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사는 일에 너무 힘들어 할 필요 없다. 다 순환한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5. 15. 17:25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5월 12일)

지난 5월 10일에 이어, 노자 <<도덕경>> 제25장 이야기를 이어간다. 제1장에서 도(道)에 관한 총론을 언급한 이후, 노자는 다양한 변주를 통해 도의 속성과 원리를 언급한 바 있다. 이 장에서는 도의 실체와 속성, 원리를 보다 더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도는 실체가 있으며 다양한 성분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각 성분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뒤엉켜 있어 각각의 실체를 개별적으로 파악할 수는 없다. 빅뱅 직전 우주의 모든 에너지가 하나의 점으로 농축되어 있던 상태와 같다고 하겠다. 시간적으로 도는 천지보다 먼저 있었으며 지극히 적막하고 고요한 상태라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다. 절대적으로 독립된 실체라 늘 혼자이지만 그를 위협하는 별도의 사물들이 없기 때문에 항구적으로 안전한 지위를 갖는다.

그로부터 만물이 탄생했기 때문에 만물의 어머니이지만 딱히 정해진 이름은 없다. 인간들이 쓰는 문자(字)로 표현하다 보니 도라고 부르는 것이다. 도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에 서서히 움직여서 멀어진다. 그리고 극한 지점까지 멀어지면 다시 돌아온다. 다시 돌아오는 것은 도가 지구처럼, 우주처럼 둥글기 때문이다. 도를 하늘과 땅, 왕과 순환적으로 등치시키는 설명방식은 앞서도 나왔다. 네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 도의 실체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자연이다. 그래서 "도법자연(道法自然)", 즉 도는 자연을 법으로 삼는다고 했다.

지난 번 우리는 "有物混成, 先天地生(유물혼성, 선천지생 - 혼돈하여 하나가 된 그 무엇이 천지가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해 있었다)에 대한 정밀 독해를 했다. 오늘은 그 다음 구절들을 살펴본다.

• 寂兮寥兮(적혜요혜) 獨立不改(독립불개) : 그것은 고요하여 소리도 없고, 아득하여 모양도 없다. 말 그대로 하면 "적혜(寂兮)"는 '적막하도다'로 "요혜(寥兮)"는 '쓸쓸하도다'이다. 실제로 왕필은 "형체가 없기 때문에, 적막하고, 쓸쓸하다"고 주석을 달았다. 이것은 분화 이전의 개물(個物)들의 근본 자리이기 때문에 물론 소리도 형체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무엇에 의존하지도 않고 독립(獨立)된 자존적(自存的) 존재이다. 이것은 또한 '변하지도 않는다(不改)'고 많은 이들이 해석하지만, 도올은 여기 '독립'을 '자기원인(causa sui)적인 홀로됨이 아니라, 무형의 우주 전체를 암시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독립불개", 즉 '그렇게 홀로 서 있지만 함부로 변하지 않는다'에서 불개(不改)는 변화가 없다는 애기가 아니고,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카오스적이면서도 코스모스의 운행을 따른다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변하지 않는다'고 해서 고착되거나 정적인(static) 무엇으로 가만히 있다는 뜻이 아니라, 이랬다 저랬다 변덕을 부리지 않고 항존한다는 뜻이다.

• 周行而不殆, 可以爲天下母 吾不知其名(주행이불태, 가이위천하모 오부지기명): 삼라만상에 두루 나타나 잠시도 쉬는 일이 없어 위태롭지 않다. 그것을 만물의 어머니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실상 그 이름마저 알 수 없다. 여기서 주행(周行)은 '두루두루 아니 다니는 곳이 없다'는 거다. '두루 편만하다'는 것은 무소부재(무소부재)하여 어디서나 역동적으로 작용한다는 거다. 그리하여 모든 변화의 근원이지만 그 자체로서는 변하거나 지치거나 없어지지 않는 무엇이라는 거다. 모든 것이 여기서 나온다는 뜻에서 이것은 세상 모든 것의 '어머니'라는 거다. "주행이불태"에 대한 왕필의 주석은 형용하기조차 어려운 혼성의 물(물), "그 존재가 두루두루 미쳐 아니 이르는 곳이 없건만 위태롭지 아니하고 오히려 거대한 천지를 생하여 완성시키고 있으니 천하의 어미가 될 만하지 않은가!"라 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천지모'가 아니라, '천하모(天下母)'라는 거다. '천하'는 인간세(human society)를 의미하니, '천하모'는 '인간세의 어머니'이다. 정리하면, "혼성물"로부터 "천하모"까지, 천지보다도 먼저 생겼고, "적료"하게 "독립불개"하여 "주행불태'한 그것, 그것은 결국 하나의 카오스이다. 그런데 그 이름을 알 수 없다는 거다.

• 字之曰道, 强爲之名曰大.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자지왈도, 강위지명왈대. 대왈서, 서왈원, 원왈반): (임시로 이름 지어 도라 하고, 억지로 이름 붙여 크다 하자. 이 큰 것은 크기 때문에 흘러 움직이고 흘러 움직이면 끝이 안 보이는 넓이를 갖게 되고 멀고 먼 넓이를 가지면 또 본래의 근원으로 되돌아간다. '어머니'라는 것은 상징이지, 그 무엇의 이름 자체는 아니다. 제1장에서 말한 것처럼, 이것은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엇(무명)'이다. 절대적인 것은 어떤 이름이나 범주로 한정할 수 없기 Eoansdlek. 이름이 아니라 뭔가 그냥 덧붙여 보는 문자(字)로 말하면 '도(道, Dao)'라 할 수 있다는 거다. 우리 말로 어차피 움직이니까 '길'이라는 거다.

그러니까 이제 제1장의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가 새롭게 이해된다. 이 이름 없는 카오스의 도를 도라고 부른다는 것, 즉 언어의 못을 입힌다는 것이 허용될 수 없다는 거다. 그러나 하는 수 없이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부를 이름이 필요하니 그것을 억지로 글자의 옷을 입힌 방편에 불과하다는 거다. 왕필의 주를 공유한다. "도라고 언어화한 것은 만물이 그 어는 것도 이 길을 통하지 아니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이 도라는 이름은 혼성한 가운데서 우리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최대의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强爲之名曰大(강위지명왈대)"라 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고 구태여 뭔가로 표현한다면 '크다'고 말해 보자는 거다.  여기서 '크다'는 어떤 물체의 크기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최대치를 일컫는 것이며 최대라는 것은 혜시의 말대로 "지대무외(至大無外)"이므로 '밖'이 없는 전체일 수 밖에 없다. 이 카오스의 도는 전체이기 때문에, 혼성된 것이며 잡다한 것이기 때문에, 획일적인 일자가 아니기 때문에 매우 역동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갈 수밖에 없다(大曰逝). 간다는 것은 나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逝曰遠). 멀어진다는 것은 나로부터 반대의 성격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빛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면 어둠의 성격을 지니게 되고, 선(善)으로부터 멀어 지게 되면 불선(不善)의 성격을 지니게 되고, 아름다움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면 추함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제2장에서 노자는 말하였다. 아름다움은 그 것이 곧 추함이요, 선함은 그것이 곧 불선이다. 즉 반대되는 사태는 또 다시 반대되는 사태로 복귀하게 된다. 빛이 전적으로 부정되는 어움은 없고, 어둠이 전적으로 부정되는 빛이 없다. 빛 속에는 어둠이 내재하게 마련이고, 어둠 속에도 빛이 있게 마련이다. 흰색 속에도 까망이 있고, 까망 속에도 흰색이 있다.

그리고 먼 곳까지 끝 없이 뻔더 간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자기에게 되돌아옴을 뜻한다(遠曰反). 여기서 '반(反)'은 '반대'의 뜻을 갖는 동시에, '돌아옴'을 의미하는 '반(返)'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그러니까 반(反)은 반(返)이다. 반대 되는 부사적 상태는 서로가 서로에게 돌아간다. 노자가 말하는 우주는 유기체적 우주이기 때문에 주기성과 리듬성을 갖는다. 그래야만 조화로운 전체가 유지된다. 절대적이고, 전일적이고, 무소 부재하므로 아무리 뻗어 나가도 결국 그 자체 안에서 움직인다. 우주의 확대와 축소의 순한 과정을 이야기 하고 있는 거다. 아무튼 여기서 강조하려는 것은 도의 정적 존재성 측면보다 역동적 생성의 면임은 분명하다. 이런 순환을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대왈서, 서왈원, 원왈반)"라 표현했다. 그러니 사는 일에 너무 힘들어 할 필요 없다. 다 순환한다.

요즈음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의 일로 좀 분주하다. 동네 곳곳에 그리고 아파트 담벼락에 장미들이 분주하게 "눈부신 출산"(마경덕)을 하고 있다. 오월은 챙겨야 할 날이 많은 달이다. 노동절을 시작해서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등과 5·18민주화운동기념일 등이 있는 달이다. 살펴보면 모두 사람을 위하는 날들이다. 오월이 그러한 것은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에 서로 살피는 마음 잃지 말고 '인간 다움'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래 여기서 노자 이야기는 멈춘다. 이어지는 노자 읽기는 내일 계속한다. 이젠 오늘 받은 편지를 봉인하고 잠을 잘 시간이다.

매일/라이너 쿤체

하루하루는
한 장의 편지

저녁마다
우리는 그것을 봉인한다

밤이
그것을 멀리 나른다

누가
받을까

이젠 글을 두 가지 버전으로 쓰다. 길게 사유한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면 된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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