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소비는 없다. 똑똑한 소비는 있다.
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격주로 화요일마다 <미인 모임(미술과 인문학)>을 한다. 오늘은 <착한 소비는 없다. 똑똑한 소비는 있다.>(최원형 지음, 자연과 생태 출판)를 읽기 시작했다. 크게 4부로 나뉘어 있다. 상품 소비, 에너지 소비, 마음 소비, 자연 소비로 나누고, 총 41개의 테마를 다룬다. 문제는 너무 많은 정보를 주어, 계속 읽어 가기가 버겁다. 그리고 그동안 모르고 똑똑한 소비를 하지 못한 죄의식에 책을 그만 덮고 싶을 정도이다.
어쨌든 우리는 한 주제 한 주제를 나누어서 몰랐던 사실을 알아가며, 일상에서 실천할 것들을 따로 나열해 보고, 실천하기로 다짐했다. 나는 오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당장 유리 용기를 샀다. 이젠 음식 테이크아웃할 때 내 그릇을 직접 가지고 가면서, 쓰레기를 줄이기로 했다.
책 표지에 "지속 가능한 사회는 일상에서 실천하는 작은 수고로움에서 출발합니다. 기후 위기를 이야기하는 지금 이 작은 수고로움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당분간 매주 화요일마다, 내가 일상에서 소비하는 사소한 행위 하나가 어떤 파장을 불러오는지 사례 중심으로 정리를 해볼까 한다. 오늘만 살 것처럼 소비하는 우리들의 삶에 경종을 울리고 싶다. 우리에게는 소비방식, 나아가 우리 삶 전체에 대한 통찰이 절실하다. 왜냐하면 지금 이 지구 환경은 미래 세대가 이어 살아가야 할 공간이기 때문이다. 소비한다는 것은 지구에 있는 무언가를 쉼 없이 착취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러니 착한 소비는 있을 수 없다. 다만 최소한의 소비로 비틀어진 구조가 다시 회복되고 순환할 시간이 필요하다.
1. 산타는 일 년에 한 번으로 족하다.
제목만 보아서는 언뜻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잘 몰랐다. 온라인 쇼핑과 택배에 따라오는 포장재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뽁뽁이'라 불리는 완충제, 보냉재 그리고 스티로폼 박스 등이 문제이다. 재활용이 잘 안되니 매립이나 소각을 한다. 특히 보냉재의 내용물은 미세 플라스틱으로 남는다. 환경부는 이런 제품에 환경 부담금을 부과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기업이 과잉 생산을 줄이고, 우리가 지나친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온라인 쇼핑을 곰곰 생각해 보면, 소비자는 일시적인 편리함을 누리고, 이익은 해당 기업이 가져가는데, 온라인 쇼핑의 폐해는 공동체 전체가 세대를 이어 가며 받는다. 온라인 쇼핑에서 우리가 잘 모르는 것은 유통이다. 소비자가 주문한 물건은 어떤 것이든 일단 물류 창고로 모인 다음 그곳에서 소비자에게 배달한다. 예를 들어 우리 집 가까운 곳에 있는 물건을 주문하더라도 우리 집과는 멀리 떨어진 물류 창고까지 갔다가 우리 집으로 온다. 물건들이 계속 전국을 떠도는 셈이다. 내가 산 물건들이 화물로 옮기며 계속 탄소 발자국을 찍고 다니는 꼴이다. 특히 최근에는 국내 새벽 배송 시장 규모가 크게 늘고 있다. 물건이 꼭 총알이나 로켓 속도로 와야 하는가? 새벽 배송 때문에 누군가는 밤잠을 못 자고 물류 창고에서 물건을 포장해야 하고, 또 누군가는 밤길을 달려 우리 집 닫힌 현관문 앞을 다녀가야 한다.
오늘 아침에 생각한 거다. 우리는 문제 제기를 대답이라고 착각하지 말고, 문제만을 제기하고 자신은 그 대답과 괴리된 삶을 살지 말고, 문제 제기에 대한 대답을 '지금-여기'에서 하루하루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려면 현재의 삶의 속도를 늦추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즐길 시간을 내야 한다. 산다는 것은 시간을 내는 거다. 그런 식으로 여유를 가져야, 총알이니 로켓이니 하며 빨리 빨리 문화를 극복할 수 있다. 그 길은 철학, 즉 인문학을 공부하며, 초조함을 극복하는 거다.
문제는 초조함이다. 초조함은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초조한 자는 문제의 진행을 충분히 지켜볼 수 없기에 어떤 대체물을 문제의 해결책으로 간주하려고 한다. 성급한 해결을 원하는 조바심이 해결책이 아닌 어떤 것을 해결책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사태의 종결은 불가능해진다. 파국을 막기 위한 조급한 행동이 파국을 영속화하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많은 지름길들, 금방 치료가 되고 금방 구원이 되고 금방 개선이 될 것으로 보이는 그런 많은 길들이 실상은 비극의 수레바퀴를 굴리기 위해 우리의 초조함이 닦아놓은 것들인지도 모른다.
철학자 고병권 선생의 다음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초조함을 몰아내려는 치열한 노력이 또한 철학이라고, 철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철학 한다는 것, 생각한다는 것은 곧바로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지름길을 믿지 않는 것이다. 철학은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삶의 정신적 우회(迂回)이다. 삶을 다시 씹어보는 것, 말 그대로 반추하는 것이다. 지름길이 아니라 에움길로 걷는 것, 눈을 감고 달리지 않고 충분히 주변을 살펴보는 것, 맹목이 아니라 통찰, 그것이 철학이다. 철학은 한마디로 초조해하지 않는 것이다." 흥미로운 오늘의 시를 공유할 차례이다. 사진은 음식 테이크아웃할 때 사용하는 내 그릇과 오늘 이야기 하고 있는 책의 표지이다.
가득과 가족 사이/이희섭
아내와 여행을 가다가
싸우고 돌아오는 길
기름을 넣으려고 주유소에 들어간다
‘가득이세요’ 라는 말이
‘가족이세요?’ 라는 말로 들리는 순간
가득과 가족 사이에서 잠시 묘연해진다
가득이라는 것은
바닥난 속을 온전히 채우는 것이고
가족이라는 것도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어야 하는데
아내는 옆자리에서 눈감고
메마른 유전을 건너가고 있다
아무리 채우려 해도 금세 빠져나가는
사소한 빈틈
서로 다른 곳을 적시고 있는 건 아닐까
가득이 가족으로 들리는 배후가 궁금해진다
연료가 소진되며 자동차가 굴러가듯
그동안 우리 사이에 소진된 것은 무엇인가
소모되는 것들의 힘으로
일상을 지속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닥난 가족을 가득 채우러
다시 길을 떠난다
2. 물건 소비는 물건만 소비하지 않는다.
이 제목도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가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하나의 이동 경로가 48,000Km가 넘는다는 말이다. 그 거리에서 얼마나 많은 탄소가 배출될까? 물건 소비는 단순히 물건만을 소비하는 일일 수 없다는 말이다. 물건 뒤에 가려진 수많은 것을 동시에 소비하고 또 배출하게 되는 거다. 먹을 거리를 비롯한 상품을 원활히 나르려면 도로가 필요하다. <자전거 대 자동차>라는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LA 지역의 70%는 도로와 주차장이 점령하고 있다 한다. 우리도 땅의 많은 부분을 자동차에게 내어 주고 있다.
그래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로컬 푸드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급적 제철 야채나 과일을 즐겨 소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지역에서 생산된 로컬 푸드를 소비하며 먹을 만큼 덜어먹고(환경), 제철 농산물을 활용해 균형 잡힌 식단을 구성하며(건강), 나와 타인을 생각하는(배려) 식생활을 지향하는 ‘지속 가능한 식생활교육’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오래 전에, 철학자 강신주는 <인간다운 삶을 가로막는, 냉장고>(2013년 7월 21일, 경향신문)란 글을 써 많은 주목을 받은 적 있다. 이런 내용이었다. "어느 순간 재래시장에 들러 싱싱한 식품을 적당량 사서 바로 요리해서 먹는 생활이 반복되다보면, 우리는 곧 냉장고가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된다. 냉장고는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본을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테니까. 냉장고와 대형마트는 공생 관계에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냉장고를 대량생산하는 거대한 산업자본, 대형마트를 운영하는 거대 자본, 그리고 그곳에 진열된 식품들을 대량으로 만드는 또 하나의 산업자본이 도사리고 있다. 묘한 공생 관계 아닌가. 냉장고는 대량생산된 식품들을 전제하고 있고, 대량생산된 식품들은 냉장고가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강신주는 "냉장고를 없애라! 한 번에 없앨 자신이 없다면, 냉장고의 용량이라도 줄여라!"고 했다. 이에 많은 젊은 주부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많은 반박 댓글들을 달며, 속 없는 말이라고 비난했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강신주의 주장이 옳은 이야기이다. 우리가 냉장고와 대형마트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하던 사이에, "가족들의 건강, 이웃과의 공동체 생활, 생태, 재래시장 그 모든 것이 파괴되고 있었고, 거대 자본은 그 덩치를 늘려갔다." "당연히 대량생산된 식품에는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한 인위적인 조치가 취해지게 되고, 우리 인간의 건강은 심각한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시골에서 올라온 사과들도 냉장고에 저장하는 순간, 바구니에 담겨 이웃에게 줄 수 있는 기회마저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니 이웃과의 돈독한 관계가 가능할 수 있겠는가? 아직도 "냉장고에 방치되어 있는 식품들은 오늘도 엄청나게 버려지고 있고, 동시에 대량생산을 위해 고기나 채소들에 가혹한 생육 방법이나 유전자 조작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생태 환경이 온전하겠는가?
게다가 최근에는 냉동식품이 생기면서 냉장고 크기가 더 커지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냉동고가 아예 독립해서 부엌 한 곳을 차지할 정도이다. 냉동식품은 가격 경쟁에서도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싼 가격에 대량으로 말어 넣을 수 있으니 소자본은 경쟁 자체를 할 수가 없고 로컬 푸드가 설자리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다시 한 번 강신주의 주장을 소환한다. 왜냐하면 그의 주장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냉장고를 없애라! 한 번에 없앨 자신이 없다면, 냉장고의 용량이라도 줄여라! 가족 건강 문제, 생태 문제, 이웃 공동체 문제, 재래시장 문제가 그만큼 해결될 테니까 말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 “여자가 여자에게 추천하는 속이 넓은 냉장고”의 유혹, “살고 먹고 사랑하는 데 필수적인 냉장고”라는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냉장고의 폐기, 혹은 냉장고 용량 축소! 여기가 바로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내릴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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