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부처는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려 이 세상에 오셨을까?

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5. 5. 5. 19:49

3265.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 55)

 

1

오늘은 어린이날이자 절기상 입하(立夏)이고 '부처님 오신 '이기도 하다. 나는 어린 시절에 들은 '사월 초파일'로 기억한다. 석가모니(=싯다르타, 고마타 붓다)의 석가는 부처님 당시 인도의 특정 부족 이름이지 부처님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고, 석가탄신일보다는 '부처님 오신 날'로 바꾸자고 불교계는 주장하며, 이런 메시지를 전한다. "탐진치(貪瞋痴)의 무명(無明) 밝혀 진여(眞如) 깨치게 하소서." 부처(붓다)가 이 세상에 와서 중생들에게 광명(빛)을 준 날이다. 나도 오늘 아침 <인문 일지>를 통해 그 빛을 밝혀본다.

 

2

부처는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려 세상에 오셨을까? 부처, '깨달은 ', 누구든지 깨달으면 부처가 있다. 그러니 부처는 '너도 나처럼 깨어날 있다' 말하기 위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깨달어야 하는가? 답은 부처가 말한 '사성제(四聖諦)' 속에 있다.  삶은 괴로움이고(一切皆苦, 일체개고), 괴로움에는 원인이 있으며, 그것은 멈출 있고, 멈추기 위한 길이 있다. 고통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 특히 욕망과 집착에 매인 마음에서 비롯된다. 깨달음은 마음을 바라보고 다스리는 길이다. 팔정도(八正道) 실천함으로써 길로 들어설 있다고 부처는 가르쳤다. '부처님 오신 ' 바로 사실을 우리는 떠올려야 한다. 세상의 화려한 물건이나 엄숙한 의식 속에서가 아니라, 매일의 분노를 다스리는 순간,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마음, 욕심을 내려놓고 감사할 아는 속에서, 이미 부처는 나의 마음 속으로 들어 오는 거다. " 안에도 부처가 있다."

 

3

먼저 깨달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공부를 해야 한다. 사실이나 현실보다 진실을 찾는 것이 공부이다. 다음과 깉은 것들이다. 우선 "고-집-멸-도'라는 말을 공부한다. '고-집-멸-도(苦-集-滅-道)'는 불교의 근본 원리를 설명하는 말로, '사제(四諦)'를 이르는 말이다. 

  • '고'는 인생에 있어서의 모든 고통인 `사고팔고(四苦八苦)'를 뜻하는 말이고,
  • `집'은 `고'의 원인이 되는 `번뇌'의 집적(集積),
  • `멸'은 그 번뇌를 멸하여 없게 한 열반(涅槃)을 뜻하며,
  • `도'는 열반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팔정도(八正道)를 뜻함. 석가(釋迦)는 이를 깨달아서 성불(成佛)하였음.

 

'고집멸도(苦集滅道)' 라는 말은, <<아함경>>에 나오는 말로 불교의 기본 교리 중의 하나이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최초 법문이기도 하다. 고집멸도를 '사성제(四聖제)'라고도 하며  이는 불교의  네 가지 높은 깨우침이란 뜻이다. 좀 자세하게 정리해 본다.

(1) 고 (苦). 인간의 현실적 존재는 곧 괴로움이다. 고(苦)에는 사람이 겪는 생고(生苦)와 노고(老苦) 병고(病苦) 사고(死苦)의 괴로움인 생로병사의 4고(四苦)와,

  • 미워하는 것을 만나야 하는 원증회고(怨憎會苦) 의 괴로움과
  • 사랑하는 것과 헤어져야 하는 애별리고(愛別離苦) 의 괴로움과
  • 구하는 바를 다 얻지 못하는 구부득고(求不得苦) 의 괴로움과
  •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에 집착하는 육체적인 본능에 의한 오음성고(五陰盛苦)의 괴로움인 4고 (四苦)가 있다.

(2) 집(集).  탐욕과 욕망과 갈애와 열망이 결합하여 일어나는 괴로움의 원인인 집착을 말한다.

(3) 멸(滅).  번뇌와 고통이 모두 없어진 해탈 및 열반의 경지 즉 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해탈하고 생사를 초월하여 불생불멸의 진리를 체득한 경지를 말한다.

(4) 도(道). 괴로움을 없애는 방법을 말하며, 이는 곧 종교의 생명이며 실천 수행 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도(道)의 구체적인 항목으로는 깨달음에 이르는 여덟 가지의 성스러운 길, 즉 8정도(八正道)가 있다.

  • 정견(正見). 편견 없이 실상을 바로 보아야 한다. 유무의 편견을 벗어난 올바른 견해를 말하며, 이는 올바른 삶의 시작이며 여실지견(如實知見)이라고도 한다.
  • 정사유(正思惟). 올바른 생각을 하여야 한다.
  • 정어(正語). 도리에 어긋나는 일체의 말은 하지 않아야 하며 바른 말만 하여야 한다. 거짓말이나 꾸며대는 말, 서로 이간질 시키는 말, 상대를 화나게 하는 말은 하지 않아야 한다.
  • 정업(正業). 올바른 행위만 하여야 한다. 즉 살생이나 도둑질 등 악한 행위를 하지 않아야 한다.
  • 정명(正命). 생각이나 언행으로 악업을 짓지 말아야 한다. 바른 생활, 바른 직업 등 정당한 방법으로 의식주를 해결하여야 한다.
  • 정정진(正精進). 올바르게 노력하여야 한다. 즉 옳은 일에는 물러남이 없는 정열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 정념(正念). 바른 마음으로 수행하여야 한다. 올바른 정신과 생각으로 사념이나 잡념을 버리고 수행해야 하며 바른 기억을 하여야 한다.
  • 정정(正定). 번뇌로 인한 어지러운 생각을 버리고  바른 집중을 하여 삼매에 들어가야 한다

 

4

존재의 실상, 법의 참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삼법인(三法印)'이라는 가르침도 있다. '삼법인'은 '세 가지 진실한 가르침'이란 뜻으로, '도장 인(印)'자를 쓴 것은 '도장이 언제 어디서나 똑같이 찍히듯이 이 3가지 가르침도 언제 어디서나 변함없으며 똑같다'는 뜻이다. 바꾸어 말하면 '삼법인'은 불교의 핵심을 보여 주는 인감도장인 셈이다. '삼법인''사법인'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초기불교시대에는 '삼법인'으로, 대승불교시대에는 '사법인'으로 정형화되었다. '사법인'

  • '모든 것이 변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
  • '모든 변하는 것에는 자아(自我)라는 실체가 없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
  • '모든 변하는 것은 괴로움을 낳는다'는 일체개고(一切皆苦),
  • 모든 괴로움을 없앤 열반적정(涅槃寂靜)을 말한다.

'삼법인'일 경우 '열반적정'이나 '일체개고' 중 어느 하나가 제외된다. 다시 말해서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 혹은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을 '삼법인'이라 일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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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더 정리한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은 '세상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고 변한다'는 뜻이다. 중생은 모든 것은 변함에도(生滅變化, 생멸변화) 명예와 재물 등이 영속할 것으로 착각한다. 모든 것이 영원한 것으로 보는 그릇된 생각을 떨치기 위해 무상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제법무아(諸法無我)'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인연에 의해 생기고 없어진 것이므로 독립적인 실체(實體)가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변하지 않는 참다운 나(自我, 자아)의 실체가 없다. 중생은 ‘나’에 집착하는 그릇된 견해를 갖고 있다. 이를 없애기 위한 ‘무아’는 자기중심적 사고와 아집의 허망함을 알려준다. '일체개고(一切皆苦)'는 '존재하는 모든 변하는 것은 괴로움'이라는 의미이다. 기쁨과 즐거움도 일시적일 뿐, 여기에 집착하면 고통이 따른다는 것이다. 시간적으로 덧없고 공간적으로 실체가 없는 일체의 존재, 그 가운데 포함된 인간의 현실이 결국 ‘고’ 라는 것이다. 그러나 '삼법인'은 경전에 따라 '일체개고' 대신 '열반은 고요함'이라는 ‘열반적정(涅槃寂靜)’을 넣기도 한다. '열반적정'은 무상과 무아의 진리를 완전히 구현해 모든 번뇌와 욕망, 대립과 고통이 사라진 고요한 평화의 상태다. 우리는 때론 ‘나’와 ‘내 것’에 집착하곤 한다. '삼법인'은 모든 존재의 속성을 파악하게 해 집착과 미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최상의 평화와 자유를 맛보고 싶은 자라면 '삼법인'의 가르침을 생활화하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해야 할 것이다.

 

6

부처님 탄생 게(誕生偈)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였다. 이 말은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하다. 삼계가 모두 고통이니 내가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 뜻이다. '자신의 존귀함을 알라'는 말이 다시 와 닿는다. 우리는 매 순간 괴로움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으려고 한다. 그러나 좋아하고 싫어함이 즐거움과 괴로움의 원인이다. 부처는 '괴로움과 즐거움의 근본 원인은 우리들 밖에 있는 대상이나 조건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에 있으니 직접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좋아하는 마음을 늘려가라'고 하셨다. 그 길은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좋아하고 싫어함은 욕망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욕심을 버리려면 나를 버리고, 내 재산, 내 재능, 내 몸, 내 마음을 필요한 곳에 나누어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나눔만이 생사윤회(生死輪廻)하는 우리 중생들의 즐거움을 얻는 방법이다.

 

7

부처님 오신 날에, 우리는, 연등을 밝히며 내 안의 등불과 진리의 등불을 밝히고, 붓다 가르침의 핵심인 지혜와 자비, 다르게 말하면, 깨달음과 사랑의 실천을 다짐한다. 무엇을 깨달어야 하는가?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이니, 집착이 일으키는 고통("일체개고, 一切皆苦")을 벗어나면, 열반적정(涅槃寂靜)에 이른다는 진리, 사성제(四聖諦)를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그 힘으로 자비, 즉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그러니까 불교를 크게 요약하면, 깨달음과 사랑, 다르게 말하면, 깨달어 지혜를 얻고(사실 가치), 자비를 베푸는(판단 가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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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자신을 비교하게 만드는 '(에고)'라는 어떤 고정된 실체가 있다고 생각해서 '' ' ' 집착하는 마음을 만드는데, 마음에서 불교가 인간의 고통을 만드는 가지 근원으로 꼽는 탐욕, 분노, 어리석음, '3-탐진치' 나온다. '삼독' 악순환은 어리석음에서 시작된다. 자아의 욕심이 채워질 있다고 오해하는 어리석음이다. 어리석음이 모든 것에 대한 탐욕을 만들어 낸다. , 음식, , 마약, 성적 쾌락, 인기와 명성 도파민을 분비 시키는 온갖 것을 갈구한다. 탐욕은 도파민에 중독되는 현상이다. 그러면 중독으로 인지기능이 떨어진다. 결과로 판단력이 나빠지며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거다. 과정에서 뜻대로 되지 않거나 인위적으로 잠깐 늘어났던 도파민 분비가 다시 줄어들기 시작하면 노르에피네프린과 코르키솔이 만들어내는 분노가 타오르는 거다.

 

자아에 대한 집착, 갈애(渴愛, 목이 말라 물을 찾듯이 '삼독'에 집착하는 불교 용어)가 커지면 자기와 다른 사람, 이 세상 모두를 객체로 만들어버린다. 이 객체화(비인간화, 사물화) 현상이 약탈, 살육, 전쟁 등 세상의 모든 끔찍한 일어 벌어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이 '삼독'의 악순환은 다음과 같이 '삼학(三學, 계정혜, 戒定慧)'으로 제어하여야 한다.

  • 계(계율): 몸과 입과 뜻으로 나쁜 짓을 하지 않도록 막는 것
  • 정(선정): 어지럽게 흩어진 마음을 한 곳에 머물게 하는 것
  • 혜(지혜): 미혹을 깨뜨리고 진리를 깨닫기 위해, '고집멸도'의 사성제(四聖諦)나 '십이연기' 또는 실상을 관(觀)하는 것

 

첫 째로 고정된 실체로서 자아가 있다고 착각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냐 한다. 혜(智慧)의 영역이다.

  • 자아의 욕심은 완전히 충족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도파민의 밑 빠진 독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비교가 자아를 끝없이 자극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 '탐진치', 탐욕, 분노, 어리석음의 '삼독'은 사람들의 행동을 조작하고 돈을 버는 현대의 소비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장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 SNS를 포함한 플랫폼 자본주의의 모든 기제는 사람의 이 근본 심리를 이용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 이러한 자각을 통해 자아 강화와 비참함의 악순환을 탈출하여야 한다.

둘 째로 마음 챙김을 통해 번뇌, 즉 탐욕과 분노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禪定, 선정)의 영역이다.

  • 욕심을 줄이고 화를 내지 않는 거다. 그러나 쉽지는 않다. 하지만 마음 챙김을 늘 신경 쓰면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하면, 어떤 자극이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 와 화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살펴볼 능력이 생긴다.
  • 분노 회로에 시동을 걸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멈춰 서서 숙고할 능력이 길러지는 것이다.
  •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분노나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게 된다.

셋 째로 마음의 엔트로피가 더 낮은 상태, 내재역량이 더 높은 상태의 마음 건강을 빚는다. 세상의 욕망에서 자유로운 건강한 노인이 되는 거다. '삼학'을 통해 '삼독'을 약하게 하면, 그동안 먹고 마시고 싶었던 것들, 갖고 싶던 것들, 이루고 싶던 것들, 화'나게 하던 것들의 영향력이 약해진다. 계(戒律)이 영역이다.

 

9

그리고 부처의 또 다른 가르침은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이다.  그래 절 근처에는 모두 등을 단다.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라. 또한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의지하라. 이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란 뜻이다. 원래는 등(燈)이 아니라 섬(島)이었다고 한다.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라'였는데, 한역하면서 섬이 등불로 바뀐 것이라 한다. 다음이 불교가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 다른 종교와의 차이이다. '나는 세상을 구제하는 자이므로 나를 등불로 삼고 의지하라. 그렇지 않다면 지옥에 가게 될 것이다.'

 

불교는 우리 안에 있는 '불성(佛性)을 깨우치라' 말한다. 여기서 불성을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마음이다. 또는 성품, 심성, 자성, 정신세계라 할 수 있다. "법등명"보다 "자등명"을 먼저 말한 것은 내가 아닌 바깥 세상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에 의지하는 게 부처의 말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인간 존재의 무한한 능력을 그는 간파하신 것이다. 예수도 이런 말을 하였다. 진리가 무엇이냐? 묻지 말고,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고 하였다. 비슷한 말이 아닌가? 반면 부처는 어떤 말이 진리인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전승되어 온 것이라고 해서, 어느 권위자가 말했다고 해서, 세간에 널리 인식되어 있다고 해서 진리로 승인하지 마십시오. 깊이 사유하고 그것이 이치에 맞는 것인가를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실천하여 자유롭고 평온한 삶을 성취하면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이십시오, 나의 말도 무조건 믿지 마십시오," 예수의 "진리가 너희를 편안하게 할 것"이라는 말도 이치에 맞게 살면, 편안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부처는 영적 삶의 원형이고, 담마(진리)와 립바다(열반)의 화신이다. 불가(佛家)에서는 연등행사를 한다. 연등을 닮은 꽃인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어나기 때문에, 혼탁하고 어지러운 세상(진흙) 속에서 물들지 않는 깨달음의 연꽃을 피우라는 것이다. 연등을 밝히고, 내 안의 등불과 진리의 등불을 밝히고, 부처 가르침의 핵심인 지혜와 자비, 깨달음과 사랑의 실천을 다짐한다.

 

10

"차라리 혼자서 가라/ 어리석은 자와의 동행을 꿈꾸지 말라. 죄업을 벗고 집착을 떠나 숲 속의 코끼리처럼 혼자서 가라."(법구경>) 오늘 아침은 시 대신 <숫타니파타> 구절 일부를 공유한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욕망과 집착, 번민과 애착

그 모든 것을 집어 던지고

해탈의 진리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욕과 혐오와 헤매 임을 버리고

매듭을 끊어

목숨을 잃어도 두려워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리고 오늘은 24절기 입하(立夏) 이다. 들어갈 입()자를 쓰지 않고 설입()자를 쓴다. 한문의 입()자가 '', '즉시'라는 뜻도 있어 이제 곧 여름라는 것을 의미하며, 여름이 시작됐다는 의미이다. 1년을 24개로 구분한 24절기가운데 일곱 번 째이다. 곡우(穀雨)와 소만(小滿) 사이에 들어 있다.  입하와 제절 행복 이야기는 내일로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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