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에서 '꽃대'라는 이름으로 '나이 듦'에 대한 사유를 이어간다.

3292.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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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시작하는 6월이다. 영어로 유월을 'June'이라 한다. 이 어원은 그리스 신화의 헤라 여신이 로마로 가면서 이름이 Juno(유노)로 바뀌면서 나온 것으로 본다. 헤라는 신화 속에서 결혼과 가정의 보호 신이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6월에 결혼을 많이 한다. 심지어 이런 말도 한다. "6월의 신부는 행복하다." 헤라의 보호를 받기 때문이라 한다.
10월'은 '십월'이 아니라, '시월'이라 하는 것처럼, '6월'도 '육월'이 아니라, '유월'이라 한다. 몇 년 전에 카톡에서 만난 글을 잘 적어 두었다. "딱딱하고 굳은 것은 죽음의 길이요,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것이 삶의 길임을 깨닫고, 몸과 마음이 유연(柔然)해 유(柔)월, 세상 일에 다 원인과 이유가 있음을 알아서 그저 남의 탓만 하지말고 먼저 나를 돌아보고 나로 말미암아 시작하는 유(由)월을 살고 싶다." 나는 개인적으로 '유' 자를 좋아한다. 특히 난 '일곱가지 유'를 자주 생각한다. "자유(自由)', '사유(思惟)', '여유(餘裕)', 향유(享有), 온유(溫柔), 치유(治癒) 그리고 YOU(당신). '유'자의 한문이 다 다르다. 'YOU'는 웃자고 넣은 거다.
고대 로마인들에게 여름의 첫 번째 달인 6월은 제우스의 아내 헤라에 해당하는 '유노(Juno)의 달'이djT다. '유노'는 '결혼과 가정의 수호여신'이다. 인간의 생애주기에서 6월 초여름은 청년기에 해당한다. 고대에는 대개 청년기의 모든 남녀가 결혼으로 맺어졌다. 그리고 그 결혼의 가장 큰 결실은 무엇보다 아이들이었다. 사람 뿐만 아니라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성숙한 후 때가 되면 알아서 짝을 짓고 후손들을 생산한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순환주기는 계절의 순환주기와 많이 닮아 있다. 계절의 주기에서 신생의 봄은 성숙의 여름을 지나 결실의 가을과 쇠락의 겨울을 지나 또 한 번의 주기가 완성될 때까지 우리 모두를 다그치고 몰아간다. 이런 순환 속에서 나의 <인문 일지>는 시간 여행자인 내가 잠시 머물고 있는 그 시대와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를 기록하는 일이다. 당시의 상황이 내 영혼에 어떤 공명을 일으켰는지를 기록하는 일이다. 글은 편지를 병에 담아 바다에 띄우는 일이다. 이 이야기가 누구를 향해 흘러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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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아침부터 삶의 태도를 다시 점검하기로 했다. 북명의 물고기가 에너지를 품고 6개월을 날아, 남명의 하늘 꼭대기에 도착한 6월의 시작되는 달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12,3 내란으로 세상을 너무 다 어둡게 보고, 내 글도 너무 따지고, 포용하기 보다는 배제하는 차가움으로 가득했던 것 같다. 그래 오늘 아침은 좀 '농담'같은 좀 가벼운 시를 우선 공유한다. 이맘 때면 산책하다 만나는 꽃이다. 모양이 마치 부인들의 치마 속에 차던 주머니와 비슷하다고 해 '며느리주머니'라고도 부르는 '금낭화'는 양귀비과에 속하며 4∼6월에 연홍색 꽃을 피우는 다년생 풀로 깊은 산의 계곡에 집단으로 서식하는 자생식물이다.
금낭화/안도현
6월, 어머니는 장독대 옆에 틀니 빼놓고
시집을 가고 싶은가 보다
장독 항아리 표면에 돋은 주근깨처럼 자잘한 미련도 없이
어머니는 차랑차랑 흔들리는 고름으로 신방에 들고 싶은가 보다
내 글과 생각이 사람들을 미리 판단하고, 나의 고지식한 잣대로 포용보다는 배제의 논리를 사로잡혀 있었다. 그렇지 않으려면, 상대가 누구든 장점만 흡수한다. 상대의 장점을 집중해서 배우려 해야 한다. 싫으면 본인이 알아서 떠날 일이다. 굳이 남의 단점을 말하는 데 시간을 쓰지 말자. 인간은 누구나 흠이 많다. 외부에 드러났는지 차이가 있을 뿐 다들 비슷하다. 안 좋게 보려고 하면 끝이 없다. 본인이 원하는 부분만 적절히 골라 배워서 나쁠 게 없다. 항상 이런 관점에서 상대를 바라보면 뭐라도 하나 얻을 게 보인다. 그리고 SNS에 너무 시간을 보내지 말자. 아침에 한 시간만 허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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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어제 못한, 매주 토요일마다 하는 "호모 헌드레드 시대(100세 시댸), '꼰대'에서 '꽃대'라는 이름으로 '나이 듦'에 대한 사유를 이어간다. 이런 사유 거리를 제공한 책은 <<나이 듦 수업>>(서해문집)이다. 부제가 '중년 이후, 존엄한 인생 2막을 위하여'이다. 그 중 오늘은 고전인문학자 고미숙의 이야기를 만난다. 그녀의 주장은 '어른'으로 늙어갈 용기를 말하며, 상투적인 생로병사관에서 벗어나 '어른'으로 늙어갈 권리를 누리며, 자신의 생체리듬을 회복하고, 혈연적 관계망에서 벗어나 우정의 시간을 살아가자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어른'으로 늙어갈 권리를 위해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지 말자고 했다. 오늘의 화두는 '혈연적 관계망에서 벗어나 우정의 시간을 살아가기' 이다.
나이가 들면, 우리는 남성, 여성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의 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키키로는 "노년이 됐다는 것은 젊은 날의 충동과 나를 지배하는 야성적인 질풍노도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필요한 것이 철학이다. 철학이 삶에 대한 통찰로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 최근에 제목이 좋아 산 책이 <<철학이 깊을수록 삶은 단순하다>>(레베카 라인하르트 저)' 이다. 이 책 이야기는 다음에 한다.
철학 공부는 혼자 하면 힘들다. 함께 하면 즐겁다. 나는 매주 금요일 오전 도반(道伴)들과 <<주역>>을 함께 읽는다. 책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중간 중간에 나누는 대화가 흥미롭다. 그때 대화는 타인을 마주하는 창문이자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도반은 철학을 함께하는 우정이 된다. 서로 배움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고미숙에 의하면, 부부 간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배움의 관계로 바뀌어야 한다고 한다. 친구도 마찬가지이다. 서로 배우는 친구로 바뀌지 않고 돈 문제가 개입되면 나이 들어서 다 깨진다.
'어른'으로 늙어갈 용기를 가지려면 죽음을 작별의 시간으로 사는 거다. 생로병사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고 늙어가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질문을 포기하기 때문에 어딘 가에 끝까지 의존하게 된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향유해야 한다. 불쌍하고 약한 관리 대상이 아니라, 노년 '존재'로 관점을 바꾸어, 다시 말하면 노인을 '존재'의 관점으로 보는 인식 전환을 해야 한다. 노인이 해야 할 일은 직업을 다시 얻어 사회적으로 진출하는 것이 아니고, 혈연과 가족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공동체 전체의 비전과 자기 존재의 근원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요약하면, 청춘에 대한 허황된 이미지로부터 벗어나, 주로 성적 쾌락으로 구성된 소비 문화와 몸의 '탐진치'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노인의 역할은 지혜의 스승, 멘토가 되는 거다. 그러려면 인생 전체의 비전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청년들이 찾아와 "불안해요, 미치겠었요" 할 때, "다 지나간다" 라는 말을 남다른 포스로, 유머 스럽게 말해줄 수 있는 건 세월을 살아낸 노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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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지혜는 어떻게 구현될 수 있나? 관계와 소통으로 구현된 이를 위해 관계와 활동의 폭을 넓혀야 한다. 생명은 근원적으로 '활동'과 '네트워크'를 좋아한다. '관계'와 '활동'이 생명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소유와 성공, 곧 돈과 물질에 관련된 것만 매달리면 꼭 막히게 되고, 끝에서는 허무할 뿐이다. 살맛이 나려면, 어떤 활동을 하고 관계를 맺는 게 중요하다. 계속 어딘가로, 누군 가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길 위의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데 길 위에서 누군가를 만난다고 할 때 그걸 연결해 주는 건 지성밖에 없다. 사업으로 사람을 만나는 건 교환관계에 들어가는 거다. 그런데 지성을 통해 누군가와 친해지면 그 공간이 바로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 온다. 그 일상 속에서 소유보다는 사람, 즉 존재로 나가는 게 중요하다. 그러면 서로의 생각이 접속을 한다. 이런 접속을 통해 가치가 생성된다. 무에서 유가 나오는 것이지, 유에서 유가 나오는 것은 유통기한이 아주 짧다. 돈 놓고 돈 먹는 것은 굉장히 유용하고 효율적이지만, 그건 순식간에 다 거덜나는 경우가 많다. 보이지 않는 무에서 유가 나와야 가치가 되는 거다. 원래 보이지 않는 지혜에서 물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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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알면서도, 우리는 일상에서 활동이 아니라 노동을 하고, 접속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화폐를 늘려야 하기 때문에 관계가 단절된다는 말이다. 다른 것들과 접속할 시간이 없다. 그러니까 생성이 이루어지지 않고, 감각의 차이만 만들어 낸다. 차이의 생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 삶의 큰 즐거움이고 의미가 된다. 반대로 감각만이 늘어나는 게 중독이다. 이를 피하고, 하루가 재미 있으려면, 다음과 같은 생활의 규칙을 만들어 보는 거다. 고미숙의 주장이지만,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 목적론이 해체되어야 한다. 일상이 리듬을 타야 한다. 리듬을 잃는 이유는 목적에 도달한 다음에 살겠다는 목적론이 문제이다. 매일의 일상은 리듬을 타야 한다. 일상이 그 목적에 종속이 되면 안 된다. 그러다 보면, 시간의 무상함 앞에서 그냥 주저 앉게 된다. 매일 매일을 하는 과정으로 여겨야 한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자유, 행복을 오늘의 조건 안에서 어떻게든 구현해 내는 거다. 아프면 아픈 대로, 아픈 상태에서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상태에서 지유와 행복을 위한 액션을 취하는 거다.
▪ 그리고 시간에 리듬을 탄다. 이 기술은 노년에 더욱 필요하다. 메 순간을 나 스스로 과정으로써 즐길 수 있어야 하는 거다. 그러다 보면 죽음도 하나의 과정이 될 수 있다.
▪ 그리고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산다. 그러는 가운데 인간, 자연 그리고 내가 늘 만나는 사물들과 우정을 나누어야 한다. 그래야 상품 소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작고 있는 물건을 깨끗하게 하고 변형시켜 나에게 맞는 물건을 고쳐 사용하면, 신상품에 눈길이 가지 않는다. 이를 프랑스에서 '브리콜라주'라 한다. 그러면 물건의 수를 줄일 수 있다. 이게 소박하고 단순하게 사는 거다.
▪ 그리고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해야 할 친구를 만난다. 그렇게 친구들을 만나 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우리는 웃는다. 그리고 웃어야 한다. 왜냐하면 웃음은 생명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활동으로써 웃음과 이야기를 연마하고, 내면에서는 어제 몰랐던 것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이게 지성이다. 그 지성으로 내적인 충실함과 외적인 활동이 리듬을 타야 한다. 고미숙은 이런 일상을 줄여서 이렇게 말한다. "명랑하고, 지혜로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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