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버이를 생각하는 날, 또 어버이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날이다.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5. 8. 18:08

3268.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5월 8일)

1
오늘은 어버이 날이다. 어버이를 생각하는 날, 또 어버이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날이다. 부모는 나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여기고 나의 기쁨은 자신의 기쁨처럼 여긴다. 세상 어디에도 찾을 수 없는 마음이다. 내가 아플 때 사람들은 나를 동정하지만, 자신들의 손해를 감수하고 나를 도와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부모는 다르다. 내가 아플 때 연민을 느낄 뿐만 아니라. 내 아픔을 자신이 지고 그 아픔을 덜어주려 한다. 내가 기쁠 때, 더 기뻐하는 존재는 부모이다. 어버이날은 우리에게 그런 심성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으라는 날이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 나도 부모가 되기 때문이다. 어버이 날 아침에, 나는 어른 짓을 잘 하는지 나를 되돌아 본다. 나보다 먼저 하늘 나라로 가신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내 아내가 생각난다. "별국", "별빛 사리"가 나의 배를 불리운다. 매년 5월 8일에는 이 시를 공유한다.


별국/공광규

가난한 어머니는
항상 멀덕국을 끓이셨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손님처럼 마루에 앉히시고

흰 사기그릇이 앉아 있는 밥상을
조심조심 받들고 부엌에서 나오셨다
 
국물 속에 떠 있던 별들
어떤 때는 숟가락에 달이 건져 올라와
배가 불렀다
 
숟가락과 별이 부딪치는
맑은 국그릇 소리가 가슴을 울렸는지
 
어머니의 눈에서
별빛 사리가 쏟아졌다.


2
부모같은 연민을 보여주는 서양 작품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이다. 그건 연민에 대한 찬양 시이다. 호메로스는 이 서사를 통해 원수를 자신처럼 여기는 마음인 연민을 최고의 가치라고 주장한다. <<일리아스>>의 마지막 장인  제 24장에서 아킬레우스를 군사영웅으로 찬양하지 않고, 자신의 적인  프리아모스를 신과 같이 보고 그를 위해 우는 영웅으로 묘사한다. "프라아모스는 그들 몰래 텐트 안으로 가까이 다가가 두 손으로 아킬레우스의 무릅을 잡고 자기 아들들을 수없이 죽인, '용사를 죽이는' 그 무시무시한 손 입 맞추었다." (24장)

<<일리아스>>는 전쟁의 승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반드시 가지고 있는, 기필코 발굴하여 발휘해야 하는 연민에 대한 찬양시이다. <<일리아스>>에서 호메로스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인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라는 문명의 불가피한 통과의례에서 중요한 점은 상대방을 분노와 무력으로 제압하는 힘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세상을 볼 수 있는 공감과 연민의 경험이다. 호메로스는 이 위대한 서사시를 통해 원수를 지신처럼 여기는 마음인 '연민'을 최고의 가치라고 주장한다.

인간이란 동물과는 다른 특별한 심성(心性)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이 심성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교육이란 이 심성을  자극하는 노력이다. 탁월함이란 이 심성을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발휘하는 용기이다. 그 심성이 '연민(憐憫)'이다. 어버이날은 우리에게 그런 심성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으라는 날이다. '연민'을 의미하는 그리스 단어는 '파토스'이다. 그 말의 뜻은 고통(苦痛)이다. 영어로는 그걸 패션(passion)이라 한다. 이 패션은 자신이 하고 싶은 욕망을 채우는 감정이 아니라, 자신의 애간장을 태우는 고통이다. 패션은 타인의 고통을 보고 자신의 일처럼 고통스러워 할 뿐만 아니라, 그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치려는 거룩한 행위이다.

인간만이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존재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연민은 상대방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 처럼 여기는 것이다. 리더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입장에서 세상을 볼 수 있는 사람이다. 리더는 부모의 심정을 지닌 자이다. 모든 인간은 어머니로부터 '자비'를 배운다. 아이는 자신이 세상으로 나오자 마자, 누군가의 헌신적인 사랑이 자기 생존의 기반이란 사실을 배운다. 그런 예술품으로는 <호루스에게 젖을 먹이는 이시스>와  성모 마리아와 어린 예수를 묘사하는 <피에타> 이다. 오늘 아침 사진이다. 어버이날에는 늘 다시 감상한다.

사랑을 표현한 최초의 동상과 피에타이다. 이게 자비이다. '자비(慈悲)'는 타인의 육체적, 정신적 혹은 감정적인 고통을 경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마음이다. 인간은 어머니의 자비를 통해서 세상에 태어났고, 자비를 확인하고 타인에게 베품으로써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다. 영어로는 'compassion'이라 한다. 컴패션은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는 감수성이자 능력이다. 컴페션은 다른 사람의 고통(passion)을 자신도 함께(com)느껴, 그 고통을 덜어주려고 애쓰는 행동이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배려하는 마음과 행동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은 모든 인간의 심연에 숨겨져 있는 이 위대한 심성인 연민에 대한 체계적인 자극이다.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타자의 처지에서 모든 인간은 어머니의 행동을 통해 연민이야 말로 인간 생존의 근간이라는 사실을 배운다.

3
대승불교는 수련을 통해 도달해야 하는 4 가지의 덕을 말하는 데, 그게 '자비희사(慈悲喜捨)'라는 '사무량심(捨無量心)'이다. 아무리 헤아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부처는 인간 마음의 가장 숭고한 상태를 산스크리트어로 "브라흐마비하라"라 했다. '숭고함'이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해 인간의 선과 악을 넘어 자기 자신이 소멸되고 한없는 경외심이 넘치는 단계다. 숭고함의 의미는 '셀 수 없는/경계가 없는'이다. 이것이 중국으로 넘어오면서 사무량심(四無量心), 즉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셀 수 없는 마음'이 된다. 나는 이것을 '사랑의 4단계 태도: 자비희사'라고 한다. 계단을 오를수록 더 어렵다. 어버이 날 아침에 다시 한 번 수련(修練)을 다짐한다. 잘 살다 가면,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길이다.

(1) 자(慈)=마이트리(maitri, 산스크리트어)=헤세드(hesed, 히브리어)=아가페(agape)=참된 사랑. 몇 가지로 나누어 생각을 해야 한다.
▪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사랑하는 마음의 태도이다. 이 사랑의 초점은 상대방에게 있다. 만일 그 초점이 자신에게 있고 상대방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폭력이다. 
▪ '자'는 상대방이 진정으로 무엇을 바라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깊이 살펴야 상대방에게 행복을 주려는 마음이다. 한자 '자(慈)'를 해석하면, 나와 상대방의 마음이 가물가물(玄)해져, 하나가 된 '신비한 합일(unio mystica)'의 상태를 의미한다. 마이트리, ‘자’는 소극적으로 내가 타인을 내 자신처럼 친절하게 대하고, 사랑할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행복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그 환경을 조성하는 작업까지 포함하는 큰마음이다. 
▪ 내가 가지고 있는 좋은 것을 기꺼이 주는 마음이다. 더 나아가 상대방이 사랑하는 것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숨은 노력이자 배려이다, 그것은 어머니가 아이를 향한 마음이다. 어머니는 아이가 한없이 행복하기를 기원한다. 
▪ 인류는 그 순수한 마음을 어머니로부터 부여 받아 각자의 심연에 간직하고 있다. 교육이란 이 심성을 체계적으로 일깨우는 자극이다.

(2) 비(悲)=카루나(karuna)=compassion(연민).
▪ ‘비’는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낄 수 있는 마음의 태도이다. 
▪ 더 나아가 상대방이 당한 상처나 고통을 함께 슬퍼할 뿐만 아니라, 그의 슬픔과 고통을 덜어주거나 제거하려는 마음과 행동이다. 
▪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비참한 상황에 처한 낯선 자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겨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비'는 그런 감정 이상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동일하게 느껴, 그 상대방을 그 고통으로부터 탈출시키고 싶은 마음과 행동이다. 영어로 ‘컴페션(compassion)'이다. 이 말은 상대방의 고통(passion)을 기꺼이 함께(com) 나누려는 마음이다. 
▪ ‘카루나’를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은 무관심이다. 따라서 상대방의 걱정, 근심, 슬픔, 불행을 자신의 일처럼 느낄 수 있도록 상상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관세음보살의 마음은 대자심이 아니라, 대비심이다.
▪ 상대방의 슬픔에 동참한다.
▪ 상대방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배려하고 조치를 취한다.
▪ 사랑하는 사람이 슬픔에 빠져 있다면 그 사람 옆에 앉아 말없이 그의 슬픈 감정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3) 희(喜)=무디타(mudita)
▪ '희'는 상대방의 행복을 나의 행복처럼 느끼는 마음이다. 상대방이 행복할 때,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줄 수 있는 마음과 행동이다. 
▪ 그리고 상대방이 행복하고 기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노력이다. 실제는 카루나보다 더 힘들 수 있다. 오죽하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겠는가? 상대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는 마음이다. 
▪ 그런 마음을 방해하는 것이 아상(我相, 나가 있는 마음)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가까운 친구, 동료 혹은 자신이 모르는 어떤 사람의 성공을 시기나 질투하지 않고,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다면, 무디타란 숭고한 감정을 소유한 자이다.

4) 사(捨)=우펙샤(upeksha)
▪ ‘사’는 버린다는 것으로, 마음에 집착이 없고 평온한 상태를 위미한다. 다시 말하면, 어떤 외부의 자극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수련하는 마음이다. 자신의 주위에 일어난 유혹에 자신이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가야 할 목적지를 향해 천천히 정진하는 의연함과 자신감이다.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되돌아보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나갈 뿐이다. 고생 끝에 산 정상에 올라 산 아래를 굽어볼 때 느끼는 그 감정이다. 눈앞에 탁 트인 광경이 펼쳐지는 이유는 정상에 올라온 사람의 시선은 다른 사람의 시선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설 수 있도록 인내를 가지고 지켜보는 마음이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는 마음의 태도이다. 
▪ 그리고 사람의 배경이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을 그 자체로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모든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대하는 마음의 태도이다. 
▪ 특권 의식이나 선민 의식을 없애는 것이다. 그냥 무덤덤하게 대하는 마음은 아니다. '자비희(慈悲喜)'를 모든 존재들에게 평등하게 내는 마음의 태도이다.

이 '사무량심'으로 무장한 사람은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속에 쾌적을 유지하는 자이다. "요가 수련자의 마음은 '자, 비, 희, 사'의 실천을 통해 기쁘거나 슬프거나,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상관없이, 언제나 쾌적하다." (파탄잘리, <<요가수트라>>) 사실 어떤 사건이 기쁘고, 슬프고, 혹은 행복하거나 불행한 것은 없다. 이런 감정들은 그 사건에 대해 나의 반응일 뿐이다.

3
인문 운동가는 사건에 대해 나의 반응을 대응으로 바꾸는 관점 디자이너이다. 생각을 바꿔 주고, 생각을 디자인해준다. 디자인은 개념과 실행혹은 실천의 틈에서 자란다. 난 틈, 영어로 갭(gap)을 좋아한다. 거기서 소통이 시작되며, 그 틈을 채우려는 노력이 멋진 삶일 게다. 의지와 행동 사이에 ‘생각의 틈’이 있고, 개념과 제작 사이에 ‘디자인의 틈’이 있고, 꿈과 현실 사이에  ‘플랜의 틈 ’이 있다.  하늘에선 뚝 떨어진 현실이란 없다. 그것이 보이지 않는 자에겐 ‘우연’이란 위안이 존재할 뿐이다.  틈은 헐거움이고, 낡음의 편안함, 헌 것의 소중함, 헐거워 짐의 평화가 된다.

바꾸거나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수용한다. 상황이든 감정이든 어쩔 수 없는 것,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이 분명 있다. 통제할 수 없는 것들과 실랑이를 하면 부정적 감정에 지배당하거나 자신을 비난할 수밖에 없다. 걱정하고 고민하고 자신을 책망하면서 뭔가를 통제하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마음의 평화를 지켜갈 수 없다.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변한다." 작용이 있으면 반드시 반작용이 되 따른다. 노자가 말한 "반자도지동"이다. 하늘의 '도'이다. 세상의 '진리'라 말할 수도 있다. '도(道)'의 핵심 내용은 반대 방향을 지향하는 운동 력, 즉 반(反)이다. 어떤 것도 변화하지 않거나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동양 철학이고, 이를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 해석한다. 반대편으로 나아가려는 경향을 운동력으로 해서 반대되는 것들이 서로 관계를 맺는다는 거다. 이 운동력은 바로 자연이 본래적으로 갖추고 있다고 노자는 보는 거다. 쉽게 말해서, 만사는 그저 한 쪽으로만 무한히 뻗어 가는 것이 아니라, 한 쪽으로 가다가 어느 정도에 이르면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이게 우주의 리듬이라는 거다.  어떤 상황이 극에 이르면 반전(反轉)하여 거꾸로 전개 된다는 이런 우주의 존재 방식이 노자가 말하는 "반(反)"이라는 거다. 그리고 노자는 바로 이어서 "약자도지용"이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은 "약(弱)한 것이 '도'의 운영 방식(用)"이라고 노자가 말하는 것은 강하고 센 것보다는 약한 것이 반전을 격발 시킨다는 것으로 본다. 강한 것은 결국 부러지고 고꾸라지니, 약하고 부드러운 것이 오랫동안 살아남는다. "약"은 부드러움(柔), 비움(虛), 낮춤(下)을 총칭하는 말이라는 거다. 이런 생각에서, 억제하지 않고 인정하고 수용할 때 매듭이 풀리고 평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상황은 통제할 수 없어도 상황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 즉 대응할 수 있는 거다. 반응과 대응은 다르다. 반응은 본능적인 행동을 뜻하고, 대응은 의식적인 행동을 뜻한다. 반응은 주로 상황에 대한 주도권을 상대방이나 상황에 내맡기는 수동적인 태도를 의미한다. 반면, 대응은 상황에 맞는 적절한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바꾸거나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수용을 통해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매듭을 끊어 버리는 감각을 키우는 것이 평온함을 유지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4
장기적 삶을 디자인할 틈도 없이 하루하루 일에 치여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구나 느리게 나이 들고 행복하게 오래 살고 싶다. 그게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노후자금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만 많이 얘기될 뿐 어떠한 삶을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는 부족하다. "40대부터 인생 이모작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을 지겹게 들어도, 제2의 삶을 진지하게 대비할 겨를이 없다. 

유영만의 <<2분의 1>>이라는 책은 제2의 삶에 대한 하나의 해법을 제시한다. 인생 후반전 출발선에 선 사람들에게 반전을 일으켜줄 '절반의 철학'을 공개한다. 그는 먼저 행복감을 주지 못하는 일, 의미와 가치를 주지 않는 일, 마지못해 해왔던 일을 절반(1/2)으로 줄이라고 한다. 그러면 두 배(2)로 늘려야 할 것들을 보이고 이렇게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1)한 나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수식 화하면 '1/2(절반) x 2(두 배) = 1(유일한 나)'이다.

5
구체적으로 중년부터 특히 중요한 다섯 분야로 건강, 공부, 말, 인간관계, 행복을 꼽는다. 이 분야에서 각각 야성(체력과 건강), 지성(지력과 배움), 감성(매력과 말), 정성(협력과 관계), 탄성(탄력과 행복)을 가질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줄여야 할 습관과 두 배로 늘려야 할 습관 50가지를 소개한다. 예를 들어 '빠듯하게 일정을 관리하기보다 뿌듯한 하루가 될 수 있도록 나를 위한 시간 관리를 해라', 지시하고 명령하는 말보다, 넌지시 배려하고 지지하는 말을 많이 하라', '갖고 싶은 물건을 가는 것보다, 나에게 지적 자산과 추억을 선물하는 경험 프로젝트에 더 돈을 써라' 등의 노하우이다. 내 인생 절반(2분의 1)을 후회 없이 설계하고 싶다면, 장기적 관점에서 삶을 다시 디자인하여야 한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남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행복에 대한 많은 정의가 있지만 그중 ‘스스로 행복하지 않으면 누구도 행복하게 할 수 없다’는 말도 중요하다. 우리는 때때로 가족, 친구, 직장 동료,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의 마음이 황폐 하다면 그 희생은 지속할 수 없고 오히려 모두를 힘들게 만든다.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 곧 타인을 돌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커다란 목표로 설정한다. 성공적인 직업, 이상적인 연애, 넉넉한 재산을 쌓아야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행복은 거창한 성취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침에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 오랜만에 듣는 좋아하는 노래, 창밖의 햇살처럼 우리 가까이에 존재한다.
▪ 행복을 위해 스스로를 돌보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필수적인 선택이다. 예를 들어 비행기에서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승무원들은 항상 “먼저 자신의 산소 마스크를 착용한 후 다른 사람을 도우라"고 안내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 자신이 충분히 숨 쉬고 있어야 타인을 도울 수 있다.
▪ 어떤 부모들은 자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려 한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부모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부모다. 행복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더 안정적인 정서를 갖게 되며 결국 행복을 추구하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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