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신록이 초록으로 짙어 가며, 자연의 풀잎들은 현재에 안주하는 법이 없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5. 17. 17:06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5월 14일)

<<도덕경>> 제25장의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대왈서, 서왈원, 원왈반)", 말 그대로 하면, '큰 것은 가게 되고, 가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되돌아 온다'는 문장을 설명하면서, 도올 김용옥은 "노자의 언어는 대(大, 큼)에서 '반(反)으로 끝난다. 시작과 끝이 없다"고 요약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모든 것이 원초의 시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것은 유대교, 기독교적인 특수한 사유의 소산일 뿐"이라는 거다. 그러면서 "역사는 진보하지 않는다(History does not progress)"고 했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본다.

"역사가 진보한다는 것은 역사 그 자체가 불선(不善)에서 선(善)으로 나아간다는 것인데 이것은 가당치 않은 독단(獨斷)이요, 독선(獨善)이요, 관념의 독주(獨走)이다. 역사는 시간이고, 시간은 변화이고, 변화는 상대적 가치의 포용이다. 시간 그 자체에 가치를 물을 수 없다. 가치적 판단은 모두 사람의 판타지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시간에 부여한 형이상학적 폭력이다."

나는 진보(進步)라는 말을 좋아했다. '진보'는 사회내에서의 변화 또는 발전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진보주의와는 다르다. 진보주의는 진보적인 정치적, 사회적 사상이다. 이는 기존 정치, 경제, 사회 체제에 대항하면서 개혁을 통해 새롭게 바꾸려는 성향이다. 전통 가치와 안정의 지향하는 보수주의와 대립되는 개념이다. 우리는 누구나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꿈꾼다. 현재 자신이나 사회의 모습을 보존하려는 사람들을 보수적이라 부르고, 개인의 삶이든 사회이든 더 좋아질 수 있다는 미래에의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이면 진보적이라 부른다. 그리고 우리는 보수적인 사람을 우파라 하고, 진보적인 사람을 좌파라 한다. 이 이야기는 시 다음으로 미루고, 나의 블로그에 업로드한다.

'진보' 이야기가 나왔으니, 발터 벤자민(Walter Benjamin)의 잊지 못할 문장을 소환한다. "역사의 진보와 마찬가지로 학문의 진보도 항상 그때 그때 일보만의 진보이며, 2보도 3보도 n+1보도 결코 진보가 아니다."(<<아케이드 프로젝트>>)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1보를 걷지 않으면, 2보도 3보도 n+1보도 걸을 수 없기 때문이다. 1보를 걷지 않고서 꿈꾸는 2보도 3보도 그리고 n+1보도 단지 백일몽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말해 2보 보다는 3보, 3보 보다는 4보를, 아니 100보를 꿈꾸는 순간, 우리는 1보 내딛는 것의 중요성을 망각하게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한 걸음이다. 한걸음 걷지 않은 2보, 3보는 관념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당당하게 자신이 한걸음 제대로 이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한 걸음을 내던지 그 길을 긍정해야 한다.

도올에 의하면, "인류는 역사가 진보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냥 땅위에서 시간과 더불어 살았을 뿐이라는 거다. 그런데 우리는"역사의 진보'를 믿는 병에 걸렸다는 거다. 그 이유를 도올은 "20세기의 대중교육"으로 보았다. 이것은 산업혁명 이래 과학과 기술의 결합으로 인하여 눈부신 문명도구의 발전이 이룩되었고, 이러한 테크놀로지 혁명이 인류공통의 생활체험의 변화를 초래한 데서 생겨나기 시작한 망상이라는 거다. 도올의 주장을 직접 들어 본다.

"물질 세계의 변화를 역사 그 자체의 진보인 것처럼 착각하는 오류가 상식화되었는데 그것은  산업혁명을 주도한 사회적 시스템이 '자본주의'라는 매우 특수한 소셜 엔지니어링의 메커니즘이었고, 이 자본의 횡포는 한 2세기 동안 인류 삶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주도하여 왔던 것이다. 이러한 지속적인 강력한 변화를 '진보'라는 이름으로 규정하게 된 것은 과학만능주의와 (…) 기독교적 역사인식이 결합되어 마치 역사 그 자체가 인류에게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하는 것처럼 인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진보'는 과학의 발전, 자본의 확대재생산, 신의 섭리와 구속, 유토피아이론의 세속화 등이 결합한, 지난 두 세기의 역사 경험에 국한된 특수한 망상이라는 거다. 이러한 망상을 역사 그 자체와 혼동하는 것은 "소아병적 오류에 속하는 것"(김용옥)이다. 그러면서 역사는 우리의 삶이 이루어지는 텅 빈 장이라는 거다. 그 텅 빈 장에는 혼성의 카오스가 "逝曰遠, 遠曰反(대왈서, 서왈원, 원왈반)"하면서 어슬렁거리고 있다는 거다.

그래 나는 일상과 일이 이어지는 삶, 일상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 일상이 더 소중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좋아한다. 그 일상 속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한 걸음을 제대로 이어가는 사람, 그 한 걸음을 긍정하는 사람을 나는 좋아한다. 요즈음 코로나-19의 팬데믹 현상을 보면, "인간세의 움직임(이것을 보통 역사라고 부른다)"이 결코 단선의 직선적 방향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한다. 역사의 시간은 수없이 많은 일상의 삶의 시간들이 뒤섞여 엉클어지는 것이라서 '진보'와 같은  터무니없는 일반화 개념을 허용할 수 없다는 거다. 도올의 이야기를 또 직접 들어 본다.

"역사의 진보를 주장하면 퇴보도 있을 수 있고, 선을 말하면 불선도 공재한다. 자본의 확대가 이루어져 풍족한 삶이 영위될수록 빈곤이 확대될 수도 있고, 문명화의 과학적 도구가 발달하여 이기가 확대되면 그만큼 무서운 환경의 파괴가 일어나며,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과학의 발전에 득을 보기도 하지만, 인간 본래의 삶의 영역이 과도하게 축소되어 과학에 의하여 인간이 소외되는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고, 자본가들의 성장은 경제민주화의 퇴보와 양극화의 분열을 초래한다."

신록이 초록으로 짙어 가며, 자연의 풀잎들은 현재에 안주하는 법이 없다. 항상 자신이 변화해야 할 모습으로 변한다. 만일 내일도 이런 모습을 간직한다면, 그 풀잎들은 죽은 것이다. 자신이 되어 야만 하고 될 수 있는 모습으로 매 순간 변한다. 이런 식으로 우주 안에 있는 만물은 그 개체만의 고유한 성격이 있어, 인간을 제외한 동물과 식물은, 그 고유한 특징을 시간과 계절의 흐름에 맞추어 조화롭게 변신한다. 그 속도에 아연실색(啞然失色)할 정도이다.

이처럼, 노자 철학에 따라, 무심하게 순환하는 역사(시간=도)의 장 위에서 오늘 나의 삶을 위하여 무언 가를 창조하는 한 걸음을 내 딛는 거다. 역사 그 자체에 의미부여를 하는 어리석은 짓을 때려 치고, 역사의 계기 계기에 아름다운 무위의 실천,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불선이 하나되는 전관(全觀)적인 삶의 건강을 실천하는 거다. 거리의 "풀잎"처럼. "곡(曲, 휘어짐)"과 "전(全, 온전함)", "왕(枉, 굽어짐)"과 "직(直, 곧아짐)" 등이 양립 불가능한 반대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상호 불가결의 상관 개념으로 보는 거다. 도올은 전체를 보는 것이라 하여 "전관"이라는 표현을 했다.

나도 이 말이 좋다. "전관의 지혜를 가지는 자는 대대(對待) 관계의 양면을 포월(包越)한다"(김용옥)는 거다. "대립하는 것들은 서로 의지하여 자신의 존립을 도모한다. 유가 있기 때문에 무가 있으며, 무가 있기 때문에 유가 있다. 그래서 유무상생(有無相生), 난이상성(難易相成)이라고 말했다. 즉 대립자들은 대립하는 가치들을 포섭하는 것이다. 유는 무를 포섭하고, 무는 유를 포섭한다. 어려움은 쉬움의 포함하며, 쉬움은 어려움을 포함한다. 그런데 결국 이 대립자들은 서로 대립되는 상대방으로 이동하게 된다. 쉬움이 어려움이 될 수가 있고, 어려움이 쉬움이 될 수가 있다. 이렇게 대립되는 양면을 한층 더 높은 차원에서 통일하는 것이 포월(包越, 품어 안고 넘는다)의 지혜"(김용옥)라는 거다. 그 길이 전관(全觀)의 인간이 되는 거다.


풀잎/이기철

초록은 초록만으로 이 세상을 적시고 싶어한다
작은 것들은 아름다워서
비어 있는 세상 한 켠에 등불로 걸린다
아침보다 더 겸허해지려고 낯을 씻는 풀잎
순결에는 아직도 눈물의 체온이 배여 있다
배추값이 폭등해도 풀들은 제 키를 줄이지 않는다​
그것이 풀들의 희망이고 생애이다
들 가운데 사과가 익고 있을 때
내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만의 영혼을 이끌고
어느 불 켜진 집에 도착했을까
하늘에서 별똥별 떨어질 때
땅에서는 풀잎 하나와 초록 숨 쉬는
갓난아기 하나 태어난다
밤새 아픈 꿈꾸고도 새가 되어 날아오르지 못하는
내 이웃들
그러나 누가 저 풀잎 앞에서 짐짓
슬픈 내일을 말할 수 있는가
사람들이 따뜻한 방을 그리워할 때
풀들은 따뜻한 흙을 그리워한다

이젠 글을 두 가지 버전으로 쓰다. 길게 사유한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면 된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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