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오로 가는 길(walk to Emmaus)'이란 행사를 성당 친목 공동체 '아미쿠스(amicus)' 형제들과 근처에 있는 계족산에 가서 맨발 걷기를 했다.

3272.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5월 12일)
작년에 이어, 올해도 미사 후에 '엠마오로 가는 길(walk to Emmaus)'이란 행사를 성당 친목 공동체 '아미쿠스(amicus)' 형제들과 근처에 있는 계족산에 가서 맨발 걷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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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쿠스(Amicus)는 라틴어로 '친구'라는 말이다. 형용사로, '친한 또는 즐거운'으로도 쓰인다. 프랑스어로 '친구'란 뜻의 '아미(ami)가 여기서 나온다. 이를 내 친구라고 하면, '모나미(mon ami)'가 된다. 우리 나라에서는 볼펜 이름이기도 하다. 친구라는 말은 참 좋은 거다. "amicus ad aras(아미쿠스 아드 아라스)"란 말이 있는데, '죽을 때까지 우리의 우정은 변치 않는다'는 뜻이다.
사람은 묵을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오랫동안 가깝게 사귄 벗을 우리는 친구(親舊)라 한다. 친(親)은 친할 '친'이고, '구(舊)'는 '예부터 친하게 지내온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 말로는 '벗'이라 한다. 한자어로는 '붕(朋)'이라는 말이 있는데, '함께 공부한 벗'을 말한다. 반면 '우(友)'는 뜻을 함께 하는 동지(同志)로 붕 이외의 친구를 말한다. 어쨌든 사랑하는 사람보다 친구가 필요할 때가 있다. 아픈 이야기 힘든 이야기들을 허물 없이 그리고 서슴없이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친구, 이런 이야기나 저런 이야기 그리고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위로하고 위로 받을 수 있는 친구, 나의 속내를 가식없이 들어내도 괜찮은 편안한 친구가 필요할 때가 있다.
SNS에 떠다니는 "네 종류의 친구"가 있다.
▪ 첫째는 꽃과 같은 친구(花友, 화우)로 꽃이 피어서 예쁠 때는 그 아름다움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꽃이 지고 나면 돌아보는 이 하나 없듯이, 자기 좋을 때만 찾아오는 친구는 바로 꽃과 같은 친구이다.
▪ 둘째는 저울과 같은 친구(秤友, 칭우)로 저울은 무게에 따라 이쪽으로 또는 저쪽으로 기운다. 그와 같이 자신에게 이익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져 이익이 큰 쪽으로만 움직이는 친구가 바로 저울과 같은 친구이다.
▪ 셋째는 산과 같은 친구(산우, 山友)로 산이란 온갖 새와 짐승의 안식처이며 멀리 보거나 가까이 가거나 늘 그 자리에서 반겨준다. 그처럼 생각만 해도 편안하고 마음 든든한 친구가 바로 산과 같은 친구이다.
▪ 넷째는 땅과 같은 친구(지우, 地友)로 땅은 뭇 생명의 싹을 틔워주고 곡식을 길러내며 누구에게도 조건 없이 기쁜 마음으로 은혜를 베풀어 준다. 한결 같은 마음으로 지지해 주는 친구가 바로 땅과 같은 친구이다. 친구가 많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깊이가 중요하다. 산과 같은, 땅과 같은 친구가 진정한 친구이다.
나는 오늘 시처럼, "쓸모 없는 친구" 이다. 그러나 "만나면 그저 반가울 뿐/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쓸모없는 친구/김광규
거머리처럼 달라붙은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무슨 용건이 있어서
만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빚 갚을 돈을 빌려 주지도 못하고
승진 몇 전보에 도움이 되지도 못하고
아들 딸 취직을 시켜 주지도 못하고
오래 사귀어 보았자 내가
별로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그는 오래 전에 눈치챘을 터이다
만나면 그저 반가울 뿐
서로가 별로 쓸모없는 친구로
어느새 마흔다섯 해 우리는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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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3년전부터 맨발 걷기를 자주 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 유행이다. 어제 갔던 계족산은 한 소주 회사가 자비를 들여 황톳길을 잘 조성해 놓았다. 우리는 그곳에 가기 전에 한 현직 의사 형제로부터 맨발 걷기가 왜 좋은지에 대해 짧게 강의를 들었다. 인상적인 첫 마디가 "발바닥은 바닥을 보는 눈"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양말과 신발을 신으면서 눈을 가리고 사는 꼴이라는 거다. 발로 바닥의 센스를 감지해야는 데, 무시한다는 거다. 그래 뇌가 그만큼 작동되지 않아 치매가 온다는 거다. 맨발을 걸으면서 발바닥에 전해 오는 정보처리를 하느라 뇌가 활성화되어 뇌가 건강해 진다는 거다. 그리고 손가락처럼, 발가락의 근육이 발달되게 하려면 맨발 걷기를 자주 해야 한다고 했다. 인간의 몸이란 신비롭게 무한 동력 시스템인데, 그 동력은 근육과 신경망에서 나온다는 거다. 양말과 편한 신발을 신으면 발, 특히 발가락의 근육이 약해 우리의 몸을 지탱하는 두 구조물이 약해져 쉽게 낙상, 즉 넘어져 뼈를 상하게 된다는 거다. 그리고 허리가 아프다는 거다. 근육은 많이 사용해야 근육이 더 생기는 거라 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맨발 걷기의 효능은 크게 다음과 같이 3 가지를 말한다.
(1) 지압 효과(reflexology): 숲 길의 돌멩이, 나무 뿌리, 나무 가지 등이 맨발 발바닥을 지압해 각 지압점에 상응한 기관, 장기들의 혈액 순환이 촉진되고, 면역 체계가 강화 된다. 불면증, 감기, 변비, 무좀 등이 예방, 치유된다.
(2) 접지(earthing): 맨발 걷기를 할 때 땅속 음(-) 전하를 띤 자유전자(free electron)가 몸 안으로 올라와. 우리의 생리적 작용을 최적화 한다. 다음과 같이 6 가지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 항산화 효과: 양(+) 전하를 띤 활성산소를 중화 시켜 암, 고혈압, 신장염, 치매 등 각종 만성질환을 예방하고 치유한다.
▪ 혈액 희석 효과: 혈액을 묽고 맑게 해 각종 심혈관, 뇌질환을 예방하고 치유한다.
▪ ATP 생성 촉진 효과: 활력 충전과 항노화(anti-aging)의 묘약을 제공한다.
▪ 천연의 신경 안정 효과: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 분비를 진정시켜 천연의 신경 안정제 작용을 한다.
▪ 염증 및 통증의 완화: 세포 속 짝 잃은 전자에게 짝을 찾아주어 염증과 통증을 치유한다.
▪ 면역계의 정상 작동 효과: 면역력을 증강케 하여 감기, 코로나를 예방하고 각종 자기면역 질환을 예방 치유한다.
(3) 발바닥 아치와 발가락 꺾쇠 효과
▪ 스프링 효과: 맨발 걷기 시 아치가 압축, 이완되며 최고의 스트핑 작용을 하여, 근골격계 근육들을 말랑말랑하게 해 족저근막, 무릎, 고관절, 척추 등의 근골격계 통증들을 자연스럽게 해소한다.
▪ 혈액 펌핑 효과(제2의 심장): 아치의 압축, 이완 시 발등의 대동맥이 닫혔다 열렸다 하며 혈액을 펌핑해 혈류를 촉진한다.
▪ 발가락 부챗살 효과: 맨발 걷기 시 신발 속에 갇혀 있던 발가락들이 부챗살처럼 펴지면서 꺾쇠처럼 작동하여 정자세 유지, 혈류를 촉진하며, 각종 근골계 질환들과 치매,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등의 원인을 해소한다.
3
계족산에서 덤으로 얻은 것이 5월 초의 계절이 주는 생동감이었다. 그것을 우리는 '신록의 힘'이라 말한다. 오월의 초록 물, 신록이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해 준다. 더 정확히는 연두와 초록이 햇살과 노닐며, 상큼한 바람이 사이사이 입맞춤을 하고, 바람 길 따라 달콤한 향기를 발산한다. 나는 단풍보다 신록에 더 끌린다. 5월이 신록의 달이란 이야긴 어려서 부터 들었지만 신록의 참된 의미를 따져본 적은 없었다. 어제 늦은 오후에 산책을 나가 신록을 만끽했다. 아침 사진은 목련 나무 밑에서 찍은 것이다.
"나무는 안다. 앙상한 겨울에서 신록의 봄을 지나고 무성한 여름을 거치면 단풍 드는 가을에 닿고, 그 다음은 다시 겨울인 것을. 이 흐름을 아는 사람 역시 신록 앞에서 봄의 싱그러움과 함께 여름과 가을과 겨울의 각기 다른 삶을 함께 떠올릴 것이다. 시간은 흐르지만 흐르지 않고, 사람은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다는 모순까지 받아들이는 순간이다." 김탁환 소설가의 멋진 통찰이다.
소설가 김탁환은 신록의 또 다른 의미를 말하고 있다.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의 영화 <행복한 라짜로>를 보면서도 신록을 다시 생각했다. 주인공 라짜로가 안팎으로 행복한 까닭은 바삐 변하는 세상 속에서 신록과도 같은 성정을 지속하기 때문이다. 라짜로는 마을에서 누구보다도 많이 일하지만 불평 한마디 없다. 신분 높고 돈이 넉넉한 자들은 물론이고 가난한 농부들 사이에서도 라짜로는 바보 취급을 당한다. 그러나 나무가 바보가 아니듯 라짜로도 바보가 아니다. 신록에 이르는 과정과 짧다면 짧은 푸른빛을 즐기는 방법과 신록이 지나간 뒤 다시 올 때까지 참고 그리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 번창하는 여름을 자랑할 때 라짜로는 봄을 지키며 머물고, 누군가 가을의 결실을 내보일 때 라짜로는 파종을 걱정하고, 누군가 고통스러운 겨울에 힘겨워 할 때 라짜로는 산뜻한 봄바람을 닮은 표정을 짓는다. 그리하여 봄이 오면 라짜로는 네 배 더 즐겁게 새로운 푸른빛에 물든다. 반복되는 새로움을 우리는 ‘불멸’이라고 불러왔는지도 모른다. 불멸 대신 ‘부활’을 넣어도 마찬가지겠다." 그 방법은 신록에 이르는 과정과 짧다면 짧은 푸른빛을 즐기는 법과 신록이 지나간 뒤 다시 올 때까지 참고 그리는 마음을 간직하는 거다.
어쨌든 산의 나무들은 연두에서 초록으로 채워지며, 수채화가 유화가 될 것이다. 숲의 아래 쪽은 진녹색, 중간은 초록, 위 쪽은 아직 연두로 짙고 얕은 '녹색의 향연'은 좀 더 계속될 것이다. 봄이 꼭대기를 쫓아가며 농담(濃淡, 진함과 묽음)의 붓질을 해댈 것이다. 드문드문 섞인 솔숲이 암록(暗綠, 어두운 초록색)일만큼 신록이 눈부실 것이다. 숲이 아름다운 것은 색이 변화하며 형형색색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4
'엠마오로 가는 길'은 <루가복음> 제24장에 나온다. 조용히 묵상하며, 성경을 읽어 본다.
24:1 주간 첫날 새벽 일찍이 그 여자들은 준비한 향료를 가지고 무덤으로 갔다.
24:2 그런데 그들이 보니 무덤에서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
24:3 그래서 안으로 들어가 보니 주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다.
24:4 여자들이 그 일로 당황하고 있는데, 눈부시게 차려 입은 남자 둘이 그들에게 나타났다.
24: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으로 숙이자 두 남자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
24:6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되살아나셨다. 그분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기억해 보아라.
24:7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24:8 그러자 여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 내었다.
24:9 그리고 무덤에서 돌아와 열한 제자와 그 밖의 모든 이에게 이 일을 다 알렸다.
24:10 그들은 마리아 막달레나, 요안나, 그리고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였다. 그들과 함께 있던 다른 여자들도 사도들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였다.
24:11 사도들에게는 그 이야기가 헛소리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사도들은 그 여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24:12 그러나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으로 달려가서 몸을 굽혀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아마포만 놓여 있었다. 그는 일어난 일을 속으로 놀라워하며 돌아갔다.
24:13 바로 그날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24:14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
24:15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24:16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24: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
24:18 그들 가운데 한 사람, 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 “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하고 말하였다.
24:19 예수님께서 “ 무슨 일이냐?” 하시자 그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24:20 그런데 우리의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였습니다.
24:21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
24:22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가,
24:23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까지 보았는데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고 천사들이 일러 주더랍니다.
24:24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그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24: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24:26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24: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24:28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24:29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24:30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24:31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24:32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24:33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24:34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24:35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24:36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4:37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24:3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24:39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24:4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24:41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24:42 그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24:43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
24:44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24:45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24:46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24:47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24:48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24:49 그리고 보라,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내가 너희에게 보내 주겠다. 그러니 너희는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
24:50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베타니아 근처까지 데리고 나가신 다음, 손을 드시어 그들에게 강복하셨다.
24:51 이렇게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24:52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24:53 그리고 줄곧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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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오 출신 두 제자는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어간 예수를 보고 실의에 빠져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길가에서 ‘낯선 자’를 만나, 그를 자신들의 집으로 초대하여 음식을 대접한다. 그 낯선 자가 예수였다는 이야기이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공간과 시간에서만 '신'을 찾으려는 사람들은 이런 ‘낯선 자’를 무시하거나 적대시하고 ‘지극히 작은 자’를 피한다. 낯선 자 중 ‘지극히 작은 자’는 나의 손길이 필요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며 생명들이다. 이들은 내 안에 존재하는 ‘자비’를 일깨우기 위해, 스스로 고통을 짊어진 생명들이라고 보아야 한다. 내가 그들의 고통(passion)에 공감하여 내 안에 숨겨진 자비(compassion)를 일깨우면, 그 ‘지극히 보 잘 것 없는 대상’이 예수가 된다. 그리스도 교가 지난 2000년 동안 생존한 이유는 이 단순하지만 감동적이며 강력한 명제 때문이다.
예수가 카리스마 넘치는 예언자가 된 것은 언행일치(言行一致)의 삶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수는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주려 했던 원칙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 원칙은 자기 중심적인 이기심에서 벗어나 타인과 주변, 특히 옆에 있는 나그네의 처치를 생각한 것이다. '엠마오 가는 길'에서 제자들이 예수를 인식하게 된 유일한 통로는 '낯선 자'를 인식하고 그에게 비정상적인 만큼의 호의를 베푼 것이다. 예수는 '낯선 자'이다. '낯선 자'에게 행동으로 긍휼을 보여줄 때, 신의 신비가 우리 눈 앞에 등장한다. 그런데 그 때 예수가 사라진 것은 자신들 앞에 나타난 이 낯선 자가 '진짜' 예수라고 사칭하면서 종교 장사를 할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이 복음은 예수가 바로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매일매일 만나는 '낯선 자'라고 증언한다. 우리와 생각이 다른 낯선 자를 회피하거나 차별하고 우리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예수를 만날 수 없다. 우리는 '자아'라는 '무식'에서 벗어나 '무아'로 예수를 대면하기 위해 '다름'을 수용하고 우리의 삶을 적극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우리와는 사뭇 다른 어떤 존재를 우리는 '신', 예수라 부른다. '신'의 특징은 '낯섦'과 '다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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