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또 다른 스승이 있다. '산전수전(山戰水戰)'이다.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5월 15일)
나는 스승의 날마다, 소환하는 문장이 있다. "학위인사(學爲人師) 행위세범(行爲世範)"이다. '학문은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되어야 하고, 행실은 세상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공자가 사랑했던 제자 안회의 삶을 묘사했던 말로 알려져 있다. 북경사범대학의 교훈이기도 하다. 내가 나온 사범대학의 '사범(師範)'의 어원이다. 좀 더 현대식으로 해석하면, '배워서 남의 선생이 되고, 배운 바를 실천하여 세상의 모범이 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나도 실천하고 싶다. 교육자는 학문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행실에 있어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말이라 생각한다. 인성(人間性)을 갖추지 못한 교사가 나가면 지식 전달자이지 선생이 아니다. 말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직업은 선생님밖에 없다. 말로 사람을 변화시키려면 학생에게 신뢰를 얻어야 되고, 언행이 진실이 되고 모범이 되어야 한다.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현인(賢人)들이 말했던 스승으로 귀감이 될 만한 문장들을 다시 써 보며 각오를 다지는 아침이 되고 싶다. 선생이 선생이기를 포기하면 학생의 미래도 이 나라의 희망도 없다. 선생이 바로 서면 교육도 바로 선다고 나는 믿는다. "교사가 지닌 능력의 비밀은 인간을 변모 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 성균관대 이명학 교수가 한 말도 다시 공유하고 싶다. "한마디 말과 한 가지 행동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직업은 선생님밖에 없다." 더 무서운 말은 이 거다 '서툰 의사는 한 번에 한 사람을 해치지만, 서툰 교사는 한 번에 100 여 명씩 해친다.' '최고의 교사는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보다, 학생들이 배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믿도록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르치는 것은 두 번 배우는 것이다.' 이를 우리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 한다. '가르침과 배움이 서로 진보 시켜 준다'는 뜻이다. 이 말은 『예기』 "학기"편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좋은 음식이 있어도 먹어 보지 않으면 그 맛을 알 수가 없다. 또한 지극한 진리가 있다고 해도 배우지 않으면 그것이 왜 좋은 지 알지 못한다. 따라서 배워본 이후에 자기의 부족함을 알 수 있으며, 가르친 이후에는 비로소 어려움을 알게 된다. 자신의 부족함을 안 다음에는 능히 스스로 반성하고, 어려움을 안 다음에는 능히 스스로 장(長)해 질 수 있다. 그러므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더불어 성장한다고 하는 것이다."
<<장자>>의 제6편 '대종사( 大宗師, 큰 스승)'는 모든 사람의 귀감이 될 진정으로 '위대하고 으뜸 되는 스승'이 과연 어떤 사람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었다. 앞 편에서 우리는 우리의 일상적인 굳은 마음(成心)을 스승으로 삼을 수 없기 때문에(2:8), 그런 마음을 말끔히 비우는 '마음 굶기기(心齋)'를 실천해야 한다(4:12)는 이야기들을 읽었다. 이 편에서는 진인(眞人)이 등장한다. 이 '참 사람'이 우리가 본받아야 할 참된 스승이다. 이런 진인도 도를 대표하는 사람이므로 궁극적으로 도야말로 우리가 따라야 할 가장 '위대하고 으뜸 되는 스승' 혹은 스승 중의 스승이라는 것이다. (6:15-37) 지금 읽고 있는 <<도덕경> 제25장에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습니다("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한 것과 궤를 같이 하는 생각이다.
나에게는 또 다른 스승이 있다. '산전수전(山戰水戰)'이다. 난 '산전수전' 다 겪었다. '산전수전'은 동물과 같은 인간을 비로소 신적인 인간으로 개조하는 스승이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항상 오해와 질시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순간같은 인생을 살면서, 자신에게 의미가 있고, 타인들에게 아름다움이 되게 하면서 사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은 언제나 오해의 대상이다.
이때 남들보다 앞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려면 무엇보다 자신을 믿어야 한다. 타인은 그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기에 앞산 자들은 언제나 불안하고 외롭다. 세상은 오해 받는 사람들이 진보 시킨다. 오해 받는 인간이 자신의 원대한 꿈과 열정을 자신의 몸으로 실천하면, 그것이 수용되던지 혹은 수용되지 않던지 상관 없다. 그것이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거리낌이 없다면, 그 진실은 통하기 마련이다. 나도 그렇게 믿는다.
우리는 곤경에 빠지면, 제대로 생각할 수 없다. 그때 누군가 호의로 잡아주면 큰 힘이 된다. 나도 누군가 도움을 원하면 호의로 도와 줄 테다. 감정적일 때, 이성적으로 생각하게 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 같이 사유의 시선을 높여 주고 싶다. 사유의 시선을 높이면, 우리는 삶을 운용하는 실력도 좋아진다. 지금 겪고 있는 일이나 싸움을 세계 전체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시선이 낮은 사람이다. 세상은 생각보다 넓다.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거실에 TV를 없애면, TV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던 권력 관계나 시간을 쓰는 내용도 함께 사라져서 새로운 가정, 새로운 풍경으로 바뀐다. 변화를 이런 식으로 인식하는 것을 '인문적 통찰'이라고 한다.
오늘 아침 사진은 산책길에 만난 장미이다. 온 사방이 장미들이다. 장미를 보면, 생떽쥐뻬리의 <<어린 왕자>>>의 주인공 어린 왕자가 생각난다. 어린왕자는 자기가 시간을 내서 돌보았다는 것과 자신이 선택했다는 것 때문에,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장미를 고향 행성에 두고 왔다고 한다. "네 장미를 그렇게 소중하게 만든 건 네가 너의 장미에게 소비한 시간 때문이야." "사람들은 이 진실을 잊어버렸어. 그러나 너는 잊으면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에 너는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 너는 네 장미한테 책임이 있어." "내 비밀은 이 거야. 아주 간단해. 마음으로 보아야만 제대로 볼 수 있어.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아"라고 여우가 말했다.
어린 왕자는 자발성을 상징한다. 어린 왕자는 본능적으로 마음으로 생각한다. 여우에 의하면, 그래야 정말 중요한 것을 찾아낼 수 있다고 한다. 분석적 접근보다 직관적 의사결정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말이다. 직관이란 통찰력이라고 본다. 그런 통찰력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에서 나온다. 선택은 마음으로 하는 편이 좋다. 마음이 가면 선택하여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일요일이라 한가한 스승의 날을 보내면서, 좀 가벼운 시를 읽고, 고운 장미 시진을 보면서, 더부룩한 마음을 해독한다.
장미/노자영
장미가 곱다고
꺾어보니까
꽃 포기마다
가시입니다
사랑이 좋다고
따라가보니까
그 사랑 속에는
눈물이 있어요
그러나 사람은
모든 사람은
가시의 장미를 꺾지 못해서
그 눈물 사랑을 얻지 못해서
설다고 설다고 부르는구려
이젠 글을 두 가지 버전으로 쓰다. 길게 사유한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면 된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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