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인문은 '인간-다움'의 무늬이고, 핵심은 '인간-다움'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6. 14. 07:38

2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3년 6월 13일)

이제 나는 인문(人文)을 다르게 해석한다. 말 그대로 하면, 인문은 인간의 무늬라는 뜻이다. 여기서 인간은 다른 존재와 확연하게 구분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가리킨다. '인간-다움'을 갖춘 인간을 뜻한다. 따라서 인문은 '인간-다움'의 무늬이고, 핵심은 '인간-다움'이다. 인문학은 이러한 '인간-다움'이 공부 대상인 학문이다.

그러다 인문학이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등과 같은 분과학문의 하나로 축소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인문학은 '인간-다움' 전반을 다루지 않고 소위 ‘순수 학문’에 속한다는 것을 주로 다룬다. 그래서 오늘날의 인문학은 위에서 말한 인문과 사뭇 다르다. '인간-다움'에는 순수학문의 공부 대상, 이를테면 권력이나 금력(金力), 장수로 대변되는 세속적 가치와는 거리를 둔 지향도 들어 있지만, 실은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 공학 등도 엄연히 '인간-다움'의 구현이라는 점에서 그 소산 또한 인문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난 1990년대에 전 지구화, 신자유주의 등의 물결이 우리를 본격적으로 삼키기 시작한 이후, 30년 가까이 그러한 물결은 날로 거세졌고, 디지털 대전환 등이 가세하면서 사회는 날로 금력 추구에 휩싸였다. ‘기-승-전-쩐(錢)’의 풍조가 기세를 더해갔고 즉시적으로 별 도움 안 된다는 이유로 '인간-다움'의 가치는 뒷전으로 밀렸다. “달리는 데 손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여 손을 묶으면 빨리 달릴 수 없다. 하늘을 나는 데 꼬리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여 꼬리를 구부리면 멀리 날지 못한다.”(<회남자>) 눈앞의 유용함은 당장 사용하지 않는 것(不用)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통찰이다. 당장 '쓸모 없음'으로 보이는 인문학을 무시하지 말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인간은, 평온할 때는 괜찮지만, 문득 불안감에 사로잡히거나 갈등 상황에 직면할 때면 자신을 하나의 문제로 인식한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 인간은 자기 정체성을 구성한다. 이때 타자의 존재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한다. 타자의 요구에 어떻게 응답하느냐 에 따라 우리 인간-다움'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다른 이들과 공존하는 것이다. 유대인 철학자 아브라함 조슈아 헤셸은 인간성의 반대는 야수성이라면서 “야수성이란 이웃 사람의 인간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그의 요구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 말했다. 다른 이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곧 자기의 존립 근거를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이 “절망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자신이 목적이 되는 게 아니라 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중용이다. 지나침과 모자람의 사이에 있는 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과도함이나 부족함은 악덕의 특색이라 말했다. 치우치거나 기울지 않고,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함이 없는 상태가 그가 말하는 중용이다. 미치지 못함보다 더 위험한 것이 지나침이다. '과유불급'이다. 경계하며 삼가는 태도가 부족한 이들이 활개를 칠 때 세상은 소란스러워진다. 히브리의 한 시인은 악인의 마음엔 반역의 충동만 있다면서 “그의 눈빛은 지나치게 의기양양하고, 제 잘못을 찾아내 버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라고 노래한다. 성급히 판단하고 말하는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아낌과 존중의 마음이다.

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섬세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해와 사랑은 느림이 주는 선물이다. 그에 반해 성급함과 우쭐거림, 자기에 대한 과도한 확신은 오해와 불신을 만들어내는 부엌이다. 자기가 갖고 있는 통념을 잠시 내려놓지 않고는 참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도달할 수 없다. 지나침은 언제나 자기 파괴의 씨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으로부터 오는 모욕이나 충격을 완화하거나 해소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이 생길 때까지 사부작사부작 조금씩 걸어가면 된다. 일어서서 한 걸음을 내디뎌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용기이다.

그리고 상상력이 필요하다. 현재 닥친 문제만 바라보기보다 한발 물러서는 거다. 우리는 현재 직면한 문제를 돌파하기보다 피하는 것을 우선시한다. 예를 들어, 직장 내 문제가 있을 땐 가장 먼저 퇴사를 생각하고, 인간 관계가 잘 풀리지 않을 땐 관계를 정리하려고 한다.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는다. 왜냐하면 그게 가장 쉽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긴 것을 인지하면 이후로는 전체는 보지 못하고 문제에만 매달려 있다. 그렇게 코앞의 것에만 집중하면서 전체 맥락을 못 보고 새로운 가능성을 놓치는 것이다. 잠시 한 발짝 물러서면 답답하게 느껴지는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움직여서 다른 것을 상상해야 한다.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거나 습관을 버리지 못할 때 상상력을 제일 먼저 희생시킨다. 단호한 태도를 유지하면 위험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과거에 갇히면 변할 수 없다는 논리와 같다. 무조건 문제를 피하고 익숙한 길로 가려고 하면 안 된다. 더 넓게 바라봐야 하고 확실해 보이는 것도 의심해야 한다.

우리는 가까운 것을 잘 보지 못한다. 그림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있으면 아무런 감흥이 생기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나 몇 발짝 뒤로 물러나서 보면 그림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짧게 보아서는 안 된다. 상황을 제대로 진단하려면 여러 길을 상상해야 한다. 그래야 상황의 윤곽과 깊이 숨겨진 의미가 드러난다. <<모든 삶은 흐른다(Petite Philosophie de LA Mer)>>(이주영 역)를 쓴 로랑스 드빌레르는, 그런 경우, 일단 그대로 있지 말고 움직여 보라고 한다. 외출하거나 일상에서 나오라고 한다. 그리고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겨 문제를 다른 식으로 마주할 수 있다. 무조건 생각만 하거나 이미 다 안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답을 찾을 수 없다. 그보다 오히려 멀리 나가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불확실한 것이 두려워 아예 원하는 마음을 갖지 않거나 이미 준비된 대답에 안도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해결책이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상상력이다. 상상력이 있으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 상상력을 발휘하면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지존의 것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된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늘 옳은 건 없다고 믿어야 한다. 이때 다시 필요한 것이 용기이다. 준비가 되었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어 새로운 길을 가보는 거다. 어쩌면 이 단계가 가장 어려울지 모른다.

"인생은 멀리 바라보는 항해와 같다"고 로랑스 드빌레르는 말한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이라는 항해를 제대로 하려면 상상력을 마음껏 활용해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 답답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대답을 해보면 상상력을 활용할 수 있다. 이미 사람들이 지나간 길을 그대로 가지 말고 나만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 보라고 한다. "바다와 태양이 우리에게 끝없이 전하는 말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믿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모두 각자의 꽃으로 피는 사람"이 되자.

꽃으로 피는 사람/홍성숙

길을 나서는 사람아
나침반이 없어도
샛별 그림자만 보고도
그대가 걷는 길 바르다고 믿어다오

꿈 많은 사람아
새우처럼 잠을 청해도
고래가 되는 꿈을 꾸어
그대가 걷는 길 탄탄하다고 믿어다오

꽃으로 피는 사람아
때로는 꽃잎에  상처가 깊어도
그리하여도 한 송이 꽃이라는 걸
그대가 걷는 길 아름답다고 믿어다오

모든 것에 이름이 된 사람아
시작은 언제나 점 하나에서
또 다른 우리가 된다는 걸
그대가 걷는 길 당당하다고 믿어다오

잃고 싶지도 잊고 싶지도 않는 사람아
더 강한 용기와 더 단단한 신념으로
간절함이 피워 낸 눈부신 인생살이
그대가 걷는 길 황홀하다고 믿어다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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