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은 각자 훌륭함을 추구하는 다양성 속에서도 공동체 결속을 지켜가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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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0.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5월 30일)
1
오늘 아침 사진은 나의 채마밭에서 만난 감자 꽃이다. 바로 오늘 공유하는 시를 소환했다.
감자꽃/권태응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보나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마나 하얀 감자
겉모습이 어찌 변 한들, 세상이 어떻게 변한들, 정의는 살아 있, 진실은 밝혀진다. 그저 이 순간 반짝이는 것에 현혹되어, 오늘 공유하는 시 같은, 가장 기본적인 진리에서 우리는 자주 헷갈린다. 흰 빛은 흰 것이고, 검은 것은 검은 것이다. 자주 감자 심은 데, 자주 꽃이 피고, 하얀 감자 심은 데 하얀 꽃 피는 진리를, 삼이 주는, 자연이 주는 가장 기본적인 진리를 되 돌아 보았다.
2
사람들은 자신의 거침없는 말과 행동을 용기(勇氣)라고 착각하고 그런 집단행동을 민주주의(民主主義)의 발판이라고 호도한다. 대한민국은 무절제 공화국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고 편협하다.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을 제외하고는, 인간의 언행을 누군가에게 점검 받아야 한다. 그 누군가는 바로 자신이다. 자신의 언행이, 자신의 최선인지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
'진짜' 민주주의는 한없이 정제된 언행과 집단의 숙고(熟考)를 통해 만들어진 결정을 수용하고 준수하려는 과정이어야 한다. 자신의 주장이 편협한 편견이란 사실을 모르고 말을 쏟아 내는 정치인들이 미디어를 통해, 국민의 정서를 점점 각박하게 만든다. 그들은 '침묵이란 자신의 언행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에 대한 감사 표시이고, 언행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준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단테가 상상한 지옥은 자신의 마음 가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사후에 형벌을 받는 장소다. 그들의 죄명은 무절제(無節制)라 했다.
3
<<의무론>>이라는 책에서 키케로는 말한다. "최고선을 덕과 무관한 것에 두고, 훌륭함이 아니라 이익으로 평가하는 자는, 우정도 정의도 관대함도 존중할 수 없는 자이다." 이 책은 키케로가 아테네에 유학 중이던 아들 마르쿠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개인을 억압하는 독재정을 타도하고, 소수 이익을 우선시하는 과두정을 저지하며, 민주정을 빌미로 일어나는 무질서와 분열을 극복하려면 자유 시민들이 어떤 의무를 져야 하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그는 로마 공화정 말기에 카이사르의 독재 정치에 저항하고 삼두정치에 반대하다 군인들 손에 살해당했다. 그의 삶은 처참한 비극으로 끝났으나, 공화주의를 옹호하고 시민적 삶의 의무를 강조한 그의 사상은 르네상스 이후 현대 민주주의 정치 체계에 반영되어 영원히 살아남았다.
공화(共和)를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다. 공화(res publica)는 '공공의 것'이란 뜻이다. 공화정은 공동체에 속한 모든 시민이 마음껏 자유를 누리면서도, 국가의 공적 이성이 훼손되지 않는 정치 체제 이다. 시민들이 각자 자기 자유를 추구하면서 공공선, 즉 공동체 전체의 '명예로운 평온'을 먼저 고려할 때 공화는 존재할 수 있다. 공인(公人)은 국가적 품위를 유지하고 법률을 수호하며 정의를 세우는 일에 앞장서고, 개인은 동료 시민과 동등하고 공정한 권리를 누리면서 굴종하지도 멸시 받지도 군림하지도 않을 때, 민주와 공화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가 가능해 지려면, 인간은 자기 이익에만 목매는 대신 최고선과 덕을 실현할 의무를 지고 살아야 한다. "의무를 다하는 데 인생의 모든 훌륭함이 있다." 키케로는 그 훌륭함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집약한다.
▪ 진리를 성찰하고 꿰뚫어 보는 지혜,
▪ 공동체 유지를 생각하고 각자 몫을 각자에게 바르게 분배하는 정의,
▪ 공정하고 정당한 명령에만 복종하려는 용기와 강인함,
▪ 질서와 조화에 비추어 말과 행동의 적절함을 지키는 절제이다.
훌륭함을 공동체 속에서 실천하고 실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올바른 인간이 될 수 있다. 공화국은 각자 훌륭함을 추구하는 다양성 속에서도 공동체 결속을 지켜가는 나라다. 자유의 추구가 분열과 대립으로 귀결되지 않고, 소수의 이기와 독단으로 치닫지 않으며, 명예로운 평온을 염두에 두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공동선을 이룩하는 우애의 공동체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은 민주와 공화를 함께 실현하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편집문화실험실 장은수 대표의 글을 갈무리한 것이다. 평소의 내 생각이기도 하다. 이 공화 정신을 프랑스 유학 시절에 그 사회에서 체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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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도 말했지만, '진짜' 민주주의는 한없이 정제된 언행과 집단의 숙고(熟考)를 통해 만들어진 결정을 수용하고 준수하려는 과정이어야 한다. 자신의 주장이 편협한 편견이란 사실을 모르고 말을 쏟아 내는 정치인들이 미디어를 통해, 국민의 정서를 점점 각박하게 만든다. 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 승자독식의 1등 숭배 주의, 효율성과 성과 우선의 분위기 속에서 공동체 가치의 훼손
▪ 안정된 삶을 누리는 일은 바늘구멍을 통과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이 되었고 이는 여러 형태로 분화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특권으로 오르는 사다리는 이미 걷어차인 지 오래다.
▪ 학력과 일자리마저 부의 대물림을 통해 이어지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어버린 사회
▪ 평범한 삶조차 목숨 걸고 도전해서 얻어야 하는 사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공공성과 공화국 정신이 제대로 공유되고 실현될 때 공동체의 희망이 되살아난다고 나는 본다. 구체적으로는, 재벌과 권력자와 정치가들, 그리고 학력을 배경 삼는 이른바 엘리트들의 사적 이해관계를 해체해야 한다. 그리고 개혁이란 공화국 시민의 삶이 가장 먼저 고려되는 정책, 즉 사회 공공성을 구석구석 뿌리 내리게 하는 일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비극과 부조리는 근본적으로 부의 편중,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에서 기인한다. 이 불평등은 공공성을 상실한 극소수 기득권층의 사익을 돕는 수단으로 타락해버린 국가권력의 오용 내지 남용이라는 문제와 연관된다. 그래 필요한 것이 '완전한' 민주 정치의 실현이다. 절차 민주주의를 넘어 실질적인 일상에서의 민주주의가 실현되어야 한다. 다소 효율적이지 못하고, 시끄럽다 할지라도. 그리고 경제민주화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완전한 경제적 평등은 하나의 몽상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경제적 불평등이 극심할 경우, 사회 구성원 다수에게 '자유로운 삶['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꼭 알아야 한다.
나아가 불평등한 사회는 국가 폭력 없이는 하루도 유지될 수 없는 야만적인 사회로 전락하게 될 수 있다. 경제적 불평등의 결과는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모두가 망한다. 이를 피하려면, 공화주의를 강화해야 한다. 나는 공화주의야 말로 다수 시민의 자유로운 삶을 보장하는 유일한 체제이라고 본다. 그런데 공화정의 최대 방해 자는 부의 균형을 완강히 거부하는 부유층의 탐욕이다. 왜냐하면 부의 과도한 격차는 필연적으로 정치적 영향력의 격차를 가져오고, 그렇게 되면 귀족과 평민의 평등한 참정권을 전제로 하는 공화주의는 존속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기득권층의 공통점은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공익 내지 국익으로 끊임 없이 위장, 은폐하면서 상습적인 거짓말을 한다. 프랑스대혁명 이전 몽테스키외는 공화주의에서 시민은 "소박하게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녹색평론의 편집장이셨던 고 김종철의 주장도 마음에 와 닿는다. 그에 의하면, 공화주의자는 "고르게 가난하게 살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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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의 완전한 균등화나 사유재산의 폐지를 원치 않는다. 문제는 지나친 격차, 그로 인한 권력의 독점과 공권력의 오용을 말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부자는 자신의 자본으로 일하지 않아도 더 쉽게 돈을 벌며, 가난한 자는 죽어 라고 일해도 먹고 살기에 급급하다면 그 사회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직도 돈이 있으면 무죄이고, 돈이 없으면 유죄인 사법 제도의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지 못했다. 그러니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사법부가 독립되어야 한다.
해결책의 하나는 좀 과격하지만, 게르만 족의 공동체가 했던, 만약 부자가 위세를 부리면 "그냥 죽여버렸던" 것처럼 하는 것이다. 물론 정의를 위해 인간을 살해하는 것은 오늘의 상황에서 용인될 수 없다. 다만 평범한 시민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는 매우 단호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 단호함은 직업 정치인이나 기득권층의 말을 들을 것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응답하는 정권이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음과 같은 공동체를 꿈꾼다.
▪ 과욕에서 소욕지족으로,
▪ 경쟁과 대립에서 협동과 상생으로,
▪ 획일과 차별에서 평등과 개성으로,
▪ 목표와 욕망에서 의미와 나눔으로
▪ 그리고 동상이몽이 아닌 동몽이상의 화엄세계를 꿈꾼다.
"너희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네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너희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 누가 복음 제 6장 31절을 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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