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제 못한 '입하' 이야기를 이어간다.

3267.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5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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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제 못한 '입하' 이야기를 이어간다. 지난 2월 3일 '입춘' 때부터, 올해는 <<제철 행복>>을 쓴 김신지 작가가 보여준 연례 행사를 따라가 볼 생각이라고 <인문 일지>에서 말했다. 그러다 보면, 내년에는 나 만의 "제철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러면 나 만의 일상에 나만의 '기다려 지는 일'들이 쌓일 것이다. 작가의 아이디어처럼, 나도 '제철'의 단위를 사계절이 아닌, 24 '절기(節氣)'로 여긴다. 한 달에 두 번씩이다. '절기'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는 '한 해를 24로 나눈, 계절의 표준이 되는 것', 더 나아가 '한 해 가운데서 어떤 일을 하기에 좋은 시기나 때' 이다. '절기'는 1년 동안 하늘을 지나가는 해의 발걸음을 24 걸음으로 나눈 섬세한 계절 달력이다. 각 절기에는 우수, 경칩처럼 그 무렵의 날씨나 동식물의 변화 등을 담은 이름을 붙였다. 절기를 살피면 언제 봄이 오는지, 언제 더위가 한 풀 꺾이고 서리가 내릴 지를 가늠할 수 있었으므로 옛 사람들은 절기에 따라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수확을 했다. 제철 음식으로 건강을 챙기고 집 안팎을 돌보았던 것이다. 모든 '때'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며, 해의 걸음에 발맞춰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제철에 있다면 계절마다 '아는 행복'을 다시 느끼는 거다. 봄에는 봄에 해야 좋은 일을 하고, 여름에는 여름이어서 좋은 곳에 가는 것이다. 제철을 즐기는 거다. 제철 과일이 있고 제철 음식이 있는 것처럼 제철 풍경도 있고 제철에 해야 좋은 일들이 많다. 제철은 '알맞은 시절'이란 말이다. 장마가 지나면 수박은 싱거워진다. 때를 지나 너무 익은 과일은 무르기 시작한다. 다 제철이 있다. 알맞은 시절을 산다는 것은 계절의 변화를 촘촘히 느끼며 때를 놓치지 않고 지금 챙겨야 할 기쁨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 보는 일이다. 비 오는 날과 눈 내리는 날 어디에 있고 싶은 지 생각하며 사는 것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해보는 거다. 올해는 김신지 작가가 보여준 연례 행사를 따라가 볼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내년에는 나 만의 "제철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거다. 그러면 나 만의 일상에 나만의 '기다려지는 일들'이 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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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인 5월 5일은 24절기 중 '입하(立夏)'였다. 싱그러운 여름에 들어서는 출발선이다. 1년을 24개로 구분한 24절기가운데 일곱 번 째이다. 곡우(穀雨)와 소만(小滿) 사이에 들어 있다. 김신지 작가에 의하면, 입하는 '이팝'으로 온다. 우리 동네에 이팝나무의 하얀꽃들이 만발했는데, 나는 이런 생각을 못했다. 입하는 '이팝'으로 온다. '5월의 하얀 눈이 나뭇가지에 앉는 이팝 나무가 이때 만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숲에 가면, 입하부터 6월까지 하얀색 꽃들이 지천에서 피어난다. 꿀벌과 나비를 유인해 꽃가루 받이를 해야 하는 식물 입장에선 봄이 지난 지금, 하얀 꽃을 피우는 게 가장 유리하다. 짙은 초록 숲에서 이파리와 구분되게끔 밝은 하얀색 꽃을 피우고, 색을 만드는 대신 아낀 에너지로 진한 향기를 빚어내 벌을 불러들이는 건 나무의 오랜 지혜이다. 다시 말하면, 초봄에 노란색, 분홍색 꽃이 많이 피는데 날이 더워지면서 점점 흰색 꽃이 많이 피는 데는 이유가 있다. 녹음이 짙어 지는 숲속에서는 이파리들이 겹쳐져 있기 때문에 어둡게 보인다. 이럴 땐 색깔이 화려하다고 눈에 잘 띄는 것이 아니라. 밝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흰색이 유리하다. 또한 식물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색소 중에서도 쉬운 편에 속한다. 식물이 만들어내기 제일 쉬운 꽃의 색은 아마도 녹색일 거다. 광합성을 하는 잎들이 다 녹색이다. 하지만 바람을 이용해서 꽃가루받이를 하는 일부 꽃들을 제외하고는 곤충을 부르는 꽃들은 이파리들과 구분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녹색은 피한다. 녹색 이외에 만들기 쉬운 색은 무엇일까? 아예 색을 만들지 않는 것은 어떨까? 색을 만든다는 것은 어쨌든 식물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화합물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다. 일부러 색을 만들기보다는 그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쓰는 것을 선택한 결과로 보인다. 바로 꿀을 만들거나 향을 강하게 하는 쪽에 아껴둔 에너지를 쓰는 거다. 밝은 색인 데다가 향까지 좋으면 곤충들이 더욱더 많이 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 이유로 식물이 만든 꽃 색깔 중에는 흰색의 비중이 제일 높다고 한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오랜 시간 변하지 않는 자신만의 모습을 유지하는 자연을 보면서 흔들리지 않고 더욱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잘 선택하고 그 일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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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하 무렵 5월 초에 이름을 붙이면, '5월의 하얀 눈이 나뭇가지에 앉은 계절'이다. 대표적인 것이 조팝나무와 이팝나무이다. 공원에서 키 낮은 덤불을 이루며 '좁쌀'을 튀겨 놓은 듯 작은 꽃을 피운 것은 조팝나무이고, 가로수로 쓰일 만큼 키가 큰 데다 길쭉한 '쌀알' 모양의 꽃을 피우는 것은 이팝나무이다. 이팝나무는 꽃이 마치 흰쌀밥을 담아놓은 것 같아 보인다고 하여 이팝(쌀밥) 나무가 되었다는 설도 있고, 입하 무렵에 꽃이 피는 나무여서 '입하목'이라 불리다가 이팝나무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옛사람들은 이팝나무로 농사 운을 점치기도 했다 한다. 쌀밥 을 닮은 꽃이 피니 고봉밥처럼 꽃이 수북하게 피면 풍년이 들고, 그렇지 않으면 흉년이 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쌀밥을 '이밥 혹은 이팝'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흥미롭다. 왜 쌀밥을 이밥이라고 부르게 됐을까? 조선왕조가 이씨 가문에서 이어진 것과 연관이 있다고 보기도 한다. 배고픈 시절에 이씨 성을 가진 양반이나 왕족들만 쌀밥을 먹어서 이씨들이 먹는 밥이라며 이밥이 되었다고도 하고, 이성계가 새로운 나라를 개국하고 민심을 얻기 위해서 토지 분배 등 다양한 정책을 실시하여 이씨 덕분에 먹게 된 밥이라고 해서 '이밥'이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도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이밥'은 '입쌀로 지은 밥'을 말하는데, '입쌀'은 멥쌀(벼의 하나인 메벼에서 얻은 쌀)을 보리쌀 따위의 잡곡이나 찹쌀에 상대해서 부르는 말이라는 거다. 그러나 이밥이라고도 하지만 이팝이라고도 부르는 것에 대한 의견도 있다. 닭 앞에 ‘수’나 ‘암’이 올 때 수탉과 암탉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를 적용한 거다. 앞에 ‘이’ 자에서 ‘ㅎ’ 음가를 갖고 있어서 밥에 연음되어 ‘팝’이 됐다는 거다. 하지만 한자 이(李)가 뒷글자에 ㅎ 음가를 남길 것 같지는 않고 이밥의 ‘이’는 순 우리말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 무엇을 ‘이’라고 부를까? 요즘에도 쌀 방아를 찧다 보면 나오는 ‘늬’라는 게 있다. '늬'도 쌀과 관련이 있는 말이다. 그것처럼 과거에 쌀을 일컫는 말 중에 ‘이’라는 발음과 비슷한 단어가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길가다 향기가 너무 좋아 멈춰 섰는데 흰 꽃이 피어 있을 땐 높은 확률로 쥐똥나무나 때죽나무일 거라고 김신지 작가는 글에 쓰고 있다. 향기와 달리 이름이 촌스러워 억울한 나무이다. 둘 다 꽃이 아닌 열매가 쥐똥 혹은 반질한 머리의 스님들이 떼로 모여 있는 닮았다 해서 붙어진 이름이다. 그리고 이 시절에 많이 피는 하얀 꽃이 아카시아 나무이다. 아카시아 나무는 원래 바른 이름이 아까시 나무다. 박화목 작사, 김공선 작곡의 동요 <과수원 길> 때문에 이름이 바뀌었다고 보는 사람이 있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찍 폈네. 하이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 그리고 해태제과에서 1976년에 출시한 아카시아 (껌) 시엠송을 범인으로 보는 이도 있다. "아름다운~ 아가씨~ 어찌 그리 예쁜가요~ 아가씨 그~윽한 그 향기는 무언가요 아~아~ 아카시아 껌"
어렸을 때 우리는 막 피어난 싱싱한 아카시아 꽃을 따 먹었다. 꽃자루에 달콤한 꿀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카시아 꽃을 찹쌀가루에 버무려 아카시아 백설기 만들어 먹기도 했다. 아까시 나무는 북아메리카 원산으로 1900년 초에 무분별하게 벌채로 황폐해진 산림을 복구하고 땔감으로 이용하기 위해 전국에 심어 우리 땅에 정착한 귀화 식물이다. 이 나무는 오늘 아침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해마다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향긋하고 아름다운 꽃을 가득 피워 사람들이 즐겨 먹는 달콤한 꿀을 제공해주기도 하는 고마운 나무이다. 그리고 인문운동가로서 나는 아카시아 나무를 좋아한다. 이 나무는 어릴 적에는 가시가 많지만, 나이를 먹으면 가시를 없앤다. 인문정신을 고양시키는 나무이다.
오늘 아침에 공유하는 시는 아까시보다는 아카시아라고 불러야 꽃향기가 생생하게 느껴진다고 하면서, [먼. 산. 바. 라. 기.]님이 소개한 것이다. <김밥의 시니피앙>. 말에는 개인의 추억과 정서가 묻어 있다. 똑 같은 김밥이라도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다르다. 시인은 '김밥'보다는 '김빱'에서 유년 시절의 가난과 정을 추억한다고 했다. 김밥으로는 시인이 가지고 있는 느낌과 정서를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장면이 표준말이지만 짜장면이라고 해야 제 맛이 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빠보다는 아부지라고 해야 내 아버지가 살아나는 것도 마찬가지 이다. 이런 점이 말이 단순한 과학 기호와 다른 점이다. 같은 기호이지만 말이나 글에는 인간의 경험과 정서가 녹아 있으며, 하나의 시니피앙(기표)도 수만 개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런 점이 사람 사이의 소통과 이해를 가로막는 벽이 되는지도 모른다. 앞에서 말했지만, 아까시보다 아카시아라 불러야 향기가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어린 시절 불렀던 동요 <과수원길>과 오래 씹었던 '아카시아 껌'이 그립다.
김밥의 시니피앙/정일근
표준어로 유순하게 [김:밥]이라 말하는 것보다
경상도 된소리로 [김빱]이라 말할 때
그 말이 내게 진짜 김밥이 된다
심심할 때 먹는 배부른 김밥이 아니라
소풍 갈 때 일 년에 한두 번 먹었던
늘 배고팠던 우리 어린 시절의 그 김빱
김밥천국 김밥나라에서 마음대로 골라 먹는
소고기김밥 참치김밥 김치김밥 다이어트김밥 아니라
소풍날 새벽 일찍 어머니가 싸 주시던 김밥
내게 귀한 밥이어서 김밥이 아니라 김빱인
김빱이라 말할 때 저절로 맛이 되는
나의 가난한 시니피앙
그 외 5, 6월에 피는 하얀 꽃들은 많다. 조만간 정리를 하여 공유할 생각이다. 자주 마주치는 하얀 꽃들의 이름을 알아 두면, 그 나무들을 알아보고, 사진을 찍다 보면 산책이 훨씬 즐겁고 오래 걸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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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눈이 부신 5월의 날씨였다. 김신지 작가의 책에서 배운 아이슬란드어가 이해되는 날이었다. 지난 주말 비가 오고, 구름이 낀 날씨였는데, 어제 모처럼 좋은 날씨였다. 아이슬란드어로 '솔라르프리(Sólarfri)'가 있다 한다. 이 말은 '날씨가 화창하다는 이유만으로 예정에 없이 주어지는 휴가'라 한다. 그러니까 '태양 휴일 혹은 '날씨 휴가'로 번역하면 되지 않을까? 이토록 좋은 날씨엔 노동자에게 마땅히 태양 아래서 시간을 보낼 권리가 있다고 인정해주는 말, 실제로 화창한 날 사무실 게시판이나 상점 유리창에 'Sólarfri'가 붙어 있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는 거다.
프랑스 유학 시절에도 4월 부활절이후 해가 나는 날씨면 강의를 휴강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슬란드에 이 '솔라르프리'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것을 보면 그곳 사람들에게 햇빛이 얼마나 소중한 자원인가를 말해준다. 실제 아이슬란드 수도인 레이카비크 연평균 기온이 섭씨 5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거다. "지금 날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5분만 기다려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변화무쌍하고 예측 불가능한 기후를 가진 나라이고, 비바람이 걷히고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를 누구보다 기다릴 사람들이다. 드물고 소중한 것이 찾아오면, 누릴 수 있을 때 마땅히 누려두려는 마음이 만들어낸 문화가 아닐까? 그래 나도 오후에 체력이 안 되었지만, 날씨를 즐기려고 맨발 걷기를 위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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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어린이 날에 대한 인문학적 시선을 갖다가,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학생들이 부디 '인간'이 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박식한 괴물이 유능한 정신병자, 혹은 고등교육을 받는 폭군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읽기, 쓰기, 철자법, 역사, 수학은 학생들을 인간 답게 만들고 난 다음에나 비로소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우리 사회를 힘들게 하고 있다.
▪ 박식한 괴물
▪ 유능한 정신 병자
▪ 고등교육을 받는 폭군
마침 좋은 칼럼을 어제 읽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공부를 잘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7개국 만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치르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늘 최상위권이다. 가장 최근 치러진 2022년 PISA에서 한국은 수학 2위, 과학 2위, 국어(읽기) 3위였다. PISA 순위가 발표될 때마다 ‘수학 성적이 올랐다’ ‘과학 성적이 떨어졌다’ 하며 학업 성취도에만 관심이 쏠렸는데 그 이면에 다른 지표들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PISA 데이터를 교과 지식, 학습 역량, 타자와의 관계, 주체적 자아라는 4개 영역(29개 세부 지표)으로 분류해 학생의 역량을 복합적으로 측정했다. 그 결과는 우리 교육이 자기밖에 모르는 헛똑똑이만 길러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과목별 학업 성취도는 매우 우수했다. 창의적, 비판적 사고가 포함된 학습 역량도 양호했다. 하지만 타자와의 관계 맺기에 서툴렀고(교우 관계 36위, 협력 26위) 주도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능력도 부족했다(주체성 20위, 자주성 33위, 여가 생활 36위, 진로 탐색 29위). 공부는 잘하지만 그 능력을 남들과 나누거나 공동체를 위해 협력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기적인 헛똑똑이 키우는 교육이다."(동아일보 우경임 논설위원).
매우 인상적인 것은, 타자와의 관계 맺기와 주도적으로 삶아가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거다. 그러므로 KEDI(한국교육개발원)는 이번 지표 개발을 통해 공교육이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세 가지 핵심 역량을 도출했다.
▪ 바로 자신의 능력과 지향점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메타인지 능력(자아 성찰 문해력),
▪ 질문을 통해 새로운 것을 습득하고 활용하는 능력(전략적 학습 문해력),
▪ 자신의 가치와 욕망을 중심으로 세계를 배열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공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재배치하는 능력(관계적 문해력)이다.
우리 사회 엘리트에게 가장 결핍된 능력이기도 하다. 그간 대학 서열이 사라지지 않고 일자리 시장이 바뀌지 않는데 과연 교육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우리 교육 시스템이 길러낸 엘리트들의 아찔한 민낯을 보고 나니 대입을 향해 일렬로 달리는 교실이라도 바꾸지 않으면 정말 나라가 망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든다.
칼럼에 의하면, 2018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한국 미국 중국 일본 4개국 대학생을 조사한 결과 와도 상통한다. 각국 대학생에게 고등학교와 어울리는 이미지를 골라 보라고 했더니 우리나라 대학생 80.8%가 고등학교를 ‘사활을 건 전장(戰場)’이라고 생각했다. ‘함께하는 광장’은 12.8%뿐이었다. 중, 고교 시절 무한경쟁 속으로 떠밀려 '각자도생(各自圖生)'만 배운 한국 대학생은 식수가 오염된 상황을 제시했을 때 집단적 해결보다 개인적 자구책 마련을 유독 선호했다.
‘사활을 건 전장’의 대표적인 승자들이 우리 사회 집권 엘리트일 것이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탄핵, 대선 정국으로 이어진 국가적 혼란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국가시험을 통과한 직업 관료, 법조인, 그리고 이들이 다수인 국회까지 이른바 집권 엘리트의 합작품이다.
▪ 시험 정답은 잘 맞히지만 상식에선 벗어난,
▪ 유능할진 몰라도 무책임한,
▪ 공익으로 포장해 사익을 추구하는,
▪ 국민을 말하지만 공감력은 상실한, 그들만의 논리에 갇힌 ‘비장한 추락’을 보고 있기가 괴로운 요즘이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