 저녁에는 하루를 돌아보고 반성하고 걱정하면 아무리 위태로워도 허물이 없을 것'라는 거다. 그리고 천(天), 건(乾, 하늘)의 모습처럼, "자강불식(自强不息)"이 괘의이다. 쉼 없이 굳세어라', '천지의 운행이 쉬지 않는 것과 같이 끊임없이 노력하라'는 거다. 
 
다산 정약용은 <<시의재기(四宜齋記)>>에서 <중천 건> 괘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오늘 나는 주역의 <건 괘>를 읽었다. <건괘>는 굳셈(健)이다. 정자가 말하길, 건은 하늘(天)이요, 굳세어 쉼이 없는 것을 일러 건이라 한다." 하늘이 힘 있게 움직이는 것처럼, 군자도 쉬지 않고 스스로 힘을 내서 일하여야 한다는 거다.  사심 없이 최선을 다해 하늘같은 본성이 실현되는 삶을 살아가는 거다. 
 
다산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를 왔을 때, 아무도 그에게 거처를 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밥과 술을 팔면서 숙박도 겸하는 주막에서 겨우 방을 구할 수 있었다. 대역죄인이라 그 마저도 감지덕지했다. 그러나 양반 가의 자손으로 그런 궁핍한 생활을 이어 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작은 방에 이름을 "사의재(四宜齋)"라 붙이고 지냈다.
 
"사의(四宜)"란 다음과 같이 '네 가지 마땅함'을 가리킨다.
- 생각은 마땅히 담백해야 하고
- 외모는 마땅히 장엄해야 하고
- 말을 마땅히 과묵해야 하고,
- 동작은 마땅히 중후해야 한다.
 
다산의 글을 직접 읽어 본다. "사의재는 내가 강진에 유배 와서 사는 방의 이름이다. 생각은 담백해야 하니 담백하지 않은 점이 있으면 부디 빨리 생각을 말게 해야 한다. 용모는 엄숙해야 하나 엄숙하지 않은 점이 있으면 부디 빨리 의젓하게 해야 한다. 말은 참아야 하니 침지 않은 점이 있다면 부디 빨리 말을 그쳐야 한다. 행동은 진중해야 하니, 진중하지 않은 점이 있으면 부디 빨리 느긋해야 한다. 이에 이 집을 '사의재'라고 이름하였다. '의(宜)는 마땅하다는 뜻의 의(義)이니, 마땅함으로써 자신을 바로잡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건괘>, 하늘처럼 '사의'를 쉼 없이 굳세게 밀고 가겠다는 거다. 쉬지 않는 하늘처럼 부지런하고 상실하겠다는 다짐을  정진하였기에 우리는 그를 기억하고 있는 거다.

3
우리는 매 순간 세포를 잃음으로써 새 세포를 얻는다. 씨앗이 껍질을 벗어야 새싹이 나오고, 애벌레가 고치를 벗어야 나비로 나온다. 얻음과 잃음, 빛과 어둠은 늘 공존한다. 그래 배타(排他)라는 말은 무섭다. 이건 이타(利他)나 공존(共存)을 지워버리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남을 밀쳐내고 내가 사는 것이란 말이기 때문이다. <<주역>>에서 말하는 "무평불피"를 말하고 싶다. 그런 말 할 때는 한시적이고 한정적이다. 권력이 있다고 영원하지 않다. '화무십일홍'이다. 그래서 권력(權力) 대신 권한(權限)이라는 말을 늘 기억해야 한다. '권력에 한계를 둔다'는 말이다. 평평한 땅을 계속 걷다 보면 반드시 비탈을 만나게 되니 조심하고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주역>>의 원문은 "무왕불복(無往不復) 무평불피(無平不陂) 간정무구(艱貞無咎)"이다. 자연의 순환 원리를 주역에서는 "무왕불복"의 원리라고 한다. 세상의 이치는 결국 가면 반드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순환 철학은 <<주역>> 11번째 괘인 <지천태> 괘에 나온다. 현재는 평평하지만 언덕질 날이 있고, 가서 돌아오지 않음이 없다. 어렵고 바르게 하면 허물이 없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평평하다 가도 언덕이 있는 것이 자연의 지세(地勢)이며, 좋은 세상이 있다가도 나쁜 세상이 오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이다. 그러니 태평할 때에 그 태평함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항상 어렵게 생각하는 마음으로 바르게 해야 허물이 없다는 거다. 태평한 시절이라고 방심하고 과소비하고 부도덕하게 편히 살려고 하며 퇴폐풍조로 흐르면 안 된다고 걱정함과 함께, 어려운 시기가 다시 돌아올 것을 염려하여 어렵게 여기고 바르게 분수를 지키며 살아가면 허물이 없게 된다는 말을 명심할 생각 말이다. "간정무구(艱貞無咎)"와 함께, 난 개인적으로 여기에 나오는 말, "무평불피"와 "무왕불복"을 좋아한다. 평탄하고 태평하던 국면이 위태롭게 기울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며(无平不陂, 무평불피), 떠나가는 것이 가기만 하고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无往不復, 무왕불복). 가기만 하고 돌아오지 아니하는 것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쇠운의 조짐이 보이는 때에는 그러한 법칙을 전체적으로 조감하면서 간난 속에서도 올바른 미래를 향해 물음을 던져야 한다(艱貞, 간정). 얼마나 위안이 되는 말인가? 불교에서 말하는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反)"이 소환된다.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게 되고, 떠난 자는 반드시 돌아 온다'는 말이다. 연(緣)에 따라 윤회를 한다는 거다.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나 사태가 일어나면, 나는 '오이관복"한다. 이 말은 <<도덕경>>의 제16장에 나온다. “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치허극 수정독 만물병작, 오이관복)” 이다. 이 말은 '완전한 비움에 이르십시오. 참된 고요를 지키십시오, 온갖 것 어울려 생겨날 때 나는 그들의 되돌아감을 눈여겨봅니다.”라고 한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비움을 끝까지 하고, 고요한 상태를 돈독하게 하여 지키는 일상을 꾸리라'는 말로 읽는다. 다시 마음을 비우고, "오이관복(吾以觀復, 나는 돌아 감을 볼 뿐이다)"한다. 나는, 최근 세상 돌아가는 것이 이해가 안 되면, 이 문장을 소환하고, 비우고 고요 해지려고 한다. 특히 "오이관복(나는 돌아 감을 볼 뿐이다)"을 소환하며 나를 위로 한다. 세상 모든 이치이다.

 나는 이 문장을 만날 때마다 "되돌아 감"에 늘 주목한다. 도(道)의 핵심 내용은 반대 방향을 지향하는 운동 력, 즉 반(反)이다. 어떤 것도 변화하지 않거나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동양 철학이고, 이를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 해석한다. 이를  노자는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도덕경> 제40장)이라 말한다. 나는 오늘 아침도 '되 돌아 감'을 되새긴다. 달도 차면 기울고, 낮이 밤이 되고 밤이 낮이 된다. 아주 더운 여름이 되면 다시 추운 겨울로 이동하고, 심지어 온 우주도 팽창과 수축을 반복한다. 이 모든 것은 어느 한 쪽으로 가다가 극에 도달하면 다른 쪽으로 가는 '도'의 원리에 따르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지금 정국이 돌아가는 것에 기다림이 필요하다. 세상은 작용이 있으면 그 반대의 힘인 반작용이 동시에 작동한다.


4
<<주역>>  <지천 태> 괘의 이야기를 하나 더 한다. 자신을 낮추고, 왕이 자신의 딸을 신하에게 시집을 보내는 것처럼, 위화감을 쌓지 말고 민심을 얻을 생각을 하여야 한다. '육오'의 효사에 "제을귀매(宰乙歸媒) 이지(以祉) 원길(元吉)"이 나온다. '재을 왕이 누이동생을 시집 보내는 것이니, 이로써 복이 되며 크게 길하리라'는 뜻이다. 제을 이전에는 왕족끼리 만 혼인을 했었는데, 제을 시대에 와서 처음으로 자기보다 신분이 낮은 신하와 혼인했다고 한다. 그후 에야 타성(他姓)끼리 혼인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지쳔 태>괘를 보면, 제을이 공주를 시집 보낸 남편이 '구이'이다. 

네 가지 정치를 잘하는 '구이' 신하에게 공주를 시집 보낸 것이다. 왜 딸을 신하에게 시집 보내는 가? 왕족끼리 만 혼인을 하면 벽을 쌓게 되어 위화감만 조성하고 민심을 얻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몸을 낮추어 신분이 낮은 신하에게 공주를 시집 보내 민심을 얻게 되어 결과적으로 상하 모두가 잘사는 복지사회가 이루게 된다는 거다.  

기득권이나 엘리트끼리 만 혼인 관계를 맺으면, 사회는 계속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우리 사회는 약자에게는 희생을 강요하면서 정작 자신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기득권과 '갑'의 놀부 심보가 암처럼 퍼져 가고 있다. 가진 자, 힘 있는 자, 윗사람이 우선 자기 것을 희생하는 문화가 없거나 부족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ée)의 문화가 아쉽다. 자신이 기득권이 된 것은 다 혼자만의 힘이 아니다. 많은 약자의 희생으로 기득권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힘 있을 때, 약자를 위해 자기를 희생할 기회가 살면서 쉽게 그리고 많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 기회 있을 때마다 약자에 대한 긍휼을 실천해야 한다. 그건 강자에게 당당히 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 '을'과 약자에게는 내 것 일부를 양보해 함께 풍요로워지는 '너그러운 사회', 진영으로 나뉘어 싸우지 않는 사회가 될 것이다. '평화를 유지한다'는 것은 다른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고, 얻기 위해서는 먼저 줘야 한다. 중세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반적으로 행해졌던 평화외교정책의 주요한 하나가 상호간에 혼인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오늘날 현대 국제사회의 정책으로 본다면, 외국과의 선린외교정책을 펴고, 다른 나라가 필요한 것은 주고 우리가 필요한 것을 얻는 것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5
다음은 신하 '구이'가 어떻게 정치를 하였는가를 살펴 본다. "九二(구이)는 包荒(포황)하며 用馮河(용빙하)하며 不遐遺(불하유)하며 朋亡(붕망)하면 得尙于中行(득상우중행)하리라"이다. '구이'의 효사를 그림으로 그려본다. 

거친 사람(<곤괘>의 백성)들을 이끌고 얼어붙기 시작하는 강을 건너고 있다.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죽기를 각오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그 과정에서 사이가 멀다고, 잘 모르는 사이라고 무신경하지 않고 세심하게 돌보고 있다. 그렇게 백성들을 살피는 임금의 마음을 '구이'가 이어받아 중도로 실천하고 있으니 높임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태평성대를 이루기 위해서, 그가 보여준 정치력은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 아무리 하찮은 존재라도 잘 포용해야 하며(包荒, 포황), 
▪ 때로는 물을 건너 외국과의 평화를 위한 선린외교(善隣外交)를 펼쳐야 하며(用馮河, 용빙하), 
▪ 아무리 먼 변방에 있는 약소한 존재라도 그들을 존중해야 하며(不遐遺, 불하유), 
▪ 또한 자기들만의 붕당(朋黨)을 만들어 세력화하지 말아야 한다(朋亡, 붕망). 
이렇게 중도(中道)로 폭넓은 정책을 펴서 잘 실행해 나가면, 모두가 '구이'의 정치에 뜻을 합하고 숭상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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