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예언자 미가가 활동하던 시절과 지금 우리 사회의 상황과 너무 비슷하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5. 14.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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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3.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5월 13일)

1
어제는 동네 분들과 옻순으로 저녁을 먹었다. 순(旬)이란 나무의 가지나 풀의 줄기에서 새로 돋아 나온 연한 싹이다. 그러니까 '싹'이다. 순을 따주는 것은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걸 방지 하기 위해 필요하다. 요즈음 나의 즐거움은 봄 순을 먹는 일이다. 그러니까 봄철 나물들을 주로 먹는다. 나물은 부드러운 새 순이 나는 시기가 제철인데 지금 같은 봄에는 파릇파릇한 나물을 먹으면 절로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난 고집스럽게 제철 음식을 먹으려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봄철 순은 두릅이다. 이걸 한문으로 하면 '목두채'라 한다. '나무의 머리 채소'라는 뜻이다. 그리고 가시가 있는 엄나무 순, 향이 진한 가죽나무 순, 오가피 순 그리고 옻 순을 우리는 봄의 5대 순이라 말한다. 이 어린 순들을 먹을 때 미안한 마음은 든다. 그러나 순을 따주는 것은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걸 방지 하기 위해 필요하다니 덜 미안하다. 두릅이나 오가피 순은 향이 있지만, 옻 순은 식 감이 좋고 고급 지다. 그래 사람들은 옻 순을 '봄나물의  제왕'이라 한다. 오늘 아침 사진이 옻 순이다. 냉장고에 아껴 두었던 부패해서 크게 실망했는데, 식당 주인의 허락으로 얻는 것들이다. 어제부터 시작된 22대 대선 공식 선거운동에 대해 생각하다 만난 칼럼에서, 후보 선택의 한 기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인문 운동가로서, 갈무리하여 공유한다. 나부터 내 선택의 기준으로 삼을 생각이다.

2
"선지자 미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평소에 늘 기억하던 미가서의 내용을 한동대 석좌교수인 강영안 교수가 <국민일보>에 칼럼을 썼다. 그는, 이 예언자 미가의 말씀을 현 대선 판에 적용해, 우리 사회의 리더에 적합한 기준을 제시했다. 

먼저 강 교수는 예언자 미가가 활동하던 시절과 지금 우리 사회의 상황과 너무 비슷하다고 말을 시작했다."미가가 활동하던 주전 8세기 이스라엘과 유다의 상황은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권력과 재력이 있는 지도자는 부패를 일삼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은 착취당했습니다. 
▪ 종교 지도자는 거짓 평안과 부요를 사람들에게 약속했지만 주변의 불의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부당하게 기소하고, 부당하게 재판했으며 고아와 과부, 가난한 사람과 외국인은 억울함을 당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미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는 거다. "일 년 된 살진 송아지로 번제를 드리거나 수많은 숫양이나 기름으로 제사를 지내려고 하지 말라고요. 하나님은 그런 제사를 기뻐하지 않는다고요.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사람에게 좋은 것, 곧 공의를 행하고 인애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걸 원한다고요." 

이런 식으로 미가는 일상에서 '선행(善行)을 해라'는 거였다. 예언자 미가는 신이 원하는 것은 종교 행위가 아니라, 선행(善行)이라고 말했다. 그 '선행'이란 나의 행위가 타인의 입장에서 향기로운가를 묻는 일이다. 미가는 우리가 가장 매력적인 향기를 잔잔하게 내뿜을 수 있는, 인향(人香)의 비밀을 세 가지로 말해주었던 것이다. 늘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려고 노력해야 동물적인 인간에게서 신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본다.

3
강교수와는 달리 나는 <미가서>의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외우고 있다. "정의를 행하고, 자비를 추구하며, 겸손하게 네가 만난 신이 요구한 대로 생활하는 것"(<미가서> 6:8)이 선행(선행)이다. 강 교수는 정의라는 말 대신에 "공의"라 해석했다. "첫 번째는 '공의를 행하라'는 것입니다. 공의(tzedakah)는 추상적 이상이 아니라 구체적 실천입니다"라고 말하며, 다음과 같은 예들을 들었다.
▪ 부당한 기소와 재판을 하는 검찰·사법부나 부당한 보도를 하는 언론을 바로잡는 일, 
▪ 불평등이 심화하고 청년 실업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시장 논리를 넘어 약자를 보호하고 불평등을 해소하는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일. 
아마 이런 일이 공의를 실천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대선 후보가, 어떤 정당이 이런 일을 하기에 적합할지 물어야 할 것"이며, "묻지 않는 사람은 남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동의한다.

나는 이런 일을 "정의(正義) 실천"이라고 말하곤 했다. 여기 공의이든  정의이든 히브리어로 번역하면, '미쉬파트' 이다. 그 단어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사람을 차별 없이 대하는 것'이다. 어원 적으로 보면, '공평하게 판단하다, 재판하다'이다. 그러니까 '미쉬파트'의 소극적 의미는 '잘못된 행위에 대해 그에 해당하는 동일한 처벌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잘못에 대한 벌을 넘어 사람들 각자에게 걸 맞는 권리를 보장한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성서는 지속적으로 미쉬파트는 '과부, 고아, 이민자 그리고 가난한 자'에 대한 지속적인 돌봄과 그들의 바람을 사회에서 펼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임을 이야기 한다. 오늘날은 외국인 노동자, 노숙자, 한 부모 가정, 노인 계층이 포함된 기초 생활 자, 차 상위 계층 등이 바로 이 미쉬파트의 대상이라 할 수 있다. 그 사회의 성숙 도와 정의 실현 정도는 순전히 그 사회가 이 계층을 어떻게 대하느냐 에 달려 있다. 이 계층에 대한 소홀이나 무관심은 자비의 부족이 아니라, 신의 제 1 명령인 '미쉬파트'를 범하는 죄악이다. 신이 인간에게 원한 첫 번째 명령, 신이 인간에게 요구하는 첫 번째 '선'은 사회의 취약 계층을 차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해결해주는 것이며, 이것이 가장 위대한 신을 위한 '예배 행위'라고 주장한다. 그러니 평상시의 작은 선행이 성전에서의 예배나 미사보다 중요한 것이다.

4
두 번 째로 나는 "자비 희구"로 풀이를 했는데, 강 교수는 "인애를 사랑하라"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인애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인애(hesed)는 단순한 친절이 아닌 언약적 사랑, 즉 끝까지 신실하고 희생적인 사랑을 뜻합니다. 인애를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를 기억하며 이웃에게 동일한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적대와 증오를 증폭하기보단 상처를 치유하고 공동 선을 추구하는 가운데, 이주민과 북한  이탈주민, 장애인, 미혼모와 같은 이웃을 포용하고 환대 하는 가운데, 범죄는 단죄 하되 사람은 포기하지 않는 정책 가운데 이런 삶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어떤 후보가 이러한 인애와 자비의 정치, 환대와 약자 우선의 정치를 할 수 있는지 물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해석한 "자비 희구(慈悲 希求)"를 히브리어로 하면, '아하보쏘 헤세드' 이다. '아하보쏘'는 보편적으로 '사랑하다'로 해석한다. 특히 '인간들 간의 사랑, 즉 부부, 자녀, 친구들 간의 사랑과 우정 혹은 신에 대한 인간의 정성'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적인 감정이 내포된 상대방에 대한 관심'으로 '희구(希求)'로 번역할 수 있다. 헤세드(chesed)는 현대어로 번역하기 어렵지만, 보편적으로 '인애(仁愛)'라고 해석하고 영어로는 'steadfast love(변치 않는 사랑)', 'kindness(친절)'로 번역된다. 이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하는 충성이나 사랑이 아니라,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베푸는 사람으로 한자로 표현하면 '총애(寵愛)' 정도가 될 것이다. 그리스어로 아가페(agape)이다. 인간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응원하고 믿어주고 끝까지 사랑하는 신의 마음이다. 신만이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인데, 신은 그런 사랑을 인간에게 요구한다.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이기도 하다. 이때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잃어버리는 '무아'의 상태로 진입한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영어로 'I'm nothing'의 상태가 되어야 아가페, 헤세드의 사랑이 시작된다. 모든 인간의 생존은 바로 어머니의 헤세드를 통해 가능하게 되며, 어린 아이는 어머니를 통해 헤세드가 인간이 단순한 동물이 아닌 신적인 존재로 도약하게 하는 이타적 존재라는 사실을 서서히 배운다. 신은 우리에게 자기 희생적 사랑을 목표로 삼고 행동으로 옮기기를 경주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5
'정의는 실천'하고, '자기 희생 적인 사랑인 헤세드는 희구(希求)하라'는 명령이다. '희구 하라'는 말의 뜻은 '바라서 요구함'이다. 그러니까 헤세드를 원하고 그렇게 되게 해 달라고 자신에게 요구하라는 말이다. 희구의 비슷한 말은 간구(懇求)이다. 간구는 '간절히 바라는 것을 얻고자 하는 구함'이란 말이다. 신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 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해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는 삶을 갈구해야 한다고 명령한다. 헤세드는 관심의 단계를 넘어선다, 그것에는 베푸는 주체와 받는 주체가 일치해 상대방의 희로애락을 함께 느끼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동반된다. 아파하는 갓 난 아기의 고통을 어머니도 느끼듯이 인간은 헤세드를 통해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나의 삶으로 인식한다. 신은 그런 삶이 어렵다고 판단해 헤세드를 '희구하고 간구하라'고 주문한다는 거다.

그리고 세 번 째는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거였다. "이 모든 것 가운데 그리스도 인은 권력이나 당파 세력에 의존하기보단 자기를 낮춰 겸손한 가운데 하나님 은혜에 절대 의존하는 믿음의 걸음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미가 선지자는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걸어라”고 말합니다. 믿음 가운데 하나님과 함께하는 겸손한 걸음은 정의와 자비를 지탱해 주는 바탕입니다. 종교적 자만심과 특정 이념의 악마 화에 빠진 이 땅의 그리스도 인은 돌이켜서, 자신을 향해 스스로 “비천하다”(tapeinos, 마 11:29)고 한 예수처럼 고통 많은 이 세상을 온몸으로 품어 안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야 하나님이 원하는 공의와 인애, 정의와 자비의 정치가 이 땅에서 조금이라도 뿌리를 내리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겸손(謙遜) 생활을 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만난 신의 명령에 따른 겸손 생활 하기'로 말이다. 겸손은 자기 비하적인 면과 동시에 자신 안에 숨어 있는 위대함을 발견하는 시발점이다. 강과 바다가 백 개의 계곡 물을 다스릴 수 있는 까닭은 강과 바다가 계곡 물보다 낮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싶은 리더들이 항상 말을 겸손하게 하여 자신을 낮추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은 인간이 겸손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소크라테스가 "내가 아는 사실은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밖에 없다"라고 했던 것처럼, 우리 인간은 대자연의 섭리와 인간 생명의 오묘함을 완벽하게 알 수 없고, 단지 그 지극한 일부 만을 발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의 근본은 삼라만상에 대한 경외심을 갖는 일일 뿐이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자신을 잃어버리고 직업, 명성 그리고 재산이 자신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혹은 남에 의해 강요 된 신을 숭배하고 그 신에 대한 여러 의견들을 '교리'라는 이름으로, 신봉하며 예배를 드리고 그 종교가 자신을 구원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며  일생을 산다. 신은 우리 모두에게 먼저 '자신만의 신'을 찾을 것을 요구한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신을 찾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과정이 바로 신을 만나는 지름길이 때문이다. 그 신을 찾게 되면 인간은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12,3 내란으로 치루어 지는 조기 대선에서 예언자 미가의 말대로, 우리 각자 선행을 각오하고, 이 예언자의 말씀에 따라 그 세 가지 선행을 몸에 지닌 후보를 선택하고, 우리 사회가 "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으로 일상이 회복되었으면 한다. 강 교수의 말을 끝으로 인용한다. "미가를 통해 준 하나님의 말씀은 정치가 혼란하고 종교가 타락한 시대에 사람이면 누구나 걸어가야 할 삶의 길입니다. 유권자로 투표에 참여해야 할 그리스도인은 이 말씀을 마음에 품고 주께서 이 땅을 새롭게 회복해 주길 간절하게 기도할 뿐 아니라 행동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 중에 정의와 공의, 공정과 공평 등의 차이이다. 다음 기회로 넘긴다. 하고 싶은 말은, "유전자 복권당첨기가 돌아가는 장면에 검정 천막으로 가리고 만들어낸 롤스의 정의론이 가진 한계를 넘어 무지의 커튼을 걷어내고 유전자 복권 은행이 돌아가는 현실을 인정해야 화려한 수사에 불과한 정의(justice)를 넘어 현실 속에서 공의(righteousness)가 실현된다"(윤정구 교수)는 거다.

오늘 공유하는 시는 우리에게 위로를 준다. 지난 금요일 류근 시인이 <겸공> 유튜브 방송에서 낭송한 시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백창우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이렇게 아무런 꿈도 없이 살아갈 수는 없지
가문 가슴에, 어둡고 막막한 가슴에
푸른 하늘 열릴 날이 있을 거야
고운 아침 맞을 날이 있을 거야

길이 없다고,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대, 그 자리에 머물지 말렴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그 길 위로 희망의 별 오를 테니
     
길을 가는 사람만이 볼 수 있지
길을 가는 사람만이 닿을 수 있지
걸어 가렴, 어느 날 그대 마음에 난 길 위로
그대 꿈꾸던 세상의 음악 울릴 테니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이제부터 걸어갈 길 사이에
겨울나무처럼 그대는 고단하게 서 있지만
길은 끝나지 않았어, 끝이라고 생각될 때
그때가 바로, 다시 시작해야 할 때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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