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4절기 중 8번째 절기인 ‘소만(小滿)’이다.

3281.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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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4절기 중 8번째 절기인 ‘소만(小滿)’이다. '소만'은 음력으로는 4월이며 양력으로는 5월21일 무렵이다. 소만(小滿)은 ‘작을 소(小)에 가득 찰 만(滿) 자를 사용하며, '작은 것들이 자라서 세상을 가득 채운다는 의미이다. 소만 철이 오면, 풍요로운 햇볕 아래 차츰 여름 기운이 차오르며, 자그맣던 식물들이 물과 바람을 머금고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양새가 눈 앞에 그려진다. 여름의 문턱이 시작해 식물이 성장하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니까 입하(立夏)와 망종(芒種) 사이에 들어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滿)'는 것이다. 다만 ‘소만 바람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소만 무렵에 부는 바람이 몹시 차고 쌀쌀한 것이 특징이다. 이젠 여름의 시작이다. 그러나 올해는 바람보다는 더위가 너무 일찍 찾아왔다. 정말 지구가 병들었다.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던 과거, 5-6월이 되면 매우 힘든 보릿 고개가 반복됐다. 지난 가을에 수확한 양식은 이미 바닥나고, 햇보리가 나오기 전까지 먹을 것이 없는 춘궁기가 이어졌다. 농촌의 식량 사정이 가장 어려운 때를 빗대어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으로 '보릿 고개'라 불렀다. 지금은 그런 말이 사라졌다. 농가에서는 추수와 더불어 일 년 농사 중 가장 중요한 '모내기'가 시작된다. 논에 물대는 시기이다. 이 외에도 보리 베기 등 여러 가지 밭작물 김매기 등 해야 하는 일이 많아 농가에서는 일년 중 제일 바쁜 계절로 접어들게 된다. 도시에 나는 한가하다. 마침 소만이라는 나희덕 시인의 시가 생각 나 공유한다.
소만(小滿)/나희덕
이만하면 세상을 채울 만하다 싶은
꼭 그런 때가 초록에게는 있다
조금 빈 것도 같게
조금 넘을 것도 같게
초록이 찰랑찰랑 차오르고 나면
내 마음의 그늘도
꼭 이만하게는 드리워지는 때
초록의 물비늘이 마지막으로 빛나는 때
소만(小滿) 지나
넘치는 것은 어둠 뿐이라는 듯
이제 무성해지는 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듯
나무는 그늘로만 이야기하고
그 어둔 말 아래 맥문동이 보랏빛 꽃을 피우고
소만(小滿) 지나면 들리는 소리
초록이 물비린내 풍기며 중얼거리는 소리
누가 내 발등을 덮어다오
이 부끄러운 발등을 좀 덮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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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숲은 온통 여름 식물들이 뿜어대는 생명의 기운으로 넘실대고 있다. 오늘 아침 사진의 인동(忍冬)은 향기만 좋은 것이 아니라 꽃 속에 꿀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벌들의 사랑을 한껏 누린다. 따라서 인동 꽃 주위는 벌들의 날갯짓 소리로 늘 소란스럽다. 인동에 얽힌 눈물겨운 전설이 있다.
옛날, 중국 땅에는 마음씨 고운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이 부부는 금화와 은화라는 쌍둥이 딸을 슬하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금화와 은화는 평소 서로를 얼마나 아끼는지 늘 붙어서 지냈고, 살아 있을 때만 아니라 죽어서도 한 무덤에 묻히자는 약속을 하기까지 했다. 이 쌍둥이 딸이 무럭무럭 자라 혼인할 나이가 되었을 무렵, 마을에 몹쓸 전염병이 창궐하였다. 언니인 금화가 먼저 전염병에 걸려 몸져눕고 말았다. 동생 은화는 정성을 다해 간호했으나 보람도 없이 언니는 점점 쇠약해져만 갔는데, 은화 역시 그 무서운 전염병을 피해 가지 못했다. 병이 깊어져 죽음을 앞둔 자매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부모님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 “우리가 죽으면 약초가 되어 이 세상에 다시 피어나 우리가 걸린 것과 같은 병으로 죽는 사람이 없게 하겠어요.” 금화와 은화는 결국 죽어서 한 무덤에 묻혔는데, 이듬해 봄 신비롭게도 그 무덤에서 한 줄기 가느다란 덩굴이 자라났다. 덩굴은 이리저리 뻗어가며 무성하게 자라더니 여름이 오자 금색과 은색의 예쁜 꽃들이 뒤섞여 피어났다. 그 꽃을 본 사람들은 금화와 은화의 혼이 꽃으로 피어난 것이라 생각하여 ‘금은화’(金銀花)라고 불렀고, 사람들의 질병을 고치는 약으로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인동은 풀이 아닌 나무인데 사람들은 흔히 인동초(忍冬草)라고 부른다. 그것은 인동이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인내와 끈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흔히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 온갖 풍상을 참고 이겨낸 사람을 ‘인동초’라 호칭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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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훌륭한 꽃은 없다. 꽃은 저마다 훌륭하다. 꽃은 제가 피어날 철에 만개한다. 인생의 꽃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인생에 관한 한, 우리는 지독한 근시이다. 바로 코앞밖에 보지 못한다. 그래서 늦가을 아름다운 빛을 선사하는 국화는 되려 하지 않고, 다른 꽃들은 움도 틔우지 못한 초봄에 향기를 뽐내는 매화가 되려고만 한다.
‘일찍’ 꽃을 피웠다는 이유만으로 매화가 세상 꽃 중에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꽃은 아니다. 각자 인생의 꽃이 피는 계절은 다르다. 소년등과(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는 인생의 불행이 된다. 너무 일찍 출세하면 나태해지고 오만해지기 쉽다. 나태하므로 더 이상의 발전이 없고, 오만하므로 적이 많아진다. 예컨대, ‘인동초’ 김대중 대통령은 나이 76세인 2000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인동초를 만나면 생각나는 대통령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마지막에 어떤 꿈을 이룰 수 있느냐이다. ‘일찍’ 출세하는 것이 아니라, ‘크게’ 성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에는 ‘신인상'이 없다. 우리가 노려야 할 것은 신인상이 아니라, 우리 삶의 주연상이어야 한다. 신인상은 남보다 ‘빠른’ 성취에 부여하는 상이다. 부러움을 더 크게 받는다. 하지만 신인상 수상 이후, 이어지는 작품에서는 기대만큼의 연기를 보여주지 못하고 슬럼프에 빠지는 모습도 자주 본다. ‘2년차 신드롬’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주연상을 받은 사람은 최고의 경지에 있을 때 받기 때문에 큰 기복이 없다.
4.
어제 못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이어간다. 남을 부러워 하거나 시기 질투하지 말자. <<우정은 왜 그렇게 어려운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읽다가 우리가 친구라고 믿는 관계의 절반 정도만 두 사람 모두가 서로를 친구로 생각한다는 문장을 봤다. 생각보다 우정이 일방적이란 뜻이다. 우정에 대한 더 암울한 전망은 2009년 버거킹 광고에서도 보인다. 페이스북 친구를 끊으면 와퍼 세트를 준다는 광고를 보고 무려 23만명이 친구 관계를 끊은 것이다. 그러자 버거킹은 ‘우정은 강하다. 버거킹은 더 강하다!’는 대대적인 광고를 펼쳤다. 그러니 친구가 되기보다 어려운 건 친구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것이다. 좋은 관계란 오해와 이해, 화해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좋은 관계는 서로를 바꾸지 않는다. 그저 너 답게 있어도 괜찮다고 말해줄 뿐이다.
나는 박찬욱 감독이 가훈으로 생각한다는 말, "아니면 말고!"를 '시절인연'이 떠난 사람에게 한다. ‘아니면 말고’에는 인간사 노력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뜻이 숨어있다. 우정도 마찬가지다. 손절이든 지속이든 힘써 보고 아니면 내려놔야 한다. 관계를 유지하며 계속 싸우기보다 보지 않는 쪽이 더 현명할 때도 있다. 관점에 따라 위기가 기회가 되는 것처럼 오랜 친구와 겪는 갈등이 오히려 어느 쪽이 진짜 내 편인지 가늠해주기도 한다. 또 종종 상처를 남기고 떠난 우정 덕분에 새롭게 다가오는 우정을 만나기도 한다. 관계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당연히 우정에도 시절 인연이 있다. 관계에서 힘들어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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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猜忌)'는 남이 잘 되는 것을 샘하며 미워하는 마음이다. 비슷한 말로 '시새움'이 있다. 자기보다 잘되거나 나은 사람을 공연히 미워하고 싫어하는 마음이다. 줄여서 '시샘'이라고도 한다. '질투(嫉妬)'는 '다른 사람이 잘되거나 좋은 처지에 있는 것 따위를 공연히 미워하고 깎아 내리려 하는 행위'이다. 러시아 민화 하나를 소개한다.
"운 좋게 마술램프를 발견한 농부가 있었다. 램프를 문지르자 램프 속 지니가 나타나 소원을 말하라고 했다. 농부는 옆집에 젖소가 있는데 온 가족을 다 먹이고도 남아서 그들이 우유를 팔아 큰 부자가 되었다고 말했다. 농부의 얘길 듣던 지니가 "옆집처럼 우유가 잘 나오는 젖소를 구해드릴까요?"라고 물으니 농부가 대답했다. "아니, 옆집 젖소를 죽여줘!"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속 깊은 질투와 시기심을 말해 버린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런 시기와 질투로 가득한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왜 그럴까? 첫 번째 원인은 지나친 경쟁 속에서 살고, 거기서 발생하는 불평등이 문제라고 본다. 게다가 우리의 교육문법이 잘 못되어 깊이 사유하는 훈련을 시키지 않고, 경쟁 속에서 지식만을 암기하는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 속에서 패배감을 느끼면, 우리는 자존감을 잃게 된다.
남의 불행과 고통을 보며 느끼는 기쁨을 독일어로 '샤덴프로이데'라고 한다. 고통을 뜻하는' Schaden'과 기쁨을 뜻하는'Freude'의 합성어이다. 사람에게는 타인의 고통을 은밀히 즐기는 심리가 있다. 사람은 악하고 선한 본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한 속성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악한 속성을 최대한 멀리하는 것이 행복해 지는 길이라 나는 믿는다. 그건 자존감에서 나온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오랜 속담은 이런 인간 심리를 잘 드러낸다. '친구가 성공할 때마다 나는 조금씩 죽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처럼 축구에서 골을 넣은 선수는 기쁨에 환호하지만 상대편의 골키퍼는 고통으로 얼굴을 감싼다. 극심한 경쟁 사회에서 시기와 질투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기회와 과정이 공정하다면 입시와 승진, 사업의 성공을 보며 사람들이 느끼는 샤덴프로이데의 심리를 누구도 손가락질할 수 없다. 원래 인간 세계가 야박하고 비정하다.
반면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 왜냐하면 타인의 슬픔은 아무리 나눠도 마음이 무거울 뿐 진짜 내 것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이웃의 기쁨을 진심으로 나누는 경우는 좀 더 힘들다. 시기와 질투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시기와 질투가 생기려 하면, 이런 식으로 심리 상태를 바꾼다. 이를 나는 '풍요의 심리'라 한다. 세상에 좋은 것은 많고, 풍요로워서 남이 성공하고 인정받아도 내 몫은 남아 있다고 보는 심리이다. 그 반대가 '빈곤의 심리'이다. 이 세상 좋은 것은 매우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남이 가져가면 그만큼 내 몫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심리이다. 불교의 무디타(Mudita)의 지혜와 제퍼슨이 한 말을 소개한다. 무디타는 타인의 행복을 즐기는 기쁨을 뜻한다.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한 말은 이 거다. "누가 내 등잔의 심지에서 불을 붙여가도 불은 줄어들지 않는다." 나는 '송무백열(松茂柏悅)'이라는 사자성어를 좋아한다.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도 기뻐한다. 사촌이 땅을 사야 나도 잘 된다'는 말이다. 제2의 기계시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 혁신의 길목에서 협업과 협력이 필요한 우리의 자세이다. 그런 마음으로 조기 대선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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