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추앙은 '높이 받들어 우러르는 것', '우러러 봄'이란 말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6. 16. 10:29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6월 14일)

나는 습관적으로 드라마를 제 시간에 맞추어 보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이들로부터 회자되는 드라마가 나오면, 몰아쳐서 한 번에 본다. 요즈음 <나의 해방일지>를 보고 있는데, 차분하게 생각하며 볼 시간적 여유가 없다. 점심 식사 시간에 혼밥을 하게 되면, <넷플릭스>로 원하는 만큼 본다. 끝까지 다 못 봤다. 그러나 내 페북에서 그 드라마에 대한 기사에 나는 눈길을 자주 준다. 그 드라마를 요약하면 이런 것 같다. <나의 해방일지>는 지리멸렬한 삶을 어떻게 버티고 살 것인가에 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과정이 '해방', '추앙', '환대'라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다소 낯설고 무거운 단어를 축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채석진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의 글에 따르면,  ‘해방’은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목표"라면, ‘추앙’과 ‘환대’는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등장한다. 실제 드라마는 “추앙하다 보면 딴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 했다.

추앙은 주요 인물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회적 관계와 대조된다. 대부분의 사회적 관계에서 주요 인물들의 선함과 예의 바름이나 친절은 오히려 이들의 삶을 갉아먹는다. 특히, 이들이 베푸는 친절함(타인을 위한 행동)은 ‘등신’이 되는 지름길로 작동하여 “사람이 너무 싫은” 감각으로 돌아온다. 추앙은 무례한 사람들에게 맞설 수 있는 정서적 연대를 형성하는 방법으로, “조언하지 않고, 위로하지 않고, 정직하게 대하며, 응원하는” 행위로 구현된다.

드라마 속의 염씨네 막내딸 염미정은 우리가 서로를 조건 없이 추앙한다면 분명 삶이 달라질 거라 믿는다. “난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 돼. 추앙해요.” 평범한 사랑으로는 부족한, 한 존재를 향한 무조건적 추앙. 그것은 그 사람이 언제 어디서든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고 느낄 수 있게 따스한 응원의 눈길을 보냄으로써 시작되는 거다. 사랑과 연애와 결혼을 둘러싼 모든 편견과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관계. 그것은 다만 서로를 온전히 ‘추앙’함으로써 시작된다. 늘 불완전한 사랑에 시달렸던 우리가 마음 깊은 곳에서 바라는 것은 어쭙잖은 연애, 늘 눈치보는 사랑이 아니라, 존재를 빈틈없이 채워주는 순수한 추앙의 눈길이 아닐까? 추앙이라는 말이 어색하지만, 신선하다. 어쨌든 ,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은 추앙의 긍정적인 에너지이다. 우리에게 추앙이 필요한 때는 이런 경우들이다.
- 속은 채워진 게 없어 공허한데 무거워 뭘 할 수가 없는 상태
- 바람이라도 불면 금방 날아갈 것 같은데 또 뜨지는 않는 답답한 마음

다짜고짜 자신을 추앙해달라는 미정의 당혹스런 부탁에 드라마 속 인물 구씨는 당황하지만, 그 또한 미정의 결핍을 알아본다. 한 번도 온전히 채워진 적이 없는 존재, 항상 결핍과 우울에 시달리는 존재. 나를 무작정 추앙해달라는 미정의 참담한 눈빛 속에 숨겨진 영혼의 허기를, 구씨는 이해한다. 구씨 또한 방안을 빼곡하게 채운 초록색 소주병으로도 결코 해결하지 못한 결핍과 절망을 홀로 견디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보다는 응원으로 해석되는 추앙은 어쨌든 사랑의 힘이다. 이 때의 힘은 "나는 왜 이럴까, 아니 난 쭉 이렇게 살 거야!" 온갖 복잡한 마음으로 흑백이던 주변을 총천연색으로 물들여 주는 것이다. 아마도 이게 '추앙의 힘'이 아닐까?

추앙은 '높이 받들어 우러르는 것', '우러러 봄'이란 말이다. 드라마 속의 인물들은 이 추앙만으로 에너지를 나눠 가질 수 있었다, 특히 미정과 구씨는 재회하고서도 "이젠 죽을 때까지 함께하자"는 멜로드라마 속 사랑의 대화가 아니라, "10회 또 10회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러다 할 애기가 없어지면 끝내자"는 식으로 상대를 가두지 않으며, 그들의 사랑은 늘 추앙과 함께한다.

드라마에서는 멜로 라인을 중심으로 사용되지만, 추앙은 오랜 친구, 직장 동료, 가족, 연인 관계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제시된다. 더 나아가 마지막 회에서 드라마는 해방을 위한 방법을 친밀한 사람들 간의 추앙을 넘어, 적대적인 사람들에게까지 호의를 베푸는 ‘환대'                                                                                                                                                                                                                                                                                                                                                                               로 확장된다. 이는 “너는 끝까지 나에게 예의 없었으면서 나는 왜 끝까지 예의 지켜야 하는데"라는 질문으로 직접적으로 제시되고, 이에 대한 대답 또한 명확하게 제시된다. 나에게 무례한 사람들에게 욕을 퍼부으며 공격하는 것은 “내 몸에 썩은 물이 도는 느낌"을 만들고, 그 사람들이 틀렸음을 증명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삶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초라하고 비참 해진다. 결국 나에게 해를 가하는 사람들을 환대하는 것은 이들을 향한 부정적 감정으로 쌓아 올린 감옥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행위로 나타난다. 이 문제는 시를 읽은 후로 사유를 이어간다, 그리고 블로그로 옮긴다.

오늘 공유하는 시인은 나랑 대학 동창이다. 그는,  1980년 서울의 봄, 공주사대 학생회장이었다. 군사재판에서 3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덕수상고 교사를 하다 결혼해 주말 부부가 됐다. 아내는 강원도 홍천의 중학교 교사였다. 그 아내는 나랑 같은 학과 후배였다.  1990년 9월 1일 섬강 버스 추락사고로 아내와 아들을 잃었다. 9월 15일 아내와 아들의 죽음이 머문 여주 고대병원 앞 섬강 전신주에서 짧은 글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부디 저의 죽음을 애통해 하지 말 것을 당부 드리며 세 식구가 하늘나라에서 다시는 헤어짐 없는 만남과 행복을 기원해 주기 바란다고 썼다. 살아 계신 분들은 제가 없어도 능히 견딜 수 있지만 저희 세 사람 함께 있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 때문이라 했다. 언젠가 공유하려고 적어 두었던 것을 오늘 아침 찾았다. 아침 사진은 비 오는 거리를 우산도 없이 걷다가 만난 어느 차의 뒤 창문을 찍은 것이다. "결초보은(結草報恩)". 풀을 묶어서 은혜에 보답한다. 세상은 다 연결되어 있다.

별/장재인

별을 알기 전
가득함을 알았지만
별을 알고 나서
빈 마음을 알았습니다

별을 알기 전
신념의 풍요를 알았지만
별을 알고 나서
풍요는 갈증에 눈뜨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던가 별이 들어온 날
가슴은 별로 가득하였지만
그때부터 한구석 빈 마음임을
깨달았습니다

별을 알기 전
고요인 줄 알았던 것은
별을 알고 나서
그것이 소용돌이임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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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글을 두 가지 버전으로 쓴다. 길게 사유한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면 된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